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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65)화 (65/74)

065.

주안이 알기로 게임 속 S급은 지금 자신과 파티를 구성한 네 명이 다였다. 게임사가 돈을 벌기 위해 S급 캐릭터를 뽑을 확률을 극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게 치자면 자신 또한 게임에 없던 S급이니 또 다른 S급이 있다고 해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더구나, 일부러 등록하지 않은 불법 헌터도 있다고 했고. 애초에 여긴 실제 세계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표정 관리를 하는 사이 백은후가 귀에 입술을 바짝 대며 말했다.

“저 여자 아버지가 VIP.”

“히익!”

주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한 보람도 없이 눈이 동그래졌다. 그제야 이 건물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껴지던 이상한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VIP의 딸인데다가 나라에서 꼭꼭 숨기는 은밀한 S급 헌터를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순 없으니까.

은수정이 샴페인 잔을 들어 주안의 잔에 부딪혔다.

“놀라셨나요? 에이, 너무 그렇게 대놓고 괴물 보듯이 하면 저 상처받아요. 오늘 제 생일인데요.”

아, 그래서 사람들 옷이 다 그랬구나. 백은후 이 녀석은 남의 생일 파티에 와서 제 목적을 말할 생각이었나? 매너 없네.

“아, 괴물이라니요. 은수정 헌터처럼 아름다운 괴물이 있으면 남자 헌터들은 공격도 못 해보고 다 죽겠네요.”

“호호, 립서비스도 잘하시네요. 누구와 다르게.”

백은후가 끼어들었다. 이번엔 속삭이는 게 아니라 은수정도 들을 만큼 큰 소리였다.

“성주안, 너는 모든 헌터들이 S급 버퍼한테 침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백은후의 시선이 은수정을 향했다.

“너도 수작질은 거기까지 하고. 어차피 보안팀 소속이라 던전 공략에 참여할 것도 아니잖아? 코인 많아서 성좌 도움도 필요 없고.”

은수정이 새빨개진 눈으로 성주안의 얼굴을 훑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동자가 옅은 갈색이었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붉어지는 게 신기했다. 어쩐지 으슥한 느낌에 슬쩍 시선을 피하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순수하게 욕망할 수도 있지 않아? 누가 봐도 예쁘잖아. 주안 씨.”

“…….”

누가 백은후 친구 아니랄까 봐 하는 말이 똑같았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괜히 샴페인만 들이켜는데 백은후가 덥석, 손목을 잡았다.

“서로 영역은 지키자. 보안팀 소속 특수 헌터들한테 손 좀 뻗어 봐?”

은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미안해. 나는 백은후가 이 정도로 침 흘리는 줄은 모르고. 자, 스몰토크는 여기까지 하고, 진짜 목적이 뭐야?”

백은후는 잡고 있던 주안의 손목을 놓고 묘한 표정으로 은수정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우리의 구조 요청에 보안팀이 움직여줘야겠어.”

주안은 하마터면 샴페인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오늘의 만남이 지난번 사고 때문이라더니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를 미리 대비해 놓을 모양이었다. 정식으로 등록된 조직인 데다가 헌터 소속이 아니라 정부 소속이니 성좌들과의 계약에서도 자유롭고 그러면서 등급도 높은 보안팀이라면 확실히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성주안은 숨을 멈춘 채 은수정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수정아?”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남은 샴페인을 한입에 털어 넣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은후 씨도 알잖아. 보안팀은 그럴 때 움직이는 팀이 아니야. 외국 헌터가 불순한 의도로 국가의 장벽을 무시…….”

백은후가 말을 가로챘다.

“침략해서 국가의 위협이 닥쳤을 때 나서서 처리하는 기관이지. 그래서 은밀하게 키우는 거고. 나도 알아. 그런데 은수정. 보안팀 외의 모든 S급이 한 번에 전멸한다면? 그것보다 더 심각한 국가 위기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은수정이 주안과 은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 대답했다.

“내 권한 아닌 거 알잖아?”

“VIP의 권한이고 그분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지.”

“아, 진짜 짜증 나. 백년 묵은 여우도 너보단 낫겠다.”

“칭찬 고마워.”

으으……. 주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을 주제에 갑님한테 빌어도 모자랄 판에 꼿꼿한 자세가 얄밉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은수정이 그런 백은후를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니, 오히려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둘이 비슷한 구석이 있으니 미러링하며 즐거워하나 보다.

“일단 부탁은 드려볼게. 장담할 수 없으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좋아.”

백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수정 쪽으로 갔다. 백은후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은수정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성주안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뭐지?”

갑자기 조용한 방에 혼자 남겨진 성주안은 당황스러웠다. 공동 경비 인간이라고 해놓고 다른 여자와 사라져 버린 백은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 나갈까 하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 자리를 지켰다. 한 오 분쯤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입은 것과 색깔만 다른 정복을 차려입은 모준영이었다. 짙은 블랙 재킷은 터져 나올 것 같은 근육과 특히 잘 어울렸다.

그가 이쪽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에 달린 금빛 훈장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고, 어깨에는 공무원임을 알리는 센터장의 표식이 달려 있었다. 옷에 달린 수많은 장식이 그가 높은 등급과 지위의 사람임을 새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성주안은 당황한 얼굴로 모준영을 쳐다보았다.

“여긴 무슨 일로…….”

“각성자 관리 센터의 상위 기관이 보안국입니다. 물론 저는 알려진 각성자라 보안국 소속은 아닙니다만 명령에서 벗어날 순 없는 몸이라.”

“아…….”

어쨌든 백은후에게 버려진 상황에 아는 얼굴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모준영의 눈동자가 주안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턱 근육이 부드럽게 풀어지고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정복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군요.”

“모준영 씨도 오늘따라 멋있습니다.”

“잘 어울리나요? 아무래도 혼자 정복을 입고 있을 것 같아 저도 입었는데.”

저를 배려했다는 뜻이었다. 참 누구와는 다르게 인성이 말도 못 하게 좋단 말이야.

성주안은 속으로 백은후와 모준영을 비교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백은후 씨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겁니까?”

“오늘 아침 전화가 와서 그러더라고요. 은수정 이사와 딜을 해야 하는데 요구조건이 짜증 난다고.”

“……뭐였길래요?”

“은수정 이사가 그랬답니다. 오늘 백은후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성주안 버퍼를 하루 빌려달라고요.”

“네에? 제가 무슨 물건입니까?”

모준영은 저도 어이가 없었는지 기막힌 웃음을 지으면서도, 입으로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백은후 씨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다음 던전에도 저번과 같은 일이 생기면 우리 모두 위험해질 테니 보안국의 도움을 받긴 받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성주안 씨를 빌려주긴 싫었을 테니까요.”

듣고 보니 그랬다. 하루쯤 파티 주인공 옆에서 그녀가 돋보이게 도와주고 보안국의 도움을 얻는다면 이쪽이 이득인 거래였다. 원하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백은후라면 거절하기 어려웠겠지.

“백은후 씨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주안 씨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은수정 이사의 요구를 들어줬을 텐데…….”

“어떻게 협상한 겁니까?”

모준영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성주안 씨 대신 본인이 직접 에스코트하겠다고 했답니다. 은수정 이사는 아쉬워하면서도 수락했답니다. 백은후 씨도 성격상 그런 자리에 가는 편이 아니니 옆에 두면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을 테니까요.”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저를 은수정에게 넘기지 않아 고맙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주안 씨의 안전에 신경 쓰기 힘들 것 같다면서 제게 따로 부탁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죠.”

모준영이 백은후의 편을 들다니. 오늘 참 여러모로 신기한 일이 많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모준영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기에 그냥 있는 것도 좋겠지만 성주안 씨의 안전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얼굴을 알려놓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아, 보안은 걱정하지 마세요. 보안국 책임자가 주최한 파티인 만큼 아무나 들어올 수 없으니까요.”

그런 것치곤 들어올 때 아무도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는 의문이 들었으나 곧 풀렸다.

백은후야말로 얼굴이 곧 신분인 법이니.

아무튼 모준영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가보니 그새 사람들이 더 많이 와 있었다.

백은후는 자리를 이동하며 사람들과 악수하는 은수정의 뒤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감정을 숨기고 표정을 능수능란하게 바꾸는 백은후도 오늘은 조금 지치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성주안은 킥킥 웃으며 모준영의 귀에 속삭였다.

“백은후 씨 힘들어 보이네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선택한 일인데요.”

다시 자리를 이동하려던 백은후가 슬쩍 이쪽을 쳐다봤다. 그는 모준영을 보고 살짝 미간을 굳히더니 이내 누군가가 와서 악수를 요청하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쳤다.

자업자득이지. 뭐.

모준영의 손에 이끌려 고위층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다가 잠시 쉬려고 했을 때였다. 갑작스레 상큼한 향기가 나서 몸을 돌렸더니 백은후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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