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어렸을 때도 혼자 씻었어요. 온도 조절을 할 줄도 모를 만큼 어렸을 때라 차가운 물로 씻다가 감기에 걸린 적도 있었고요.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어요.”
“아니, 애를 혼자 씻게 했다고요? 부모님은 뭘 하시고요.”
“……옆에 오는 것도 싫어했으니까요. 저는 각성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이상했거든요.”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멸망할 세계 속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주어진 특별한 힘이다. 설사 그게 이상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린애를 혼자 씻게 하다니 부모 맞나 싶었다. 애가 혼자 씻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몸이 아주아주 더러워질 때까지 참다가 유치원 애들이 더럽다고 놀려서 매일 씻기 시작했어요. 안 그래도 옆에 오기 싫어하는데 더 싫어할까 봐요.”
그제야 주안은 몸을 씻기는 자신의 손길에 세윤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이해가 갔다. 가장 먼저 받아야 할 부모의 손길조차 받아 본 기억이 없을 테니 오죽했을까?
“그런데 형이 나 씻겨준다고……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몸에 거품 칠해주니까 너무 좋아요. 흐읍.”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화가 나고 서럽고 미칠 것 같은 감정……. 어디서 맞고 온 아들을 보는 아빠의 심정이 이럴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대로 세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의 아빠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애들이 다 눈이 삐었나? 이렇게 예쁜 애가 옆에 오는데 왜 싫어해?
주안은 일부러 세윤을 더 꽉 끌어안았다. 열기와 습기로 후끈하게 달아오른 욕실 안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그를 안아주었다. 제 온기로 그가 위로받길 바라며 뒷머리를 쓸어내리고 등을 토닥였다.
“세윤 씨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어디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예뻐서 그런 건데 세윤 씨는 모르네. 그리고 왜 울어요? 앞으로도 계속해 줄 건데!”
“지, 진짜요?”
“그럼요. 세윤 씨가 원하면 거품 칠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세윤은 주안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눈에 매달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성주안을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제 옆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일을 다 망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씻겨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성주안은 항상 이랬다. 희생의 창조자일 때도 지금도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자꾸만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일을 망친 건 아쉽지만 맨몸으로 성주안을 꽉 끌어안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안이 다시 몸에 거품 칠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몸의 앞면이었다.
“흐으…….”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간지럽고 열이 오르고 흥분이 되는 기분을온몸으로 느끼며 몸을 비비 꼬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 어어?
허벅지에 힘을 주고 발꿈치를 들어보기도 하는 등 온갖 것을 다 동원했지만 또 다른 자아를 가진 녀석이 제멋대로 서고야 말았다. 주안의 손길은 담백하기만 했는데, 거기에 혼자 느껴 세운 게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실은 그보다도 음흉한 생각이 들켜서 주안에게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허벅지에 거품 칠을 하다가 생리현상을 발견한 주안이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음…… 어……. 뭐,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하하.”
진짜 착한 사람이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당황했으면서, 세윤이 민망할까 봐 괜찮다고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단순한 신체의 자연현상은 아니었다. 주안이 매력적으로 반응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으니까.
세윤은 재빨리 몸을 돌리고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슬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래는 수그러들긴커녕 더 심해지기만 했다.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다리를 엑스자로 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불행했던 과거 일을 말할 때마다 주안이 필요 이상으로 잘해줬으니까 어쩌면 이것도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세윤은 주안을 향해 몸을 돌리고 생각한 걸 실행에 옮겼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네? 그럼요. 남자는 원래 주기적으로…… 그, 아무튼 이상한 건 아니니까요.”
“아, 그래서 야한 꿈 꾸고 나면 빨래를…….”
일부러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더니 성주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서, 설마 그걸 모르는 거예요?”
알지, 그건 본능이라 어떻게든 알게 되어 있는데 착한 성주안은 그대로 믿는 것 같았다.
“그게 뭔데요?”
“그,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빼는 거요.”
“응? 이렇게 저렇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안 가르쳐 줬어요!”
주안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제 다리 사이를 쳐다봤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점점 커지기만 할 뿐인데……, 오히려 잘되었나?
“형, 조금 부끄러운 거 같은데……. 저는 괜찮아요! 형만 좋으면.”
“아니, 그게 아니고!”
성주안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혈기 왕성한 스무 살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그……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알죠?”
“네에!”
“하, 그럼 말하기 쉽겠네. 아무튼 그 자극을 자기 스스로도 할 수가 있어요. 손으로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감싸 왔다 갔다 했다. 그저 손일 뿐인데 그 모습이 무척 야하게 보여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주안의 손이 감싼 것이 손가락이 아니라 제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나쁜 상상을 하며 보고 있는데 주안이 말했다.
“어떻게 하는지 알겠어요?”
“네,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형도 해요?”
“저도 남자니까 당연히 하기는 하는데……. 왜요?”
공세윤이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주안의 아래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자신의 아래를 확인한 주안은 놀랐는지 입을 딱 벌렸다.
“형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물어봤어요.”
“아, 아닙니다. 저는…… 아무튼 아니에요. 나가 줄 테니까 혼자 처리하고 나와요.”
주안은 수건으로 몸에 물기를 닦곤 급하게 가운이 걸린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세윤이 덥석 잡았다.
“혼자 나간다고요? 그건 안 돼요. 짧은 시간이라도 안심할 수 없어요.”
“아, 그것도 그러네요.”
“그냥 같이해요. 서로 등 돌리면 되잖아요.”
성주안이 그건 절대 안 되겠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서로 해줄까요?”
“아니! 됐어요.”
“왜요? 근육도 풀어주고 거품 칠도 해줬는데 그건 왜 안 되지?”
진짜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는 세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 왜 하필 이런 순간에 반응하는 바람에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거나 왜 그런 것도 모르고 있냐고 묻지 않는 건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형이 아까 그랬잖아요. 남자는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오늘 밤에 잘 때 야한 꿈 꾸면 어떡해요?”
“…….”
한참 혈기 왕성한 스무 살이 야한 꿈을 꾸다가 일어났는데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뒤에 일어날 대참사를 생각하기조차 겁이 났다.
“그럼 돌아서서 각자 풀어요.”
“네.”
서로 해주자고 우기면 어쩌나 했는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었다. 공세윤은 벽을 보고 서고, 저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흐읏.”
뒤에서 신음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물에 젖은 살을 탁탁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제 아래는 놀란 탓에 죽어 있었다. 대충하는 시늉만 하고 안 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얼른 찬물을 틀어 몸에 뿌렸다.
“아아, 주안이 형.”
“…….”
“흐읏!”
눈앞에 잔뜩 힘이 들어간 다리가 보였다. 괴로운 듯 억눌린 숨을 내뱉으며 끙끙거리는 모습을 외면한 채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 달뜬 신음을 내뱉던 공세윤이 해맑은 표정으로 주안을 쳐다봤다.
“……좀 편해졌죠?”
“근데 형, 조금 이상해요.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공세윤이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따라간 주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분명 끝까지 하는 걸 봤는데 저게 무슨 일이야? 수그러들긴커녕 아까보다 더 커진 것이 주안의 시선을 붙잡았다.
“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어요.”
“그, 그게…… 아니에요! 효과는 있을 거예요. 내일 일어나 보면 알겠죠.”
공세윤은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다가 눈이 마주치자 아무런 의심 없이 웃었다. 저렇게 순진한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못된 걸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저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욕실을 나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갑자기 벨 소리가 들렸다. 세윤과 함께 나가서 확인해 보니 국물이 흐르지 않게 잘 포장된 음식이었다.
“……배달시켰어요?”
“아닌데…….”
둘 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먹어.>
그 두 글자가 다였다. 발신인은 당연히 주지찬이었고.
“지찬 씨가 보냈나 봐요. 배고팠는데 잘됐다!”
음식을 들고 들어와 식탁 가득 차렸다. 공세윤은 저도 요리할 수 있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잘 데워진 국과 밥 그리고 간이 딱 맞는 계란말이와 진미채를 입에 넣더니, 패배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빠르게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주지찬이 만든 음식은 거부하기 힘들지. 많이 먹어라. 공세윤, 그래야 쑥쑥 크지!
주안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저도 숟가락을 들었다.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디저트에 음료까지 마시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우니, 공세윤이 옆에 와서 앉아 주안의 머리를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세윤은 반쯤 눈을 감은 주안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꾸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윤의 원래 계획은 샤워와 안마로 주안의 몸을 노곤하게 풀어버린 다음에 미리 준비한 멋진 옷을 입혀서 예약해 둔 다이닝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요리 솜씨가 너무너무 좋은 주지찬 때문에 계획을 망쳤다.
그래도 막 샤워를 끝내 더 뽀송뽀송해진 얼굴과 가운 사이로 보이는 가슴 근육을 보고 있으니 나가지 않아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밤새도록 보고만 있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윤 씨.”
갑작스러운 부름에 세윤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