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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56)화 (56/74)

056.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겨우 1번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겁니까?”

모준영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하자, 모두 같은 걸 묻고 싶은 듯한 얼굴로 성주안을 바라봤다. 성주안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번호가 없는 스테이지가 튜토리얼이라는 것은 개발자밖에 모르고 있는 것이라 저들을 설득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성주안은 뺨을 쓱쓱 문지르며 ‘미치겠네.’하고 중얼거렸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어려운 전투를 세 번이나 끝냈는데 여기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해진 것이다.

그럴 순 없지.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재수 없는 성좌새끼들 망하는 꼴은 꼭 봐야지.

비록 이 세계가 게임과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전체적인 시스템은 비슷하니까 일단 알아보기나 하자.

결심한 성주안은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백은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백은후 씨, 처음 각성자가 되었을 때 전투는 어디서 배웁니까? S급이라도 능력을 다루는 기술을 배워야 할 테니까 교육 시설 같은 게 있을 거 같은데요.”

백은후가 입을 열려는 찰나 모준영이 끼어들었다.

“솔플용 던전이 있습니다. 능력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들어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VR을 활용합니다.”

그 말을 듣자 희망이 샘솟았다. 이 세계에도 튜토리얼이라는 게 있는 걸 보니 설명하기 어렵지 않을 테고, 혹 그 튜토리얼이 난공불락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튜토리얼 던전의 공략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주안은 기대감에 들뜬 얼굴로 모준영에게 물었다.

“그 튜토리얼 단순 교육용이라 공략은 쉽겠지요?”

“튜토리얼이요? 아, 교육용 VR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냥 배우는 거니까 공략이랄 게 딱히 없겠네요?”

모준영이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설마 여기서도 튜토리얼은 공략 불가인 건가? 제발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공략하라고 만들어진 VR이 아니니, 거의 모든 공격은 다 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능력치 높은 헌터들이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난이도는 최상으로 설정되어 있는 VR이지만 최대한 현실과 가깝게…….”

그 이후로도 모준영의 설명이 쭉 이어졌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VR이나 튜토리얼이나 똑같이 공략이 어렵다는 거였다. 진짜 큰일이네. 어떡하지?

이제 이쯤에서 사실대로 말하고 대책을 함께 찾자고 말하려던 찰나 게이트를 보고 있던 주지찬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저거 대체 뭐야?”

“왜요?”

“나는 불을 쓰니까 상극인 물의 기운을 귀신같이 느낀단 말이야. 공세윤이 가까이 있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것처럼.”

그건 그냥 네가 공세윤을 싫어하니까 그러는 거 같은데. 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입을 꾹 닫았다.

“아무튼 저 게이트 안은 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데?”

물, 물이라…….

성주안은 튜토리얼 중에 물과 관련된 게 있었나 기억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튜토리얼 중 물과 관련된 장애물은 없었고 심지어는 수속성 몬스터도 없었다.

분명 없긴 한데 이상하게 뭔가 제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뭘까? 더 자세히 찾기 위해 일단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난데없이 스테이지 1번이 튜토리얼로 변했는데 그 속에 물이 있다. 여기엔 전뢰계, 화염계, 빙결계, 물리계 헌터와 버퍼 한 명이…….

“아!”

떠올랐다! 제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버퍼인 제 존재였다.

레벨 1로 도전하는 튜토리얼은 연습의 목적도 있지만 게이머가 높은 레벨 스테이지를 미리 즐기게 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스킬을 S급까지 찍은 화신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 해두었다.

게이머와 화신들이 함께 공략하는 실제 튜토리얼과 원래는 VR이었던 던전이 나타난 지금 상황에서 다른 점은 단 한 가지. 게이머 대신 화신들의 능력을 보조할 수 있는 버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잘하면 공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아까까진 안 된다며.”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금 이 게이트는 VR을 현실화해 놓은 던전입니다. 그래서 스테이지 번호가 없어요.”

“뭐라고?”

백은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왔다.

“말 그대로입니다. 아까 게이트 앞에서 던전 정보를 확인했을 때 스테이지 번호가 없었어요.”

“넌 그걸 어떻게 알았지? VR의 존재 자체도 몰랐으면서?”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해 버리면 지금까지 잘 쌓아왔던 신뢰가 끝장나는 것은 물론, 위기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공략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성주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일단 스테이지 번호가 없는 게 이상해서 가장 먼저 성좌들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치사한 짓이 뭘까? 왜 갑자기 S급을 포기하고 A급으로 파티를 구성하려고 할까? 과연 그들이 그렇게 쉽게 S급을 포기할 놈들일까? 의심하면서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을 만들어 뒀으니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이렇게 변명한다고 하더라도 번호가 없는 스테이지만 보고 공략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한 이유가 충분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궤변이라는 거다.

예상대로 백은후는 아직도 의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떡하지? 이제 더 할 변명도 없는데……. 고민하는 사이 공세윤이 갑자기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형, 설마 포기할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닌데요. 일단 조심해야 하니까요. 목숨을 담보로 던전 공략을 해 봐야 남는 것도 없잖아요.”

공세윤이 발끈했다.

“남는 게 왜 없어요? 복수가 남잖아요.”

열 받았는지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귓바퀴를 뜨겁게 달굴 정도였다. 하긴 성좌에게 속은 장본인이니 열 받을 만했다.

지금까지 멍청한 짓만 하던 성좌들이 일부러 A급들과 접촉해 던전 공략을 할 거라는 소문을 내고 공세윤을 이용하기까지 했으니까.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가뜩이나 날짜 밀린 것도 억울한데.”

“그렇다고 무작정 들어갈 순 없잖아요. 저 안이 다 물이라는데…….”

공세윤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 된다고 해요? 문 열자마자 제가 다 얼려버리면 되잖아요. 저 지금 활기찬 상태인데요?”

다 얼려버리면 된다, 라.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빨리 해치워버리고 가요. 저 VR 할 때 다 이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등이었어요.”

그게 과연 될까? 공세윤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순 없었다. 고민하는 와중에 주지찬이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껏 우리가 한 전투 중에 쉬운 게 있었나? 다 어려웠지. 어차피 이거 못 깨면 다음 스테이지도 없다는 뜻 아냐?”

“……그렇긴 한데.”

이번엔 백은후가 다가와 재킷을 벗어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그만 떨어. 키스 버프는 위험할 때 써야 하니까 남겨두고, 우리 전부와 악수하고 포옹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공세윤은 가장 마지막에 하고.”

백은후의 말에 동의하는지 모준영도 말을 거들었다.

“게이트는 저와 공세윤 씨가 같이 여는 거로 합시다. 몬스터 군단이 튀어나오면 귀찮아질 테니.”

성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물러나기만 하는 것도 더는 한계였다. 던전 공략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파티원들이 아니라 성주안 자신이었으니까.

“좋습니다. 모두 이리로 오세요.”

파티원들이 차례대로 주안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다들 끌어안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포옹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으나 괴롭진 않았다. 말은 안 해도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와 가슴을 맞대며 성주안은 처음으로 캐릭터를 향한 개발자의 이끌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각자의 목숨줄을 서로의 손에 맡긴 이들을 향한 두터운 신뢰와 깊은 우정이었다.

* * *

쏴아아…….

키스 버프를 받은 공세윤이 팔을 흔들자 거대한 물보라가 그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물방울을 튕겨냈다.

화르륵!

튕겨 난 물방울들이 주지찬의 손짓 한 번에 바짝 말라서 파티원들은 물 한 방울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성주안은 갑작스럽게 생길 위험에 대비해 모준영의 뒤에 숨어서 공세윤을 바라보았다. 푸른 물속에 잠긴 공세윤의 모습은 마치 물의 정령이라도 된 것처럼 아름다웠다. 던전 안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물이 공세윤이 손짓하는 대로 흐르고, 움직이며, 얼었다.

아름다운 모습에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으니 그 많던 물이 어느새 얼어 단단한 빙판을 만들었다. 힘을 많이 썼는지 공세윤의 숨이 거칠었다.

“끝났어요. 이제 진입해도 될 것 같아.”

공세윤의 말에 백은후가 앞장서서 길을 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아직 남은 힘이 많다는 이유였다. 뭐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다.

“근데 괜찮습니까?”

모준영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가 괜찮냐는 거지? 아직 몬스터도 나오지 않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발끝에서 찌릿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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