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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55)화 (55/74)

055.

“진심으로 미안하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성주안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주지찬이 제 침대로 가지도 못한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키스까지 한 사이에 고작 입술 좀 부딪혔다고 화를 내진 않을 텐데…….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성주안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지찬을 바라보았다. 전신이 뻣뻣하게 긴장해 있었다.

불쌍한 주지찬…….

“각성 부작용 때문에 많이 괴로워요?”

“하, 그런 것만은 아니야. 부작용 때문이었으면 참지 않았을걸?”

고개를 든 주지찬의 눈에 붉은 기가 돌았다. 살짝 겁이 났지만 앞으로도 계속 보고 지내야 할 사람인데 그의 차례가 올 때마다 이렇게 어색한 채로 지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지금은 왜 참았는데요?”

질문에 놀랐는지 쌍꺼풀 없이 큰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신기하게도 그 얼굴이 귀여워 보였다. 순하게 생긴 인상도 아닌데……. 이런 게 정이 든다는 걸까?

“말했잖아.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아니라?”

주지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억지로 참는 눈치였다.

“……혹시 저 좋아해요? 그래서 키스하고 싶었던 거예요?”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미안하다고 했잖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앞으로 안 그러면 될 거 아냐.”

주지찬이 버럭 소리를 치고는 침대로 가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주안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아버렸다.

갑자기 그에게 성욕이 생겼다거나 애정이 피어나서는 아니었다. 아까부터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헉헉대면서 떠는 주제에, 곧 죽어도 좋아서 그랬다는 말은 못 하는 주지찬이 안쓰러워서 충동적으로 잡은 것이었다.

“부작용 아니라고 했죠?”

주지찬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키스만으로 멈출 수 있겠네요.”

“……뭐?”

성주안은 바로 그의 팔을 당겨 입술을 부딪쳤다. 지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만히 멈추어 있던 주지찬이 조심스레 아랫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슬쩍 혀를 집어넣자 그가 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으흡.”

먼저 시작한 건 성주안인데 리드하는 건 주지찬이었다.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한 것치곤 꽤 격렬한 반응이 이어졌다. 입술이 부딪히고 다시 떨어지길 여러 번, 주지찬이 낮은 신음을 뱉을 때마다 더운 숨이 훅훅 들어왔다.

성주안은 팔을 잡은 채 내뱉는 숨결을 마셨다. 연민으로 시작한 키스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혀끼리 뒤엉킬 때마다 배 속이 떨리며, 몸이 자극되었다.

평소 하는 행동을 봐선 거칠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지자 낯선 감각이 몸 위를 뒤덮었다. 살짝 어깨를 부딪치기만 해도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하아…….”

입술을 뗀 주지찬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몽롱한 눈으로 성주안을 쳐다봤다.

“부작용, 아니라고 했어. 키스까지는 멈, 출 수 있었고. 그러니까 이제 더 자극하지 말고 자.”

여기서 더 건드렸다간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주지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발을 돌렸다. 그리고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뽀뽀했다고 이렇게 고문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고문?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으려다가 그냥 혼자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주지찬이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는 걸 보고 성주안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주지찬은 제가 갑자기 키스한 이유가 저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저도 갑자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는데 주지찬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게, 나 왜 갑자기 키스했지?

불쌍해서라고 합리화하기엔, 백은후, 모준영, 공세윤도 모두 연민하고 있었지만 모두와 키스를 한 건 아니었다.

주지찬에게 특별한 감정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다들 좋다고 하는데 주지찬만 계속 저를 피하려 해서 안달이 났나?

생각하면 할수록 정답이 나오긴커녕 맞붙은 입술에서 느껴지던 감각만 선연했다.

* * *

다음 날, 주지찬과 함께 아침을 먹는데 분위기가 어색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벗어날 겸, 어차피 공세윤도 불러야 하니까 그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세윤에게 연락했다. 전화를 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공세윤이 잠옷 차림으로 들이닥쳤다.

“형!”

“세윤 씨, 왔네요. 같이 아침 먹자고 불렀어요. 할 이야기도 있고요.”

이 말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요리해서 남 먹이는 걸 워낙 좋아하는 주지찬도 공세윤의 합석에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으니까. 문제가 된 건 두 사람 사이에서 타이밍을 살피던 성주안이 말을 꺼냈을 때였다.

“세윤 씨 덕분에 성좌들의 계략을 알게 되었으니 오늘 1번과 2번 스테이지를 동시에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국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려던 공세윤이 숟가락을 탁 놓았다. 이쪽을 노려보는 눈이 한껏 치켜 올라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예요. 아침 먹고 바로 던전으로 갈 거예요. 백은후 씨와 모준영 씨에게도 말해 두었습니다.”

성주안의 말을 들은 공세윤이 제 머리를 엉망으로 흐트러트리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이건 무효예요. 무효! 이러라고 성좌한테 빼 온 정보를 알려준 게 아니라고요.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성주안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세윤은 지금 활기찬 상태니까 어느 정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는 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안의 착각일 뿐이었다.

“진짜 너무해요. 여태까지 저만 형이랑 못 잤잖아요.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해요!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공세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성주안의 손을 잡았다. 화를 내면서도 손을 꽉 쥐지도 못하고 잡은 손을 제 뺨에 비비기만 했다.

성주안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를 다독였다.

“저도 오늘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어떡해요. 성좌들이 수 쓰기 전에 선수 치는 게 낫다는 걸 알잖아요.”

“네? 형도 기다렸다고요?”

성주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공세윤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흐읍, 맞아요. 저도 알긴 알아요. 하지만…….”

공세윤이 입술을 삐죽였다. 불만 서린 얼굴을 하고서도 주안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빨리 끝내고 와서 즐겁게 보냅시다. 이러면 이럴수록 공략 시간만 늦어져요.”

“……알았어요.”

불만이 완전히 가신 기색은 아니었지만 설득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갔는지, 공세윤은 고분고분 대답하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성주안은 공세윤이 자기 집으로 씻으러 가는 모습을 보며 단체 채팅방에 문자를 보냈다.

[단체] 성주안 ; 백은후 씨, 모준영 씨 어디예요?

[단체] 백은후 : 스테이지로 가는 중.

[단체] 모준영 : 저는 일찍 출근해서 일 분배해 놓고 던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단체] 성주안 : 그럼 우리보다 빨리 도착하시겠네요. 또 트릭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멀리 떨어져 계세요.

[단체] 백은후 : 별걱정을 다 하네.

[단체] 모준영 : 백은후 씨와 잘 떨어져 있겠습니다.

하여튼 한결같단 말이야.

* * *

주지찬과 공세윤을 양쪽에 끼고 던전 앞에 도착한 것은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백은후와 모준영은 미리 와 있었는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제 할 일만 하고 있다가, 성주안을 발견하고는 던전 앞에 모였다.

가장 쉬운 스테이지니까 별다를 게 없겠지.

성주안이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게이트 앞에 섰을 때였다.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옆으로 돌렸을 때 누군가 허리를 낚아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백은후였다.

“왜 이래? 밥 안 먹었어?”

“아뇨. 잘 먹고 왔는데…….”

성주안은 말끝을 흐리며 제 발밑을 쳐다보았다.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까 그 느낌은 뭐였지? 분명 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이었는데…….

백은후가 오해한 대로 밥을 안 먹어서 힘이 부족하다거나 현기증이 난 것도 아니었다.

“형,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잠시 휘청거린 것뿐인데 갈색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그런 공세윤을 보다가 시선을 이동하자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그냥 발을 헛디딘 거뿐이에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발을 헛디뎠을 리는 없었다. 게이트 앞에 설 때는 바짝 긴장하는 만큼 평소보다 더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본능이 게이트 안쪽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감지한 걸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애가 표정이 왜 그래?”

백은후가 푸른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물었다. 하여튼 예리한 인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어차피 저 안에 트릭이 숨어 있는 거라면 파티원들도 미리 알아야 했기에, 성주안은 일단 저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파티원들을 두고 게이트 앞에 가서 문에 손을 댔다.

<던전 정보 – STAGE>

……뭐야? 이게 끝이라고?

모든 던전엔 스테이지 번호가 있었고 그 번호는 곧 난이도와 등급을 의미했다. 그런데 번호가 없는 스테이지라니……. 그렇다면 설마?

문득 스치는 생각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왜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성주안의 얼굴만 내내 쳐다보고 있던 공세윤이 바로 달려와 물었지만 주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파티원 모두에게 닥친 위험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던전 중에 스테이지 번호가 없는 던전은 단 하나.

게임에 처음 접속하자마자 뜨는 튜토리얼뿐이었다.

그리고 그 튜토리얼은 절대 공략할 수 없었다.

스테이지 1번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정석적인 루트로 왔더니 그 던전이 난공불락으로 변해버리다니. 이것은 필시 이 세계의 신인 성좌들이 꾸민 음모일 것이다. 저들이 A급 파티원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던전의 위치를 바꿔서 우리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

“하아…….”

한숨을 쉬자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모준영이 나섰다.

“한숨만 쉬지 말고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해 보세요.”

성주안은 침을 꼴깍 삼키며 손가락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저 던전은 우리가 절대 공략할 수 없는 던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들어가 봐야 우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거고, 모두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성주안의 말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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