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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54)화 (54/74)

054.

주지찬은 저도 모르게 자고 있는 성주안에게 다가갔다. 빵을 먹이려면 깨워야 하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조금 더 보고 싶었다.

하얀 이마에 흘러나온 갈색 머리카락을 홀린 듯 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이 이마에 닿으려는 순간, 주지찬은 흠칫하며 손을 내렸다.

지금 성주안에게 손을 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릴 것만 같았다. 크림을 만들며 참았던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찬은 본능을 누르기 위해 깊게 호흡했다.

하, 미치겠네.

그러나 열기가 다스려지긴커녕, 더욱 들끓는 욕망이 느껴졌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어, 엄마, 보고 싶어. 엄마…….”

갑자기 뒤에서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뒤돌아보니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엄마를 부르고 있는 성주안이 보였다.

주지찬은 불시에 공격받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못 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엄마?

조심스레 다가가 눈물 젖은 뺨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뜨거워지다 못해 화끈거렸다. 주지찬은 제 손을 뒤덮는 열기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었다.

우는 성주안이 불쌍해 연민을 느끼다가 뺨을 만졌다는 이유로 또 이렇게 되다니……. 쓰레기도 아니고.

주지찬은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성주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안의 눈가와 뺨이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맨손으로 닦아주진 못하고 티슈를 한 장 뽑아 뺨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성주안이 눈을 번쩍 떴다.

“…….”

“…….”

왜인지 들키면 안 될 것을 들켰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는데 성주안이 손에 들린 휴지를 보며 물었다.

“휴지는 왜 들고 있어요?”

“……울길래.”

“눈물 닦아주려고요?”

“아니! 내가 왜?”

“제가 울어서 휴지 들고 있다면서요.”

“참나, 더럽게 콧물 흘리니까 나한테 튈까 봐 들고 있었던 거뿐이야. 닦아주긴 뭘 닦아줘?”

그 말에 주안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저 웃는 걸 봤을 뿐인데 속수무책으로 기분이 들떴다. 쓸데없이 예쁜 미소를 계속 보고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를 가리켰다.

“일어났으면 이거나 먹어. 디저트는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케이크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킨 성주안이 냉큼 일어나 포크를 쥐었다. 폭신한 빵을 잘라 입속에 쏙 넣고 맛을 보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뭐예요? 정말 맛있네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빵을 자르더니, 이번에는 제가 먹지 않고 주지찬에게 내밀었다. 주지찬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주는 걸 받아먹었다. 평소 단 것을 즐기는 편도 아닌데 주안이 먹여줬다는 이유만으로 크림의 단맛이 맛있게 느껴졌다.

“맛있네.”

“베이킹도 잘하네요. 나중에 던전 다 깨고 나면 빵집 차려도 대박 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주안의 입술에 크림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크림이나 좀 닦고 말을 하든가.

성주안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제가 이상했다.

이런 건 확실히 여태까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각성한 이후 주지찬의 삶은 한마디로 짐승 같은 본능과의 싸움이었다. 본능에 잠식되어 버리면 인간이길 포기하게 될 것 같아 일부러 더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힘들긴 했으나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을 혹사하다 보면 본능이 잦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감정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즐거움이나 행복 따위는 모르고 산 지가 한참이었다.

그러니 성주안을 보며 느끼는 갖가지 감정들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냥 발정이기만 하면 좋을 텐데.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감정은 또 뭘까?

가슴이 간질거리는 동시에 코가 시큰거리고 열이 오르는 이 감정은 대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표정이 들킬까 봐,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성주안을 봤다. 그는 접시에 묻은 크림까지 싹싹 핥아먹느라 주지찬의 복잡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 점이 더 사람을 미치게 했다.

“더 줘?”

“아닙니다. 나중에 또 저녁 먹어야 하는데 이러다간 살찌겠습니다.”

“그래, 그럼. 쉬고 있어.”

주지찬은 다 먹은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성주안은 눈을 깜빡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파티원들은 함께 있을 때 웬만하면 안 떨어지려고 한 것 같은데 주지찬은 계속 무언가를 하느라 붙어 있을 새가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앞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궁금해져서 주지찬이 뭐 하는지 살피러 부엌에 갔더니 그는 싱크대를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전투적인지 뒷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싸움하는 것처럼 보였다.

쟤도 결벽증인가?

싱크대의 물기를 다 닦은 주지찬이 뒤를 돌아보다 눈이 마주치곤 인상을 팍 썼다.

“뭐, 뭐야?”

“……네?”

“왜 여기 와 있어. 저리로 가.”

왜 저렇게 싫어해? 내가 무슨 병을 옮기는 해충도 아니고.

조금 어이없는 생각이긴 했지만 소중한 첫 키스를 가져간 상대가 자길 혐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성주안은 일부러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게 곧 도망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찬의 팔을 덥석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지찬 씨, 이럴 거면 왜 여기로 이사 왔어요?”

“…….”

“우리 키스도 한 사이에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슬슬 피하기나 하고.”

“……그런 적 없어.”

“피했잖아요. 혹시 제가 싫어요?”

“……어.”

싫다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건 뭐 때문인데? 설마, 그 부작용 때문에 저러나?

자신의 힘이 세서 힘 조절이 안 될까 봐 각성자와 파티를 하는 것도 싫다고 했던 주지찬이었다. 그러니 부작용 때문에 피하는 게 맞을 거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런 접촉도 견디기 힘들 게 분명했다.

불쌍한 주지찬, 내가 죄가 크다. 진짜.

성주안은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며 그의 팔에서 손을 떼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싫을 수도 있죠. 그래도 빵은 또 만들어 줄 거죠?”

“어. 너 주려고 만드는 건 아니고 요리를 좋아하니까 그냥 만드는 거야.”

“네네, 잘 압니다.”

성주안은 씩 웃으며 거실로 돌아가 소파에 앉았다. 발을 쭉 뻗자마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공세윤이었다.

<공세윤 : 형, 형! 있잖아요. 제가 또 성좌 꼬셔서 물어봤거든요.>

“와…….”

진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공세윤은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최고의 파트너였다. 예쁘게 생긴 데다가 스킬도 사긴데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주안은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소문이 사실이었어요. S급은 안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우선 자기들이 계약한 A급이랑 B급을 섞어서 차례대로 공략할 거래요.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도 얼른 공략을 시작해야 했다. A급으로만 이루어진 파티로 던전을 공략하다가 지치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칭찬부터 해주고.

“와, 세윤 씨는 진짜 대단하네요.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그, 그냥 형이 좋아할 거 같아서요.

“잘했어요. 진짜 너무 좋네요. 미리 계획할 수 있으니까요.”

―내일 제 차례니까 같이 계획 짜면 되겠어요. 형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던전 공략 얘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같이 자고…….”

당장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주안은 내일부터 당장 던전 공략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공세윤의 차례가 또 밀리게 되는데……. 일단 그건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요. 세윤 씨, 밥 챙겨 먹고 쉬고 있어요.”

―네네! 형도 맛있는 거 드세요. 주지찬이랑 너무 재밌게 놀지 말고요.

“예에.”

전화를 끊은 성주안은 내일 하급 던전 두 개를 동시에 공략할 계획을 세우곤 본업이 있는 모준영과 백은후에게 연락해 놓았다. 다행히 이럴 줄 알고 스케줄을 조정해 놓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파티원들과 서서히 손발이 맞아가는 느낌이었다.

* * *

주지찬과 저녁을 먹고 침대가 두 개 있는 성주안의 집으로 왔다. 모준영 때처럼 더블 침대는 주지찬에게 주고 저는 싱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불을 끄고 눈을 감는데 낮잠을 자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부작용 때문에 힘든 주지찬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 눈만 감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사락, 사락. 옆에서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지찬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였다. 이어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몸에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쳐서 주지찬이 곁에 왔다는 걸 알았다.

갑자기 일어나면 놀라겠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지찬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굳은살이 박인 손이 제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 주안은 움직이지 않기 위해 숨 쉬는 것조차 멈췄다.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주지찬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가만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

뺨을 만지던 손이 미끄러지듯 피부를 타고 내려와 입술을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톡 건드리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 나중엔 조금 더 부드럽고 촉촉한 살덩이가 느껴졌다.

입술인가? 이건 좀…….

춥, 물기 어린 소리가 들리고 입술이 떨어졌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눈을 떴다.

“……!”

너무 놀라 하얗게 질린 주지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그게…….”

딸국.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하던 주지찬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

“아니, 시발. 진짜.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냥 잠깐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

“달빛이 들어오잖아. 너무 예쁘니까 나도 모르게.”

주지찬은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쓸어 넘기다 눈썹을 치켜들고 한숨을 쉬고 다시 또 화를 내는 둥, 서로 연결되지 않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제 곁에 똑바로 선 주지찬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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