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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51)화 (51/74)

051.

“그럼 우리 먼저 가 보겠습니다.”

모준영이 손을 잡고 휙 돌아서 갔다. 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몸이 저절로 딸려갈 정도였다. 백은후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기에 주안 역시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모준영의 차를 타고 각성자 관리센터로 가는 길, 차 안엔 침묵이 감돌았다. 라디오라도 켜 보려고 버튼을 누르려 할 때 모준영이 입을 열었다.

“백은후를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물론, 자신도 백은후를 다 믿지 못하긴 하지만 그를 향한 불신이 계속되는 건 파티에 이로울 게 없었다. 그래서 주안은 모준영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생사를 함께하는 사이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뭐, 그렇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의심해야 합니다. 백은후는 누구보다 제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마침 신호에 걸려서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모준영이 이쪽을 흘깃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친데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돌렸다.

“며칠만 좀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네요. 혹시 성좌들에게 뭐 들은 말은 없습니까?”

성좌를 각성자만큼 싫어하는 모준영이 따로 들은 말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접속한 것은 아니고, A급 각성자들에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A급 각성자들이라고? 성주안은 흠칫했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어서였다. 성좌들이 A급 각성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모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S급만 기다리고 있다간 하급 던전을 클리어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그들의 목적은 결국엔 성좌 대전 아니겠습니까? 파티원을 도구로 사용해서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면, 세상이 망하든 말든 기어이 전쟁을 일으킬 생각인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성좌들이 그렇게나 S급 각성자들을 원하는 이유도 던전을 쉽게 공략한 후 마지막 보상을 얻어 성좌 대전에서 이기는 게 최종 목적일 테니까.

성주안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게임 속 성좌 대전은 만렙이 된 게이머가 즐기는 유희일 뿐이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세계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죽게 될 테고,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폐허가 된 땅에서 힘겹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것밖엔 답이 없겠어요.”

성주안의 가슴 속에서 각성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성좌들을 향한 분노가 들끓었다.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이 세계는 성주안에게도 더 이상 자신이 만든 게임 속이 아니었다. 그러니 성좌들 손에 멋대로 휘둘리도록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과 얻어지는 게 없어도 제 복수에 흔쾌히 동참해 준 파티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세계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성주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 * *

각성자 관리센터에 도착한 성주안은 바로 모준영의 사무실로 갔다. 어딜 갈 때마다 따라붙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모준영이 밀린 일을 처리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앞으로 던전 공략을 어떻게 해나갈지 정리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세 시간째 접어들자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안 봐도 공세윤이겠지, 하고 확인해봤더니 역시나 그였다.

<공세윤 : 혀엉, ㅠㅠ>

뭐지? 또 우울한가? 턴이 너무 빠른데…….

<성주안 : 왜 무슨 일이에요?>

<공세윤 : 진짜 미치겠어요. 아니, 주지찬 진짜 또라이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성주안은 한숨을 내쉬며 조금 전 지겹다고 느낀 자신을 반성했다. 대뜸 주지찬의 욕부터 하는 걸 보니 문자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주안은 모준영의 눈치를 살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모준영이 이쪽을 흘끔 보긴 했지만 그리 방해되는 건 아니라는 듯 다시 일에 집중했다.

―형!

“네, 무슨 일이에요.”

―주지찬 있잖아요. 형 옆집으로 이사 왔어요.

주지찬이 이사를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근차근 설명을 해 봐요.”

―제가 짐 옮기고 있는데요.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형은 아까 모준영이랑 나갔는데 무슨 소린가 싶어서 나와보니까 주지찬이 짐을 옮기고 있는 거예요! 저 따라서 이사 온 게 틀림없어요.

“주지찬 씨도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고요? 하아…….”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왜 왔냐고 물어보니까 오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서 자기 봉사활동 하러 간다고 그냥 가버리는 거 있죠. 진짜 너무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백은후와 모준영이 사이가 안 좋은데 공세윤과 주지찬까지 이사 문제로 다투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성주안은 차분하게 공세윤을 달랬다.

“주지찬 씨가 절 걱정해서 이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상하지 마세요.”

―참나. 형은 바본 건지 순진한 건지 모르겠어요. 주지찬 같은 변태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형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다들 목적이 있다고요.

“네네. 잘 압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꾸 듣다 보니 이제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공세윤을 진정시키는 거니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주지찬이 옆집으로 이사 온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성좌들이 전쟁을 위해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면 우리도 빠르게 움직여야 할 테니 모여 있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진짜 싫어, 주지찬.

“공세윤 씨는 저 말고 다 싫어하잖아요?”

반쯤 농담 삼아 던진 말인데 공세윤은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은근히 귀여워서 자꾸만 놀리고 싶었다.

“아니에요?”

―맞아요! 저는 형 말고는 다 싫어요. 좋아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자랑이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뒤에서 모준영이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으라는 신호인 것 같아서 이틀 뒤에 우리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말로 공세윤을 대충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모준영이 보던 서류를 탁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시간 일한 자리가 제가 앉아있던 소파 테이블보다 더 깨끗했다.

“이제 가죠. 주지찬 씨에게 인계해야 하니까.”

인계라니.

“제가 무슨 일거리나 물건입니까? 인계하게.”

표정을 찡그리며 툴툴거리자 모준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을 입고 책상 모서리를 돌아 나오던 그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말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생각해야 사심이 깃들지 않을 테니까요.”

“사심이요? 뭐, 모준영 씨도 저를 통해 얻고 싶은 목적이 있단 뜻입니까?”

물었지만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웃기만 했다. 음흉한 건 언제나 백은후였는데 모준영이 저러니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 모준영이 밖으로 나가서 주안도 그 뒤를 따랐다.

“모준영 씨의 목적은 각성자들과 성좌들을 감시해서 세계를 지키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게 제 소명이죠.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말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해서 입을 닫았다. 어제 술을 마시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개발자를 향한 본능적인 이끌림. 아마 모준영은 그런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지 못해 돌려 말한 것일 거다.

다행히 모준영은 굳이 뒷말을 캐내려 하지 않았다. 성주안은 약간 얼빠진 상태가 되어 그의 뒤만 졸졸 쫓았다. 백은후가 옆에 있을 땐 손을 잡더니 지금은 적당히 사이를 두며 가는 것도 사심이 깃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궁금해하는 중에 모준영이 시계를 확인하며 물었다.

“배가 고프진 않습니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식당에서 뭐 좀 먹고 갈까요?”

관리센터에 맛있었던 밥을 떠올리며 침을 꼴깍 삼키자 모준영이 피식 웃으며 팔을 잡아끌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주변에 한우 스테이크를 잘하는 집이 있어요.”

“한우요? 얼른 갑시다.”

한우 스테이크라니. 원래 세계에선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음식이었다. 이거 게임 속에 들어온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성주안, 정신 차려라. 목적을 잊으면 안 돼. 목적은 이 세계도 구하고 너도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 성주안은 모준영과 함께 걸었다. 본래 신체 능력도 차이가 나는 데다가 보폭이 커서 쫓아가는 데만 해도 힘이 들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쫓아가는데 그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입가에 웃음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네? 갑자기요?”

“네, 성주안 씨, 참 귀엽습니다.”

덩치가 크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귀여워 보이겠지. 그게 뭐 그렇게 새삼스럽다고. 게다가 같은 남자가 남자한테 귀엽다고 하는 말은 실례 아닌가?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참나. 금강불괴 씨 눈에 안 귀여운 사람이 어딨습니까?”

일부러 금강불괴라는 단어를 썼더니 예상대로 그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금강불괴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털이 바짝 선 고……양이는 작으니까 표범 같은데 누가 누구더러 귀엽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귀엽네요. 모준영 씨, 참 귀엽습니다.”

귀엽다는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더니 모준영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주안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키며 그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벌써 고소한 고기 맛이 입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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