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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46)화 (46/74)

046.

“배, 백은후 씨, 빨리요. 저러다 모준영 씨 죽겠어요!”

“별걱정을 다하네. 모준영이 괜히 금강불괴겠어?”

모준영은 박쥐들의 공격을 감당하면서도 발끈했다.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싫다고 말했습니다!”

“물리 공격력이 무서운 게 아니에요! 쟤들 날개에 달린 가시에 독이 묻어 있다고요.”

백은후의 푸른 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가 은발을 휘날리며 손을 번쩍 들자, 사방에 노란빛이 번쩍였다.

우르르, 쾅쾅!

백은후의 광범위 스킬인 ‘창백한 번개’였다. 아군에게는 통하지 않고 적군에게만 통하는 스킬로 모준영의 함성과 함께 쓰면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스킬이었다.

백은후가 친 벼락에 박쥐들이 모준영의 몸에서 푸스스 떨어져 내렸다. 끽소리도 못 내고 바로 죽는 게 엄청났다. 게다가 백은후는 지난번에 특별카드로 얻은 스킬 쿨타임 감소로 벼락을 연이어서 칠 수도 있었다.

“한 번 더 하겠습니까?”

모준영의 말에 백은후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잘 모아 봐.”

모준영이 다시 한번 더 함성 스킬을 쓰자, 백은후가 재차 손을 휘둘렀다.

콰아앙! 커다란 벼락을 하늘에서 모아 한 번에 내리치는 ‘하늘의 울림’이었다.

공격력이 어마어마한 번개가 연이어서 떨어지자 모준영의 함성에 홀려 그에게 붙어 있던 흡혈박쥐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쿵! 쿵!

스킬의 사정거리가 커진 모준영이 더 많은 박쥐를 부르기 위해 발을 쿵쿵 구르며 함성 스킬을 쓰고, 쿨 타임이 줄어든 백은후가 연속해서 번개를 내려치자 흡혈박쥐들은 차례로 튀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저들이 아무리 괴물 같은 힘을 가진 S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체력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포옹의 버프효과로 풀 방어력 상태라곤 하지만 체력은 조금씩 깎이고 있을 것이다.

던전이 얼마나 깊은지 저 안에서 박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3,000마리가 넘는 흡혈박쥐들을 두 사람에게만 맡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때, 공세윤이 나섰다.

“흐음…… 박쥐는 어두운 곳에 살아서 빛에 약한 거 아니에요? 그럼 어쩌면 한 번에 처리도 가능하겠는데요?”

공세윤의 말에 백은후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빛을 내서 박쥐들의 시야를 가린 다음 네가 얼음벽을 세우면 되겠네. 그러고 태울까?”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전략이었다. 파티 사냥을 하는 게 이제 두 번째. 파티원들이 점점 서로의 특성에 맞게 전략을 짜고 있었다. 성주안은 파티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좋았어. 금강불괴 씨는 성주안 보호하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준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주안 곁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나머지는 전부 앞으로 나와.”

대열이 바뀌었다. 백은후는 성주안이 모준영에게 안전하게 잡혀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채찍을 길게 휘둘렀다. 그러자 갈래갈래 찢긴 채찍에서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이 길게 뻗어나갔다.

번쩍!

빛 한점 없는 어둠 속 레이저처럼 뻗어나간 빛에 한 무리의 박쥐들이 혼란스럽게 날아다니며 파티원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성주안은 급하게 공세윤을 안았다. 전엔 안자마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싸늘한 눈빛으로 바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박쥐들이 날아오는 길에 단숨에 얼음벽을 만들었다.

파바밧!

얼음 결정이 튀며 박쥐들의 눈을 찔렀다. 초음파에 의지해 대상을 구분하던 박쥐들은 갑자기 생긴 얼음벽에 부딪혀 이마가 깨졌다. 몇몇은 바닥에 떨어지고 감각이 예민한 몇몇은 벽을 우회하려다가 차가운 기운에 동면하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지찬 씨, 지금이에요!”

그때, 주지찬이 한 손으론 성주안을 끌어안은 채 볼폭탄을 쏠 준비를 했다. 박쥐들은 끊임없이 얼음벽 쪽으로 밀려들었고, 공세윤 때문에 습기 찬 동굴 천장에선 종유석이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종유석 때문에 날기가 힘들어진 박쥐들은 한데 모이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져 느리게 움직였다.

주지찬이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자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주지찬의 주 스킬인 저주 폭발이었다.

펑, 퍼엉!

쏘아진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박쥐 위로 떨어졌다. 파바밧.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박쥐들이 타들어 갔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박쥐들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공세윤은 우울한 상태가 맞나 싶게 차가운 표정으로 종유석과 얼음송곳을 만들고 있었고, 백은후는 눈 부신 빛을 소환해 박쥐들의 시야를 교란했다. 그리고 드디어 꺼내 든 화염방사기.

주지찬은 두 개의 방아쇠를 교대로 눌러가며 신나게 박쥐들을 통구이로 만들어버렸다. 귀를 찢을 듯한 폭발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엄청난 수의 박쥐들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나저나 왜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나는 거지. 하긴 파티사냥용 몬스터 3,000마리면 보통 숫자가 아니긴 했다. 피통도 크고 방어력과 공격력이 솔플 몬스터보다 네 배씩은 많았으니까. 원래 던전을 만들 당시 해치워야 할 몬스터보다 숫자가 두 배 정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이것 역시 성좌들의 꼼수겠지. 성주안은 한숨을 쉬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몬스터 LV

*뱀파이어(S) : 1마리

*흡혈박쥐(A) : 1,123마리>

흡혈박쥐의 숫자가 1,000마리 대로 줄어 있었고 보스 몬스터인 뱀파이어의 등급이 나타났다. 그때, 얼음벽을 향해 돌진해 오던 박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동굴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보스를 지키려는 걸까?

“갑자기 왜 저래?”

백은후의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파티원들은 공격을 멈추고 멍하니 서서 동굴 속으로 날아가는 박쥐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던전에 들어온 이상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죽으나 사나 보스를 처리해야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아까처럼 방어력 높은 두 사람이 앞에 서시고 우리가 뒤를 따를게요. 따라 들어가 봅시다. 이미 많은 몬스터들이 죽었는데 큰일이야 있겠어요?”

게다가 뱀파이어의 주 스킬은 모준영의 함성과 비슷한 유혹술.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수많은 전투를 통해 스킬을 개발한 각성자들이 겁을 먹을 리도 없을 테고, 성주안 자신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경고는 해놔야겠지.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여기 보스는 신기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요. 이름은 유혹술. 모준영 씨처럼 적을 모으는 기술이긴 한데 물리적 스킬이 아니라 환각계에요.”

“……스킬 이름이 뭐가 그따위야?”

성주안은 멈칫했다. 전에 개발할 때도 들었던 말이다. 스킬 이름이 유혹술이 뭐냐고. 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파고들어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스킬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우겼다.

역시 여기 애들이 듣기에도 이상하긴 한가 보다.

“어쨌든 환각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유혹술에 당하면 스킬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제 발로 뱀파이어에게 찾아가서 피를 빨릴 테니까요.”

“별걱정을. 설마 우리가 당하겠어?”

너희는 그렇겠지. 내가 당할까 봐 문제지. 성주안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형체를 잘 숨겨요.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힘들단 뜻이에요.”

“뭐라고? 그럼 어떻게 싸워?”

“그러니 문제에요. 지금 우리 파티에선 천리안을 가진 사람이 없잖아요.”

백은후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모준영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함성을 써서 내 몸에 붙게 한 뒤에 모든 공격을 일제히 퍼붓는다면 어떻습니까?”

좋은 방법이긴 했으나 솔직히 말하면 물리적으로 이끌리는 함성보다 정신을 조정하는 유혹술이 더 센 스킬이라 둘이 맞붙어서 이길 확률이 적었다.

“회피율도 좋아서 아마 힘들 거예요. 제가 정신을 잘 차리고 있을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만약 제가 유혹술에 당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던전 밖으로 그냥 나가세요. 저만 없으면 정상적인 던전을 차례대로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주지찬이 발끈했다.

“너는 그 말 좀 안 할 수 없어? 우리를 뭐로 보는 거야.”

“맞아요. 가뜩이나 힘든데 자꾸 기운 빠지는 소리 할 거예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지만 성주안이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성좌들의 방해로 던전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으니 만약에 상황을 대비하는 것일 뿐.

이런 말을 했다간 또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성주안은 다르게 말했다.

“그냥 잘 부탁드린다는 말이에요.”

“우리만 믿어!”

“그래 가기나 해.”

다시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지찬이 공세윤의 얼음벽을 부수고 백은후와 모준영이 사라진 박쥐들의 무리에 끼지 못한 나머지 박쥐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성주안은 그들 가운데서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유혹술에 당하지 않기 위해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다 같이 손잡고 나가는 거야.”

성주안은 공세윤과 주지찬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여긴 어디지? 파티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스산한 동굴 속 성주안은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파티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감기몸살을 앓는 것처럼 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형, 형!”

공세윤의 목소리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눅눅했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선 피비린내가 났다.

또 절망이 희망을 좀먹기 시작했다.

이대로 끝인 건가? 모두 손잡고 함께 나가야 하는데…….

성주안은 허공 속에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잡는 게 느껴졌다. 아, 뒤에 있었구나. 그렇지, 내 파티원들이 나만 두고 도망쳤을 리가 없지. 성주안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으악!”

까만 커튼이 순식간에 성주안의 몸을 덮었다. 지독하게 추운 냉기가 느껴졌다.

하아아…….

누군가 숨을 깊게 내쉬는 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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