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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41)화 (41/74)

041.

<공세윤 : 저 지금 금방 먹고 왔어요! 형이 물어봐 주니까 너무너무 기뻐서 바로 먹었어요.>

<성주안 : 잘했어요. 우울할수록 잘 먹고 잘 자야 빨리 활기찬 상태가 오는 법이에요.>

<공세윤 : 형, 저 잘했어요? 진짜요?>

<성주안 : 네, 그럼요. 잘했죠.>

<공세윤 : 그럼 또 뭐 할까요? 형이 하라고 하는 거 할게요.>

대충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려는 찰나 문득 머릿속에 공세윤의 방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방. 그 방 안에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공세윤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각성자라도 스무 살이면 아직 애기지. 애기가 사회의 쓴맛만 잔뜩 보고…….”

불쌍해서 뭐든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고 싶었다. 우울할 땐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최곤데, 공세윤이 좋아하는 게 뭐가 있더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뭘 좋아하는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으로서 가장 관심 있는 건 희생의 창조자, 즉 성주안이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성주안 : 안 그래도 부탁이 있었는데 잘됐어요!>

<공세윤 : 헉. 뭐든 다 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성주안 : 혹시 성좌들과 매칭할 수 있겠어요?>

<공세윤 : 성좌요? 할 수는 있는데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데요. ㅠㅠ>

<성주안 : 딱 한 번만 해주면 안 돼요?>

<공세윤 : 할게요. 제가 접속하면 무조건 받아주는 성좌가 있긴 있어요.>

오…… 잘됐다!

사실 공세윤에게 스파이 노릇을 시킬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우울할 땐 목표를 세운 일을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공세윤이 우울함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이득이었다.

<성주안 : 그럼 성좌한테 스테이지 1번이 어떤지 물어볼 수 있겠어요?>

<공세윤 : ……계약하면 알려준다고 할 것 같은데요.>

아마 그럴 거다. 성주안도 지난 던전 때 똑같이 당했으니.

<성주안 : 세윤 씨 매력이라면 계약 안 해도 막 알려줄 거 같은데요?>

<공세윤 : 저 매력 있어요?>

<성주안 : 그럼요. 매력 넘치죠. 착하고, 귀엽고, 섹시하고, 잘생겼고, 스킬도 SS급이고…… 어휴, 다 말할 수도 없네.>

<공세윤 : 알겠어요! 해볼게요! 그럼 저 매일매일 연락해도 되죠? 미워하지 마세요.>

<성주안 : 내가 세윤 씨를 왜 미워해요. 그럴 일 없어요.>

<공세윤 : ♡>

“아예 핸드폰 안으로 들어가지 그래?”

언제 나타났는지 백은후가 양손 가득 뭔가를 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성주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나는 게 입에 침이 돌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침을 꼴딱 삼키는 성주안을 보며 백은후가 씩 웃었다.

“그거 혹시 치킨이에요?”

“버퍼라서 후각이 예민한가 보네. 길드 요리사가 널 위해 만든 특제 요리야.”

“네? 저 요리사 누군지 모르는데요?”

백은후가 테이블 위에 치킨을 늘어놓으며 대답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더군. 그래서 실력 발휘를 했다는데?”

사실 요리사가 왜 치킨을 튀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치킨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후라이드, 양념, 간장, 마라. 맛별로 반 마리씩 해서 치킨은 총 두 마리였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게 한 눈으로 봐도 맛있어 보였다. 뭐부터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백은후가 양념치킨의 닭다리를 젓가락으로 들더니 아랫부분을 포일로 돌돌 감기 시작했다.

성격 봐라. 저걸 일일이 언제 다 감냐? 그냥 대충 먹지.

성주안이 이런 생각을 하며 제 몫의 치킨을 들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포일이 감긴 닭 다리가 툭 놓였다.

“먹어.”

“……안 챙겨 주셔도 알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백은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애들은 양념치킨 맛을 제일 좋아한다던데, 맞아?”

닭 다리를 한 입 베어 물던 성주안이 어깨를 흠칫했다. 제길, 그래, 나 매운 거 못 먹어서 양념치킨 좋아한다. 왜!

기분이 나빠서 대답하지 않고 치킨을 씹자 달콤하고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확 퍼졌다. 백은후 때문에 나빠진 기분이 한 번에 풀리는 맛이었다. 밥 먹을 때 알아챘지만 요리사의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원래 세계에서 먹던 프랜차이즈 치킨은 맛있는 게 아니었구나.

감탄하며 한참 먹다 보니 양념치킨이 어느새 반이나 줄어 있었다. 성주안은 아까부터 먹지는 않고 저만 쳐다보고 있는 백은후를 향해 물었다.

“안 드십니까?”

“지방 많은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해.”

치킨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상한 일이긴 한데 어쩐지 백은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에스프레소.”

그게 어떻게 음식이냐?

“마시는 거 말고 먹는 건요?”

“단백질.”

백은후는 아무래도 음식을 맛 때문에 먹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채울 목적으로 먹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맛있는 걸 먹다 보니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주지찬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식욕이 없어도 음미하는 걸 즐길 테고, 모준영은 좋아할 것 같고, 공세윤은 잘 먹는다고 칭찬만 해주면 많이 먹을 것 같은데……. 백은후에게 다 같이 먹자고 해 볼까?

“저기 백은후 씨.”

치킨 박스에 코를 박고 먹다가 고개를 들자 백은후가 갑자기 팔을 뻗어왔다. 성주안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그에게 턱이 붙잡혔다. 설마 키스하려는 건 아니겠지? 틈만 나면 키스 스킬에 집착하니까 불안했다. 나 지금 치킨 먹고 있었단 말야.

“맛있으면 싹싹 핥아먹을 줄 알았는데 볼에는 왜 묻히고 먹어?”

엄지가 뺨을 쓱쓱 쓸고 지나갔다. 굳은살이 박여 딱딱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데도 손가락이 닿은 곳에 열이 나는 듯했다. 성주안은 눈을 뾰족하게 뜨고 그의 손을 쳐냈다.

“자꾸 터치하지 마세요.”

“왜?”

“그, 그야……. 정전기 생기니까 그러죠.”

“안 묻히면 터치할 일도 없었어.”

백은후가 그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씩 웃었다.

“아, 아직 애기라 그런가?”

“애기라는 말도 하지 마세요.”

“그래, 애기야.”

아, 진짜 사람 열받게 하려고 작정했나? 저러니 치킨을 가져다줘도 욕을 먹지.

그때 백은후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같이 있는 게 짜증 나던 터인데 잘된 일이었다. 제발 길드가 바쁘니 나와 달라는 말이면 좋겠는데…….

“뭐라고? 걔가 왜 여길 와.”

백은후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거부할 수 없는 누군가가 온 모양인데…….

“하, 알겠어. 안으로 들이지 말고 로비에 가만히 있으라고 해.”

전화를 끊을 백은후가 성주안을 향해 말했다.

“어쩌지? 잠시 1층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단장님이니까 당연히 가셔야죠. 저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제발 빨리 사라져라. 속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백은후는 난감한 얼굴로 쳐다만 볼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성주안, 지금부터 잘 들어. 아나키스트들이나 외국 헌터들 중에 알려지지 않은 S급이 있다는 말은 했을 거야.”

백은후의 표정이 진지한 거로 봐선 일부러 겁을 주려고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나키스트나 외국 헌터에 대한 설정은 게임을 만들 때 고려한 사안이 아니라 덜컥 겁이 났다.

“갑자기 그 말은 왜 하시는 겁니까?”

“……그들 중 은신술을 SS급까지 개발시킨 헌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정보 길드에서 알려준 거라 사실일 거다.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이미 말해놓았어. 웬만하면 너와 있을 때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고.”

은신술이라니. 정확한 스킬 효과는 모르지만 게임 개발자로서 유추해 본다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백 길드나 각성자 전용 주거 시설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내가 걱정하는 거야. 납치되려면 차라리 외국 헌터가 낫지 정체도 불분명한 아나키스트들한테 걸리면 진짜 골치 아프거든.”

이미 생각지도 못한 세계에 왔는데 여기서 또 미아가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파티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 됐든 그들에게도 삶이 있으니까. 이거 어쩐다?

“근데 백은후 씨, 왔다는 사람이 누굽니까? 보고 괜찮으면 차라리 이곳으로 오라고 하는 건 어떻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은후가 말을 낚아챘다.

“절대 안 돼. 아직 내 차례잖아. 이물질은 필요 없어.”

“예? 이물질요? 누구기에.”

“모준영.”

난 또 누구라고. 아까 전화 받을 때 얼굴이 심하게 구겨져서 거부할 수 없는 세력의 단장이나 성좌가 보낸 사자라도 되는 줄 알았다. 게다가 갑자기 아나키스트 얘기는 왜 꺼내서. 괜히 더 쫄았다. 그런데 모준영이라니. 누구보다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잖아.

성주안은 정색하며 말했다.

“백은후 씨, 지금 다시 전화해서 모준영 씨 여기로 오라고 하세요.”

“……꼭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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