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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35)화 (35/74)

035.

챙, 채앵, 챙.

공세윤이 춤을 추듯 뱅글뱅글 돌며 얼음 칼을 X자로 만드는 동안 그의 주변에 눈부신 푸른빛이 감돌았다.

공세윤의 주력 스킬인 냉정한 포식자를 쓰기 전의 모션이었다.

만들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만……. 지금 공세윤 우울한 상태 아닌가? 우울함에서 저 정도의 아우라가 생긴다고?

성주안은 급하게 상태창을 열어 공세윤의 캐릭터 정보를 눌렀다. 그 순간 시스템창이 시야에 들어왔다.

<공세윤이 스킬을 각성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스킬 이름 봐라.

아니, 그러니까 지금 공세윤이 우울함에서도 저런 아우라를 내 뿜는 이유가 패시브 스킬을 각성해서라고?

그의 상태가 아직 ‘우울함’인 것으로 보아 우울함을 활기참으로 바꿔주는 스킬은 아니고 우울한 상태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SS급 스킬을 쓸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인 것 같았다.

그러면 진짜 잘된 일이긴 한데, 과연 냉정한 포식자로 공략이 가능할까?

냉정한 포식자로 늑대인간을 얼린다고 하더라도 상태 이상을 치료해 주면 다시 살아날 텐데?

잠시 고민하던 성주안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주지찬에게 바로 전달했다.

“주지찬 씨, 지금 공세윤 씨가 냉정한 포식자를 쓰면 그때 바로 방아쇠를 당겨요. 성좌들의 수호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태 이상을 치료하고 난 후에 부활시켜야 할 테니까 텀이 생길 거예요. 우리는 그 텀을 노리자고요.”

“오케이! 좋았어.”

챙, 채앵, 챙.

얼음 칼날이 경쾌하게 부딪히며 푸른 곡선을 만들어냈다. 푸른 선이 정확하게 늑대인간의 정수리를 꿰뚫었을 때, 공세윤이 외쳤다.

“냉정한 포식자!”

그러자 늑대인간뿐 아니라 반경 3미터 내에 있는 모든 늑대가 꽁꽁 언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다.

철컥. 준비하고 있던 주지찬이 방아쇠를 당겼다. 화르르, 방사기에서 쏘아진 불길이 순식간에 늑대무리를 뒤덮었다.

우어어!

가죽이 타는 냄새 사이로 늑대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어느새 방사기를 집어넣은 주지찬의 손에 시뻘겋게 달궈진 칼이 들렸다.

주지찬의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붉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더니, 불과 하나가 된 주지찬이 휘릭, 공중으로 솟았다.

거센 불과 함께 주지찬은 바람을 가르며 늑대인간을 향해 나아갔다. ‘불꽃 지옥’ 스킬을 시전하는 그는 마치 남방을 수호하는 붉은 새인 ‘주작’을 닮아 있었다.

날아간 칼이 단숨에 늑대인간의 심장을 뚫었다.

카아아악!

늑대인간과 주변을 감싸는 무리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결과는 명중이었다.

성좌들의 방해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투가 끝나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이벤트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은…….>

시스템창이 눈앞을 아른거렸지만 시야가 흐려 보이지 않았다.

털썩.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이리저리 휘둘리던 성주안의 몸이 던전 바닥에 쓰러졌다.

“형, 혀엉……!”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저를 애타게 부르는 공세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야. 모두 무사해서. 세윤아, 고맙다. 이번 던전은 네 덕분에 클리어할 수 있었어.

왜 이렇게 잠이 오는 거지? 눈을 뜨면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면 좋겠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하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 * *

“이벤트 던전인데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거 아닐까요? 아직 오픈베타도 열리기 전인데요.”

회의실 안, 김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항상 애써서 기획하면 저런 말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인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박 팀장이 나섰다.

“게임의 성공은 업데이트에 달린 거 몰라? 뭐 하나라도 확실하게 준비를 해놔야지. 초반에 반응이 좋아도 업데이트가 별로면 유저가 떠나는 법이야.”

박 팀장이 편을 들어주었다. 물론 그가 저러는 이유는 자신의 기획을 가로채기 위해서겠지만.

“그래서, 특별카드엔 무슨 선물을 넣을 예정이야?”

그때 웃으면서 대답했었지.

유저들이 가져갈 특별카드엔 코인, 스킬, 캐릭터 등급 업그레이드 등의 선물을 랜덤으로 넣어놨다고. 가챠로는 얻기 힘든 선물이라 너도, 나도 서로 하려고 몰려들 거라고.

나, 드디어 본래 세계에 온 건가?

박 팀장의 목소리가 반갑기까지 하다니. 참 길고 긴 꿈이었다. 그래도 내 캐릭터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우리 세윤이의 서사는 조금 덜 슬프게 수정하고, 주지찬의 부작용은 없애는 게 좋을 것 같고, 로봇 같은 모준영에겐 융통성을 넣어주고 백은후의 배신은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정도로 약하게 만들자.

수정할 게 산더미야. 오늘부터 열심히 일해야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싸한 거지?

* * *

“형, 정신이 들어요?”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 흔들리는 어깨,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들…….

성주안이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저를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화신 네 명이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 줄 알았더니 꿈을 꾼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주안의 입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마지막 인사를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배, 백은…… 케, 켁.”

목 안쪽에서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어깨와 허리도 뻐근했다.

“으윽.”

끙끙 앓으며 몸 여기저기를 움직이려 해 보았다. 그러나 손도, 발도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백은후가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금방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 조금 더 누워 있도록 해.”

“형은 이렇게 약해서 큰일이에요. 몸이 말랑 두부야 뭐야. 내가 온몸으로 막아줬는데도…….”

공세윤은 아직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말이 끝날 때마다 훌쩍거리고 있었다. 성주안은 힘없이 축 늘어진 공세윤의 손을 잡았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성주안을 내려다보았다.

“……고마워요. 온몸으로 막아줘서. 그리고 스킬 각성도 축하해요. 우울함과 활기참에 상관없이 천하무적이겠네요?”

공세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제 스킬은 전부 SS급이니까요. 누가 이기겠어요.”

그때 모준영이 시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대화가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히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모준영은 던전 클리어로 우리가 얻게 된 보상에 대해 말했다.

<드랍 아이템

― S급 무기 강화 마석 : 5,000개

― S급 치유의 물약 : 500개

― S급 상태이상 치료 물약: 500개

― S급 스킬회복 물약 : 500개>

<특별카드 – OPEN

― 파티 구성원 전원의 패시브 스킬을 각성합니다.

― 성주안 : 모든 스킬의 지속시간 2배 증가

― 백은후 : 번개는 연속해서 쳐야 제맛(모든 스킬 쿨타임 감소)

― 모준영 : 함성이 커져(모든 스킬 사정거리 두 배 증가)

― 주지찬 : 주작의 후계자(모든 스킬 파괴력 두 배 증가)

― 공세윤 :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상태이상 조절)>

브리핑이 끝났다.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에 성주안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야아! 목숨 건 보람이 있네요.”

모준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결과는 좋은 편이지만 다친 사람이 많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주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민간인이 다쳤다는 사실에 상심한 듯했다.

던전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데 있어서 민간인 희생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진짜 사람들이 다쳤다고 생각하자 숙연해졌다. 동시에 성좌들을 향한 분노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성주안은 백은후에게 질문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이 말은 다른 화신들이 없는 곳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음…… 우리 어떻게 되는 거죠? 공세윤 씨 다음으로 저를 보호해 주시는 분은 백은후 씨 맞죠?”

“네에? 그런 게 어딨어요. 중간에 던전 터지는 바람에 저는 하룻밤을 못 지냈는데요? 무효예요, 무효!”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되나.

백은후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었는데…….

성주안이 백은후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내자 눈치 빠른 백은후가 공세윤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렇게 됐으니 다음번 네 턴이 오면 이틀 같이 있는 건 어때?”

그 말에 공세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만약 공세윤이 예전과 같은 우울한 상태였다면 신경이 쓰여서 억지로라도 그의 곁에 있었겠지만 지금의 공세윤은 혼자 둬도 될 것 같았다.

“어, 어떡하지? 오늘도 함께 있고 싶긴 하지만…… 이틀이 너무 달콤해요.”

고민하는 얼굴이 간식을 입에 문 채 주인의 손에 든 간식을 욕심내는 강아지 같았다. 아무래도 공세윤의 패시브 스킬은 상태이상 조절이 아니라 귀여움인가 보다.

그를 보고 있으니 올라간 광대가 내려가지 않았다.

“아휴,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다음에 이틀 주세요. 그때 아무도 못 만나게 해야지.”

“그래, 잘 생각했어. 나라도 이틀을 선택했을 거야.”

공세윤이 활짝 웃었고 백은후는 주변을 정리했다.

“그럼 다들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 성주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의 말에 모준영은 가늘게 뜬 눈으로 백은후를 바라보다가 나갔고, 주지찬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건 공세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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