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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34)화 (34/74)

034.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얼른 알겠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던전에서 나오는 보스의 스킬이 공세윤과 맞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스 스킬은 한 사람에게밖에 쓰지 못하는데 중요한 기회를 낭비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애가 떼쓰는 걸 계속 들어줄 수도 없어서 주안은 솔직하게 말했다.

“저기 공세윤 씨, 그건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던전도 계획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갑자기 생긴 거잖아요. 다음 던전이 뭐가 될 줄 알고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하겠어요.”

설마 지금 이 상황에 우울함이 온 건 아니겠지? 하고 공세윤의 눈을 본 순간, 성주안은 이마를 짚었다. 하필 이런 때에 우울한 상태라니…….

공세윤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울먹였다. 일단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주지찬과 키스부터 하고 나중에 달래는 수밖에. 성주안은 공세윤이 우는 틈에 주지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지찬이 잽싸게 와서 주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아…….”

그가 내뿜는 뜨거운 숨결이 코에 닿았다. 첫 키스도 아닌데 그와 처음 입술을 부딪칠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공세윤에게 안겨있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의 입술이 입에 닿았다. 살짝 스치듯 지나갔다가 조금씩 깊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허읍…….”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숨을 쉬기 위해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말캉한 살덩이가 느껴진다 싶더니 엉덩이를 만지는 느낌이 났다. 아래를 봤더니 공세윤이 자신의 엉덩이를 조물거리고 있었다.

앞에는 주지찬, 뒤에는 공세윤…….

샌드위치처럼 끼여서 뭐 하는 짓인지 현타가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주안은 스킬의 영향으로 인해 주지찬의 입술을 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후, 입술을 뗀 주지찬이 눈을 번뜩였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기 힘든 듯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화염방사기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파아아!

성주안은 눈을 크게 뜨고 불길이 치솟는 방향을 따라갔다.

‘제발, 제발, 명중해라.’

시뻘건 불길이 늑대무리의 정중앙을 향해 쏘아졌다.

우우! 우우우!

늑대들의 비명이 뒤를 이었다.

“마, 맞췄다!”

성주안은 저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쾅,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지가 찢긴 늑대들의 사체가 공중으로 튀었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크으윽! 크아아아!

끔찍한 비명이 던전을 가득 메웠다. 지금까지의 비명과 다른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보스가 내는 소리인 것 같았다.

저 정도로 맞았으면 죽었겠지?

그러나 비처럼 쏟아지는 활은 그대로였다.

무리의 대장이 죽었는데 계속 공격을 한다고?

“시발, 아직 살아 있어!”

주지찬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봤더니 다리가 잘린 늑대인간이 무리의 정 가운데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좋아, 한 번 해서 안 되면 또 하면 되는 거야!”

성주안이 얼떨떨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주지찬은 화염방사기의 방아쇠를 다시 당겼다.

펑, 펑!

다시 불길이 쏟아졌지만 무리는 죽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공격력 세 배 버프를 받고도 안 죽는다는 게 말이 돼?

몬스터 중에서도 힐러 계열의 몬스터를 주변에 두고 몇 번을 되살아나는 몬스터가 있긴 했지만 늑대 무리엔 병사밖에 없었으므로 한 번 죽으면 끝이었다. 게다가 A급밖에 안 되는 보스가 S급의 공격력 세 배 스킬을 정통으로 맞고도 살아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늑대무리의 대장은 아직도 지속해서 다른 늑대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성좌들이 방해하는 건가?

현재로선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이었다.

성주안은 혹시나 제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까 봐 상태창을 켰다.

그때였다.

성주안의 눈앞에 쪽지창이 떴다.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접속을 희망합니다.>

성좌라고? 갑자기?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지금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더 공격할 방법도 없었고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성주안은 수락하기를 눌렀다.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늑대인간은 성좌들의 수호를 받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눈치챘으니까 공략법이나 말해.”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알려줄 테니 자신과 계약하자고 합니다.>

“하, 이놈의 성좌 새끼들은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없네. 내가 너희랑 계약을 왜 해!”

버럭 화를 내고 보니 조금 후회되었다. 성좌들의 수호를 받고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힘을 합쳐 공격한다고 한들 늑대인간은 죽지 않을 텐데……. 절망이 눈앞에 다가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약을 해줄 테니 공략법을 알려달라고 할까?

달콤한 유혹이긴 했으나 지금까지 성좌들이 한 짓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손을 잡았다가 또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계약하자고 말합니다.>

성주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어. 날 이렇게 만든 것도 너희인데 알려주는 공략법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어?”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발을 동동 구릅니다.>

<성좌, 로브를 벗은 마법사가 진짜 후회할 짓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냐고 합니다.>

성주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펑, 퍼어엉!

주지찬이 늑대인간을 향해 방사기를 쏘는 소리가 들렸다. 폭발음이 연이어 계속 나는 것으로 봐서 쿨타임이 차지 않았는데도 계속 힘을 소모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늑대인간은 계속 살아나고 있었다.

아무리 세 배 버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전력으로 스킬을 다 소모해 버리면 나중엔 체력도 부족해질 텐데……. 어떡한다?

성주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성좌들의 수호를 받는 몬스터는 어떻게 공략해야 하지?

게임을 만들 땐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문제였다. 성좌들은 원래 화신들에게만 코인을 통해 힘을 쓸 수 있었으니까.

만약 늑대인간이 화신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성좌의 수호를 받지 못할까?

정답은 화신이 죽었을 때였다.

성주안은 깊이 탄식했다.

늑대인간을 죽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공략하라고?

진짜 이대로 다 죽는 수밖에 없나? 아니다. 성좌들은 어차피 S급 화신들이 필요하니 저만 죽는다면 다른 캐릭터들은 무사할 것이다.

“나만 죽으면 무사하다라…….”

생각하고 있던 말을 무심코 입 밖으로 냈더니 그때까지 울고 있던 공세윤이 눈물을 그치고 눈을 크게 떴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이 죽는다니요.”

“지금 성좌들이 늑대인간을 계속 살려내는 이유가 뭐겠어요? 저를 방해하고 싶어서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들과 계약하는 게 싫어서요. 그러니 저만 죽으면 여러분들은 살려주지 않을까요?”

“……미쳤어요? 아니면 환각에 빠지셨나? 암호 말해봐요.”

“금강불괴요. 하, 저는 지금 지극히 정상인 상태입니다.”

공세윤이 성주안을 바닥에 내려놓고 눈을 치켜떴다. 늑대인간보다 더 무서운 표정이었다.

저라고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현실이 팍팍했더라도 나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면 주어지는 보상인 소원권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금 죽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포기는 빠를수록 좋은 거 아닌가?

“성주안!”

공세윤이 큰 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지만 어느새 마음에 드리운 어둠이 모든 걸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아, 진짜 너무 지쳐요. 피곤하고 힘들고……. 다음 던전으로 가서 전략을 짠다고 해도 또 성좌들이 방해할 텐데요.”

사실 원래 세계에서도 그랬다. 열심히 죽어라 일해서 성과를 만들어놓으면 그건 어느새 다른 사람의 성과로 바뀌어 있었다. 경력을 쌓고 저 자리에 오르면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일했지만 사실 그렇게 될 확률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스펙이 없는 성주안은 그저 아이디어 뱅크에 불과했으니까. 그런 자리는 대개 스펙이 좋은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세윤이 불쑥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형은 세상이 지옥인지 모르고 살아왔어요?”

“…….”

“뭔 당연한 얘길 이런 분위기에서 하는 거예요? 시간 아깝게?”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공세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우울함과 활기참을 반복하며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 걸까?

“형, 세상은 원래 엿 같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힘을 부러워하지만 힘을 가진 자들은 그만큼 고독하고 서럽죠. 우리가 그런 걸 몰라서 바보처럼 맨날 싸우는 줄 아세요?”

이 게임 속 세계관을 만든 것은 성주안.

화신들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사는지는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어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요. 우울함을 겪으면서도 말로는 죽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살고 싶었어요. 왜 그런 줄 알아요?”

“…….”

“우울한 시기가 끝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시기가 올 걸 알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상태가 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우울해도 죽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우울해도 그런 생각이 든다고?”

“……네.”

대답하는 공세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형을 만났으니까요.”

“……세상에.”

그런 공세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애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죽느니 마느니 낙담이나 하고 있었다니.

진짜 잠시 환각에 빠져버렸던 건 아닌가?

“어이, 두 사람. 연애질할 시간 있으면 나 좀 도와주지? 흐억!”

그 순간 공세윤의 갈색 눈이 짙게 변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갈색이 시리게 빛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그가 양손을 높이 들자 두 손에 얼음칼이 한 자루씩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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