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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23)화 (23/74)

023.

“뭐 하냐고!”

“아, 아니…… 밥 먹으라면서요.”

주안은 의심을 풀지 않은 채 주지찬을 유심히 관찰했다. 철문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눈빛도 호흡도 안정된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성주안은 주지찬으로부터 한 발 물러났다. 그랬더니 주지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사람을 보고 정체 모를 음식이네 뭐네 하며 잡아먹을 것 같이 굴어놓고 뭐래? 기가 막혔지만 일단 그의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괘, 괜찮으세요?”

“괜찮지, 그럼. 누가 그따위 부작용에 쉽게 넘어갈 줄 알고?”

“하긴, 주지찬 씨는 인내심이 강하니까요.”

그 말에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던 주지찬이 “뭐래?” 하며 눈을 돌렸다. 싱크대 위에 엉망으로 늘어놓은 식재료를 둘러보는 것 같았다. 나름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재료를 씻고 칼로 대충 썰어놓긴 했는데 제가 봐도 조리대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다.

주지찬이 혀를 끌끌 차다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싱크대 앞에 섰다.

“이건 뭐, 요리하겠다는 건지,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방해되니까 물러나 있어.”

뭐지? 직접 만들어주겠다는 건가? 고맙긴 한데……. 나중에 대가를 요구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지찬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자 그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죽겠는데 자꾸 옆에서 얼쩡거려. 밥 대신 다른 거 먹으려고? 꺼지라는 말 안 들려?”

“네네, 알겠다고요. 괜히 성질이야.”

하여튼 말이 행동을 못 따라가서 큰일이다. 착한 일을 하면서 말을 저딴 식으로 하면 누가 좋아할까? 친구 한 명 없을 게 분명했다.

투덜거리며 부엌에서 나와 소파로 가서 앉았다. 종일 시달려서 그런가 푹신한 시트에 엉덩이가 닿자마자 잠이 솔솔 왔다.

반쯤 잠이 들었던 주안이 눈을 번쩍 떴다. 공기가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감이 훅 밀려들었다.

주지찬이 다시 이상해지기라도 한 거면……. 윽,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잠에서 깨기 위해 허벅지도 꼬집고 뺨도 찰싹찰싹 때리고 있자니 잠시 후,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동시에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나서 홀린 듯 부엌으로 걸어갔다.

마침 냄비를 들어 옮기려던 주지찬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적이자 그가 식탁을 턱짓하며 말했다.

“앉아. 재료가 얼마 없기도 했고 급히 만든 거라 맛은 보장 못 하지만.”

식탁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차려진 음식들을 훑어보았다. 차돌박이가 들어간 된장찌개, 계란말이, 진미채볶음, 어묵볶음, 콩나물, 시금치, 총각무김치 등등 오랜만에 보는 엄마 밥 세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와, 진짜 얼마 만에 보는 집밥이냐?

매일 밤샘을 밥 먹듯이 하며 주안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이 대부분이었다. 좋다고 소문 난 구내식당에는 눈치가 보여 갈 수 없었고…….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주안을 흘긋 쳐다본 주지찬은 팔뚝에 힘줄을 돋게 하며 찌개를 덜어주었다. 코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가 보였다. 갖은 채소와 고기 그리고 큼지막하게 썰린 두부가 놓여 있었다.

꼴깍, 군침을 삼키다 한 술 뜨자, 고소한 맛이 입안 전체에 퍼졌다. 와, 찌개가 이렇게 맛있으면 도대체 다른 반찬들은 얼마나 맛있는 거야? 어디 한번 먹어보자.

주안은 하얀 밥 위에 반찬을 차례로 올려 먹어보았다. 짭조름한 계란말이에 매콤하고 쫄깃한 진미채와 달달한 어묵볶음에 아삭한 콩나물……. 믿을 수 없게도 엄마가 한 것과 비슷한 맛이 났다.

“맛있냐?”

주안은 주지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완전 맛있어요. 약이라도 넣은 줄!”

“약이라니……. 음식에 그런 거 안 넣는다. 사람을 뭐로 보고.”

뭐지? 이 세계에는 그 유명한 마약 김밥도 없나? 아니면 주지찬이 센스가 없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아마 후자 쪽이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말귀 좀 못 알아들으면 어때? 이 정도의 요리 솜씨면 평생 같이 살…… 은 아니고, 부모의 원수만 아니면 용서해 줄 만하지!

“그만큼 맛있다는 말이에요. 고맙습니다.”

대답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빠르게 밥을 떠서 입에 넣는 걸 보며 주지찬이 컵에 물을 따라줬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주지찬은 정말 착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하며 물을 한 잔 마시고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넣는데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계속 나만 쳐다보는 거 같은데?

“굶었냐?”

주안은 입 안에 있는 걸 빠르게 씹어 삼키고 대답했다.

“마음이 고파서 그래요.”

“마음이 고파?”

아, 단순 무식한 놈에게 너무 어려운 말을 했네. 주안은 재빨리 말을 고쳤다.

“이런 음식은 먹어본 지 오래돼서요. 예전에 어머니가 해줬던 음식이요.”

“참, 복스럽게도 먹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각성자들은 보통 각성하면서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식욕을 잃는 편인데, 너는 다른가?”

“아…….”

그야, 육체를 가지지 못한 성좌였다가 다시 각성자가 되었으니까. 일반인이었다가 각성자가 된 사람들과는 완전 다르겠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알 수 없어서 말을 머뭇거리자,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주지찬이 별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공기의 밑바닥이 보일 만큼 싹싹 긁어먹는데 또다시 이상야릇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쩌냐?”

“뭘요?”

식탁 아래에서 주지찬의 발이 발등 위로 올라와서 발목을 쓱 긁고 내려갔다. 대체 무슨 짓이야. 미친놈인가.

“밥 먹으니까 또…….”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어 숟가락을 놓고 눈을 부릅떴다.

“주지찬 씨, 진정하세요. 다시 방에 모셔다드릴까요?”

“하아…….”

발목에 있던 발이 종아리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열기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그를 더 부추길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다.

야, 진짜 정신 차려라. 나 남자다. 게다가 너 만든 사람이라고……. 네가 실제 인간이었으면 나랑 부, 부자관……. 아니지, 여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아무튼.

성주안이 주지찬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조금씩 뒤로 빼자, 그가 킬킬거렸다.

“겁먹은 게 꼭 새끼 강아지 같네.”

뭐야? 부작용 때문이 아니고 사람 놀리려고 그런 건가?

상황 파악을 하기가 힘들어 눈만 깜빡거리자 주지찬이 주안의 밥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잠시 후 하얀 쌀밥이 소복이 담긴 밥그릇이 앞에 놓였다.

“많이 먹고 많이 커라.”

“…….”

시발,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사람 간 떨리게……. 열이 받는 것도 잠시, 처음처럼 리필된 밥을 보자 또 식욕이 동했다. 주지찬은 싫어도 밥은 죄가 없으니까.

다시 밥을 싹싹 긁어먹고 고개를 들어보니 주지찬이 흐뭇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흠흠,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여튼 이해 안 되는 인간이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다행히 어제는 주지찬과 밥을 먹고 각각 다른 방에서 안전하게 잠을 잔 것 외에 다른 일이 더 터지진 않았다.

열받은 백은후가 공세윤을 데리고 침입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주지찬의 버프 효과가 남아 있을 때라 그들도 몸을 사리는 듯했다.

버프 효과 좋네, 힘 있는 각성자들을 적당히 조절할 수도 있고.

밖으로 나가니 주지찬이 어제와 다른 메뉴로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때와 비교하면, 잘 자고 잘 먹으니 완전 천국인데……. 주지찬에게 키스 스킬 한 번 더 쓰고 여기에 눌러앉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성주안은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꿈의 세계에 매몰될 순 없다. 현실을 살아야지. 게다가 주지찬이 언제 미쳐서 달려들지도 모르는데, 절대 안 될 일이다!

마음을 다잡고 주지찬이 차린 밥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였다.

딩동, 딩동!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제발 백은후나 공세윤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젠장…….”

욕을 짓씹은 주지찬이 현관으로 나가서 주안도 그 뒤를 따랐다.

“누구야?”

― 모준영입니다.

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미친놈들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어쩐지 모준영의 목소리가 조금 급하게 들렸다.

주지찬이 현관문을 열자 모준영이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무슨 일이야? 쇼핑몰 앞에서 일어난 일은 해결해 줬잖아.”

“그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성주안 씨는 센터의 특별 보호 대상이니 더는 여기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오……. 각성자 거주 시설로 데려가려고 온 건가? 하긴, 성적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주지찬의 집에 있는 것보단 센터의 보호를 받는 게 낫겠지. 거기라면 아무리 백은후라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을 테니까.

주안은 주지찬의 눈치를 보면서 모준영이 서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그걸 보고 있던 모준영이 주안의 어깨를 감쌌다. 뭐야? 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스킨십을.

지금 이러면 주지찬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주지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주안은 모준영의 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것 좀 놓고 말씀하세요.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붙잡는 모준영이 팔에 힘을 더 주는 바람에 목이 졸렸다.

모준영은 주안의 말이 안 들리는지 눈에 힘을 주고 주지찬을 쏘아보기만 했다. 눈빛이 꼭 상대를 물어버릴 기회를 노리는 거대한 짐승 같았다.

그러자 주지찬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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