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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20)화 (20/74)

020.

“…….”

“성주안 씨, 찾느라 힘들었어. 센터에 있었으면 내가 모시러 갔을 텐데, 사라지셨더군. 나 안달 나게 하려고 작정했어?”

“저를 납치해 놓고 그게 무슨 말이세요? 갑자기 안달은 왜 나는 건데요.”

백은후의 시선이 공세윤의 어깨를 감싼 성주안의 팔에 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상황을 눈치챘는지 그가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새 공세윤 어린이가 넘어갔나 보네.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상처받을 것 같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말을 좀 알아듣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백은후는 항상 저런 식으로 속을 숨겼다. 구린 구석이 많으니 드러내 보일 수도 없었겠지.

성주안이 속으로 욕을 짓씹는 동안 공세윤이 백은후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엿 같은 소리야? 헛소리할 거면 당장 꺼져.”

“벌써 우울한 상태에서 빠져나온 건가? 너무 빠른데……. 이거 의외인걸?”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얼른 안 꺼져?”

공세윤의 발악에도 백은후가 팔짱을 낀 채 여유 있는 태도로 킬킬 웃었다. 그러자 공세윤이 곧장 공격할 듯 몸을 긴장시켰다.

백은후가 양 손바닥을 보이며 세윤을 안정시켰다.

“워어, 워. 공세윤, 지금 우리 둘이 싸울 때가 아니야. 오히려 협력할 때지. 너도 희생의 창조자를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궁금하지 않아?”

털 세운 고양이처럼 바짝 올라가 있던 공세윤의 어깨가 ‘희생의 창조자’라는 단어 하나에 단숨에 내려왔다. 커다래진 눈이 백은후를 향했다.

“희, 희생의 창조자? 왜, 뭐 들은 거 있어?”

백은후가 공세윤의 뒤를 턱짓했다.

“네 뒤에 있는 버퍼한테 물어보지 그래?”

그러자 가늘게 뜬 눈이 주안을 향했다. 어깨가 흠칫 떨렸다. 뭐지? 내가 희생의 창조자라는 걸 벌써 눈치챘나?

공세윤이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주안 씨는 희생의 창조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마, 맞아요.”

“그런데 백은후 말은 뭐예요?”

“그게…… 그러니까.”

할 말이 궁해서 머뭇거리면서도 성주안은 조금 섭섭해졌다. 내가 아니라 백은후 말을 믿는다고? 백은후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희생의 창조자를 빼돌린 게 성주안이니까.”

“뭐라고?”

공세윤의 몸이 차게 식는 게 느껴졌다. 주변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는 거로 봐선 얼음 지옥을 만들기 일보 직전의 상태인 것 같았다. 빨리 수습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백은후 씨 지금 무슨 모함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 돼요? 실체가 없는 성좌를 제가 무슨 수로 어떻게 빼돌렸다는 거죠?”

백은후는 성주안의 질문을 무시한 채 공세윤만 보며 말했다.

“공세윤, 아직도 모르겠어? 저놈. 희생의 창조자와 계약한 놈이야.”

“그, 그럴 리가…….”

공세윤이 경악하며 성주안으로부터 조금씩 뒷걸음쳤다. 그 와중에도 백은후는 쉬지 않고 그를 자극했다.

“잘 생각해 봐, 희생의 창조자가 언제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희생의 창조자가 없어지고 갑자기 성주안 씨가 나타나긴 했…… 응?”

“드디어 눈치챘군.”

“나,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주안 씨가 어떻게 날 속일 수가 있어요?”

공세윤이 저만큼 떨어진 상태에서 성주안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가 어느새 제 쪽이 아니라 백은후 쪽에 가 있는 걸 보자 정말로 무서운 마음보단 서운함이 앞섰다.

이래서 애 키운 보람은 없다고 하는 건가? 아니지, 지금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지금 저 두 사람은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상태였다. S급 버퍼로서 희생의 창조자와 계약했다고 믿는 게 분명하니 그를 내놓으라며 동시에 공격이라도 해 온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모준영은 대체 어디 간 거야! 수색대까지 동원했으면 지금쯤엔 날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성주안이 모준영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자, 백은후가 갑자기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쓸데없는 기대는 접는 게 좋아. 쇼핑몰 앞에 던전이 열렸으니, 모준영은 오지 못할 거야. 시민들을 지키기에도 바쁠 테니.”

그 말에 조금 전에 들은 모준영이 직접 한 안내 방송이 생각났다. 쇼핑몰 앞에 던전이 열렸으니 상급 각성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던전은 아무 이유 없이 열리지 않는다. 시스템이 안정된 상황에서 던전이 나타났다면 그건 누가 일부러 성좌를 이용해 없는 던전을 만든 게 분명했다. 그 누군가는 목적이 있는 백은후일 테고.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모준영이 아무리 귀찮았어도 그렇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담보로 잡다니. 백은후의 잔혹함에 치가 떨렸다.

성주안은 주먹을 꽉 쥐고 백은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백은후는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열렬한데?”

뭐가 열렬하다는 거야.

“그래도 그런 눈빛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좀 그렇지 않나? 둘이 있는 장소로 가고 싶은 거라면 친히 데려가도록 하지.”

“이런 상황에 농담할 기분이 들어요? 어쨌든 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은후 씨는 절대 안 따라갈 겁니다.”

그 말에 백은후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쏘아보고 화를 냈는데 웃다니. 범 앞에 하룻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웃음을 멈춘 백은후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너는 날 자주 보게 될 거야.”

맞는 말이긴 했다. 이 세계에는 솔플 던전만 있는 게 아니니까 각성자로 살아가다 보면 자주 보게 되긴 할 거고.

하지만 백은후와 한 공간에 둘만 있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갑자기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공세윤이 한기를 내뿜어서 주변 온도가 차게 식어 있었는데 갑자기 열기라니? 열기라면…… 설마!

쾅! 콰앙!

뒤이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고통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성주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지찬이 엄청난 화염에 둘러싸인 채 화장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다. 키스의 지속시간이 24시간이니 아직 버프 효과가 남아서 그런가?

그런 거라면, 지금 이 순간, 백은후와 싸워 이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주지찬밖에 없었다.

“사, 살려주세요!”

온 힘을 다해 크게 외친 후에 그에게 다가가는데 덥석, 뒷덜미가 붙잡혔다. 공세윤이 냉기가 뚝뚝 흐르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가요? 내 옆에 꼭 붙어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다 거짓말이에요?”

“아니, 그땐 세윤 씨가 제 편이었고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공격 한 번 잘못 맞으면 바로 죽을 텐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이런다고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겠지. 예상대로 공세윤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손에 힘을 줬다.

“어떻게 나한테 같은 편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너무해.”

살기 위해 몸을 버둥거리며 주지찬을 향해 팔을 높이 뻗었다.

“뭐 해요?! 얼른 살려주세요!”

공세윤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래 봐야, 저 지금 활기찬 상태라 헛수고예요. 제가 더 센 거 몰라요?”

백은후가 공세윤을 말리고 나섰다.

“아니야. 지금 저 녀석 성주안 버프 받아서 능력치 세 배라고. 너와 내가 같이 싸워도 못 이겨.”

“주지찬 씨! 어서요. 저 좀…….”

성주안이 소리치자 불을 토해 내고 있던 주지찬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몸을 다 녹일 정도로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공세윤, 백은후 말 들었으면 얌전히 놓지 그래? 내가 좀 급해서 말이야.”

그래, 그래, 잘한다. 주지찬. 뭐가 급한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나 좀 데려가라.

공세윤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주안을 풀어주지 않았고, 백은후가 대신 반응했다.

“정의의 사도이신 주지찬 님께서 사람들 안 구하고 여긴 무슨 일일까? 바깥이 시끄러웠을 텐데?”

그러게, 그건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주지찬이 사람들을 외면할 리가 없는데?

“이미 다 끝내고 왔지. 여기서 한 번 더 싸울 생각 아니면 순순히 내놓으시지? 이제 곧 모준영 센터장도 올 거니까, 싸워봤자 의미 없어!”

주지찬의 힘을 이미 경험한 백은후는 입을 다물었고, 공세윤만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처럼 주지찬을 경계했다. 주지찬이 공세윤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하하, 꼬맹아, 형은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 허억.”

공세윤의 스킬인 차가운 칼날이 주지찬을 향해 날아가 그 주위 벽에 꽂혔다. 날카로운 공격이라 주지찬의 회피력이 높지 않았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만큼 강한 공격이었다.

엄청난 공격력에 감탄한 것도 잠시, 화가 난 주지찬이 겁도 없이 스킬을 쓴 공세윤의 옆으로 발을 날렸다.

타일 벽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공세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어떻게…… 스킬을 쓴 것도 아닌데…….”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화염계라 스킬로 주로 공격하는 주지찬이 스킬을 쓴 것도 아닌데 엄청난 물리력을 보여줬으니까. 이때쯤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지찬 씨는 세 배 버프를 받은 상태라 싸우면 당신만 손해예요. 다행히 세윤 씨가 어려서 스킬을 안 쓴 것 같으니까 포기하고 놔 주세요.”

“안 돼,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놔줄 수 없어요. 내, 내가 주안 씨, 아니! 희생의 창조자를 얼마나……. 흡.”

공세윤이 몸을 부들부들 떨어서 주안의 몸이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순순히 내놓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공세윤이 우느라 방심한 사이 주지찬이 몸을 날려 성주안의 허리를 감쌌다. 두 헌터가 서로 잡아당겨서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거 아닌가 했는데, 놀랍게도 공세윤의 손에서 힘이 풀려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공세윤, 은근히 착하단 말이야. 죽는 한이 있어도 놔줄 수 없다더니, 내가 죽는 건 싫었나?

성주안을 옆구리에 낀 주지찬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흡사 공중에 떠서 나는 것 같은 속도였다. 어질어질, 속이 메스꺼운 데다가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체온이 뜨거워서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정신없이 일어나는 일들에 불안할 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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