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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는 로그아웃 하고 싶다 (17)화 (17/74)

017.

“염탐하러 왔겠지. 다른 헌터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이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만약 일반인으로서 성좌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면 고작 숙식을 가지고 딜을 하는 대신에 신고해서 포상금을 노렸을 테니까. 포상금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코인이 많으니 포상금 따위 필요 없었겠군요. 본인이 각성자이기도 하니까.”

“이제 대화가 좀 통하는군. 그래서 아직도 내 집을 뒤져 볼 생각인 건가?”

염탐 없이 여길 빠져나갈 명분이 생긴 셈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듣고 보니, 의미가 없겠군요. 한시라도 빨리 수색대를 돌려 성주안을 찾는 게 났겠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면 백은후 씨가 성주안을 찾아 희생의 창조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할 테니까요.”

백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 있는 태도로 봐선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푼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모준영이 그렇게 말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순간 백은후가 금세 거리를 좁혀와 모준영의 어깨를 잡았다.

“이렇게 못 보내지.”

“왜 이러십니까? 피차 볼일은 끝난 것 같은데요.”

“사전 고지도 없이 함부로 내 집에 들어와 멋대로 수색했다면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

참 기가 막힌 트집이었다. 지금껏 백은후가 크고 작은 일에 연루될 때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한 번도 오늘처럼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새삼스레 이러는 이유는 성주안을 찾으러 가지 못하게 하려는 꼼수가 분명했다.

“이거 놓으십시오. 공무집행 방해죄로 잡혀가고 싶으십니까?”

“어이쿠, 무서워라.”

백은후가 전혀 두렵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깨를 잡은 손은 풀지 않았다. 주변에 보는 눈만 없었어도 면상에 주먹을 날리는 건데. 공무원으로서 법과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모준영은 가까스로 분노를 참고 그의 팔을 떨쳐냈다.

“경고했습니다. 잡지 마십시오. 그리고 혹시 성주안 버퍼를 먼저 찾으신다면 센터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내가 진짜 연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다. 성주안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하는 말이지.

“S급 각성자로서의 품위를 지켜주십시오.”

정중한 척 인사하고 발을 돌렸다. 후문을 향해 걷는 모준영의 뒤로 수색대원들이 따라붙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은후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찾았군. 연기를 참 못한단 말이지. 평소처럼 여길 뒤졌어야 속아주는 척이라도 하지.”

백은후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모준영을 맘껏 비웃은 후, 뒤따르는 헌터들에게 명령했다.

“먼저 나간 수색대에 연락해서 센터놈들 뒤쫓으라 해. 성주안은 거기 있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빠르게 나가는 헌터들의 뒤를 백은후가 여유롭게 뒤따랐다.

* * *

그 시각 성주안은 공세윤의 차를 타고 쇼핑몰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공세윤 소유의 차는 화려한 외관만큼 내부도 멋있었다. 깔끔한 제어장치와 푹신한 시트, 그리고 편안한 승차감까지 더해져 차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모준영도 차가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나를 안고 달렸지? 공무원이라 가난한가? S급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공무원은 나라에서 정해 준 돈 이외에 수입은 모두 반납해야 하니까.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는데 공세윤이 옆에서 엄살을 피웠다.

“저…… 너무 무서워요.”

“뭐가요?”

고개를 돌려보니 공세윤이 핸들에 엎드려 있었다. 정말 무섭다는 듯 어깨를 떠는 모습이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성주안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길을 느낀 공세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마, 만지지 말라니깐요.”

아니, 사람이 위로하다 보면 어깨 좀 잡을 수도 있지, 그것 가지고 유난은. 성주안이 손을 거두고 머리를 긁적이자 그가 눈치를 보며 시선을 피했다. 답답했지만 정상이 아닌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세윤이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화나서 그런 거 아니고 아까 말했듯이 자꾸 버릇되면 안 돼요. 저는 혼자니까요.”

“괜찮습니다. 저도 섭섭하지 않아요. 그런데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예요? 갑자기 몬스터라도 나올까 봐요?”

“저는, 몬스터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요.”

“왜요?”

“……각성자니까요.”

또 할 말이 사라져버렸다. 공세윤이라면 사람이 무서운 게 당연했다. 어렸을 때부터 각성자라는 이유로 부모마저 돌보기를 주저했으니까. 어린애가 애정을 받지 못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집착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이용하려고만 했다. 그러니 그 상처가 오죽했을까? 모든 게 다 캐릭터를 그따위로 만든 자신의 죄였다.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둬야지. 어쩌겠어.

“사람들 무서워할 필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공세윤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성주안을 바라보았다.

“그걸 성주안 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위로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설프게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요. 아, 나, 미치겠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해?”

우울한 상태에, 고집까지 센 공세윤을 달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책임감에 오기도 생겼다.

내가 어떻게든 쟤를 설득해서 데려나가고야 만다!

성주안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었다.

“공세윤 씨, 사람이 무서우면 저도 무서우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던 그가 가만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기하게 성주안 씨는 조금만 무서워요.”

무서운 것도 아니고 안 무서운 것도 아니고 조금만 무섭다는 건 또 뭐냐?

“그럼 조금만 무서운 제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나가요. 나 배고파 죽겠다고요. 물약도 사야 하고.”

불쌍한 척하자 공세윤이 마지못해 차에서 내렸다. 차 문에 등을 대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풀숲에 숨은 사슴같이 안쓰러워 보였다.

성주안은 그의 앞에 서서 눈을 맞췄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의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잡아 줄 테니까 눈 감고 걸을래요?”

“……왜요?”

“무섭다면서요. 보이는 게 없으면 덜 무섭겠죠.”

“아…….”

생각할 시간을 주면 거절할 게 뻔하니 틈을 주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바로 공세윤의 팔을 잡아끌었다. 머리 위로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커다란 덩치의 어린애를 겨우겨우 끌고 쇼핑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쇼핑몰 앞에서 건물 안내도를 보며 계획을 세웠다.

각성자 전용 쇼핑몰은 총 3층이었다. 1층은 식료품을 2층은 물약을 3층은 각종 장비를 판매하고 있었다. 식료품을 먼저 사면 신선도가 떨어질 테니까 3층으로 올라가는 게 좋겠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려고 로비를 걷는데 주변 사람들이 공세윤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공세윤? 공세윤 아냐?”

“뭐야? 실물로 보니까 완전 애기네.”

“입조심 해. 저래 보여도 S급들 중에 제일 세다고 들었어.”

얼마나 바깥출입을 안 했으면 쇼핑몰 사람들조차 공세윤을 신기하게 볼까? 활기찰 땐 던전을 부수느라 바빴을 것이고 우울함 상태일 땐 아예 집 밖 출입을 안 했을 테니 사람들이 그의 실물을 신기하게 볼 법도 했다.

“세윤 씨, 지금 사람들이 하는 말 들었어요?”

“네? 무슨 말요?”

“S급 중에 세윤 씨가 제일 세다는 말요.”

“아, 들었어요. 그래서 다들 절 무서워하고 피하고…….”

사람들의 말을 증거 삼아서 공세윤이 자신의 힘을 자랑스러워하라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공세윤의 손을 잡고 1층 안내데스크로 걸음을 옮겼다. 이쪽을 보고 있던 직원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무서워서 피하는 건가?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애가 무서운 데가 어딨다고……. 아씨, 처음부터 저래 버리면 망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뒷걸음치는 직원을 보고 공세윤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주안은 그의 팔을 끌고 당당하게 데스크 앞까지 갔다.

“저기요. S급 헌터, 공세윤 아시죠?”

“네네 알긴 아는데…….”

“그럼 말씀해 보세요. 만약 공세윤 헌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한 눈으로 주안을 쳐다보았다. 주안은 윙크하며 공세윤의 어깨 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직원이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공세윤 헌터 없으면 세상이 멸망하죠.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크흐, 멘트 봐라. 역시 서비스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성주안은 내심 마음을 쓸어내리며 공세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직원과 성주안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직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번 시내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던전이 생겼을 때도 공세윤 씨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많이 죽었을 거라고 뉴스에서 얼마나 떠들었는데요.”

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도 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 걸까?

……왜겠어. 내가 캐릭터를 그따위로 만들어서이지.

“그거 봐요. 사람들은 세윤 씨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얼른 장비나 사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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