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102화 (102/123)

#102

마침내 인터폰이 울렸다. 까맣던 화면이 확 밝아지며,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한호성은 얼른 보안문을 열어 주었다.

얼마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아예 현관문을 빼꼼 열고 기다리는 중이던 한호성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순간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서 와!”

“왜 나와 있어.”

우영찬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이 닫히자, 그가 뒷말을 이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봐도 뭐, 친구를 맞이하나 보다 하겠지.”

“하긴.”

우영찬이 한호성을 와락 끌어안았다 놓아주었다. 순간적이었지만 팔 힘이 워낙 억세, 옥죄인 몸이 얼얼했다. 한호성은 제 팔뚝을 문지르며 말했다.

“이런 거야말로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서 밖에선 안 이러잖아. 여긴 집 안인데 어때.”

이러다 습관이 된 나머지 밖에서도 무심코 스킨십할세라 조금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한호성은 군말하지 않았다. 굳이 잔소리해 오랜만의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지만, 막 야구 모자를 벗은 우영찬의 얼굴에 시선을 빼앗긴 까닭이기도 했다.

“……영찬아.”

“왜, 오늘따라 잘생겨 보여?”

우영찬이 씩 웃으며 농을 던졌다. 그에 한호성은 어딘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머리 잘랐구나.”

“……그거 때문에 놀란 거였냐. 자르긴 했지만.”

우영찬이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한호성이 자신의 변화를 알아봐 주어 기꺼웠다. 아주 살짝만 다듬었을 뿐이라, 관심이 없다면 못 알아차렸을 테니까.

“너도 머리 바꿨네?”

“으응.”

우영찬과 달리, 한호성은 제아무리 눈썰미 없는 사람이라도 알아볼 만큼 확실하게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채도가 낮은 베이지색으로 염색한 것이다.

“잘 어울린다. 진짜 예뻐.”

“고, 고마워.”

“만져 봐도 돼?”

“응.”

한호성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나 우영찬은 한호성의 머리칼을 만지는 대신 말했다.

“잠시만, 손부터 씻고 올게.”

“……또 얼마나 만지려고.”

“그렇게까지 오래 만지진 않을 거야.”

어째 미심쩍었지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은 피부와 다르니, 최소한 빨거나 핥지는 않을 터였다.

한호성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길 얼마간, 손을 씻은 우영찬이 다가왔다.

우영찬이 한호성의 머리칼 끄트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색깔이 다를 뿐 사람 머리카락의 촉감이야 빤한데, 뭐가 그리 신기한지 손을 금세 물리지 않는다. 급기야 한호성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듯 쓰다듬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부드럽다.”

“그렇지? 열심히 관리하고 있거든. 다행히 내 머리카락이 염색약을 잘 먹는 편이라 많이 상하지 않았기도 하고.”

“그런 체질이었어? 역시 천재 아이돌.”

“뭐라는 거야.”

한호성은 부끄러운 마음에 우영찬의 손길을 피했다. 어차피 호성의 머리칼을 쓰다듬을 만큼 쓰다듬은 우영찬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일 얘기나 해 줘. 요즘 어떻게 지냈어?”

“음, 특별한 건 없어. 컴백 준비하고, 연습하고…… 그냥 그 정도?”

“그게 끝이야?”

우영찬이 한호성을 슬쩍 끌어안으며 물었다. 한호성은 그의 품에 순순히 안겼다. 어째 애인이라기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애착 인형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응. 뮤비 촬영까지 다 했는걸. 지금 단계에선 내보일 만한 게 없어.”

“뮤비 기대된다. 신곡도.”

우영찬이 은근한 목소리로 청했다.

“한 번만 들려주면 안 돼?”

“아, 음…….”

“안 되면 다섯 소절, 아니 세 소절만이라도.”

한호성은 곤란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우영찬은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노래 들려달라고 안 할 테니까 컨셉이라도 알려 주라.”

“미안, 그것도 좀…….”

“조금만. 응?”

“…….”

한호성은 다만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뿐이었다. 그쯤 되니 우영찬으로서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만 물어볼 테니까 그렇게 난처해하지 마.”

누가 보면 내가 협박하는 줄 알겠어, 하고 덧붙이며 우영찬이 한호성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덕분에 굳은 표정이 말랑하게 풀렸다.

“못 알려 줘서 미안.”

“아니야. 티저 뜨기도 전에 스포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아니까.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하다.”

머릿속으로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지, 우영찬이 목을 울려 웃었다.

“어떤 컨셉이든 잘 어울리겠지만…….”

그런 우영찬에게 한호성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번 앨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관능’이라는 사실을.

기실 한호성이 침묵한 건, 뮤비 트레일러가 공개되기도 전에 스포일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관능적인 컨셉으로 컴백하리라는 걸 알고 우영찬이 보일 반응이 걱정되어서였다.

‘어떻게 그런 옷을! 목선이 훤히 파였잖아! 허리는 또 왜 드러냈어!’

벌써부터 우영찬의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는 한호성의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한호성이 노출이 다소 심한 의상을 입으면 미간부터 찌푸렸다. 어떻게 외간 여자와 남자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느냐며, 잔소리도 왕왕 내뱉었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노릇이다. 우영찬이 언제부터 그렇게 보수적인 성격이었단 말인가.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에 키스부터 해 버린 걸 보면 오히려 개방적인 성격이라 할 만했다.

‘그러니까 이해해 주겠지? 일이니까.’

사실 우영찬이 진지하게 따지고 들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미 결정된 컨셉인데 우영찬이 불만 품어 봤자 어떻게 바꾸겠는가. 다만 이걸 빌미로 단단히 뿔이 날 우영찬을 달래 주는 일이 만만찮을 듯싶었다.

어쨌거나 그건 나중 일이다. 지금의 우영찬은 마냥 기대에 들떠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중에 뮤비 뜨면 프레임 단위로 캡처할 거다.”

“뭘 또 그렇게까지.”

“그만큼 기대하고 있다는 소리야.”

쪽, 우영찬은 말끝에 마침표를 찍듯 한호성의 뺨에 입 맞췄다. 방심하다가 뽀뽀당한 호성은 어이없이 우영찬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이내,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우영찬의 얼굴 앞에서 결국 픽 웃고 말았다.

“나도 궁금하다, 네 반응.”

과연 우영찬은 하이파이브가 처음으로 시도한 관능적인 컨셉을 보고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또 보수적으로 굴까, 아니면 쉽게 수긍할까.

그 답을 알아내는 즐거움은 사흘 뒤로 미룬 채, 한호성은 일단 현재의 데이트를 만끽했다. 자그마치 이 주 만에 만나는 애인이었다. 볼 뽀뽀만으론 성에 찰 리 없는 것이다.

***

마침내 첫 번째 티저 공개일이 되었다.

겸사겸사 늦은 시각까지 연습실에 모여 있던 하이파이브는, 자정이 되자마자 티저를 확인했다.

“떴다!”

이주진이 부러 외칠 필요도 없었다. 한호성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으니까.

때마침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텅 빈 도시를 뒤로하고, 티저 속 한호성이 걸음을 옮겼다. 배경처럼 쓸쓸한 느낌의 걸음걸이였다.

“멋있다~.”

이주진이 추임새처럼 외쳤다. 이에 한호성은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칭찬이 쑥스러워서라기보다, 자신이 꼭 낯선 사람으로 보인 탓이었다.

‘의상 때문에 그런가?’

티저 속 자신은 몸에 달라붙다시피 딱 맞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셔츠는 등 쪽이 트였고, 바지는 인조가죽 소재였다. 스타일도, 소재도 평소 자신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MOMENT’, 이번 앨범의 제목이 떠오름과 동시에 티저가 끝났다. 한호성은 그제야 댓글 창을 확인했다. 한데 댓글 서너 개를 읽기가 무섭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영찬’

발신자명을 확인한 한호성은 침음을 삼켰다. 안 그래도, 우영찬이라면 티저가 공개되자마자 전화하리라 생각하던 차였다.

“형,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안 받아?”

문해일이 물었다. 한호성은 자신도 모르게 ‘종료’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아, 중요한 전화는 아닌…… 건 아니지만, 그냥 나중에 받으려고.”

“누구길래 그래.”

그리 묻긴 하지만 진지하게 궁금한 건 아닌 듯싶었다. 문해일을 비롯한 멤버들 모두, 댓글을 확인하거나 지인에게 걸려 온 연락에 응하는 등 제 할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한호성은 괜스레 주위 눈치를 살피고서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영찬이 메시지를 쏟아 내는 중이었다.

[우영찬] 너 셔츠가

[우영찬] 너 바지가

[우영찬] 아니 예쁘긴 한데

어째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응이었다. 한호성은 웃음을 참으며 답장을 보냈다.

[나] 별로야?ㅠㅠ

[우영찬]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우영찬] 예뻐 너무 예쁜데

[우영찬] 근데 지나치게 예쁘잖아

어쨌든 예쁘다니까 칭찬이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에게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우영찬이 자꾸 메시지를 보내 댔지만, 호성은 댓글 창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댓글부터 마저 확인할 작정이었다.

댓글 창의 분위기는 무척 뜨거웠다. 곡이 마음에 든다는 댓글부터, 드디어 도회적이고 뇌쇄적인 컨셉이라 너무나 좋다는 댓글까지. 새 앨범을 기다려 왔으며 컴백 축하한다는 댓글도 수두룩했다.

“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 한 댓글이 호성의 눈에 들어왔다.

-귀환 축하! 그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

아마 외국인 팬이 번역기를 돌려 작성한 성싶은 문장. 이를 읽은 한호성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해 온 멤버들. 지금도 메시지를 보내는지 핸드폰을 징징 울리는 우영찬. 칭찬과 응원을 건네는 팬들.

자신은 정말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갖고 있었다.

문득 깨달은 사실에 한호성은 활짝 웃었다. 언제인가부터 줄곧 그러했듯, 모든 게 만족스럽고 행복한 날이었다.

스타 스위치 스캔들 (Star Switch Scandal)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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