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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100화 (100/123)
  • #100

    “어쩔 수 없지. 그게 최선이잖아?”

    “그래도 너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일부라도 받으면…….”

    우영찬이 아서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난 이대로 만족한다.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솔직히 나야 그 돈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으니까. 그렇다고 김제국에게 정산금을 양보하는 건 안 될 말이고.”

    “응.”

    “김제국이 하이파이브 이름으로 거액을 기부한 걸 알면 팬들도 한결 마음이 편해지겠지.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

    한호성은 우영찬을 다시 보았다. 가진 게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제 몫을 포기하는 건 다른 문제이다. 그러면서 하이파이브의 이미지까지 생각해 주는 우영찬이, 한호성은 못내 고마웠다.

    “그런데 너, 아까부터 김제국 얘기만 하는데.”

    사람이 모처럼 감동에 젖었는데 우영찬이 눈을 부라렸다.

    “내 앞에서 다른 남자 생각에 푹 빠졌다 이거지, 지금.”

    우영찬이 한호성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한호성의 손가락을 제 입에 넣는 게 아닌가. 손가락을 감싸는 축축한 혀의 감촉에,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영찬아. 네가 강아지야? 내 손가락은 또 왜 물고 그래.”

    “전에 손가락 빨게 해 준다고 허락해 줬잖아.”

    손가락을 문 터라 조금 부정확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그에 한호성은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내가? 내가 대체 언제?”

    “한국사이버대 원서 넣기로 결심한 거 나한테만 숨겼을 때.”

    “…….”

    듣고 보니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호성은 우영찬에게 손가락을 내 주었다.

    한호성이 반항하지 않자, 우영찬은 마음껏 그의 손가락을 탐했다. 쪽쪽 빨지 않나, 혀로 길게 핥아 내리다가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기도 한다. 급기야 막대 과자를 먹듯 앞니로 잘근잘근 깨무는 것이었다.

    “아, 잠깐. 아파, 이 세우지 마.”

    그리 항의하자 이번엔 부드러운 혀로 손가락을 감싼다. 딴엔 아프지 말라고 핥는 듯싶은데, 병 주고 약 주기가 따로 없었다.

    “지난번엔 노원이란 놈과 사진 찍히질 않나…….”

    “원이는 그냥 좋은 친구라고 몇 번 말해.”

    “하여간 네 주위엔 남자가 너무 많아.”

    “보이그룹 아이돌의 숙명이야. 그나마 하이파이브는 오인조, 아니, 사인조잖아. 내가 다인원 그룹 소속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탈퇴하고 솔로 활동하자.”

    “…….”

    안 그래도, 내년엔 솔로 활동에 도전해 보고자 계획 중이었다. ‘꽃 우표’가 워낙에 좋은 성과를 거둔 덕분이었다. 솔로 곡으도 성공한다면 커리어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또 다른 생각 중이지, 한호성.”

    나지막이 뇌까린 우영찬이 넷째 손가락을 잘근 깨물었다. 이번엔 꽤 아파, 한호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우영찬이 그제야 손을 놔주었다. 그의 입 속에서 손가락이 주르륵 빠져나왔다.

    한호성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찌나 빨아 댔는지 손가락이 타액으로 번들거린다. 특히 넷째 손가락에는 잇자국까지 나 있었다. 마치 반지처럼.

    “너는 정말…….”

    입을 열긴 했으나 막상 무어라 타박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넷째 손가락에 선명하게 난 잇자국을 살펴보는데, 우영찬이 물었다.

    “뭐가?”

    “……말이라도 하고 깨물지, 좀.”

    “말하면 허락해 줄 거야?”

    “일단 들어는 보고.”

    “그럼 키스하자.”

    우영찬이 예사롭게 제안했다. 어째 키스하자는 말이 밥 먹자는 말 못지않게 자연스러웠다.

    “왜 키스하고 싶은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잖아.”

    또 그 핑계였다. 이젠 몸도 되찾고, 두 번 다시 제논과 몸을 뒤바꿀 일도 없는데 그런다.

    “내가 좀 어리숙한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같은 핑계에 두 번 속을 정도는 아니거든.”

    “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행위는, 우영찬에게 말려든 까닭이 아니었다.

    한호성은 천천히 우영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하는 키스도 아닌데, 매번 당하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먼저 입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한호성은 용기를 끌어 올려 우영찬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였다. 마치 도장을 찍는 듯한 입맞춤이었다.

    우영찬은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한호성을 끌어안으며 사납게 입 맞췄다. 호성을 탐하는 입술은, 제 것을 확인하려는 양 황급하고 간절했다.

    ‘마법 같은 일이라고…….’

    한호성은 그 말을 되뇌었다.

    동화 속 공주는 키스를 받은 덕분에 마법에서 풀려났지만, 자신은 키스를 받음으로써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우영찬과 사귀면 안 되는 이유가 백 개쯤 있었다. 첫째로 스캔들이 터질 시 치명적일 것이다. 그로 인해 하이파이브의 멤버와 팬을 볼 면목이 안 서는 건 물론이요, 지인과 가족이 돌아설 수도 있었다.

    뿐인가. 재벌가 출신인 우영찬과 자신은 배경이 너무나 달랐다. 주말 연속극 속 주인공처럼 ‘이 돈을 받는 대신 우리 아들과 헤어져 주겠니.’ 따위의 상황에 놓이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이 다른 문제는 또 어떠한가. 우영찬이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는 음흉함도 내심 걸리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호성은 우영찬과 함께하고 싶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그리고 자신도 좋아하는 이 남자를 놓칠 수 없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 마법일까.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한호성은 그 틈을 타 입을 열었다.

    “영찬아, 너 내 팬이라고 했지.”

    “응.”

    “나 부탁이 하나 있어. 아니, 부탁이라기보다 제안이라고 해야 하나.”

    “뭔데?”

    “……평생 탈덕하지 말아 줘.”

    그 말을 하는 데엔 키스를 결심하는 것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했다. 한호성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마쳤다.

    “그 대신 난 너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게. 약속해.”

    “그럴게.”

    즉답이었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평생 너만 좋아할게.”

    “응. 그럼 나도 평생…….”

    한호성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인내심을 잃고 달려든 우영찬에게 입술을 빼앗긴 까닭이었다.

    자신을 와락 끌어안는 억센 팔에 어찌할 줄 모르다, 한호성은 우영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커다랗고 강인한, 이제 두 번 다시 남에게 빼앗길 리 없는 우영찬의 몸이 품에 빠듯하게 들어왔다.

    ***

    ‘천사들의 하모니’ 시즌 2 촬영도 슬슬 막바지였다.

    특히나 오늘은 이번 시즌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인 부분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바로, 어린이 합창단과 자선 공연을 하는 것이다.

    공연자인 한호성은 사전에 티켓 몇 장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초대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바쁜 하이파이브 멤버들로선 시간이 맞지 않는 까닭이었다. 가족들 또한 각자 일이 있어 공연을 관람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사람, 우영찬만은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지금쯤 그는 VIP 초대석에 앉아 있을 터였다.

    ‘어쩌면 무대에서 보일지도 모르겠다.’

    무대와 VIP 초대석이 가깝기도 하거니와, 우영찬이 워낙 눈에 띄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영찬 앞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네.’

    우영찬 앞에서 노래와 춤을 시범 보인 적은 많지만, 그건 말 그대로 시범에 불과했다. 함께 무대에 선 적도 많으나, 그땐 같은 공연자 입장이었다. 오늘처럼 한호성이 무대에 서고 우영찬이 관객인 경우는 처음이다.

    어째서인지 심장이 쿵쿵 뛰어, 한호성은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꾹 눌렀다. 그렇다고 긴장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듯 짜릿한 기분이었다.

    멀리서 힘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합창이 끝난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이제 곧 자신의 차례란 뜻이었다. 한호성은 거울을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목에 맨 리본을 예쁘게 모양 잡은 그때,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빼꼼히 열고서 물었다.

    “한호성 씨, 준비되셨나요?”

    “네.”

    한호성은 스태프를 따라 대기실을 나섰다. 그러자 합창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어린이 합창단의 이번 곡은 화음이 아름다운 캐롤이었다. 아직 12월은 아니지만, 부쩍 추워진 날씨에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합창을 감상하길 얼마간.

    마침내 무대에 설 때가 되었다.

    ‘잘하자.’

    한호성은 마이크를 쥐며 무대 위로 올랐다. 그가 부를 곡은 오래된 팝송으로, 솔로 곡이었다.

    오랫동안 팀 활동을 해 오다 보니 홀로 무대에 서는 일이 잦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없었다. 금일 한호성은 그 어느 때보다 잘 노래할 자신이 있었다.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한호성은 객석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한 좌석도 빠짐없이 관객이 앉아 있었다. 호성은 저 많은 이들에게 제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음에 가슴이 뿌듯해지도록 기뻤다.

    그리고 그 중엔 우영찬도 있었다.

    한호성은 단번에 우영찬을 알아보았다. 찾기 쉬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금방 찾을 줄은 몰랐다. 아직 전주가 끝나기도 전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하며, 한호성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노래하노라면 언제나 행복했다. 이따금 속상할 때도, 슬플 때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래’라는 행위 자체는 늘 한호성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 마음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미래예요. 제가 아이돌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구체적으로 들어 볼까. 성공이라면 어느 정도로?’

    ‘누구한테나 인정받을 정도로요.’

    문득, 한호성은 올봄 무당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당시보다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건 아니었다. 한데도 호성은 오랜 꿈을 이룬 양 마음이 평온했다.

    ‘나는 열심히 했어.’

    한호성은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한 점 남은 불안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누구한테나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이토록 마음이 편안해질 줄은 몰랐다.

    호성은 목소리를 높여 노래했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의 노랫소리는 자유로웠다. 부드러운 미성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처럼 솟구쳤다. 고음임에도 불구하고 음정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청아한 느낌이 있었다.

    푸르르던 무대 조명이 보랏빛으로 바뀌며 한호성을 감쌌다. 한색도 아니고 온색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오묘한 빛이었다.

    우영찬은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한호성을 바라보았다.

    빛을 받은 한호성이 오늘따라 아름다웠다. 비단 얼굴에 국한한 감상이 아니었다. 눈을 휘어 웃는 웃음이, 노래할 때마다 벌어지는 입술이, 무엇보다 편안한 표정이 참 보기 좋았다.

    ‘좋아해.’

    흔들리다가, 빛을 내다가.

    다시 흔들리며 반짝이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자신의 별을 향해, 우영찬은 마음속 깊이 찬사를 보냈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이내 한호성이 노래를 마치고, 잠시 후.

    세상에 우렁찬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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