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일, 오버 더 리밋의 촬영이 예정된 모양이다.
장영수가 중얼거렸다.
“웬일로 동선이 겹치네.”
“그러게. 한참 활동할 때라 그런가 보다.”
오버 더 리밋이 새 앨범을 발매한 건 일주일 전이었다.
티저를 공개할 때부터 크나큰 기대를 받았던 오버 더 리밋의 새 앨범은, 그 기대를 넘치도록 충족시켜 주었다. 덕분에 오버 더 리밋은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앨범 판매량, 스트리밍 수, 뮤직비디오 조회 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수치가 대단했다.
“오늘은 무슨 프로 출연하려나?”
“이 시간이면 음방은 아닐 테고…… ‘아이돌 세리머니’ 아닐까?”
‘아이돌 세리머니’는 H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프로그램명에서 알 수 있듯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인데, 오버 더 리밋이 얼마 전에 컴백했고 이곳이 HBS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아이돌 세리머니’에 출연할 확률이 높은 듯싶었다.
한호성이 그리 추측할 때였다. 북적이는 인파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워낙 소란스럽다 보니 주의가 절로 그리 쏠렸다.
“형, 노원 씨 찾는 거야? 인사하려고?”
장영수가 물었다. 그에 호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그냥 보는 거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사하긴 어려울 것 같아.”
“보안대만 통과하면 덜할걸.”
장영수의 말대로였다. 보안대를 통과한 건 오버 더 리밋과 그들의 매니저, 경호원뿐이었다. 인파 대다수는 보안대 너머까지 쫓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듯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와아아아아!
여기 봐 줘! 여기!
그에 오버 더 리밋은 손을 흔들며 호응했다. 짧게나마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한다. 그러길 얼마간, 오버 더 리밋이 몸을 돌렸다.
“어!”
“아.”
찰나, 노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가까운 거리는 아님에도 그는 한호성을 한눈에 알아본 눈치였다. 오늘따라 더 잘생긴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한호성!”
노원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덩달아 한호성에게까지 시선이 쏠렸다. 속닥거리는 소리는 덤이었다.
“어, 한호성도 있다.”
“와, 대박. 잘생겼어!”
“찍어, 찍어.”
찰칵, 셔터음이 울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나 한호성은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사진 찍히는 게 일상이니만큼, 이 정도는 놀랄 것도 못 됐다.
“여기서 너 볼 줄은 몰랐는데. 촬영 온 거야?”
“응, ‘천사들의 하모니’ 촬영하러. 넌?”
“나도 촬영하러 왔어. ‘아이돌 세리머니’.”
제 예상이 맞았다. 한호성이 내심 후련해하는데, 노원이 쾌활하게 말했다.
“‘천사들의 하모니’ 시즌2 제작 소식 들었는데 벌써 촬영 들어가는구나. 나 시즌1 재밌게 봤는데. 시즌2도 기대할게.”
“고, 고마워.”
바쁜 와중에 ‘천사들의 하모니’는 또 언제 보았는지 모르겠다. 예의상 하는 말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명을 기억해 준 것 자체가 고마웠다.
“나도 잘 보고 있어. 너 활동하는 거.”
“아, 정말?”
노원이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오래전, 한호성과 함께 노래 대회에 참가할 때 지었던 웃음 그대로였다.
‘내 친구.’
한호성은 새삼스럽게 노원과의 우정에 감사했다. 중학생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성공했음에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 친구가 있는 것도, 다 자신의 복이었다.
“1위 축하해.”
한호성은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이라고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처럼 오롯이 축하의 마음만 담은 건 처음인 듯싶었다.
질투심도, 경쟁심도, 상대적 박탈감도 없었다. 친구의 성공에 순수하게 기뻐할 뿐이다.
“고마워!”
노원이 활짝 웃었다.
그때, 오버 더 리밋의 매니저가 넌지시 눈치를 주었다. 이만 이동해야 한다는 뜻 같았다. 그를 등지고 선 노원 대신 한호성이 말했다.
“바쁠 텐데 이만 들어가 봐. 얘기는 나중에 또 하자. 다음엔 우리 집으로 초대할게, 나 자취 시작했거든.”
“정말? 알았어, 그럼 나중에 봐.”
‘꼭 초대해 줘야 해. 꼭이야, 꼭!’ 몇 번이고 강조한 후에야 노원이 멀어졌다. 오버 더 리밋의 멤버와 매니저, 경호원, 방송국 스태프 등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노원은 올 때 그러했듯 사람에 휩싸여 걸어갔다. 그야말로 성공한 아이돌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광경을 보는데도 한호성은 가슴이 아릿하지 않았다. 예전엔 대단히 성공한 노원을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런 감정이 재가 되어 날아간 것만 같았다.
“정말 축하해.”
한호성은 멀어지는 노원의 뒷모습에 다시금 인사를 건넸다.
***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진 초겨울.
하이파이브의 공식 계정에 제논의 탈퇴 공지가 업로드되었다.
이에 하이파이브의 팬덤은 발칵 뒤집혔다. 소속사 계약기한이 다 된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하이파이브를 탈퇴하다니. 게다가 공지에 따르면 제논은 아예 연예계를 은퇴할 모양이었다.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거나, 배우 등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푯 @phyottt_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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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 @phyottt_
이게 무슨 일이냐 세상아
지리는 지리산 @jirisan_mountain
???제논 탈퇴함? 갑자기요??
삼돌이 @3dolll2
뮤비만 티저 띄우라는 법 있나 탈퇴도 티저 띄워줘ㅠㅠ 마음의 준비 할 시간은 줘야지.... 갑자기 무슨일이고 진짜ㅠ
졸업시켜줘 @lskdhai
제논 없는 하이파이브 안돼ㅜㅜ 제논아...
나의작고검은아기고영 @jaenon_the_kitty
오늘 내 세상이 무너졌어
매화검존 @mae123wha
말도 안된다.... 이렇게 갑자기ㅠ 그만두기 있냐고.... 난 아직 제논 보낼 준비가 안됐는데...
˪폴 @poulo183
저도요.....
˪밤호박 @bam_pumpkin
저도....ㅠㅠㅠㅠ
하르방 @oxiuftn
하이파이브 이제 하이포 되는거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제논의 탈퇴 소식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제논을 최애로 둔 이들은 무척 속상해했다. 한편으로는 다들 제논의 결정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제논의 탈퇴 사유가 다름 아닌 건강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는 핑계가 아닌 사실이었다. 제논은 실제로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특히 정신 건강의 상태가 심각한 그였다. 고질적인 우울감은 진작 치료받았어야 하는 정도이고, 그간 악플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할 시간도 필요했다.
팬들은 그런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제논이 원체 몸이 약하다는 걸 아는 데다, 멀미약 부작용을 겪은 모습까지 보았기에 ‘더 활동하기는 무리인가 보다.’ 하고 이해할 따름이었다.
“…….”
모처럼 들른 우영찬의 집에서, 한호성은 공지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슬퍼하는 팬들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제논의 탈퇴 사유를 투명하게 밝힐 수 없음에 양심이 조금 찔리기도 했다. 이게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리더 노릇을 더 잘했더라면…… 무언가 달랐을까?’
그때 탁,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니 협탁 위에 놓인 머그잔이 보였다. 우영찬이 가져온 것이었다.
“마셔.”
“뭐야?”
“코코아.”
“아, 고마워.”
한호성은 머그잔을 기울였다. 그러자 코코아라기엔 지나치게 묽은 액체가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어때?”
“맛…… 있어.”
“맛없다는 표정인데.”
한호성은 말없이 머그잔을 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살면서 마셔 본 코코아 중 가장 맛없었다. 일부러 맛없게 탔을 리는 없으니, 우영찬의 코코아 타는 솜씨가 참담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너, 진짜 연기 못 한다.”
“……네 정성이 맛있어.”
제법 만족스러운 대답인지, 우영찬이 씩 미소했다. 그가 한호성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그냥…….”
“제논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어?”
“얼굴에 쓰여 있어.”
정말 그런가. 무심코 제 뺨을 만지작거리자, 우영찬이 목을 울려 웃었다.
“사실은 네 핸드폰 보고 알았어.”
“……아.”
한호성은 황급히 핸드폰 화면을 감췄다. 딱히 못 보여 줄 내용은 아니지만, 속마음을 들킨 게 민망해서였다. 그의 손등 위로 우영찬이 제 손을 얹었다.
“너, ‘내가 리더 노릇 더 잘했더라면 무언가 달랐을까?’ 같은 생각 중이었지?”
“어,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말로 얼굴에 쓰여 있거든.”
한호성의 뺨에 짙은 시선이 닿았다. 생각은 물론 더 깊숙한 속마음까지 능히 읽을 법한 시선이었다.
“자책하지 마. 설마 네가 문제겠냐? 그놈은 누가 리더든 언제고 사고 쳤을 놈이야.”
“……응.”
한호성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래도 앞으론 잘 살겠지? 이상한 주술 같은 거 안 쓰면서. 이번 소동으로 느낀 게 많을 거 아니야.”
“모르지. 실수로부터 배운 교훈이 있길 바라지만, 아니라도 어쩔 수 없고.”
우영찬의 말대로이다. 앞으로 김제국의 삶은 김제국이 알아서 살 터였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젠 정말 한호성이 참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어쨌든 돈은 많이 벌었으니까 최소한 의식주 걱정은 안 할 거야. 그렇지?”
“어.”
동요 3종이 히트 친 후 쏠쏠한 수익을 벌어들인 하이파이브였다. 그간의 투자금을 갚고도 상당한 정산금을 받았을 정도이다. 제논도 마찬가지이니, 그 돈으로 집을 구하든 옷을 사든 밥을 먹든 할 것이다.
“아, 돈 얘기해서 말인데…… 넌 정말 괜찮아?”
“뭐가?”
“기부 결심한 거.”
제논이 활동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제논의 몫이듯, 우영찬이 활동하여 벌어들인 수익은 우영찬의 몫이었다. 장 대표는 이를 확실히 정산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우영찬 명의로 정산받기엔 현실적으로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우영찬은 서류상으로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우영찬에게 거액이 입금되면 소득 신고 및 세금 처리가 곤란해질 터였다. 더더군다나 강문 그룹 4세라는 배경 때문에, 자칫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튈 위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우영찬은 정산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제논이 정산받은 후 우영찬 몫의 정산금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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