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잠깐. 한국사이버대라고?”
“응. 왜?”
우영찬은 말없이 핸드폰을 켰다. 무언가를 검색한 그가, 이내 핸드폰 화면을 보여 줬다. 번듯한 건물 사진이 화면 가득히 띄워져 있었다.
“어딘지 알 것 같다. 지나가다 본 적 있거든.”
“그래?”
“어, 경영관 건물과 멀지 않아서.”
한국대학교 캠퍼스 내에 한국사이버대학교 건물이 있는 건 한호성도 알았다. 별개의 학교이긴 하나, 같은 한국학원 소속인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
“입학하자.”
“응?”
“입학하라고.”
우영찬이 한호성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영문도 모르고 양손이 붙잡힌 한호성이 눈을 깜빡였다.
“입학해서 나랑 CC 하자!”
‘CC’가 설마하니 C 학점 두 개를 뜻하진 않을 터였다. 우영찬은 지금, 저더러 캠퍼스 커플(Campus Couple)이 되자고 말하는 것이다.
“영찬아, 내가 작곡 배우려고 입학 고려하는 거지 CC 되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둘 다 하면 되잖냐. 작곡도 배우고 연애도 하고, 딱 좋네.”
우영찬이 입매를 씩 끌어올렸다.
“와, 이건 정말 기대도 못 했는데. 넌 역시 똑똑해. 우리 캠퍼스 올 생각은 또 어떻게 했냐?”
“아니, 어차피 같은 대학도 아닌데……. 학교 갈 일도 얼마 없을 테고.”
“어쨌든 캠퍼스가 같으니까 CC 맞지. 아, 휴학하길 잘했다. 난 내년에 3학년이고 넌 1학년이니까. 2년은 함께 다닐 수 있겠어. 좋은데?”
한호성은 차마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영찬에게 붙잡힌 손을 슬금슬금 빼낼 뿐이었다.
물론 캠퍼스를 오다가다 우영찬을 만나면 반가울 터였다. 말로만 듣던 학식을 그와 함께 먹으면 재밌을 듯싶기도 했다.
하지만 캠퍼스 커플이라니. 평범한 커플도 당연하거니와, ‘CC’라는 단어는 한호성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난 어차피 온라인 강의 위주라 학교 갈 일도 얼마 없을걸. 게다가 원서 넣을지 말지도 고민 중인데…….”
“그냥 넣어.”
“넣는다더라도 불합격할지도 모르고.”
“너 학생 때 공부 잘했다며.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심사 위원이 현역 아이돌을 떨어뜨리겠냐? 그러니까 원서 넣어.”
우영찬이 자꾸만 채근했다. 한껏 기대에 부푼 그를 진정시켜 가며, 한호성은 마저 메일을 작성했다.
***
다행스럽게도, 작곡가는 한호성의 의견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내 왔다. 한호성은 이를 바탕으로 ‘꽃 우표’의 녹음을 준비했다.
마침내 닥쳐온 ‘꽃 우표’의 녹음일, 한호성은 떨리는 마음으로 녹음실에 들어섰다.
‘그러고 보면 나 혼자 녹음하는 건 처음이네.’
오랫동안 그룹 활동을 해왔기에, 곡을 녹음할 땐 늘 여러 명과 함께였다. 익숙잖은 상황에 긴장되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녹음을 시작한 순간, 한호성은 오롯이 곡에 집중했다. 이 녹음실이란 우주에 존재하는 거라곤 ‘꽃 우표’ 한 곡밖에 없다는 듯이. 한호성은 ‘꽃 우표’만을 생각하고 노력했다.
‘잘한 것 같아.’
녹음을 마치고 녹음실 문을 열어젖히자, 후련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녹음본을 들어 봐야겠지만 일단은 만족스러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호성 씨. 정 피디, 내가 말했지? 정말 실력 있는 친구라니까.”
“아, 그러게요. 덕분에 녹음도 일찍 끝나고 좋네요.”
작곡가의 말에 프로듀서가 싱글벙글 웃으며 답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인 듯한 칭찬에, 한호성은 고개를 꾸벅거렸다.
“좋게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좋게 부르니까 좋게 듣지요. 전에도 느꼈지만 호성 씨는 연차가 몇인데 아직 신인 같아. 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알아요. 당연히 칭찬으로 들었는걸요.”
데뷔한 지 삼 년도 안 되어 초심을 잃는 아이돌이 어디 한둘이던가. 이런 경우에 신인 같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었다.
“참, 전에 작곡에 관심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저, 안 그래도 선생님 조언 듣고 잘 생각해 보았는데요.”
“응응.”
“올해 한국사이버대 작곡과에 원서 넣으려고 해요.”
“어머, 웬일이야! 정말 내 추천 듣고 결심한 거예요?”
“네.”
“한국사이버대가 나한테 한턱내야겠네, 이런 인재를 보내 줬으니까.”
작곡가가 호들갑을 떨었다. 한호성은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생각했다. 아마 제 각오를 들으면, 우영찬도 이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으리라고.
‘또 CC 운운할 테고, 당장 캠퍼스 데이트 하자고 나서도 이상할 게 없어.’
이게 한호성이 기껏 각오를 마쳤음에도 우영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였다. 어차피 100% 합격하리란 보장도 없으니,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진 비밀로 할 작정이었다.
“아무튼 잘 생각했어요. 작곡을 배워 두면 노래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한호성은 환히 웃으며 인사했다. 합격은커녕 아직 원서도 넣기 전인데, 벌써 입학이라도 한 듯 들뜨는 기분이었다.
10. 우렁찬 환호성
가을.
누군가는 독서를, 누군가는 천고마비를, 누군가는 단풍놀이를 연상하는 계절.
한호성은 이제 ‘가을’이란 단어만 들으면 연관 검색어처럼 ‘가을 축제’부터 떠올리게 되었다. 올해 가을에 유난히 행사 참여 스케줄이 많은 까닭이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연하대학교의 축제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하이파이브를 태운 밴이 캠퍼스에 들어섰다. 차가 시속 30㎞로 천천히 운행하는 덕분에, 축제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과 티셔츠를 입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무리, 일렬로 늘어선 먹거리 판매 부스, 주점을 홍보하기 위해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호객하는 학생. 하는 일은 다르지만 다들 즐거워 보였다.
“저게 바로 청춘인가…….”
“형,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형이랑 저 학생들이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날 텐데. 아니, 형이 더 어릴 수도 있어.”
이주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한호성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랑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서. 풋풋하고, 밝고……. 이런 게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젊은 기운인가 싶기도 하고.”
“에이, 축제니까 그렇지. 저 학생들이라고 언제나 풋풋하고 밝겠어? 시험 기간엔 좀비가 따로 없을걸.”
“맞아. 축제 땐 원래 다들 흥분하잖아.”
설이태에 이어 문해일이 말을 보탰다.
“고등학교 축제 생각난다. 대학교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다들 엄청 신났는데. 반티 맞춰 입고 뛰어다니고, 막.”
“맞아.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와서 놀고 그랬어. 그러다 번호 따서 사귀는 애들도 생겼고.”
“혹시 경험담이냐, 이주진?”
“아니거든? 번호야 많이 따였지만 다 잘 거절했어.”
이야기를 들어 보니 다들 신나는 고등학교 축제를 즐긴 듯싶었다. 한호성은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재밌겠다. 난 고등학생 경험이 없어서 그런 행사가 로망이야. 왜 있잖아, 축제나 체육 대회, 수련회 같은 거.”
“아…….”
순식간에 차 안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한호성은 당황한 나머지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왜 그래? 알고 있잖아, 나 데뷔 준비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은 거.”
“그래도…….”
“그러게, 형은 한 번도 학교 축제 가 본 적 없겠구나.”
“축제가 재밌어 보일 만도 하네…… 가여운 호성 형.”
“……너희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금세 유쾌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때, 뒷좌석에 앉은 우영찬이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귓속말했다.
“대학교. 대학교를 가면 돼.”
“…….”
“그럼 학교 축제 즐길 수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린 듯한 틈새 영업이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의 어깨를 살짝 밀어 앉혔다.
“똑바로 앉아, 그렇게 들썩이면 위험해.”
“원서 낼 거지?”
“앉아서 이야기하라니까.”
우영찬이 도로 앉았다. 그러고서도 은근한 압박이 물씬 느껴졌지만, 한호성은 모른 체했다. 그때 문해일이 불쑥 말했다.
“형, 안 그래도 한국사이버대 원서 넣는다며.”
폭로와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압박이 더욱 강해졌다. 이젠 원망마저 섞인 것만 같았다. ‘원서 넣기로 결심한 건 좋은데 왜 나에겐 말하지 않았냐.’라며 말이다.
한호성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런 중대사는 멤버와 의논해야 하기에 제논을 제외한 하이파이브 전원에게 말해 뒀는데, 입단속까진 시키지 않았다. 한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우영찬에겐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할 걸 그랬다.
“내, 내가 그랬던가……?”
“응.”
모르는 척을 시도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문해일의 확실한 대답에, 한호성은 우영찬의 표정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힌 채 벼르고 있을 터였다.
“하하……. 그랬지, 참. 깜빡 잊고 있었네.”
한호성은 대강 둘러대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한호성의 연기는 어색했고, 우영찬은 그에 속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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