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93화 (93/123)
  • #93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봐야 하는 거다.’

    비단 자신도 모범적으로 살아오지만은 않은 주제에 우영찬은 뻔뻔히 생각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불법을 저지른 적은 없지 않나.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을 써 남을 뒷조사하는 것도 불법이나 우영찬은 개의치 않았다.

    ‘안 들키면 그만이지.’

    특히 한호성에게 들키면 안 된다. 한호성은 우영찬이 제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오늘만 하더라도 혹시나 싶어 떠봤더니, 역시나 단호한 대답만 돌아왔다.

    ‘네 마음은 고맙지만 도움을 받아들일 순 없다니까.’

    우영찬은 한호성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알아. 아는데, 내가 너 가는 길에 꽃은 깔아 주지 못할망정 돌은 치워 주고 싶다.”

    사실 허광범 정도는 대단한 돌도 못 됐다. 그는 워낙에 크고 작은 사고를 저질러서 곳곳에 약점이 깔려 있었으니까. 당장 포털 사이트에 ‘어흥오빠’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어흥오빠 논란’이 뜨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자잘한 돌멩이야말로 신경에 거슬리는 법이거든.’

    허광범을 처리해야겠노라고 결심한 후, 우영찬은 그 방법을 골몰했다. 우선 법적 해결은 한호성이 설명한 이유 때문에라도 안 됐다. 애초에 하이파이브 당사자가 아닌 우영찬으로선 어쩔 도리도 없었다.

    그래서 우영찬은 허광범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허광범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선 이미 인터넷에 적나라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우영찬이 원하는 것은 ‘어흥오빠의 팬이 떨어져 나갈 만한’ 이슈였다.

    ‘이 정도면 효과적이겠군.’

    어흥오빠, 허광범이 질 나쁜 양아치라는 것쯤은 그의 팬들도 다 알았다. 오히려 그런 면모를 좋아하기 때문에 허광범을 구독하는 것이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제멋대로 즐기는 남자. 거칠지만 멋있는 형. 그것이 팬들이 소비하는 어흥오빠의 이미지였다. 즉 허광범에게 진정 타격을 주려면, 그 이미지를 해쳐야 했다.

    CCTV 영상을 끝까지 확인한 우영찬이 답장을 보냈다.

    ‘수고했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우영찬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한호성을 바라보았다.

    한호성은 여전히 새근새근 잠든 채였다.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중인지 꿈에도 모를 터였다.

    “잘 자.”

    조용히 속삭이며 우영찬은 스탠드 조명을 껐다.

    ***

    시계의 짧은 바늘이 정확히 7을 가리킨 순간, 한호성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비몽사몽 한 간에도 제 오른편에 무언가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보니, 다름 아닌 우영찬이었다. 그는 고개를 이쪽으로 향한 채 자고 있었다.

    자세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잠든 듯싶었다. 내심 좋으면서도 민망해 한호성은 뺨을 긁적거렸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그때. 옆자리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벌써 일어나고 그래.”

    “아, 언제 깼어?”

    “방금.”

    우영찬이 상체를 일으켰다. 끄트머리가 구불구불한 까만 머리칼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손으로 슥슥 빗어 머리칼을 대강 정리했다.

    “더 안 자?”

    “응, 슬슬 갈 준비하려고.”

    “몇 시인데, 지금.”

    시간을 확인한 우영찬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직 일곱 시밖에 안 됐는데? 너 오늘 스케줄 오후 두 시부터 시작이잖아.”

    “할 일이 있어. 출근 시간대엔 길이 막히니까, 여유롭게 작업할 겸 일찍 가려고.”

    “무슨 작업을 하려고.”

    “녹음.”

    간밤, 잠들기 전 생각한 것이었다. 역시 ‘꽃 우표’에서 아련한 감성을 조금 덜어내는 게 어떨까 하고. 작곡가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니 그로선 반대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제안쯤은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 OST 말이야, 여러 버전으로 녹음해 보려고. 곡 해석을 조금씩 달리해서. 그리고 녹음본을 작곡가 선생님께 보낼 거야.”

    “데모곡을 여러 버전으로 부르려고?”

    “맞아, 바로 그거야.”

    “일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

    우영찬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실을 나서는 그를, 한호성이 얼른 따라붙었다.

    “오늘 아침은 내가 할게.”

    “주문하면 금방 올 텐데.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있어.”

    “뭔데?”

    “내가 직접 한…… 계란말이.”

    이리 말하면 자신에게 요리를 맡길 터였다. 그 생각을 훤히 읽은 우영찬이 피식 웃었다.

    “이제 보니 정말 취미가 요리 맞나 보네. 요리하는 게 그렇게 좋아?”

    “응, 좋아하는 편이지.”

    어린 나이부터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직접 식사를 챙기는 게 익숙해진 면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요리해 주고 싶어서.”

    “왜?”

    “너희 집 올 때마다 식사 대접받았잖아.”

    우영찬이 아서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손님한테 요리시키는 집주인이 어딨냐? 나 그렇게 치사한 인간 아니다.”

    우영찬은 한호성이 반박할 새도 없이 인터폰을 들었다. 아파트 내 커뮤니티에 주문을 넣은 후, 그가 짓궂게 말했다.

    “근데 네가 정 그렇다면 해 줘도 좋고. 계란말이.”

    “응, 맡겨만 줘.”

    한호성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냉장고를 열었다. 식재료가 얼마 없었지만, 다행히 계란은 있었다. 호성은 계란 네 알을 꺼냈다.

    “프라이팬은 어딨어?”

    “몰라. 그쪽 어딘가에 있을걸?”

    보물찾기라도 하듯 수납장을 하나둘 열어본 끝에, 한호성은 프라이팬을 찾아냈다. 그는 미리 준비한 그릇에 계란을 모두 깨뜨린 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우영찬은 식탁 의자에 앉아 한호성을 응시했다.

    무시하려고 해도, 빤한 시선이 등을 간질이는 통에 그럴 수 없었다. 한호성은 프라이팬을 인덕션에 올리며 말했다.

    “네가 그러고 있으니까 무슨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같아. 나는 패널, 너는 방청객.”

    “난 우리가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 중이었는데.”

    “…….”

    한호성은 묵묵히 프라이팬에 계란을 올렸다. 치이이익, 프라이팬이 그새 달궈진 까닭에 계란 익는 소리가 났다.

    계란말이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예쁘게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한호성은 모양이 예쁘게 잡히도록 주의하며 계란을 말았다. 다행히 집중한 보람이 있어 먹음직스러운 계란말이가 완성되었다.

    “다 됐다.”

    한호성은 계란말이를 그릇에 옮겨 담았다. 때마침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우영찬이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유니폼 차림의 남자 둘이 들어와 식사를 차렸다. 갓 지은 듯 더운 김이 나는 밥과 콩나물국, 젓갈 세 종류와 동치미, 두부 부침이었다.

    “맛있겠다.”

    “많이 먹어. 숙취로 고생하지 말고.”

    “응, 잘 먹을게.”

    일부러 콩나물국을 주문한 눈치였다. 실상 숙취는커녕 속이 가뿐했지만 한호성은 여러 말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제일 먼저 콩나물국을 떠먹자, 알맞게 따끈한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마 바지락으로 국물을 낸 듯 맛이 깊었다.

    “맛있어!”

    “이것도 맛있다.”

    우영찬이 계란말이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그는 국이며 반찬은 쳐다도 안 보고 계란말이만 집어 먹었다. 보다 못한 한호성이 젓갈 그릇을 슬며시 밀어 주었다.

    “싱겁겠다.”

    “괜찮은데.”

    “이것도 좀 먹어.”

    “네가 먹여 주면.”

    까짓 못 해 줄 건 없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의 밥숟가락 위로 전복 젓갈을 얹어 주었다. 우영찬은 흐뭇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네가 먹여 줘서 더 맛있어.”

    “그, 음……. 참. 넌 오늘 뭐 해?”

    지나치게 솔직한 감상에 부끄러워진 한호성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퍽 부자연스러운 질문이었으나 우영찬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연습실 가야지.”

    “왜?”

    “네가 연습실 간다며.”

    “설마 나 따라오려는 거야?”

    “응.”

    한호성은 우영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급격히 풀 죽을 수도 있었다.

    “영찬아,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호성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할 일도 없는데 연습실 가면 피곤하잖아. 이렇게 좋은 집을 놔두고 뭐하러 연습실 오려 그래.”

    “왜. 내가 따라가는 게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넌…… 너무 눈에 띄니까.”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키보다 한 뼘이 큰 한호성인데, 우영찬은 그런 한호성보다도 한 뼘이 컸다. 즉 웬만한 남자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크다는 뜻이다.

    뿐인가. 이목구비는 조각한 듯 뚜렷한 데다 위압적인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런 우영찬과 함께 다니다 보면 블랙홀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일 터였다.

    “어차피 다른 사람 눈에 띌 일 따위 없을 텐데. 도어 투 도어로 이동할 테니까.”

    “아, 내가 가려는 곳은 그 연습실이 아니야.”

    “그럼?”

    “회사로 갈 거야. 그럼 다른 직원분들 눈에 띌 테니까.”

    사내에서, 우영찬이 제논에게 빙의했음을 아는 사람은 장 대표와 하이파이브뿐이다. 사정을 모르는 직원들에게 우영찬은 낯선 외부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왜 그 곰팡이 핀 연습실에 가려 하는데?”

    “정확히는 연습실이 아니라 녹음실. 녹음 장비가 회사에 있거든.”

    “……준비해 둬야겠군.”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지만,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므로 한호성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우영찬이 장비를 준비해 주더라도 자신이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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