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92화 (92/123)

#92

“좋아해.”

그 말에, 잠시 로그아웃 상태였던 이성이 돌아왔다. 황급히 우영찬을 밀어내자 그가 한호성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니, 그게…….”

“그거 아냐? 한호성.”

우영찬이 못된 놈처럼 웃으며 말했다.

“너 은근히 스킨십 헤픈 거.”

“뭐? 내가 언제?”

“봐, 지금도 내 가슴 만지고 있잖아.”

시선을 떨군 호성은 화들짝 놀랐다. 말마따나 제 손이 우영찬의 가슴에, 정확히는 가슴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분에 놓인 것이다. 뒤늦게라도 손을 거두려 했으나 우영찬에게 손목이 붙잡힌 탓에 그럴 수 없었다.

“몸 지탱하려고 그런 거란 말이야. 소파인 줄 알았지.”

“이번뿐만이 아니다. 아까도 내 팔뚝 만졌잖아. 전엔 허벅지 만지더니……. 아주 상습이야, 상습.”

“무, 무슨 소리야. 그건 만졌다기보다 때린 거지!”

“어쨌든. 이름 부를 때도 꼭 간질간질하게 부르고 말이지.”

“내가 대체 언제?”

스킨십은 그렇다 쳐도 이건 정말 억울했다. 그러나 우영찬은 꿋꿋이 주장했다.

“너 꼭 성 떼고 이름으로 부르잖아. 그렇게 불리면 얼마나 낯간지러운지 알기나 해?”

“알았어. 앞으론 꼬박꼬박 우영찬이라고 불러 줄게.”

“나 말고 다른 놈들한테 그러라고, 좀.”

우영찬이 한호성의 손목을 끌었다. 덕분에 이젠 그의 가슴을 만지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밀착하게 되었다. 자신이 의도한 주제에, 우영찬은 진심으로 염려된다는 투로 말했다.

“이렇게나 예쁘게 태어난 주제에 무르기까지 해서 어쩌려고 그러냐, 너는.”

“…….”

“가끔 걱정돼. 넌 순하고 착해 빠져서, 누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우물쭈물하다 고백 받아 줄 것 같아서.”

우영찬이 한호성을 와락 끌어안으며 지껄였다. 호성은 그의 품속에서 꿈지럭거렸다.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한테 무른 구석이 있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주장도 못 할 정도는 아니거든?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고백 받아 줬으면 지금껏 스캔들이 열 번도 넘게 났을걸.”

“알아, 너 은근히 철벽같은 거. 그건 참 다행이긴 한데 나는 예외로 둬 주라.”

“…….”

“너 정말 나랑 안 사귈 거야?”

커다란 손바닥이 허리를 쓸어내렸다. 정전기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어, 호성은 몸을 움찔거렸다.

“사귀기만 하면 키스보다 좋은 거 할 수도 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키스보다 좋은 것. 그게 무엇인지 모를 듯 알 것 같았다. 본능적인 호기심과 욕구가 치밀었지만, 한호성은 의식적으로 이를 내리눌렀다.

“미안해……. 나 정말 너랑 사귀면 안 돼.”

“내가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아니라…….”

말하고 보니 실수였다. 괜히 희망 고문할 게 아니라, 차라리 싫다고 해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한호성은 빈말로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영찬은 한호성에게 고마운 은인이자 좋은 친구인 데다, 든든한 팬이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건 못 할 짓이다.

“꼭 네가 아니더라도 난 은퇴하기 전까진 아무하고도 안 사귈 거니까.”

“……은퇴할 때까지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건 절대 안 돼!”

“난 이미 결심했어.”

그렇다, 이는 오래된 결심이었다. 처음 데뷔할 때, 연애 관련으로는 결코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겠노라고 자신과 약속했으니 말이다. 한호성은 주먹을 꾹 말아 쥐며 결심을 다잡았다.

“결심은 원래 깨라고 있는 건데.”

한호성은 아예 우영찬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자꾸만 속살거리며 호성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결심을 떠나서 네 마음은 어떤데. 내가 싫은 건 아니잖아? 오히려 좋아하지 않아?”

“…….”

“언제 은퇴할 줄 알고 그전까지 아무하고도 안 사귀겠다는 결심을 해, 섣부르게. 너 평생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잖아. 바꿔 말하자면 그거 평생 수절하겠다는 결심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

한호성은 움찔했다. 자신이 비록 연애에 흥미 없다고는 한들, 평생 사랑 한 번 못 하고픈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 결심한 바라서인가, 우영찬의 말을 듣고 보니 맹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아니면 나한테 차선책이 있기는 한데.”

“그게 뭔데?”

“귀 좀 빌릴게.”

우영찬이 한호성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사귀지는 말고, ……만 하는 건 어때.”

호성은 눈만 깜빡였다. 3초 후 그는 우영찬의 말뜻을 깨달았다.

“미쳤어!”

취기가 확 달아났다. 한호성은 우영찬을 밀쳐내며 몸을 일으켰다. 행여나 안 놓아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는 의외로 쉽게 팔을 풀어 주었다.

“너는……, 너는 변태야!”

“부인하진 않을게.”

“부인해 주라, 제발.”

한호성은 우영찬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며 투덜거렸다. 다행히 소파가 길어, 맨 끄트머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우영찬과 충분히 거리 둘 수 있었다.

“얼굴 찌푸리지 마.”

“…….”

“말했잖아. 네가 얼굴 찌푸리면 신경 쓰인다니까.”

진심인 듯한 부탁, 혹은 명령에 한호성은 표정을 폈다. 애초에 얼굴 찌푸릴 만한 이야기를 안 하면 될 테지만, 우영찬의 성격이 어디 순순하던가. 한호성은 날뛰는 말의 고삐를 잡는 심정으로 으름장 놓았다.

“또 나한테 그런 으, 음란한 거 제의하면 진짜 너희 집 안 올 거야.”

“알았어.”

“대답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알았다니까. 그런데 오늘 자고 가는 거 맞지?”

역시 제 경고를 쉽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한호성은 위기감이 든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으나 이내 주저앉았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돈 탓이었다.

“한호성.”

순식간에 다가온 우영찬이 그를 부축해 주었다. 마음 같아선 뿌리치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럴 힘도 없었다. 한호성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머리가 어지럽지?”

“취해서인 것 같은데.”

“……그러게.”

이번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우영찬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자고 가. 너 이 상태론 숙소까지 못 가.”

“…….”

이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한호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슴푸레한 스탠드 조명이 한호성의 얼굴을 비췄다.

극적인 명암 대비 덕분에, 가뜩이나 자기주장이 강한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마치 세피아톤 필름으로 찍은 고전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어쩌면 자는 모습조차 이렇게 단정하고 예쁠까. 우영찬은 새삼스레 감탄했다.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쓸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한호성은 한번 잠들면 미동조차 없었다. 새근새근, 규칙적으로 나는 숨소리만 아니었더라면 정교한 인형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잘 자네.’

우영찬은 소리 없이 웃었다. 침실에 들어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껏 경계심을 곤두세운 기색이 선연하기에, 아무리 한호성이더라도 오늘 밤은 뒤척이며 잘 줄 알았다. 그러지 않아 다행이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이렇게 무방비해도 되냐.’

우영찬은 한호성의 볼을 콕 찔렀다. 호성은 역시나 움찔하지조차 않았다. 이전처럼 볼을 조물조물해도 깨어나지 않을 듯싶지만, 우영찬은 애써 참았다. 대신 그는 협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핸드폰을 집은 우영찬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과연, 반가운 소식이 도착해 있었다.

‘CCTV 녹화본 확보했습니다’

짤막한 문장을 읽은 우영찬의 입매에 더욱 짙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메시지에 첨부된 동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이 시작함과 동시에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행여나 한호성이 깰세라, 우영찬은 소리를 아예 꺼 버렸다. 어차피 영상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우영찬은 유심히 영상을 시청했다.

“흠.”

한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는 중이다. 여자는 매몰차게 남자를 뿌리쳤지만, 남자는 진드기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여자의 손을 억지로 붙잡은 남자가 급기야 무릎 꿇었다. 누가 봐도 무언가를 비는 모양새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면 안타깝다고 느낄 법한 장면이었지만, 우영찬은 우습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 허광범에 대한 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닌 도박 때문에 빚을 지다니.’

우영찬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연습생 생활을 그만둔 후, 허광범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았다. 클럽, 게임, 폭음 등 합법적인 선에서 오락을 즐기던 그는 급기야 불법적인 놀이에까지 손을 댔다. 그 당시 반짝 성행한 온라인 도박이었다.

도박이 으레 그렇듯, 한 푼으로 시작한 것이 지폐 다발이 되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순식간에 전 재산을 탕진한 허광범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는 그 돈을 전부 도박에 쏟아부었지만, 만회는커녕 본전도 찾지 못했다. 남은 건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빚뿐이었다.

특별한 직업 없이 살아온 허광범이 빚을 갚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채무에 시달리던 그는 전 여자 친구에게 달려가, 돈을 빌려 달라며 애원했다. 우영찬이 확보한 영상이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왜 남의 영업장에서 난리를 치느냔 말이지.’

우영찬은 영상 속 허광범을 비웃었다.

전 여자 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가다니. 허광범 딴엔 여자 친구를 압박하려는 못된 의도였겠지만 그게 오늘날 족쇄로 돌아왔다. 전 여자 친구 측에서 만일을 대비해 CCTV 영상을 보관하다가, 4년이 지난 지금 우영찬에게 판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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