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90화 (90/123)
  • #90

    [나] 미안 난 안 먹어서 맛은 잘 모르겠어 (난감해하는 이모티콘)

    [우영찬] 왜 안 먹었어

    [우영찬] 너 맛있게 먹으라고 일부러 섭외한 셰프인데

    뉘앙스를 보건대, 어느 유명 레스토랑에서 섭외한 셰프인 듯싶었다. 푸드 트럭의 호화로움은 겉모습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 일부러 안 먹은 건 아니고...

    [나] 촬영장 가기 전에 점심 먹었거든 그래서 못 먹은 거야

    [우영찬] 그럼 다음에 또 보낼게

    한호성은 그만 한숨을 토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 씀씀이는 고맙지만, 이러다 심상찮은 기류를 눈치채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었다.

    사실 자신과 우영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누가 의심하든 말든 태연했을 터다. 하지만.

    ‘키스까지 해 버렸잖아, 우리…….’

    한호성은 끙,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영찬은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우영찬] 촬영은 잘했어?

    [우영찬] 안 떨렸어?

    [우영찬] 나 안 보고 싶었어?

    질문 중에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었다. 입장 차 때문인가. 하여간에 누군가에게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자신뿐이었다.

    ‘이걸 뭐라고 말해 둬야 하지……?’

    한호성은 핸드폰이 우영찬이라도 되는 듯 지그시 노려보았다. 여전히 전화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다고 메시지를 보내자니 만일의 경우 유출될까 봐 겁났다.

    결국 한호성은 제3의 방법을 선택했다.

    [나] 만나서 얘기할까?

    이편이 그나마 안전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 두고 답을 기다리는데,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우영찬이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어쩐지 비밀 연애를 하는 듯 조마조마한 기분이었지만, 한호성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웬일로 전화했어?”

    -네가 만나자며.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제논이 아닌 우영찬 본인의 음성이었다.

    -언제 만날까.

    “음……. 오늘 저녁은 어때? 촬영 끝나서 차 타고 가는 중이거든. 주진이네 들르기 전에 내리면 될 것 같은데.”

    -좋아. 우리 집으로 오는 거지?

    “아, 응. 너만 괜찮다면…….”

    -괜찮아. 나 시간 많은 거 알잖아.

    근래 들어 ‘제논’은 스케줄을 서서히 줄이고 있었다. 조만간 하이파이브를 탈퇴할 걸 감안해서였다. 한편 우영찬은 휴학을 연장한지라,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우영찬은 자신으로서도 ‘제논’으로서도 한가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럼 너희 집으로 갈게. 아마 한 시간 반쯤 걸릴 거야.”

    -기다릴게.

    콘트라베이스처럼 묵직하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말했다. 그것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

    한호성은 잠시 핸드폰을 쥔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운전석을 향해 상체를 뻗었다.

    “영수야, 나 주진이네 가기 전에 한선동에서 내려줄래?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어, 그럴게.”

    장영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하여 예정대로 한 시간 반 후. 한호성은 우영찬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어째서인지 근래 들어 본가보다 자주 들락날락한 아파트를 한 번 올려다본 후, 한호성은 결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

    “어서 와.”

    우영찬은 승리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한호성을 맞이했다.

    그는 편안한 실내복 차림이었는데, 그 옷이 왜인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의 검은색 티셔츠와 짙은 회색 바지를 유심히 관찰하고서 답을 알아냈다.

    “아! 이 옷 전에…….”

    “맞아, 김제국 몸으로 입었지.”

    “그땐 초등학생이 대학생 형 옷 빌려 입은 것 같았는데.”

    “이젠 잘 맞지?”

    은근히 뽐내는 듯한 기색이었다. 까짓거 장단 맞춰 주지 못할 것도 없어,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맞네. 어울린다. 완전 네 옷이야.”

    아닌 게 아니라, 옷은 우영찬의 장점을 잘 부각해 내고 있었다. 천이 얇아 근육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덕분이다. 일전에 보았던 슈트 차림만큼은 아니지만 우영찬에게 상당히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말이지…….”

    한호성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 두는데, 네가 싫어서 이런 얘기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 안 보고 싶었어?’ 같은 메시지는 자제하는 게 어떨까? 만에 하나라도 메시지가 유출될 수 있으니까……. 누가 보고 오해하면 어떡해.”

    “아, 그거라면 괜찮아.”

    우영찬이 제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

    “내 핸드폰은 특별 보안 설정되어 있거든. 사실상 해킹당할 일 따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네 핸드폰도 준비할게.”

    어째 대화의 방향이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한호성은 화제를 바로잡고자 입을 열었으나, 우영찬이 더 빨랐다.

    “네가 아이돌인 게 이럴 땐 도움 되네. 연예인은 사생활 문제 때문에 핸드폰 두 개 쓰는 경우가 잦잖아?”

    “괜찮아, 난 핸드폰 하나면 돼.”

    “메시지 유출될까 봐 걱정된다며?”

    “…….”

    이런 경우, 보통 사람은 앞으론 메시지를 보낼 때 주의하겠다고 약속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영찬의 해결 방안은 유별났다. 그가 이런 성격임을 알면서도 방심한 자신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진짜 괜찮아.”

    그리 말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호성은 쐐기를 박았다.

    “괜찮다고 했어, 나는.”

    “알았어.”

    우영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알아들은 게 맞는지 의심될 만치 가벼운 제스처였지만, 따져 묻기도 뭣했다.

    “그거 때문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한 건가?”

    “응. 푸드 트럭 보내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할 겸.”

    “뭐야. 난 또 나 보고 싶어서 온 줄 알았네.”

    “아니야……. 아니, 네가 보기 싫다거나 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아무튼.”

    한호성은 웅얼웅얼 말했다.

    우영찬도 오죽하겠냐마는, 그의 마음을 자꾸만 거절하는 일이 자신이라고 유쾌할 리 없다. 해결 방법은 세 가지. 우영찬이 연애 감정을 지우든가, 그의 고백을 받아주든가, 우영찬을 피하든가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실상 불가능하니 남은 건 세 번째뿐이다. 한데 우영찬을 만나면 상황이 이리 전개되리라는 걸 알면서 그의 집에 온 자신도 문제가 컸다.

    “온 김에 놀고 가. 자고 가도 좋고.”

    심란한 속도 모르고 우영찬이 권했다. 한호성은 이만 돌아가 보겠다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잠시만 놀다 갈까?”

    “그래.”

    한데 막상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우영찬의 얼굴을 보자 말을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한호성은 소파에 앉고 말았다. 그는 쿠션을 끌어안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하긴, 남의 집에 와서 용건만 띡 말하고 돌아가는 것도 경우가 아니지. 더더군다나 그 용건이 좋은 내용도 아니었는데…….’

    잠시만 놀고 가자, 잠시만. 한호성은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그사이 우영찬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손엔 와인을, 다른 손엔 잔 두 개를 든 채였다.

    “와인 마시려고?”

    “응. 네가 준 거니까 너랑 같이 마셔야지.”

    다시 보니 자신이 집들이 선물로 준 와인이다. 문해일 말로는 도수가 있는 편이라던데, 자신이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주머니에서 와인 오프너를 꺼낸 우영찬이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그는 와인을 따라 한호성에게 내밀었다.

    “자.”

    “고마워.”

    한호성은 우영찬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와인을 마시자, 특유의 알코올 향이 훅 끼쳤다. 확실히 도수가 낮진 않은 듯싶었다.

    “한호성.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너, 연습생 때 별명이 H 사감이었다는 게 정말이냐?”

    진지하게 묻는 말에, 호성은 헛기침하고 말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

    “맞긴 하다는 거야?”

    “응…….”

    돌이켜 보면, 하이파이브로서 데뷔를 준비할 때 자신이 잔소리를 많이 하긴 했다.

    이제부터는 책잡힐 일 절대 하지 말자. 인터넷에 별거 아닌 댓글이라도 쓰기 전에 두 번 세 번 생각하자. 아니, 아예 인터넷 활동 자체를 하지 말자.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 될 만한 행동 한 게 있다면 미리 말해라, 등등.

    “아니, 하지만 잔소리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야. 플레임스타가 그렇게 어이없이 터져 버렸는데 또 그러면 어떡해.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미리미리 조심하면 좋잖아.”

    “당연하지.”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결국 하이파이브에도 황당한 사건이 터졌으니까, 자신의 잔소리가 타당했던 셈이다. 오히려 ‘이상한 주술 시도하지 마라.’는 잔소리까지 더 할 걸 그랬다.

    한호성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어찌 해석했는지, 우영찬이 위로를 건넸다.

    “‘H 사감’ 정도면 귀여운 별명인 것 같은데.”

    “응, 나쁘진 않지. ‘꼰대’나 ‘깐깐징어’, ‘걱정 인형’에 비하면…….”

    “예시가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

    “실제로 한 번씩은 들어 본 말이라……. 그런데 정말 어떻게 알았어? ‘H 사감’으로 불린 게 벌써 5년 전 일인데.”

    “어떤 위튜버가 그러기에. 혹시 허위 사실 유포하는 건가 싶어 확인차 물어본 거다.”

    “아, 허광범이구나? 이젠 놀랍지도 않네.”

    “허광범?”

    “‘어흥오빠’ 본명이야.”

    그리 설명하며, 한호성은 핸드폰을 꺼내 위튜브에 접속했다. 확인해 보니 역시나 ‘어흥오빠’가 새 동영상을 올린 게 맞았다. 불과 1시간 전 업로드였다.

    “이건 못 봤는데. 혹시 무슨 이상한 소리 했어?”

    “…….”

    “말해 줘,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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