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우영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왼손을 뻗었다. 졸지에 양 볼이 붙잡힌 호성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어, 언제까지 이렇게 만지작거릴 거야.”
“조금만 더.”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 정해 둘 걸 그랬어…….”
작게 투덜거리자, 우영찬이 피식 웃었다.
“일찍 끝냈으면 좋겠어?”
“……응.”
“그럼 볼 만지는 시간 줄여 줄 테니까…… 한 번만 빨게 해 줘.”
“뭐?”
“한호성 볼 빨고 싶어.”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욕망이 짙게 드리운 시선이 한호성의 볼에 닿았다. 손으로 만지는 걸로도 모자라 시선으로도 탐하더니, 이젠 맛까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 볼 빨아서 뭐 하려고…….”
“맛있을 것 같은데.”
“나 맛없어.”
“그거야 먹어 보면 알 일이고.”
우영찬이 한호성의 볼을 콕콕 찔렀다.
“어쩔래. 밤새도록 볼 주무를까, 아니면 한 번 빨고 끝내 줄까.”
난 어느 쪽이든 좋아, 라며 우영찬이 덧붙여 말했다.
그라면 정말 밤새도록 볼을 주무르고도 남을 것 같았다. 퍼뜩 위기감이 든 호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번’이 정확히 몇 분인데?”
“5분.”
“너무 길어! 곡 하나 완창하고도 남을 시간이잖아.”
“그럼 3분.”
“안 돼, 1분.”
“1분 30초.”
“그래, 뭐. 1분 30초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듯싶었다. 작은 목소리로 수락하자, 이를 용케 알아들은 우영찬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의 체향까지 물씬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호성은 눈을 꼭 감았다. 시야가 캄캄한 와중에, 볼에 입술이 닿았다.
쪽.
짧게 뽀뽀한 입술이 이내 볼을 삼켰다. 말캉한 혀가 뺨을 쓰다듬듯 핥았다. 타인의 손가락이 뺨을 어루만지는 것도 상당히 어색한 일이었지만, 혀가 그리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어깨를 움츠리자, 우영찬이 한호성을 끌어안았다.
‘헉.’
한호성은 숨을 토했다. 미처 몰랐는데,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나 보다. 크게 호흡하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는 중에도 우영찬은 한호성의 뺨을 마음껏 맛보고 있었다. 입술로 쪼듯 뽀뽀하더니, 핥아 내리지 않나, 심지어는 살짝 빨아들이기도 했다. 피부에 이가 닿는 감촉이 선득해 호성은 우영찬을 밀쳐 냈다. 하지만 그는 밀려나긴커녕 한호성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시간 지났어.”
결국 한호성은 목소리를 냈다. 체감상으로는 1분 30초가 다 뭔가, 10분은 너끈히 흐른 듯싶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1분 30초는 확실히 지났을 것이다.
“아앗.”
불만의 표현인지, 우영찬이 볼을 확 깨물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따끔함이었다. 못된 성질을 부리고서야 떨어져 나가는 우영찬을, 한호성은 지그시 노려보았다.
“이제 만족해?”
“흠…….”
빈정거린 건데 질문인 줄 알았던지, 우영찬이 진지하게 답했다.
“너 맛있더라.”
“야!”
한호성은 우영찬의 허벅지를 퍽 때렸다. 제게도 이런 폭력적인 충동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것이고, 주먹도 때려 본 놈이나 휘두르는 법이다. 간지럽지조차 않은 주먹질에 우영찬이 목을 울려 웃었다.
“입술도 만져보면 안 돼?”
“안 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1분만. 아니, 딱 30초만 만질게.”
“싫어.”
“너도 방금 내 허벅지 만졌잖아.”
“그건 만진 게 아니라 때린 거지!”
“때리는 게 더 심한 짓 아니냐?”
꼬투리를 제대로 잡힌 한호성이 멈칫했다. 우영찬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입술도 만지게 해 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러자 우영찬이 제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조금 전 한호성이 주먹질한 쪽이었다.
“아……. 허벅지가 왜 이렇게 아프지. 한호성한테 맞아서 그런가.”
“…….”
“아무래도 깁스해야 할 것 같은데.”
작정하고 때려도 끄떡없을 듯싶은 몸을 한 주제에 말은 잘한다. 그래도 손을 올린 건 사실인지라, 한호성은 우영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한호성 입술 만지면 나을지도…….”
“수작 부리는 거 다 알거든.”
“진짜 허락 안 해 줄 거야?”
제정신인 아이돌이라면 당연히 ‘응’이라고 대답해야만 한다. 한호성은 그리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막상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딱 30초 만이야.”
“그래.”
우영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방금까지 깁스 운운하던 사람답지 않은 태도였다.
딱히 그의 꾀병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어째 속은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라 이건 속은 게 맞았다.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그때, 우영찬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호성의 입술을 삼키는 게 아닌가.
“……!”
호성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 우영찬의 손에 볼을 맡길 땐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는데, 너무 놀란 탓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서 우영찬을 밀어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눈꺼풀 깜박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우영찬이 자신에게 키스했다.
굳어 버린 머리가 겨우 상황을 파악해 냈다. 한호성은 그만 비명을 질렀으나, 그마저도 우영찬에게 먹혀 버리고 말았다.
“우영, ……흐읏.”
입술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달라붙었다. 우영찬의 혀는 주인을 닮아 무람없었다. 그것은 입술 사이로 파고든 걸로도 모자라 한호성의 입 안 이곳저곳을 맛보았다.
“으, 흐앗.”
한호성은 허둥거리며 우영찬을 밀어냈다. 그러나 근육으로 잘 짜인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한호성이 우영찬의 어깨와 팔뚝을 만지작거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우영찬도 한호성을 어루만졌다. 커다란 손가락이 머리를 쓰다듬더니, 목을 가볍게 스치고는 허리를 쓸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한호성의 혀를 살짝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흣……!”
등줄기를 타고 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어째서인지 허리가 찌릿찌릿하더니, 몸에 힘이 탁 풀렸다. 앉아 있어서 다행이지 서 있었더라면 다리가 꺾였을지도 몰랐다.
“……후.”
“아앗…….”
우영찬이 각도를 달리해 입술을 공략할 때마다, 틈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섞였다. 한호성은 어찌 호흡해야 할지 모르고 숨을 할딱였다.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머리가 몽롱했다.
“흐으…….”
마침내 우영찬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한호성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걸 잊지 않는다.
호성은 흐린 눈으로 우영찬을 바라보았다. 얼떨결에 첫 키스를 빼앗긴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는데, 이상하게도 화가 치솟진 않았다. 하기야 사람은 본디 지나치게 황당한 일을 겪으면 사고가 마비되기 마련이었다.
“……우영찬.”
“응, 호성아.”
평소엔 자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우영찬은 성까지 붙여 부르는 편이었는데 어째 반대가 되어 버렸다. 한호성은 얄밉도록 잘생긴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사랑해.”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입술 만지겠다며, 그런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언제 키, 키스해도 된다고 했냐고!”
“꼭 손으로만 만져야 한단 말은 안 했잖아.”
“…….”
“입술로 입술 만진 건데.”
우영찬이 진지한 낯으로 헛소리했다. 이목구비는 참으로 반듯한데, 하는 말마다 어긋나 있었다.
약 오른 한호성은 무어라 쏘아붙일까 하다 그만두었다. 키스야 이미 끝나 버린 일이니 돌이킬 수 없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한호성, 너 지금 표정 어떤 줄 알아? 하늘이 무너져 내린 사람 같아. 나랑 키스한 게 그 정도 충격이야?”
충격적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충격이었다. 우영찬과의 키스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가 제 뺨을 조물조물한 거로 모자라 핥고, 혀를 빨고, 입술을 깨물기까지 했는데 불쾌하지 않았다.
“어…….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아.”
우영찬이 표정을 살짝 굳혔다. 자존심이 상한 기색이었지만, 한호성은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관과 성 정체성에 동시에 금이 가 버린 이 상황은 참으로, 하늘이 무너져 내렸을 때에 비견할 만했으니까.
“……샤워하고 올게.”
우영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는 핑계고 그냥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싶었다. 어색한 기분은 자신도 마찬가지기에, 한호성은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
왜인지 어정쩡한 걸음으로 샤워실로 향하던 우영찬이 돌연 한호성을 돌아보았다.
“너, 내가 샤워하는 동안 나가지 마.”
“벌써 11시인데?”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왜 귀찮게 돌아가.”
사실 한호성으로서도 귀찮은 감이 없지 않았다. 정말 우영찬네서 자고 갈까, 하지만 그러다 키스 이상의 짓을 당하는 게 아닐까. 말없이 고민하는데, 우영찬이 쐐기를 박았다.
“가지 마.”
“……이상한 짓 안 할 거지.”
“이상한 짓은 원래도 안 했……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지 마. 이상한 짓 안 할 테니까.”
한호성은 소파에서 일어나다 말고 도로 앉았다. 우영찬이 썩 미덥지 않긴 했지만, 제 입으로 이상한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괜찮을 듯싶었다.
“자고 갈 거지?”
“알았어, 자고 갈 테니까 씻기나 해.”
“약속한 거다.”
우영찬은 기어이 확답을 받아 내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샤워하겠다는 말이 단순한 핑계가 아니었나 보다.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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