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85화 (85/123)
  • #85

    그제야 어찌 된 영문인지 감이 왔다. 노원이 ‘이따 SNS에 올려도 돼?’라고 묻더라니, 자신이 집을 나서자마자 사진을 업로드한 모양이었다.

    “영찬아, 나 잠깐 전화 좀 끊을게.”

    -대체 그놈이랑 무슨……!

    핸드폰 너머로 우영찬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한호성은 눈 딱 감고 통화를 종료했다. 지금은 노원이 대체 어떤 사진을 올렸기에 우영찬이 씨근덕거리며 전화했는지 알아보는 게 급했다.

    한호성은 바삐 걸음을 옮기며 온스타에 접속했다. 그러자마자 수많은 알림이 그를 맞아 주었다.

    “헉.”

    좋아요 수와 팔로우 수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여러 사람이 자신을 팔로우하는 중이다. 프로필과 닉네임을 보건대, 대부분 외국인인 듯싶었다.

    ‘원이 날 태그했구나.’

    태그뿐이 아니었다. 노원은 한호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열 장이나 업로드하며 해시태그까지 걸었다.

    호성이와 함께한 즐거운 저녁! @high5_hhs #bestfriend #우리우정영원히

    “아니, 뭐 이런 태그를…….”

    한호성은 뺨을 긁적였다. 기쁘면서도 왠지 멋쩍었다. 어째 소박한 우정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만 같았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세상 방방곡곡에 존재하는 노원의 팔로워들이 이 게시물을 봤을 터다.

    ‘이 사진은 또 언제 찍은 거지.’

    아마 노원이 가장 아낀다는 조명을 구경할 때 찍힌 듯싶었다. 사진 속 자신이 고개를 모로 돌린 채 푸르스름한 빛을 받고 있었다. 마치 호수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사진이었다.

    “잘 찍긴 했네.”

    사진을 넘겨 보던 그때, 또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우영찬이었다. 받아 봤자 퉁명스러운 말이나 할 게 분명해, 한호성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이제나저제나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한호성…….”

    문가에 기대선 우영찬이 팔짱을 단단히 끼고서 으르렁거렸다.

    “잠시만.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예고나 해 주라, 나 마음의 준비 하게.”

    “노원 앞에서 왜 그렇게 예쁘게 있었냐.”

    “……그래, 바로 그런 소리 하기 전에 예고하란 말이야.”

    한호성은 가방에서 와인을 꺼냈다. 노원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종류였다. 우영찬에게 와인을 건네주자, 그가 팔짱을 풀며 받아 들었다.

    “뭐야?”

    “집들이 선물. 생각해 보니까 너희 집에 올 때마다 맨손이었더라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선물해 주고 싶어서.”

    “부담 가질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고맙다. 한호성의 전당에 전시해 놓을게.”

    “……한호성의 전당? 그게 뭐야?”

    심상찮은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한호성은 어디론가 향하는 우영찬을 뒤따랐다.

    “영찬아, 한호성의 전당이 뭐냐니까?”

    우영찬은 대답 대신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 방은 한호성이 기억하기로, 책장 하나 놓인 휑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새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방은 말 그대로 ‘한호성의 전당’이었다. 커다란 책장에 한호성과 관련한 용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플레임스타로 활동할 당시 발매한 앨범부터 하이파이브의 최신 앨범까지. 그 옆쪽 벽엔 한호성의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가장 압권인 건 책장 반대편에 놓인 유리장이었다. 그 안엔 솜 인형 여러 개가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었다.

    “이거 내 인형이잖아……!”

    “맞아. 잘 아네?”

    “당연하지!”

    이것은 팬들이 개인적으로 제작한 인형이었다. 한호성도 개중 몇 개를 선물받아, 이런 인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구한 거야?”

    “돈으로.”

    “…….”

    “구하기 어려운 것도 몇 개 있었지만 다 모았다. 내가 제작한 것도 있고.”

    “제작까지 했다고?”

    “그래, 이거.”

    우영찬이 인형 하나를 가리켰다. 20cm가량 되는 솜 인형이었는데, 머리칼은 은색이고 눈동자는 보라색인 걸로 미루어 보아 4집 앨범 활동 당시를 모티브 삼은 듯싶었다. 한데 인형의 외관이 문제가 아니었다.

    “……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어?”

    심지어 면사포까지 쓰고 있다. 레이스가 어찌나 섬세한지, 실제 신부의 그것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 웨딩 슈트 입은 버전도 있어. 여기.”

    우영찬이 태연하게 지껄이며 인형 하나를 가리켰다. 말마따나 그것은 흰색 웨딩 슈트를 입고 있었다.

    “…….”

    한호성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연예계에서 온갖 일은 겪은 그조차도, 자신을 본뜬 인형들이 웨딩드레스와 웨딩 슈트를 입고 있는 광경은 처음 봤다.

    이걸 열렬한 팬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순수한 광기로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자겠지만 솔직히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렸다.

    “영찬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내가 생각해도 그래. ‘전당’이라고 이름 붙인 것치고 컬렉션이 빈약하긴 하지. 그러니까 공식 굿즈 좀 많이 내 줘.”

    “너 무서워서라도 굿즈 못 내겠어……. 내 굿즈로 무슨 짓 하려는 거야.”

    “그냥 전시만 하는 거야, 전시만. 널 두고 왜 굿즈한테 무슨 짓 하겠냐.”

    “…….”

    “다 봤으면 이만 거실로 가자.”

    우영찬이 한호성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방을 나서며, 한호성은 생각했다.

    ‘내가 들어선 방이 실은 푸른 수염의 지하실이었나…….’

    남의 은밀한 비밀을 엿본 듯한 기분이었다. 정작 문제의 ‘남’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출 만한 컬렉션을 보이고서도 뿌듯해하고 있었지만.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

    “왜? 뭐 할 일 있어?”

    “손 씻고 올게. 네 볼 만져야 하니까.”

    “…….”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제 뺨을 감쌌다. 물론 안 씻은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만지는 것도 싫지만, 공들여 준비하는 것도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만질 거야, 내 볼?”

    “당연하지. 내가 무엇 때문에 내 몸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마법진 한 번 그릴 때마다 얼마나 귀찮은 줄 아냐?”

    “아, 알았어. 그럼 나도 세수하고 올게.”

    한호성은 우영찬의 기세에 휩쓸려 말했다.

    “그럼 네가 거실에서 씻어. 난 침실 샤워실에서 씻을 테니까.”

    “응…….”

    “잠시 후에 보자.”

    잠시 후. 호성은 그 말을 곱씹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에 정말 우영찬에게 볼을 내어 줘야만 하는 건가.

    “후…….”

    누굴 탓하겠는가, 아무리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기로서니 우영찬에게 볼을 꼬집어 달라고 말한 자신이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끔찍하게 싫은 건 아니었다. 한호성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약했다. 자신에게 마구 치대는 우영찬을 단호하게 쳐 내지 않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영찬이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까닭이었다.

    ‘대체 그 많은 컬렉션은 언제 다 모은 거람…….’

    호성은 ‘한호성의 전당’을 떠올리며 어푸어푸 세수했다. 우영찬이 자신의 팬이 된 시점부터 컬렉션을 모았다고 한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을 터다. 그런데 팬들이 오래전 소량으로 제작한 굿즈까지 구했다니. 그런 건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좋나.’

    조금 으쓱한 기분이었다. 실은, 어깨가 꽤 올라갔다.

    좋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건 좋은 일이다. 좋고 좋고 좋아서, 그 애정으로 가슴이 충만해져서, 기분이 바람을 가득 넣은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이성이 살짝 마취된 것 같기도 했다.

    한호성은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찬물로 세수하고 제정신을 되찾기 위하여. 하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

    세수를 마친 후 화장실을 나서니, 거실 소파에 우영찬이 앉아 있었다. 한호성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는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나무늘보에 비견할 만한 속도였으나 우영찬은 재촉하지 않았다. 알아서 덫에 들어온 꽃사슴이니까 이 정도는 봐주겠다는 듯, 여유로운 시선으로 호성을 응시할 뿐이다.

    “…….”

    한호성은 소파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았다. 그러자 우영찬이 그의 곁으로 몸을 옮겼다. 원체 커다란 남자가 움직이니 마치 벽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만질게.”

    “어…… 으응.”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우영찬이 오른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이 한호성의 왼뺨을 콕 찔렀다. 우영찬답지 않게 소극적인 동작이었다. 손가락이 한호성의 뺨에 닿을 듯 말 듯 조심스럽게 미끄러졌다.

    “……읏.”

    호성은 꽉 쥔 주먹을 움찔거렸다. 차라리 거리낌 없이 쓸어내리는 거라면 모를까, 이런 간질간질한 감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워낙 낯선 느낌이라 감각 처리 기관에서 오류가 난 것만 같았다.

    “부드러워.”

    나지막이 중얼거린 우영찬이 손을 한결 과감하게 움직였다. 한호성의 볼을 콕콕 찌르더니, 엄지와 검지로 살짝 꼬집은 것이다. 아프진 않았지만 역시나 낯설어, 호성은 우영찬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흠칫거렸다.

    “너무 예뻐, 진짜.”

    “……그, 말로 하진 말고.”

    민망해서 문제지, 아주 싫진 않았다. 원체 칭찬에 약한 한호성이었다. 서서히 긴장이 풀린 그는 우영찬의 손에 왼쪽 볼을 맡겼다.

    “확 깨물어 버리고 싶어.”

    과격한 말과 달리, 우영찬은 한호성의 볼을 살살 조물조물했다. 언뜻 마사지 같기도 한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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