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82화 (82/123)
  • #82

    “……그분은 ‘천사들의 하모니’의 어떤 부분에 감명받으신 걸까.”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런데 네게 메인 OST를 맡기려 한 걸 보면, 네 노래에 감명받은 게 아닐까.”

    정말 그럴까. 여전히 선뜻 믿기지 않았다. 머리로는 우영찬의 말이 사실임을 알아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한호성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우영찬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한 거 아니냐. 너한테 중요한 일을 맡기려는 건 그만큼 네 실력이 마음에 들어서겠지. 그거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을 수 있겠어?”

    “…….”

    “제안 받아들일 거지? 이제 오해도 풀렸으니까.”

    어째 자신보다 우영찬이 더 설레발인 듯싶었다. 정작 한호성은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마음이 물러빠진 탓인지, 낭창낭창 흔들리는 중이다.

    “근데 영찬아, 만약 내가…….”

    “네가, 뭐.”

    “……내가 잘 못 해서 감독님이 실망하시면 어쩌지?”

    감사하게도, ‘천사들의 하모니’를 시청하며 감명받았다는 분이다. 한데 자신이 그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 감명마저 깨질 터였다.

    자신을 좋게 봐준 사람을 실망시킬 바에야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한호성이 근래 여러 일을 겪으면서 느낀 바였다.

    겁쟁이 같은 사고라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쪼그라든 자신감이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다 잘 되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차오르다가도 급격히 꺼지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한 번 구겨진 종이를 완벽하게 펴기 어렵듯, 자신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우영찬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 늘 기회를 기다려 왔잖아.”

    “……응.”

    “이게 바로 기회야. 네 힘으로 얻은 기회. 그러니까 잡아, 그냥.”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호성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모처럼의 기회를 날려 보내는 건 역시 싫었다. 잘 해내리라는 확신이 없어도 해 보고 싶었다. 아니, 기필코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잘 성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아무래도 이미 거절한 일이라……. 그래도 일단 대표님 통해서 말씀드릴게. 제안이 유효하다면 받아들이고 싶다고.”

    “그래, 잘 생각했어.”

    우영찬이 씩 웃었다. 어째서인지 그 얼굴을 보자, 비로소 현실감이 들었다.

    자신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온 게 새삼 놀랍고 기뻤다. 한호성은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영찬아,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겠지?”

    “또 무슨 소리냐, 그건.”

    “꿈이라면 이쯤에서 깨야 실망하지 않을 텐데. 내 볼 좀 꼬집어 줄래?”

    “얼마든지.”

    농담이었는데, 우영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다가오자 한호성은 몸을 경직했다. 자신이 먼저 볼을 꼬집어 달라고 한 만큼 무르기도 뭣하고, 우영찬이 제 볼에 손대는 건 상상만으로도 어색했다.

    다행히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우영찬이, 손을 뻗다 말고 멈칫했기 때문이다.

    “아…….”

    탄식 끝에 쌍시옷 발음이 들린 것도 같았다. 우영찬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손을 내렸다.

    “왜 그래?”

    “네 볼 꼬집고 싶어.”

    “……근데.”

    “나 지금 김제국 몸이다.”

    우영찬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이 손으론 네 볼 못 꼬집어. 그렇다고 차려진 백설기를 거절할 수도 없고…….”

    “차려진 백설기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동시에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제 뺨을 꼬집는 것 따위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한데도 우영찬은 일생일대의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처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한호성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그럼 나중에 꼬집든가. 네 몸일 때.”

    “좋아. 약속했다.”

    우영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제야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다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잠깐만, 볼 대신 차라리 손등은 어때?”

    “알았어, 손 추가.”

    “추가가 아니라 교환의 개념인데…….”

    볼이든 손이든, 왜 남의 신체 부위를 꼬집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쌓인 유감이라도 있는 건가. 한호성은 우영찬을 슬그머니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나도 다음에 꼬집을 거야. 뻔뻔한 말만 하는 못된 주둥이.”

    “그것도 좋지.”

    무슨 상상을 하는지, 우영찬이 입매를 끌어올렸다. 어쩐지 음흉한 기색이 물씬 풍기는 미소였다. 한호성은 질색하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능글거리는 거로는 평생 우영찬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고.

    ***

    이튿날, 한호성은 장 대표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처음엔 소중한 소속 아티스트가 영악하고도 악독한 재벌 4세에게 속아 넘어간 줄 알고 무진 안타까워하던 장 대표였다. 그는 한호성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후에야 겨우 납득했다.

    그리하여 장 대표는 드라마 제작진에게 연락을 넣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캐스팅 담당자가 반기더라. 다행히 아직 다른 가수 섭외하기 전이래. 네가 메인 OST 부를 수 있게 됐다!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전화로 들려온 희소식에 한호성은 활짝 웃었다. 아마 장 대표도 비슷한 표정일 터였다.

    -스케줄 확정되는 대로 알려 줄게. 곡은 이미 나왔고, 작곡가와 미팅 한 번 거친 후 녹음 들어갈 예정이다. 참, 그리고 네가 카메오로 출연하길 바라시던데.

    “드라마에요? 하지만 대표님, 아시다시피 전 연기를 못 하는데요.”

    한호성이 연기로 활동 영역을 넓히지 않고 아이돌 외길을 걸어온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연기를 심각하게 못했다. 노력한다고 어떻게 될 정도가 아니라서, 어차피 연기에 뜻도 없겠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건 괜찮을 것 같다. 주인공이 길을 걷다가 버스킹 보는 신에서 그 OST가 흘러나온다고 하더라고.

    “혹시 제 역할이 버스커에요?”

    -그래. 대사 없이 노래만 부르면 된다니까 어렵진 않을 거야. 연기라기보다 평소 하는 일에 가까우니까.

    “그건 그렇네요.”

    장 대표가 은근히 채근했다.

    -어떡할래.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주진도 출연하는데, 같이 촬영하면 좋잖냐.

    “네, 좋아요. 해 볼게요.”

    설령 어색한 연기로 욕먹는 한이 있더라도,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편이 무조건 이득이었다. 그게 시청률이 보장된 드라마라면 더더욱.

    -좋아. 그럼 곡 받는 대로 전해 주마.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우영찬이 성급히 물었다.

    “하기로 했어?”

    “응.”

    “잘됐다. 축하해.”

    “고마워, 영찬아.”

    한호성은 짤막한 인사에 진심을 담뿍 담았다. 우영찬이 오해를 풀어 주지 않았더라면 아깝게 놓쳤을 일이었다.

    자기 일인 양 즐거워하는 것도 고마웠다. 그런 우영찬이 오랜만에 순수한 팬으로 보였다. 하기야 가끔-사실 자주- 흑심을 내비쳐서 문제지, 우영찬이 자신의 팬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저녁에 축하 파티 하자.”

    “벌써? 발매는커녕 아직 녹음 일정도 안 잡혔는데.”

    “시간 여유 있을 때 미리 하면 좋잖아. 앞으로 더 바빠지면 바빠지지, 한가해지진 않을 테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

    듣고 보니 우영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주진도 배역을 얻게 되었다니, 자그마한 케이크라도 준비해서 함께 기분 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럼 저녁에 숙소에서 축하 파티 할까?”

    “그럼 저녁에 우리 집에서 축하 파티 하자.”

    동시에 말이 나왔다. 한호성과 우영찬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그것도 잠시, 우영찬이 선수 쳤다.

    “우리 집으로 와.”

    “…….”

    어째 목적이 축하 파티가 아닌 성싶었다. 의심 어린 시선으로 우영찬을 응시하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약속 지켜야지, 한호성.”

    “무슨 약속?”

    “볼 조물조물해도 된다고 허락했잖아.”

    “……내가?”

    생각해 보니, 볼을 꼬집게 해 준다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꿈인지 생신지 구분하고자 살짝 꼬집는 것과 ‘조물조물’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지 않나.

    “모른 척하기만 해 봐. 하여간에 은근히 약속 잘 깨지, 너.”

    “내가 언제 약속을 깼다고?”

    “하와이 가자며. 피냐콜라다도 마시자며.”

    “아, 그건…….”

    우영찬이 제 몸을 되찾았으니 하와이에 갈 필요도 자연히 사라진 게 아닌가. 한데도 그는 대단한 장난감을 받았다가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불퉁했다. 만일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니었어?’라고 말했다간 단단히 골이 날 듯싶었다.

    “나중에 갈 거지?”

    우영찬이 협박하듯 물었다. 한호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중에 가자, 나중에.”

    호성은 ‘나중에’를 강조했다. 그 나중이 1년 후일지, 10년 후일지, 혹은 100년 후일지 누가 아는가. 설령 1000년 후에 함께 하와이에 간다손 쳐도 자신이 약속을 어긴 건 아니었다.

    ‘그래도 영찬이랑 같이 여행 가면 재밌긴 하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영찬과 함께 있으면 즐거우니 말이다. 현실적으로 국내도 아닌 하와이까지 가긴 어렵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유쾌했다.

    “자작곡도 나중에 들려준다고 하더니 여행도 나중에 가자고 하네. 대체 그 나중이 언제인데.”

    우영찬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린 그때, 타이밍 좋게 벨소리가 울렸다. 한호성은 발신인을 확인했다.

    [오버더리밋] 노원

    받지 않을 이유가 없는 전화였다. 한호성은 우영찬에게 말했다.

    “나 잠깐 전화 좀 받을게.”

    “……그래.”

    호성은 우영찬이 발신인명을 보지 못하게 주의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외쳤다.

    -호성! 나 오늘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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