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81화 (81/123)

#81

‘아, 더 자세한 썰이 궁금하시다고요. 제 지난 방송 정주행하시면 보실 수 있을 텐데……. 오우, 하트팡 555개 후원 감사함다! 오, 오, 오빠는 5, 5, 5를 좋아해! 으하하하.’

방정맞게 촐싹거린 남자가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트팡까지 쏴 주셨는데 어떻게 입 싹 닫겠습니까. 궁금한 거 다 물어보십쇼. ……왜 연습생 그만뒀냐고요? 아, 이건 또 방송에서 푼 적 없는 썰인데. 오늘 한번 얘기해 봐야겠네.’

‘아니, 그땐 말이죠. 오빠도 어려서 뭘 잘 몰랐어. 아이돌은 노래만 잘 부르고 춤만 잘 추면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팀에 나를 맞춰야 하는데,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팀에 맞춰 개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어린 어흥……’이라고, 화면 하단에 자막이 떠올랐다.

‘이건 지난번에도 얘기한 건데. 솔직히 당시 연습생들과 성격적으로 잘 맞지도 않았거든요. 나이도 나랑 비슷하면서 왜 그렇게 꼰대인지 모르겠어! 여러분, 고등학교 다닐 때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서열질 하는 애들 꼭 있었죠? 연예계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래, 뭐 도움이 되는 조언도 있긴 하다 이거야. 근데 왜 내 사생활까지 건드리려 하냐고.’

말하는 동안 분에 받친 듯, 남자의 어조가 점점 격해졌다.

‘친구 만나는 것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더라고요. 내가 여친 만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 불알친구 만나는 것도 못 하게 하더라니까? 그런 식으로 내 성격, 가치관까지 건드리길래 더러워서 때려치웠어요. 이 오빠는 말이야.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렇게 가식적으로 살고 싶진 않거든. 한 번 사는 인생 내 쪼대로 살아야지. 그게 진짜 멋 아니야?’

화면 오른쪽 귀퉁이 채팅창에, 채팅이 마구 올라갔다. ‘어흥오빠’가 방송할 당시 시청자들이 쓴 것이었다.

-멋지다 어흥오빠

-연예계 군기 유명하지ㅋㅋㅋㅋ 어흥오빠 고생 많았엉!!

-이래야 어흥형이지ㅋㅋㅋㅋ

-응 인증 없으면 씹구라~

-그렇게 군기 잡던 애들이 데뷔한거임?ㅋㅋㅋ 누군지 초성만 살짝 알려주면 안되나

-어흥오빠 지난 방송 보면 알아요

-근데 그게 가식은 아니지ㅋㅋ 아이돌은 그 자체로 상품인데, 상품으로서 팔리려면 자기 관리는 당연한 거

-솔직히 어흥오빠가 아이돌 감은 아니라고 본다

-웬 선비가 들어와서 방송 물 다 흐리네ㅋㅋㅋㅋ

대다수가 ‘어흥오빠’에게 공감했으나, 다른 의견도 꽤 많았다. ‘어흥오빠’는 잠시 고개를 쭉 내민 채 채팅창을 읽었다. 그러더니 호탕하게 지껄이는 것이었다.

‘‘연예인은 이미지 장사니까, 연습생 시절부터 이미지 관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여러분, 진정. 화내지 말아요. 이런 의견도 나올 수 있지. 근데 우리가 한번 생각이란 걸 해 보자고. 실제론 안 그러면서 순진한 척, 고고한 척하는 거. 그거 기만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해요.’

‘다 썩은 사과를 신선한 사과로 포장해서 팔면 돼요, 안 돼요? 안 되지? 아이돌은 상품이라며. 마찬가지 아냐? 이미지 장사는 개뿔! 한 꺼풀 까보면 다 기만이고 사기라니까.’

어느새 대화 주제가 ‘아이돌의 이미지 관리’로 바뀌었다. 채팅창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혀로 입술을 할짝거리며 채팅을 읽던 ‘어흥오빠’가 손뼉을 짝짝 쳤다.

‘뭐, 모든 연습생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경우도 있다, 이겁니다. 예에. 날도 후덥지근한데 너무 열 내시지들 마시고……. 다 지난 일이니까. 하하.’

그렇게 방송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어흥오빠’는 끝까지 입을 놀렸다.

‘아, 근데 요즘 아이돌 똑똑하더라. 자기 밥그릇 하나는 잘 챙기던데? 예를 들자면, 그룹이 망할 것 같으니까 바로 연기자로 진로 트는 거 봐. 드라마 나온 거 봤는데 연기 잘하긴 잘하더라. 하긴, 연습생 시절부터……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렸으나 의도가 훤했다. 분명 ‘연습생 시절부터 가식적이었다.’라는 말뜻이리라.

‘이건 이주진 얘기군.’

우영찬은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주진에게 유다른 호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의 욕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주진은 작정하고 가식적으로 굴 만큼 영악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쯧, 우영찬은 혀를 찼다.

문제의 bj가 하이파이브에 큰 위협이 될 듯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회사도 여태껏 내버려 두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사실 이는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힘이 워낙 미약해서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기분이 나빴다.

무릇 걸리적거리는 돌부리는 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치워 버리느냐이다.

‘어흥오빠’란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우영찬이 막 생각에 잠긴 그때, 화장실 문이 열렸다.

“후.”

한호성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나왔다. 막 샤워를 마친지라 촉촉하고 따끈따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방앗간에서 갓 쪄 낸 백설기가 따로 없었다.

“……앗.”

우영찬과 눈이 마주친 한호성이 흠칫했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포르르 걸어간다. 울컥한 우영찬은 그를 뒤따랐다.

“어디 가? 내가 뭘 했다고.”

“……눈빛이 불순해.”

“내가?”

의아하다는 양 물으면서도 우영찬은 내심 한호성의 눈치에 감탄했다. 저 말랑한 볼살을 만지작거리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 중이었으니까. 촉촉한 입술에 자신의 것이란 도장을 찍듯 꾹, 입 맞추는 것도 좋을 성싶었다. 그러나 바람에 불과하다.

“나 어차피 지금은 너한테 무슨 짓 못 해. 김제국인 상태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원래 몸이었다고 한들 ‘무슨 짓’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한호성이 톡 쏘아붙였다. 그 순간 큰 방 문이 열리더니, 문해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성은 눈에 띄게 움찔했다. 문해일이 대화 내용을 들었을세라 염려하는 것이었다. 우영찬 또한 일이 귀찮아지는 걸 원치 않아, 문해일의 기색을 살폈다.

“형, 다 씻었어?”

다행히 문해일은 묘한 기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그의 물음에, 한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샤워하려고?”

“샤워는 아까 했고, 양치하려고. 근데 넌…….”

문해일이 우영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맞받아치자, 그가 확신 어린 어조로 말했다.

“우영찬이지? 언제 돌아왔냐.”

“……방금.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

“눈빛으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문해일이 화장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탁, 화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한호성이 입을 열었다.

“들었지? 역시 네 눈빛은 불순하다니까! 오죽하면 해일이도 알아보겠어.”

“너무 매도하는 거 아니냐?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결백을 증명하듯 양손을 들어 보였지만, 한호성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며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우영찬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할 얘기 있어.”

“……무슨 얘기.”

“불순한 얘긴 아니야. 근데 밖에서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니까, 방으로 들어가자.”

한호성이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혔다. 그는 온몸의 털을 한껏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경계 태세였다. 우영찬은 이를 모른 체하며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지더니, 이내 한호성이 우영찬을 뒤따랐다.

우영찬은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기껏 경계심을 세웠으면서도, 결국엔 이렇게 따라오고야 마는 한호성이 참 그답게 느껴져서였다.

***

“할 말이 뭐야.”

한호성은 등 뒤로 작은 방 문을 닫으며 물었다. 혹시 우영찬이 음흉하게 굴면 재빨리 뛰쳐나가고자 문고리를 붙잡은 채였다.

그런 그와 달리, 우영찬은 여유만만했다. 그는 제논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만우절의 러브레터’ 메인 OST 제안 받아들여.”

“‘만우절의 러브레터?’ ……그게 HBS에서 작정하고 준비 중이라는 드라마 타이틀이야?”

“맞아.”

우영찬이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놀랍지도 않았다. 일전에 문해일과 대화할 때 곁에 있더라니, 그때 엿들은 모양이다.

‘혹은 사내 관계자에게 들었을지도 모르겠고…….’

어찌 됐든 자신은 이미 마음을 확고하게 굳혔다. 우영찬의 부탁 혹은 명령에 따를 거였다면, 처음부터 제안을 거절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한호성은 조금 동요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나 본데. 난 네게 그런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몰랐어.”

“…….”

“형도 몰랐을걸. 드라마 제작을 후원한다고 해서 그 드라마에 대한 모든 걸 알진 못하니까.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고. 그건 제작진의 일이잖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지만 한호성은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우영찬을 믿지 못한다기보다,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외부적인 요인 덕분이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일이 들어올 리 없으므로.

“왜 그런 표정인데.”

“내 표정이 어때서?”

“‘못 믿겠어.’라고 얼굴에 쓰여 있거든.”

“…….”

“네 말 듣고,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알아봤어. 알고 보니까 그 드라마 감독이 ‘천사들의 하모니’ 애청자였다더군. 큰 감명을 받으셨다던데.”

한호성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천사들의 하모니’는 진작 종영되었다.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데다, 처음부터 8부작 기획이었던 까닭이다.

한데 그 ‘천사들의 하모니’를 감명 깊게 시청한 방송계 종사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덕분에 자신에게 일거리가 들어오리라고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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