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토라진 한호성은 우영찬의 손을 쳐냈다. 그 바람에 넥타이의 모양이 조금 망가지고 말았다.
우영찬은 다시금 한호성의 넥타이를 매만져 주며 말했다.
“차라리 나 이용해 줘라. 내가 아니면 누가 네 넥타이를 매 주겠어. 응?”
“코디네이터 선생님께서 매 주시겠지.”
“……그냥 내가 하게 해 줘. 그리고 나 아니면 누가 널 지켜 주겠냐? 더러운 사내새끼들로부터.”
한호성은 우영찬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네가 바로 그 더러운 사내잖아.’라는 뜻이 여실한 눈빛이었다. 이쯤은 눈치챘을 법한데도, 우영찬은 유들유들하게 지껄였다.
“할 얘긴 다 끝났지? 이만 돌아가자.”
“숙소로?”
“응. 물론 우리 집도 환영이고.”
“아니, 나야 당연히 숙소로 가야지. 왜 너까지 숙소로 돌아가느냔 뜻이었는데…….”
“그야 난 지금 제논이니까.”
우영찬은 호성의 등을 툭툭 두들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한호성은 그를 뒤따르며 토달거렸다.
“알맹이는 제논 아닌 거 다 알거든? 넌 너희 집 가!”
“싫어. 너 없는 집 가 봤자 뭐 하냐.”
“우영찬 너……!”
기껏 상식적인 성격이면 무얼 하나. 상대에게 상식도, 논리도 전혀 통하지 않는데 말이다.
제멋대로인 우영찬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거친 숨만 쌕쌕 고르는 사이, 우영찬이 한호성을 차에 밀어 넣었다.
“출발하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숙소로.”
운전석의 전 비서가 차를 출발시켰다. 한호성이 우영찬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뜻을 무르지 않았다.
***
숙소로 향하는 동안, 한호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영찬에게서 고개 돌린 채 차창 밖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한 태도는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화장실로 쪼르르 들어가 버렸다. 얼마지 않아 물소리가 나는 걸 보니, 화장실로 도망친 김에 샤워하려는 듯싶었다.
우영찬은 피식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가 토라진 듯해도 내심 자신을 반가워함을 모르진 않는다. 조금 전 연습실에서 대화할 때, 호성이 내비친 표정을 본 덕분이다.
말간 얼굴에 스친 안도라니. 그때 순순히 사과했더라면 한호성은 화를 풀었을 것이다. 원체 순하고 상냥한 성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포르르 성내는 모습이 재밌어, 괜히 건드리게 되었다.
‘그것도 주먹이랍시고 휘두르는 것도 귀엽고.’
자신이 아프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무르기 짝이 없었다. 그런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때려 봤자 앙탈밖에 더 되는가.
한호성이 알았더라면 기함할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우영찬은 핸드폰을 켰다. 어느덧 일과가 되어 버린 모니터링을 하기 위함이었다.
스마일 @always_tmakdlf
오늘을 정장절로 선포합니다 땅땅땅
주홍감 @gam8265
미미친 내일 슈트 ver. 뮤비 업로드 예정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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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감 @gam8265
나 기대한다 진짜 기대할거다 여기서 더 기대해도 되는 걸지 모르겠는데 아주 기대해버린다
Nagyo @magunagyo
멤버별 폰 바탕화면 편집해왔습니당 필요하신 클랩 분들 다운받으세요~
금갈치 @gold_hairtail
안 그래도 일주일 전에 라섹했는데 우리 애들이 나 순조롭게 시력 좋아지라고 이런 금쪽같은 라이브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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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갈치 @gold_hairtail
하이파이브가 내 루테인이고 비타민이다
라돌체비타 @iudltk276
오늘 라방 라이브로 본 나 자신 칭찬해ㅋㅋㅋㅋㅋ 이런 건 역시 라이브로 봐야 제맛이지
波濤 @big_wave_pado
한 줄 소감: 호1성이의 넥타이가 되고 싶다
공중파 음악 방송에 출연했을 때 못지않게 뜨거운 반응이었다. 매일 추는 같은 춤에 의상만 달리했기로서니 이런 호응이 돌아오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하기야 한호성의 슈트 차림이 무척 근사하긴 했다. 으쓱한 기분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였다. 유난히 눈에 띄는 프윗이 있었다.
波濤 @big_wave_pado
아니 근데 넥타이 얘기 나온 김에 말인데... 호1ㅅㅓㅇ은 원자 번호 54번하고 대체 무슨 사이야? 넥타이를 왜 그렇게 매주는 건데?...
˪넨네 @nennenoa
정답! 신혼부부!
˪波濤 @big_wave_pado
아무래도 우리 모르는 사이 식 올리고 혼인 신고까지 마친 거 같죠? 저 진짜 카페에서 보다가 54번이 자기 남편 돌려세워서 넥타이 매주는 장면에서 주위 눈치 봤잖아요 이런 거 공공장소에서 봐도 되나 싶어서ㅋㅋㅋㅋㅋ
˪넨네 @nennenoa
한창 둘만의 세계에 빠져 살 시기잖아요ㅎㅎㅎ 신혼이니까 우리가 이해해 줍시다^~^
“……흠.”
우영찬은 엄지로 턱을 문질렀다.
프위터를 하다 보면 의도치 않아도 RPS를 접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 자체가 대수로운 일은 아니나, 한호성과 제논을 엮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건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우영찬 자신이 ‘생생 퀴즈쇼’에서 한호성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둘을 엮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팬덤 내의 붐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우영찬으로선 예의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한호성이 자신 외의 사람과 엮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의문이 하나 있었다.
야생의 호성왼러 @bambi_the_left
다시금 깨닫는다 역시 한호성은 확신의 미인공이다
˪chani @chaniXO123
님 써방이요;
야생의 호성왼러 @bambi_the_left
넥타이 매주는 제논이 기특하다는 듯한 이 눈빛 이 어른스러움이야말로 연상 미인의 참맛이지
˪chani @chaniXO123
알페스에 미친색기야 양지에서 애들 엮지 말라고 좀;; 닉네임에서 우리애 이름이나 떼던가
우영찬은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chani’라는 유저가 지적한 것과 다른 부분이 불만이었다.
‘대체 왜 제논이 수 포지션인데?’
그렇다고 제논이 공이고 한호성이 수이길 바라는 건 결단코 아니었다. 하지만 한호성이 반드시 ‘왼쪽’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호성과 이런저런 짓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 가는 우영찬으로선, 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캐릭터 해석이 다르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를 위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문해일 따위와 엮이는 것보다는 낫나.’
이 경우, 최소한 알맹이는 자신이니 말이다.
우영찬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팬덤의 분위기라면 충분히 엿보았으니, 이제 마음 놓고 덕질에 집중할 차례였다. 한호성의 슈트 차림 사진을 발견하는 족족 저장하던 그때.
알몬드 @0Alm0nd
아...ㅋㅋ 그 비제이 또 입 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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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몬드 @0Alm0nd
우리 애들 좀 냅두라고~~ 5년 전에 아주 잠깐 스쳤다면서 왜 이제와서 아는 척 지리게 하는 거임ㅋㅋㅋㅋ
한 프위터리안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게 보였다. 그는 위튜브 링크를 올리며 신고를 독려하기도 했다.
알몬드 @0Alm0nd
여러분 시간 나시는 대로 신고, 싫어요 한 번씩 해주세요. 이전에도 H5에 관한 불분명한 정보를 사실인 양 유포한 bj입니다. 영상 시청은 하지 마시고 꼭 신고 부탁드려요.
https://www.wetube.com/watch?v=bjgrowloppa
어째서인지 심상찮은 예감이 들었다.
우영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자 위튜브로 연결되며, 요란한 자막이 덕지덕지 붙은 섬네일이 떠올랐다.
[bj어흥오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습생을 그만둔 이유
“…….”
샛노란 머리칼의 남자가 한껏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수로라도 클릭하고 싶지 않은 제목과 섬네일이었지만, 우영찬은 영상을 재생했다. 어쨌든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아봐야 할 게 아닌가.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하면 안 잡아먹지. 어흥!’
“아, 씨발.”
영상이 시작된 지 3초 만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우영찬은 일단 참았다. 다 본 후 본격적으로 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오, 하트팡 100개 후원 감사함다! 질문도 함께 주셨는데요. ‘어흥오빠 한때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게 사실인가요?’ 아, 당연하지! 이거 방송에서도 이미 여러 번 말한 건데 자꾸 질문 들어오네. 시청자 여러분, 절 너무 못 믿는 거 아닙니까? 제 와꾸가 그 정도 레벨은 아닌 것 같아요?’
형광 연두색 나시티를 입은 남자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의 댓글을 읽었다.
‘‘어흥오빠 웬만한 남돌 뺨치게 잘생겼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휴, 이런 반응을 유도한 건 아닌데 이거 참. ‘어흥오빠 당장 데뷔하자.’ 아, 왜 이러세요. 저 연습생 때려치운 지 5년 된 사람입니다. 잠깐 발가락까진 담갔는데 그 바닥이 좀…… 아니, 더럽다는 건 아닌데. 뭐랄까, 나랑은 잘 안 맞아서.’
연습생. 그 말에 우영찬은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이전에 한호성이 말하지 않았던가. ‘원래 데뷔할 뻔한 애가 여러모로 문제 많았거든. 분명 1년 내로 거하게 사고 치겠다 싶어서 계약 해지하고, 그 자리에 제논이 들어온 거야.’라고.
저 남자가 예의 연습생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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