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76화 (76/123)

#76

***

“와, 이걸 네가 다 한 거야? 손 많이 갔겠는데.”

한호성은 먹음직스러운 상차림을 보며 감탄했다. 꼬치에 고기, 대파, 새우, 방울토마토 따위가 주르륵 꽂혀 있었다. 문해일이 저녁 식사는 자신에게 맡기라며 큰소리치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준비할 줄은 몰랐다.

“그냥 사다가 구운 게 전부인데, 뭐.”

“맛있겠다. 잘 먹을게.”

“응, 소금 여깄어. 후추는 여기.”

문해일이 향신료를 밀어 주었다. 한호성은 그와 마주 앉아, 꼬치를 하나 들었다. 막 한 입 먹으려던 그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형, 방금 초인종 소리였지?”

“응.”

“그럼 공동 현관문은 어떻게 통과한 거지?”

문해일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듣고 보니 수상쩍은 구석이 있어, 한호성도 덩달아 긴장했다.

“확인하고 올게.”

“같이 가.”

한호성은 꼬치를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그는 문해일과 함께 인터폰을 확인했다. 푸르스름한 색감의 화면에, 두 남자가 보였다.

“……어. 저거 김제논 아니야?”

문해일이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키 작은 쪽 남자가 익숙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한호성은 그 옆에 선 남자도 알아보았다. 그는 우성한의 수행 비서 중 한 명인 전 비서였다.

“제논 맞네. 열어 주자.”

“이 시간에 연락도 안 하고는…….”

문해일은 불만스레 중얼거리면서도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어젖히자, 역시나 제논과 전 비서가 서 있었다.

“제논, 무슨 일이야?”

“그, 우, 우영찬이, 당분간 여, 여기서 지내라고…….”

잔뜩 주눅 든 제논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호성은 문해일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곳은 하이파이브의 숙소이니 제논이 머무는 게 당연하지마는 우영찬이 왜, 통보조차 없이 제논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제논을 돌려보내기 마땅치 않았다. 한호성은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들어와.”

“으, 응…….”

제논이 쭈뼛거리며 현관에 들어섰다. 한호성은 전 비서와 짤막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현관문을 닫았다.

“우영찬은 무슨 생각이지? 자신도 최소 석 달은 제논의 몸으로 지내야 공평하다고 큰소리치더니.”

“나, 나도 잘 모르겠어…….”

문해일의 혼잣말에 제논이 답했다. 그는 대번에 사나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숙소에서 지내는 건 상관없는데. 너, 또 사고 치면 그땐 연예계 은퇴가 아니라 이승 은퇴할 줄 알아라.”

“응…….”

“특히 입 꾹 닫고 방에 틀어박히는 거.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가만 안 둔다.”

“아, 알았어.”

이전이었더라면 문해일을 말렸겠지만, 한호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제논은 단단히 주의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이 하필 협박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달리 좋은 방법도 없었다.

한호성은 제논에게 물었다.

“밥은 먹었어?”

“먹었, 어.”

“그래, 그럼 편하게 있어. 혹시 배고프면 얘기하고.”

제논은 고개를 깊숙이 끄덕이더니, 주저주저 거실로 향했다. 이전처럼 작은 방에 틀어박힐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한호성은, 방금 문해일이 ‘한 번만 더 입 꾹 닫고 방에 틀어박히면 가만 안 둔다.’라고 을렀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형, 식사나 마저 하자. 다 식겠다.”

문해일의 채근에, 한호성은 제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조금 식었지만 여전히 맛있는 꼬치구이를 먹으며, 문해일이 말했다.

“우영찬은 더는 제논 대신 활동하지 않을 생각인가? 하긴, 그럴 이유가 없긴 하지.”

“그러게.”

한호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우영찬의 심리에 대해 짚이는 바가 없진 않았다. 자신이 더는 그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제논을 대신하는 걸 그만두려는 셈이리라. 당연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문해일이 애먼 꼬치구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활동은 어떡하지? 또 제논한테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건가…….”

“신곡만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영찬이가 갓 빙의했을 때보단 수월할 거야. 어쨌거나 제논도 활동한 연차가 있는데, 잘하겠지.”

“그래, 뭐……. 솔직히 별 기대는 없고, 난 이제 다 떠나서 저놈이 사고만 안 치면 좋겠어.”

“그럴 거야.”

말은 그리했지만 실은 한호성도 불안했다. 제논이 어디 예상대로 움직여 주는 멤버였던가. 게다가 치는 사고마다 참신하기 그지없어, 대처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이젠 제정신을 차린 듯싶으니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형, 아직 이주진한테 얘기 못 들었지?”

“어? 뭐?”

“무슨 드라마 배역 제안 들어왔는데 대표님이 그걸 거절했대. 이주진 의사도 묻지 않고. 그걸 아는 방송국 스태프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된 모양이더라고. 걔 그래서 한참 속상해했잖아.”

“아……. 몰랐어.”

정말 몰랐다. 예의 드라마 제작진 측에서 자신에게 메인 OST 작업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이주진에게까지 배역을 제안했을 줄은.

“형이 쉬는 동안 벌어진 일이니까 모를 만도 하지. 근데 형, 이번 일은 대표님이 너무하지 않아? 왜 언질도 없이 모처럼 들어온 제안을 거절하시지? 이주진은 이제야 겨우 연기자로 자리 잡는 중인데, 이 배역 저 배역 가릴 처지냐고. 대사 없는 단역이더라도 넙죽 받아야 할 판에.”

“…….”

“원래 이렇게 독단적으로 일 처리할 분이 아니신데. 참 이상해.”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문해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한호성은 꼭꼭 씹은 대파를 꿀꺽 삼키고서는 말했다.

“그거 말이야……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 그 드라마 최대 후원사가 강문 전자라서 그럴 거야.”

“강문 전자가 왜?”

“영찬이가…….”

“아.”

문해일은 그 이름만으로도 한호성이 하려는 말을 파악한 듯싶었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호성에게 물었다.

“근데 그게 문제인가? 원래 그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야?”

“……실은 나한테도 드라마 OST 메인 곡 제안 들어왔는데 거절했거든. 대표님은 정황상 그 일이 인맥 덕분에 들어온 거라고 판단하셨나 봐. 나도 같은 생각이고.”

우성한에 관한 장 대표의 오해를 언급할 수 없으니, 설명에 제약이 따랐다. 그래서인지 문해일은 아리송한 기색이었다.

“듣고 보니까 인맥 덕분에 들어온 일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럼 안 돼? 이 바닥은 원래 인맥이 중요하잖아. 대표님만 하더라도, 예전에 블루길 엔터에서 근무할 때 쌓아 둔 인맥 활용해서 이 일 저 일 잡아 오셨는걸.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블루길 소속이었다가 대표님 따라서 소소리로 온 거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해, 꼬치구이를 먹는 척할 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긴 왜 왔냐, 제논.”

문해일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뒤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논이었다. 그가 자라목이 되어서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 물 마시러……. 목말라서.”

“……그러든가.”

별일도 아닌 거로 신경을 곤두세운 게 머쓱한지, 문해일이 고개를 휙 돌렸다. 한호성은 그 틈을 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다음에 더 좋은 제안이 들어올 거야. 그때 잘하면 되지.”

“하긴……. 이미 거절한 일로 아쉬워해서 뭐 하겠어.”

문해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꼬치구이를 소금에 콕콕 찍으며 말했다.

“여기 고기 괜찮다, 형. 캠핑 가서 구워 먹을 고기는 이 집에서 사야겠다.”

“정말 캠핑 갈 거야?”

“응. 우영찬이 생방송에서 ‘우리 상금으로 바비큐 파티할 거예요.’라고 큰소리 뻥뻥 쳐 놨는데 안 가기도 그렇잖아. 이참에 좋은 곳 가서 잘 놀고, 브이로그도 찍자.”

“그래, 좋아.”

“안 그래도 내가 우리 숙소랑 가까운 캠프장 몇 개 찾아 뒀거든? 한번 볼래?”

문해일이 핸드폰을 꺼냈다. 한호성은 그와 머리를 맞대고는 캠프장 사진을 구경했다.

“와, 여기 좋아 보인다. 조명이 예뻐서 영상도 잘 나오겠는데.”

“그렇지? 또 여긴 모닥불 사용도 가능한 곳인데…….”

한참 설명을 들을 때였다. 어디선가 뿌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논?”

고개를 들고 보니 제논이었다. 그가 얼음물 담긴 유리컵을 들고 선 채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 거기서 뭐 해?”

그가 딱히 뭘 한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워낙 음산해 순간 놀라고 말았다. 제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 마시는 중…….”

“아, 그랬구나.”

한호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기야 척 보기에도 물 마시는 중인데, 자신이 괜한 걸 물었다 싶었다.

그렇다면 방금 들은 이 가는 소리도 실은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예의 상황을 별일 아닌 에피소드로 치부하며, 한호성은 다시금 문해일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

추진력이 좋은 문해일은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캠프장을 예약했다. 단순히 캠핑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브이로그까지 촬영할 예정이었기에 캠프장 전체를 대여해야만 했다. 그 바람에 우영찬이 상금으로 타낸 삼백만 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콘텐츠 제작을 위한 투자로선 무난한 편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