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73화 (73/123)
  • #73

    첫째로 제논을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이 없는 데다, 둘째로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있었다.

    “다 됐으니까 너, 주술인지 저주인지나 쓰지 마라.”

    그가 앙심을 품고 하이파이브 혹은 자신에게 이상한 수를 쓰면 어찌하나. 제논의 소심하기 그지없는 성격상 작정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진 않을 듯싶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네, 네……. 그, 그건 확실히 약속드릴게요. 저 어, 차피 저주 같은 거 하지도 못해요…….”

    “그럼 다행이고.”

    장 대표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아무튼 모든 걸 고려할 때, 모든 걸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제일이었다.

    그때 우영찬이 선언했다.

    “김제국 탈퇴하기 전까진 내가 자리 메울 거다.”

    “언제까지?”

    “석 달 더.”

    “왜 두 달도 넉 달도 아닌 석 달인데? 기준이 뭐야?”

    이주진의 물음에, 우영찬이 답했다.

    “김제국이 석 달 동안 내 몸을 멋대로 차지했으니까. 나도 김제국의 몸을 최소 석 달은 차지해야 공평하지.”

    “그런가? 아니, 근데 제논 몸 차지해서 뭐 하려고. 우리야 고맙지만…….”

    이주진, 문해일, 설이태의 얼굴에 복잡한 심상이 스쳤다. 우영찬의 호의가 고맙기는 한데 흔쾌히 받아들이기 찜찜한 기색이었다.

    ‘강문 그룹 4세라고 했으니 돈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닐 거고.’

    ‘아이돌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기엔…… 그간의 행적을 보면 아닌 게 확실한데.’

    ‘……설마 순수한 선의에서인가?’

    현재로선 가장 그럴듯한 추측이었지만, 가장 믿기지 않는 추측이기도 했다. 차마 확인할 엄두조차 안 나, 세 사람은 찜찜한 표정으로 우영찬을 바라보았다.

    그런 기색을 알아차렸음에도 우영찬은 비웃음 지을 뿐이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리는데, 하나같이 영 맹탕인 것들끼리 그래 봤자 쓸 만한 생각이나 나오겠나 싶었다.

    “그리고 숙소 문제 말이다. 후보를 두 개로 추렸는데, 너희도 보고 의견을 알려 주면…….”

    “아, 대표님. 안 그래도 숙소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주진이 한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저…… 슬슬 독립하고 싶어서요.”

    “저도요.”

    설이태가 말을 보탰다. 분위기를 보건대, 저희끼리 먼저 의견을 맞춘 듯싶었다.

    “저, 집을 사고 싶어서요.”

    “집? 독립은 그렇다 치고, 갑자기 웬 집을 산다고?”

    장 대표가 놀라 물었다. 그에 이주진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이번에 본가 가서 절실히 느꼈어요.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요. 제가 동생이 셋이잖아요.”

    “어어, 그렇지.”

    막내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이주진이지만, 그는 사실 첫째였다. 그것도 세쌍둥이 동생을 둔 첫째.

    “동생들이 귀엽기는 한데 같은 집에 있으면 너무 정신없어서요. 가끔은 저도 혼자 있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땐 동생들이랑 부대끼면서 자라고 커서는 형들이랑 지내서……. 아, 그게 싫었다는 말은 아닌데.”

    “무슨 뜻인지 알아.”

    한호성이 부드럽게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이주진을 충분히 이해하는 기색이었다.

    “헤헤, 고마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내 집 마련을 해서 독립하고 싶어서요. 이태 형도 좋은 생각이라 하고, 해일 형은 아무래도 상관없대요. 그리고 호성 형은…… 미안, 물어볼 새가 없었어.”

    “아냐. 요즘 여러모로 정신없었잖아.”

    호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랫동안 숙소 생활을 하다 보면, 이따금 독립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한호성은 이주진의 제안이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숙소 생활만 10년 넘게 했네. 정말 이참에 독립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호성의 혼잣말에, 우영찬은 기대를 품었다. 이참에 한호성이 제집으로 아예 들어오는 것도 좋으리라. 이전번에는 생각만 했던 동거가 정말 실현되는 것이다.

    “너희야 연차도 어느 정도 찼겠다, 독립한다고 사고 칠 성격도 아니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일단 집주인한텐 다음 달 14일까지 짐 뺀다고 말해 두었다. 그때까지 숙소에서 지내면서 이사할 곳 알아보는 건 어떠냐. 독립을 바로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거주지가 있다면 바로 독립해도 되죠.”

    우영찬이 한호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선이 짙은 눈매로 그러하니, 몹시 부담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호성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럴게요. 이젠 기자들도 숙소까지 쫓아오지 않을 테니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14일까지 숙소에서 지내며 잘 생각해 봐라. 그리고 다음 앨범 말인데…….”

    앨범 준비를 미루고, 제논 문제가 일단락되기까지는 개인 활동에 집중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우영찬은 한호성의 허벅지를 톡톡톡톡 건드렸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 게 아니라 제집에서 함께 지내자는 은근한 유혹이었다.

    “…….”

    한호성은 우영찬의 손을 넌지시 밀쳤다. 소극적이면서도 분명한 의사 표현이었다.

    거절당한 우영찬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 낌새를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장 대표가 한호성을 붙잡았다.

    “호성아, 너는 남아라. 잠깐 얘기 좀 하게.”

    “네.”

    우영찬이 당연하다는 듯 한호성의 곁에 섰다. 그가 포로처럼 데리고 있는 제논도 함께였다.

    주문하지도 않은 1+2에, 장 대표는 넌더리를 냈다.

    “내가 호성이 불렀지 널 불렀냐?”

    “왜요. 저 있는 데선 못 할 얘깁니까?”

    “그래. 알면 자리 좀 비켜 줘라.”

    우영찬은 굳건한 바위처럼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등을 한호성이 슬쩍 떠밀었다.

    “내려가 있어. 아니면 먼저 돌아가도 되고.”

    “……차에 타 있을게.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여기서 일이 생겨 봤자 무슨 큰일이 생긴다고.”

    장 대표가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못마땅한 표정이던 그는, 우영찬이 제논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낯빛을 굳혔다.

    “호성아.”

    “예?”

    “……너, 혹시 스폰 같은 거 제의받은 건 아니지.”

    진지한 질문에,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미안하다, 이런 거 물어서. 나도 네가 스폰, 뭐 그런 더러운 거에 눈길조차 안 줄 성미라는 것쯤은 잘 알지. 다만, 웬 정신머리 썩은 놈이 재벌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면서 널 어떻게 해 보려고 수작 부릴세라 확인차 물어보는 거야. 걱정돼서.”

    “…….”

    이래서 우영찬더러 자리를 비켜달라 한 것이었나. 한호성은 뒤늦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제삼자 눈엔 수상해 보일 만한 상황이긴 했다. 자신이 우영찬에게 많은 걸 제공받은 건 사실이니까. 그게 물질적이든, 정신적 지지든 간에 평범한 우정에서 기인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영찬이가 나쁜 수작 부린 건 아니에요.”

    “강문 전자 우 전무,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지.”

    말이 동시에 나왔다. 피차 놀란 한호성과 장 대표가 멀뚱거렸다.

    “영찬이? 우영찬? 걔 얘기가 왜 나오냐?”

    “그, 그럼 우 전무…… 그러니까 영찬이 형은 왜요?”

    아무래도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야 할 성싶었다. 먼저 말씀하시란 눈짓을 보내자, 장 대표가 입을 열었다.

    “실은 처음부터 낌새가 이상하다 싶더라. 보도국 선배가 그러는데, 우 전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널 유난히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거야. 오죽하면 연락처도 흔쾌히 줬겠냐면서 말이지.”

    “…….”

    “그리고 바꾼 연습실, 우 전무 명의로 계약한 거라던데. 우 전무가 숙소로 비서도 보냈었다며?”

    “그건 영찬이 때문이었어요.”

    “표면적으론 그럴지 몰라도 속셈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호성의 표정을 본 장 대표가 변명하듯 말했다.

    “나도 애먼 사람 의심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호성아, 원래 사람은 쉽게 믿으면 안 돼. 이 바닥에선 더더욱 그렇고.”

    “그건 저도 알지만, 우 전무님은 저한테 사심 없으세요. 정말로요.”

    자신에게 사심 있는 건 동생 쪽이었다. 그 말을 삼키자, 장 대표가 심란해 죽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그동안의 일만으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럼요?”

    “……너한테 드라마 OST 메인 곡 제안이 들어왔어. 그것도 그냥 드라마가 아니야. 너, 방수연 작가 알지?”

    “물론이죠.”

    방수연은 수많은 대박 드라마를 써낸 스타 각본가였다. 그가 각본을 맡은 것만으로도 믿고 보는 시청자 수가 상당할 정도였다.

    “방수연 작가 각본인 데다 톱 배우가 줄줄이 출연한대. 남자 주인공 역 배우가 무려 지현이라더라. HBS에서 아주 칼을 간 모양이던데. 이거 방영만 했다 하면 시청률 장난 아닐 거다. 한국은 이미 꽉 잡은 거나 마찬가지고 해외 반응도 굉장할걸.”

    그런 드라마의 OST 메인 곡 제안이 들어온 건 희소식인데, 섣불리 기뻐하기엔 장 대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줄담배를 뻑뻑 피우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말이지, 왠지 뒤통수가 당기더라고. 이거 제안 들어온 게 지난주거든. 네가 한창 루머 때문에 고생할 때잖냐. 솔직한 말로, 이미지 안 좋은 가수에게 편당 예산 10억짜리 드라마 메인 OST를 선뜻 맡기는 방송사가 어딨어? 물론 네가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솔로 곡을 낸 적도 없고 드라마 OST를 부른 적도 없는데.”

    “그렇죠.”

    “그래서 좀 알아봤는데, 강문 전자가 그 드라마 제작을 후원한다는 거야. 그것도 최대 후원사.”

    “…….”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윤곽이 잡혔다. 한호성은 잠자코 생각했다.

    ‘영찬이 힘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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