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뭐 하고 있었어.”
눈에 띄게 흠칫 놀란 한호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우영찬을 확인하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여, 영차, 영차, 영찬이?”
“내 이름이 언제부터 영차영차였어?”
우영찬이 피식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한호성은 그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와…….”
“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우영찬은 새삼스럽게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김제국에게 빙의하기 전이라, 우영찬은 자신 그대로인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한호성은 진짜 자신을 본 적이 한 번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정신없는 상태에서 30분 남짓 만났을 뿐이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만도 했다.
“이편이 낫지?”
돌연 장난기가 동해 묻자, 한호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응? 어, 어. 그, 그런 것 같아.”
“……농담이다. 그런데 뭐 보고 있었어? 드라마?”
“인강 듣고 있었어.”
한호성이 태블릿 PC를 밀어 보였다. 화이트보드 앞에 선 강사가 코드에 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작곡 강의야?”
“응. 정확히는 화성학.”
“아아.”
우영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화성학’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게 작곡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작곡에 관심 있어?”
“응, 잘은 못하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는 중이거든.”
“이건 취미야? 아니면 일?”
“어……. 굳이 따지자면 취미? 그래도 언젠가 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싶기는 해. 앨범에 자작곡을 수록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내가 작사, 작곡한 솔로 곡을 낸다든가…….”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그에 비례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상상만으로도 좋은 모양이었다. 우영찬은 한호성이 작곡에 관한 꿈을 꽤 오래, 진지하게 꾸어 왔음을 알아차렸다.
“들려줘. 네가 작곡한 곡.”
“들을만한 곡이 생기면 들려줄게.”
“그게 언젠데? 너, 전에도 약속했잖아. 쇼케이스 끝나면 들려주겠다고. 그게 대체 언제 적이냐.”
“내, 내가 언제 약속했어. 네가 일방적으로 들려달라고 한 거지.”
한호성은 태블릿 PC를 도로 가져갔다. 누가 억지로 클라우드를 뒤져 자작곡을 재생하겠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퍽 방어적인 태도였다. 우영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준비된 후에 들려주든가. 대신 인강 듣는 거 구경해도 돼?”
“응, 그건 상관없어.”
허락이 떨어졌다. 우영찬은 턱을 괴고, 한호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그새 진지한 낯으로 돌아간 채였다. 인터넷 강의에 집중한 기색이었다.
펜타토닉 스케일이니, 블루스 스케일이니 하는 우영찬으로선 알지 못하는 내용이 계속되었다. 그게 어렵지도 않은지 한호성은 종종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열심이네.’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호성은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까.
장 대표의 말마따나 이번 기회에 쉬어도 좋지 않나. 열정이 넘치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저러다 까딱 과로할세라 염려되었다.
게다가 우영찬이 느끼기에, 한호성의 열정엔 절박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비단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노력하는 거였다.
‘이미 잘하면서.’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한호성은 아니라고 반박하겠지만, 우영찬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한호성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왜 늘 맹수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달리는 걸까. 사슴처럼 청순하게 생겼기로서니 그런 부분마저 닮은 것일까?
한호성과 머리와 어깨에 조명 빛이 내려앉았다. 반사광이지만, 마치 한호성이 빛을 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우영찬은 이전에도 이런 빛을 목격한 바 있었다.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지하 연습실에서 한호성이 노래와 안무를 보였을 때. 그의 얼굴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아니 스스로 빛을 뿜어내듯 반짝였다. 한호성에겐 곰팡내 나는 연습실도 일순 진짜 무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네 빛이 좋다.’
처음 한호성에게 매력을 느낀 건 얼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계기일 뿐이었다.
‘네 노래가 좋고.’
어째서 좋은지 콕 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춤에 눈길이 갔으며, 순진하면서도 은근히 욕심 많은 점도 좋았다.
특히나 자신을 불태우면서까지 노력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 호성이 안쓰러운 한편,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네가 좋아.’
문득 든 깨달음이 놀랍지도 않았다. 필연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리라.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사람은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반하기 마련이기에, 우영찬은 한호성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한호성이 강의를 듣다 말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그는 강의를 반복 재생했다.
우영찬은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으며 그를 응시했다. 성스러운 명화를 감상하듯이. 혹은, 자신이 발견한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 같은 시선으로.
***
“다음은 해일 형 차례. 역사 문제야. ‘육 가야의 국명을 모두 읊으시오.’”
이주진의 질문에, 문해일은 자신 없는 투로 더듬더듬 답했다.
“그, 금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소가야…… 중가야?”
“땡. 잘 가다가 중가야가 뭐야. 나라를 멋대로 건국시키고 있어.”
“정답이 뭔데?”
“성산가야.”
“윽.”
문해일이 괴롭다는 듯 머리를 싸맸다. 그 옆에서 설이태가 중얼거렸다.
“역사 문제엔 호성 형이 있어야 하는데…….”
“한호성이 역사에 대해 잘 아나?”
한호성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우영찬이 묻자, 이주진이 대신 답했다.
“응, 호성 형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거든. 과목은 한국사.”
“어머니께서도 선생님이시라고 들었는데.”
“어머니께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그래서 호성 형은 한국사 1급 자격증도, 한국어 능력 자격증도 있어. 그러니까 호성 형이 꼭 있어야 했는데……. 으으, 난 제발 역사 문제만 안 걸리면 좋겠어.”
이주진도 머리를 싸맸다.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투라, 우영찬은 의아하게 물었다.
“왜? 역사에 특히 약한가?”
“아니, 그게 아니라. 역사 문제 틀렸다간 어떤 욕을 먹을까 걱정돼서…….”
“매국노 되는 거지.”
문해일이 무심히 내뱉었다. 그에 이주진은 더욱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나 세계사도 잘 모르는데. 외국어도 잘 못하고. 그걸로 어떻게 봐주시면 안 되나…….”
“왜 틀릴 걱정부터 하냐. 그럴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외우든가.”
“그런데 솔직히, 이게 벼락치기 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말도 옳기는 했다. 시사 관련 문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은 까닭이다. 인제 와서 지식을 쌓기엔 너무나 막연하고 방대했다.
“운이 좋길 바라야지. 아는 문제만 나오도록. 그리고 여차하면 패자 부활전도 있잖아?”
설이태의 말대로 ‘생생 퀴즈쇼’엔 패자 부활 제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하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예인 게스트가 주어진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일반인 탈락자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걱정이야. 내가 잘 못해서 부활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해.”
슬슬 이주진의 징징거림을 들어 주기 귀찮았다. 우영찬은 대기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핸드폰을 켰다. 덕질 겸 모니터링을 위해 프위터를 할 셈이었다.
아가밤비가세상을지배한다 @Bambi_rules_the_World
끼요오오옷 생생퀴즈쇼 한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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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밤비가세상을지배한다 @Bambi_rules_the_World
완전체 출연이 아니라서 족굼 슬프지만ㅠ 그래도 우리밤비 좋은 곳에서 잘 쉬고 있으리라 믿으며...!
유월향 @june_gid
우리 애들 이왕 생퀴 나간 거 멋지게 우승해서 상금 삼백만원 타가면 좋겠다ㅋㅋㅋㅋ
시원해 @cool_girl_never_die_
오랜만에 할모니네 와서 생생퀴즈 볼 예정ㅎㅎ 우리 함무니가 생생퀴즈 애청자셔서>.< 할모니랑 함께 하는 덕질 얼마나 즐겁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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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해 @cool_girl_never_die_
이따 할모니께 저 남자들이 손주사위들이라고 소개해 드려야징!
mellow @Feel_me11ow
생생퀴즈쇼 보면서 먹으려고 치킨 시켰다 살다살다 스포츠 경기도 아닌 시사교양 프로 보면서 먹으려고 치킨 시킬 줄이야ㅋㅋㅋㅋㅋ
우영찬의 타임라인은 여느 때와 같았다. 한호성이 출연하지 않는 걸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생생 퀴즈쇼’ 방송을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이젠 우영찬도,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프위터에 ‘한호성’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평범했다. 검색어를 ‘호셩’, ‘핞’, ‘호1성’, ‘하노성’ 등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였다.
“흠…….”
잠시 고민한 끝에, 우영찬은 검색어를 아예 바꾸기로 했다. 자신으로선 사람들의 기발한 검색 방지 용어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컨트롤 프릭’을 검색할 셈이었다.
그러자 비로소 불쾌한 프윗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404 @qwioetuasdlk
ㅋㅋ그 컨트롤프릭은 좋겠네 실드쳐주는 팬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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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qwioetuasdlk
원래 좆망돌이었는뎈ㅋㅋㅋ 좀 뜨자마자 본색 드러내는 클라스~
˪알찜 @0cchim
걘 딱 그 위치가 어울렸는데
˪404 @qwioetuasdlk
근데 컨트롤 당하고 싶어 하는 자발적 호구변태들이 띄워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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