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66화 (66/123)

#66

“그리고 너, 하이파이브 활동은 어떻게 할 거야.”

“…….”

“잘 모르겠으면 차라리 모르겠다고 말을 해 줘. 침묵하지만 말고.”

“……모, 모르겠…… 어.”

한호성은 한숨을 삼켰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으니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했다.

“알았어. 이건 네 몸으로 돌아간 후 의논해 보자.”

호성은 우영찬을 돌아보았다.

“영찬아, 이제 마법진 그려서…….”

“안 돌아갈 건데.”

“……어?”

우영찬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선언했다.

“나 당분간 ‘제논’으로 살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처음 듣는다는 듯이 굴어? 말했잖아, 당분간 ‘제논’으로서 활동하겠다고.”

“그건 네 몸을 되찾기 전이었잖아. 이젠 너로서 살 수 있는데, 왜 제논으로 살려고 해?”

“그럼 어떡하려고. 기껏 스캔들 가라앉혔는데, 이 타이밍에 제논이 탈퇴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

“탈퇴하더라도 좀 잠잠해진 다음에 해야지. 지금은 멤버 모두가 사고 안 치고 열심히 활동해, 깎인 이미지 복구시킬 때니까.”

자신이 할 법한 말을 우영찬이 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호성은 애써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그럼 제논은? 그리고 너는?”

“제논 걱정을 내가 왜 하냐. 너도 이제 저놈 생각해 줄 필요 없어. 그리고 나는,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는 않아.”

“역시 아이돌이 적성에 맞았구나.”

“그게 아니라.”

우영찬이 답답해 죽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 팬이라고 했잖아, 내가.”

“아…….”

“좋아하는 아이돌이 속한 그룹이 어이없게 망하는 걸 어떻게 가만두겠냐.”

한호성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팬 대응이 이래서야 앞으로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 갓 데뷔한 신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부끄러우면서도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영영 김제국으로 살겠다는 건 아니고. 때가 되면 내 몸으로 돌아가야겠지만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게.”

우영찬은 한호성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곧장 제논에게 물었다.

“야, 김제국. 너도 동의하지? 동의하면 대답하지 말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답하지 마.”

“…….”

“대답 안 했으니까 동의하는 거로 간주한다. 그리고 주술에 관해 물을 게 있는데, 이건 똑바로 대답해라. 머리 굴리지 말고 아는 대로. 알았냐.”

“…….”

“김제국, 대답.”

제논이 입술을 달싹였다.

“으, 응…….”

“주술에 따르는 부작용 따윈 없나? 예를 들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몸으로 못 돌아간다든가.”

“내, 내가 알기로 그런 건 어, 없어. 솔직히 말해서 나, 도 잘은 모르지만……. 어떤 사이트에서 우연히 알게 된 거라서. 진, 진짜야, 제발 믿어 줘…….”

제논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미덥지 않다는 듯 눈매를 좁히며, 우영찬이 사납게 캐물었다.

“그럼 너, 이 외에 다른 주술도 할 줄 아냐?”

“아, 아니.”

“시도한 적은.”

“있긴 있었지만 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

“네 주장을 내가 어떻게 믿지.”

“정말이야. 마, 만약 뭐라도 성공했더라면, 내가 이러고 살고 있을 리 없잖아. 흐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제논이 다시금 눈물을 터뜨렸다. 덩달아 심란해진 한호성은 제논과 우영찬을 번갈아 보았다.

“……그것도 그렇군.”

혼잣말을 중얼거린 우영찬이 한호성을 불렀다.

“가자.”

호성은 잠시 망설였다. 이 지하 감옥을 연상케 하는 곳에 제논을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오고 뭐 해?”

그 기색을 알아차린 우영찬이 한호성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에게 이끌려 지하실을 나서면서도 한호성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강인한 몸을 차지한 주제에, 무력하게 고개를 떨군 제논이 눈에 밟혔다.

***

한호성은 차에 탄 후에도 자꾸만 뒤를 흘끗거렸다. 제논이 어지간히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게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인 듯해, 우영찬은 심기가 불편했다.

“딱히 거짓말한 것 같진 않더군.”

말문을 열자, 그제야 한호성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저놈도 주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진 않다. 하긴, 말마따나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으면 아이돌을 할 게 아니라 돗자리를 폈겠지.”

“……그러게.”

“사실 계획범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

“어떻게?”

한호성이 눈을 반짝 떴다. 자신의 과대 해석일는지도 모르지만, ‘역시 제논은 그렇게까지 나쁜 애가 아닐 거야.’라고 기대하는 기색이었다.

우영찬은 떨떠름히 설명했다.

“기껏 내 몸을 차지하고서도 별다른 짓을 안 했더라고. 내 카드 명세를 추적했는데, 돈도 신기하리만치 안 썼어. 하와이에 있는 동안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며 살아간 것 같더군.”

“…….”

“별장 CCTV도 확인했는데 거기에도 특별히 수상한 부분이 없어. 방 안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었더라고. 하다못해 별장 전체도 아니고, 말 그대로 방 안에만.”

“하와이까지 가서 왜 그랬을까. 하다못해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노을이라도 감상하지…….”

한호성이 한숨을 내쉬듯 중얼거렸다.

우성한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우영찬은 김제국이 참 청승맞고 궁상스럽다고 생각했다. 한데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도 한호성은 그를 안쓰러워하고 있다.

‘도대체 그 민폐 덩어리의 어느 부분이 그토록 애틋한 거지.’

우영찬으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따져 물었다간 호성이 더욱 울적해질 듯싶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묘하게 풀 죽은 기색이지 않은가. 사실 한호성은 오늘 아침부터, 아니, 호텔에서 자신과 재회했을 때부터 줄곧 저 상태였다.

‘그럴 만도 한가.’

호되게 마음고생했으니 하루 이틀 만에 기분이 나아지진 않을 터였다. 그래도 아무런 말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입을 연 순간.

차 안에 ‘Night Swimming’이 울려 퍼졌다.

“어, 전화 왔다. 잠시만.”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호성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킨 후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우영찬은 아닌 척 귓바퀴를 곤두세웠다. 언뜻 엿들은 통화는 ‘뉴스 봤다, 괜찮니? 잘 수습된 거니.’ 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할 법한 평범한 질문이었다.

“네. 괜찮아요, 오해가 조금 있었을 뿐이에요. ……기자들은 원래 과장해서 기사 쓰니까요. 그럼요, 그런 거 아니에요.”

한데 한호성의 반응이 여상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이가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그’ 한호성이 아닌가.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 뻔한 제논마저 가엽게 여기는 한호성 말이다.

타인에게도 그러니 가족에게는 오죽할까. 한호성이라면 가족 앞에서 한없이 무를 줄로만 알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혜성이한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그런데 지금, 한호성은 지나치게 차분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가 창백하기마저 했다.

돌이켜 보면 어제, 멤버며 장 대표며 노원에게까지 연락해야겠다고 나선 한호성이 가족 얘기는 하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연락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란 뜻이었다.

“네, 다음에 뵈어요.”

끝까지 차분한 음성으로 통화를 마친 한호성이 주먹을 꾹 쥐었다. 주먹 뼈가 가파른 산맥처럼 불거졌다. 우영찬은 그 위로 손을 얹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신 건가?”

“그건 아냐. 그냥, 음……. 사실 엄마가 나 아이돌 되는 거 오랫동안 반대하셨거든.”

한호성 어머니, 아드님을 예쁘게 낳아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찬란한 별이 뜨지 못할 뻔했잖습니까.

팬 자아가 외쳤다. 우영찬은 이를 애써 내리누르며 물었다.

“그래서?”

“전교 10등 안에 들지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각서까지 쓰고 연습생 시작했거든.”

“어머니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기준이 지나치게 높으신 게 아닌가?”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거든. 그것도 입시로 유명한 사립 명문고. 그래서인지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셨어.”

한호성이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말했다. 그의 분위기를 보자니, 어떤 가정 환경이었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잘된 거 아닌가. 데뷔도 두 번이나 하고, 성공했으니까.”

“그 두 번이나 데뷔했다는 점이 문제라서……. 지금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했고. 부모님께서는 내가 대학에 가지 않은 것도 엄청 못마땅해하셨어.”

그것 때문에 많이 혼났지.

한호성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즐거운 화제는 아닌 듯해, 우영찬은 달래듯 말했다.

“드라이브 갈래?”

“갑자기 웬 드라이브?”

“기분 전환하러.”

“아냐, 괜찮아.”

“그러지 말고 어디라도 가지. 아까 김제국 봤지? 사람이 외출도 안 하고 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면 저렇게 되는 거다.”

“왜 그런 극단적인 예시를……. 아, 가고 싶은 곳이 있긴 해.”

“어디?”

“회사. 대표님 뵈러.”

“…….”

드라이브를 권유한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장소였다. 우영찬이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으나, 한호성은 뜻을 꺾지 않았다.

“너도 갈래? 바쁘면 나 혼자서 다녀와도 되고.”

오늘따라 위태로워 보이는 한호성을, 홀로 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우영찬은 말했다.

“장 대표한테 연락해 봐, 지금 회사에 있는지. 헛걸음하면 안 되잖아.”

“응, 알았어.”

우영찬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전 비서.”

“예, 도련님.”

“일단 문석동 근처로 가죠.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에 가야 할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도련님.”

전 비서가 소소리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그러는 동안, 한호성은 장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지 않아 답신이 왔다. 안 그래도 이야기할 게 많으니 얼른 오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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