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호성은 순두부찌개를 한술 뜨자마자 감탄했다.
“맛있다.”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할 만한 순두부찌개지만, 특히 한호성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다. 두 달 넘게 같이 사는 동안 좋아하는 음식뿐 아니라 입맛까지 파악한 걸까. 궁금해하며, 호성은 식사를 맛있게 마쳤다.
“잘 먹었어.”
“그럼 갈 준비 하자. 갈아입을 옷 없으면 내 거 입어도 돼. 좀 크긴 하겠지만 작은 것보단 낫겠지.”
“저, 그러면 티셔츠 한 장만 빌릴 수 있을까?”
“어. 안 그래도 너한테 잘 어울릴 만한 게 있어.”
드레스 룸에 들어간 우영찬이 옷 한 벌을 들고나왔다. 까만 카라가 달린 흰 반팔 니트였다.
“이거 어때? 티셔츠는 아니지만.”
“아, 예쁘다. 얇아서 시원할 것 같아. 나 정말 빌려 입어도 돼?”
“당연하지.”
“고마워.”
한호성은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니트를 목에 꿰는 순간, 은은한 향이 살짝 풍겼다.
호성은 코를 찡긋거렸다. 향수는 아닌 듯하고, 세제 혹은 섬유 유연제 향인가. 그렇다면 우영찬에게서도 이와 같은 향이 날 터였다.
“…….”
어찌 보면 당연한 그 사실이 괜히 스스러웠다. 한호성은 옷을 마저 입으며 생각했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어렸을 땐 가족과, 데뷔한 후론 멤버들과 함께 산 자신이었다. 한데 누군가와 단둘이서 사는 건 처음이라서일까. 혼자는 아니지만 단체도 아닌 거리감이 미묘했다.
‘여러 명이 같이 사는 것과 단둘이 사는 건 느낌이 꽤 다르구나.’
한호성은 그리 결론 내리며 침실을 나섰다.
***
전 비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성한의 자택으로 향하는 동안, 한호성은 멀거니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긴장돼?”
우영찬의 질문에 호성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딱히 긴장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잘 모르겠어. 제논을 만나면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묻는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아직도 입을 안 연다고는 하더군. 못 여는 거기도 하겠지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보면 알 거다.”
잠시 후, 한호성은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성한의 자택의 지하실에서, 손발을 묶이고 재갈까지 문 제논을 맞닥뜨린 까닭이었다.
“여, 영찬아. 이게 뭐야. 왜 이렇게까지……!”
기겁한 한호성은 우영찬을 돌아보며 외쳤다. 가둬 놨다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감금했을 줄은 몰랐다. 한데 우영찬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말했다.
“내 몸 내가 묶어 두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어쨌든 대화는 해야 하니 입은 풀어 줘.”
마지막 말은 경호원에게 한 것이었다. 럭비 선수를 연상케 하는 체격의 경호원이 제논의 재갈을 푸는 동안, 한호성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너, 옛날에 우리가 수갑 채웠을 땐 이런 거 왜 갖고 있냐고, 변태냐고 그랬잖아. 근데 저게 뭐야. SM 플레이라고 해도 믿겠어. 네가 더 변태 아냐?”
“형이 한 건데.”
“……형님껜 비밀로 해 줘, 방금 한 얘기.”
경호원이 제논을 억지로 앉혔다. 제논은 벽에 등을 기댄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호성은 단박에 그에게 달려갔다.
“깨어 있었구나. 괜찮아?”
제논은 대답은커녕 한호성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역시 오늘도 대화를 피할 셈인가. 속이 끓는 나머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나 본데. 여기서 너 더 좆되게 만드는 거 일도 아니야.”
“…….”
“이대로 한국 대사관도 없는 지구 반대편 오지로 날아가서 네 여권 박박 찢어 버릴까? 그런 다음 몸 바꾸면 어떨 것 같아. 무사히 귀국할 자신 있냐?”
“여, 영찬아.”
“아니면 사채 쓰는 것도 괜찮겠지. 제3 금융권부터 불법 캐피탈까지 싹 돌면서 네 명의로 대출 풀로 당기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디 한번 사채업자 앞에서도 입 꾹 다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우영찬이 낮게 웃었다. 한호성이 듣기에도 퍽 음산한 웃음이었다. 그러니 제논에겐 더더욱 두렵게 느껴졌으리라.
“슬슬 정신 차리자, 김제국아. 너 이제 더 도망칠 곳도 없다.”
“…….”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인생 망한다는 거 깨달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모르겠으면 이대로 나락까지 떨어져 보든가.”
한호성은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저렇게 을렀다가 제논이 또 허튼짓을 할까 봐서였다. 안 그래도 조금 전부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심상치 않았다.
“한호성. 김제국한테 궁금하다고 한 게 뭐였지?”
“어? 어, 왜 네 몸을 빼앗았는지 궁금해.”
“들었지. 대답해라.”
한호성은 제논이 대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오래된 오르골의 태엽을 감은 것처럼, 제논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그러려던 건 아냐…….”
“뭔 개소리야. 몸 바꾸는 주술 연구한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영찬아, 잠시만.”
저렇게 윽박질렀다간 나오던 말도 들어갈 듯싶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을 저지한 후, 제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좋게 해결될 단계가 지났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도 호성은 제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네 마음 아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너한테 직접 듣고 싶어. 왜 그랬는지.”
“…….”
“‘그러려던 건 아냐.’라는 건 고의가 아니었다는 뜻이야?”
“그, 게 아니라…….”
제논이 더듬더듬 설명을 시작했다.
본래도 아이돌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제논은, 비밀 블로그가 유출된 후 수치심과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차라리 떼돈을 벌리만치 인기라도 많으면 모를까. 그 정도도 아닌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평가 대상이 되었다. 악의적인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호의적인 반응마저도 한껏 예민해진 제논의 마음을 할퀴곤 했다.
“그래서 도, 도망가고 싶었어. 어디로든. 그냥 아무,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그, 그때 갑자기 우, 영찬이 생각났어. 애, 애들이 우영찬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서.”
“뭐라고 했는데?”
“우영찬 인생은 탄탄대로라고……. 마음대로 살아도 돼서 좋겠다고.”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했다. 확실히, 물려받은-그 이상으로 물려받을- 재산이 많으니만큼 우영찬은 남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터였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 누구 눈치도 안 보고, 주, 주눅 들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내 몸을 빼앗기로 작정했다는 거지.”
우영찬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그에 제논은 불에 덴 듯 화들짝 튀어 올랐다.
“아, 아니야! 작정한 건 정말 아니, 아니었어. 나, 난 그냥 오컬트 정보 모으는 게 재밌어서.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문제의 주술을 시도한 그 날 아침.
제논은 눈을 뜨자마자 욕설 메시지를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 제 번호가 어디서 유출되었는지, 도대체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쓰레기통에 쓰레기 버리듯 자신에게 욕설 메시지를 보내는지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한 제논은 숙소를 박차고 나섰다. 그는 한 가게에서 육각 양면 거울을 구매한 후 귀가해, 마법진을 그렸다.
아홉 개의 초에 불을 붙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제논은 주술이 성공하리라곤 전혀 기대치 않았다. 주술을 시도한 건 그저, 자신이 우영찬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 그런데 정말 성공해서……. 나, 난 정말, 그, 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인내심이 닳은 우영찬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뭔 개소리야, 씨발. 네 발로 가게 들어가서 네 손으로 물건을 훔쳤는데 그게 왜 네 생각이 아니냐고. 결국 고의 맞는다는 거 아냐.”
“미, 미안해……. 나, 나는 그냥.”
“내 몸을 차지한 직후 포털 사이트 비밀번호 바꾼 것도 네 짓 아니냐? 그런 짓까지 하고서 감히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라고 지껄여?”
“흐으, 흑…….”
급기야 제논이 울먹였다. 우영찬은 그런 그를 짜증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제논 본인의 몸으로 울어도 전혀 안쓰럽지 않을 판에, 자신의 몸으로 그러다니. 기실 자기 자신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부터가 퍽 께름칙한 일이었다.
“눈물 집어넣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내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아냈냐.”
“그, 그냥 맞을 때까지 무작위로 조합해서…… 흐읍, 네 핸드폰 번호랑 이니셜 조합하다가 알아냈, 흐윽.”
“……앞으로 비밀번호 만들 땐 보안을 암호문 수준으로 해야겠군.”
몸을 잃어버리고서야 깨달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한편, 한호성은 제논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제논이 밉지만 그간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만큼 짠하기도 했다. 이런 게 바로 ‘미운 정’인가 보다.
“네가 잘못한 거 알지.”
“……응…….”
“영찬이한테 사과해. 꼭 지금이 아니라도 되니까, 준비되었을 때 진심으로. 알았어?”
“흐윽, 응…….”
제논이 흐느끼며 대꾸했다. 위압적이리만큼 잘생긴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니, 보는 호성의 기분이 묘했다. 훌륭하게 장성한 성인 남성이 어린이용 세발자전거를 탈 때 느껴질 법한 위화감이 든다고나 할까. 겉껍데기와 속 알맹이가 일치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