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62화 (62/123)

#62

7. Switch On

하이파이브의 숙소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20분 거리이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주민을 피해 조심스럽게 주차장으로 내려간 데다,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이는 기자들을 따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어 빠른 길을 두고 빙 돌아가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급한데 시간을 길거리에 버리는 격인지라 초조했다.

“씨발…… 길은 또 왜 막히고 지랄이지.”

무심코 룸미러를 보니,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이었다.

“뭐가?”

“……너 원래 그런 성격이었던가?”

“내가 뭐.”

“왠지 사람이 바뀐 것 같아서. 아니, 바뀐 게 맞긴 하는데 그게 아니라…….”

설이태가 횡설수설했다. 우영찬은 코웃음 치듯 대꾸했다.

“그래서 불만이냐?”

“그건 아니고. 제논 대하는 것보단 너 대하는 게 훨씬 편해.”

“비교가 안 될 정도지.”

문해일이 거들고 나섰다. 다른 이도 아닌 그가 자신을 두둔하다니, 제논 때문에 어지간히도 고생한 모양이었다.

“근데 너네는 왜 숙소에 남아 있었냐?”

“제논 감시하려고.”

“난 문해일 감시하려고. 둘만 놔두면 문해일이 제논 때려죽일 것 같아서……. 참, 그러고 보니까 제논은 어떻게 된 거야?”

“내 몸에 있다.”

우영찬의 대답에, 설이태가 넋이 반쯤 나간 채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태연해? 무슨 우유를 주스 병에, 주스를 우유갑에 옮겨 담은 얘기 하는 것처럼…….”

“그럼. 난리 치면서 말할까?”

“……아냐. 난리 치는 건 제논 한 사람으로 충분해.”

우영찬은 음산히 중얼거렸다.

“그놈도 이젠 안 그럴 거다. 아니, 못 그럴 거다.”

“왜?”

“가둬 놨으니까.”

“……그거 비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면 그러든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을 순순히 놔둘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제집에 두면 한호성이 염려할 테니, 아예 치워 버려야 했다.

때문에 우영찬은 김제국을 우성한의 자택에 가둔 후, 손발을 묶고 재갈을 채운 거로 모자라 경호원을 시켜 감시하도록 했다. 제아무리 김제국이더라도 결코 허튼짓할 수 없을 터였다.

순식간에 차 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한호성의 이미지를 회복할 방법에만 골몰했다.

***

우영찬이란 이름의 태풍이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에 몰아쳤다. 그는 다짜고짜 장 대표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따지고 들었다.

“입장문 누가 썼습니까?”

“어? 내, 내가 썼는데…….”

“그게 최선이었습니까?”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릴…….”

장 대표는 우영찬의 뒤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문해일과 설이태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우영찬이.’

‘컴백했어요.’

꼭 그 덕분이 아니더라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논과 다른 방향으로 성질머리가 더러운 이 인간은 우영찬이 분명했으니까.

“우영찬아, 생각을 해 봐라. 제논 본인이 묵묵부답인데 난들 용빼는 수가 있었겠냐.”

“그렇다고 영혼 없는 문장 몇 줄 끼적이면 어떡합니까. 대중이 바보도 아니고 그걸 믿겠냐? 고요.”

“방금 반말 들은 것 같은데…….”

장 대표가 소심하게 중얼거리든 말든, 우영찬은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입장문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비행기 안에서 ‘당사의 아티스트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송구하다. 현재 사실 확인 중에 있으며, 피해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보며 얼마나 속이 터졌던가.

“그럼 뭘 어떻게 하라고. 무슨 좋은 수라도 있냐?”

“일단 한호성이 컨트롤 프릭이라는 헛소문부터 부인하도록 하죠. 그리고 ‘제논이 병원 로비에서 난동 부린 건 멀미약 부작용 때문이다.’라고 해명할 겁니다.”

“하지만 제논이…….”

“그 새끼는 신경 쓸 거 없습니다. 지금은 내가 김제국이니까.”

어리숙한 면은 있지만, 어쨌거나 장 대표도 사업가였다. 그는 무엇이 이득인지 순식간에 판단했다.

“알았다. 당장 다시 쓰자, 입장문.”

“입장문 업로드하자마자 라이브 방송 할 겁니다.”

“네가 직접? 준비도 안 됐는데?”

“비행기 안에서 대본 준비했습니다. 입장문 초안도 써 뒀으니 확인해 보시죠.”

우영찬은 장 대표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는 장 대표의 의자에 앉아, 장 대표의 컴퓨터를 썼다. 제 것인 양 당당한 태도였다.

“……오, 고칠 부분 없는 것 같은데.”

모니터를 슬쩍 훔쳐본 장 대표가 평했다. 문해일과 설이태도 입장문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썼네.”

“그럼 이대로 업로드해. 주시죠.”

“……어디서 자꾸 반말이 들리네.”

장 대표가 중얼거렸다. 우영찬은 그에 개의치 않고 라이브 방송 할 준비를 했다.

“회사에 검은 셔츠 있냐? 흰색도 상관없고.”

“어, 내가 가져올게.”

문해일이 어디론가 향했다. 그동안 설이태는 우영찬을 파우더 룸으로 데려갔다.

“메이크업까진 필요 없고, 머리만 손보면 될 것 같다.”

설이태가 직접 우영찬의 머리칼을 다듬어 주었다.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기에, 설이태 선에서 봐줄 만한 결과가 나왔다.

문해일이 가져온 검은 셔츠로 갈아입은 후, 우영찬은 파우더 룸을 나섰다. 사무실로 돌아가자 장 대표가 말했다.

“입장문 올렸다.”

“사람들 반응은요.”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고. 고작 멀미약 부작용 때문이었으면서 왜 진작 해명하지 않았느냐는 반응도 많고.”

우영찬의 심정이 딱 그랬다. 초반에 기민하게 대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냔 말이다. 그런 뜻을 담아 장 대표를 노려보자, 그가 시선을 회피했다.

“어쨌거나 상황이 나쁘진 않다.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이렇게 뜨거워야 여론이 바뀌지, 미지근해서는 해명해 봤자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럼 바로 라이브 방송 하죠.”

“리허설 안 해도 되겠냐?”

“오는 동안 충분히 시뮬레이션해서 괜찮습니다.”

“시뮬레이션과 실전은 다를 텐데.”

우영찬은 그 말을 흘려들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서핑할 때, 파도 앞에서 머뭇거리면 위험해진다. 그랬다간 파도에 잡아먹힐 뿐이다. 흐름을 타야 서핑을 즐길 수 있기 마련이었다.

우영찬이 생각하기엔 세상만사가 그러했다. 무슨 일이든 흐름을 탔을 때 해치워 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파도는 이미 밀려왔고, 피할 방법은 없으니 차라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균형 잡는 편이 나았다.

“그럼 정말 시작한다?”

“그러시죠.”

삼각대 뒤에 선 장 대표가 촬영 버튼을 눌렀다. 문해일과 설이태는 한발 물러서 우영찬을 지켜보았다. 다들 초조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제논입니다.”

반면 우영찬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묵례했다.

“먼저, 제가 병원 로비에서 고함을 지른 까닭에 충격을 받으신 분들과 이로 인해 심려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해일과 설이태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가 싶었다. 제논은 확실히 아닌데, 우영찬도 아닌 것 같았다.

진정으로 과오를 반성하는 듯한 저 표정이라니. 모르는 사람의 눈엔 안쓰러워 보이겠지만, 사정을 뻔히 아는 그들이 보기엔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영찬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중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선의의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는 특정 약물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미처 멀미약의 성분표를 확인하지 않고 복용한 탓에, 부작용을 겪게 되었습니다. 제 몸 상태를 아는 만큼 더욱 철저하게 성분표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설이태는 생각했다. 어째 연기 수업까지 받는 이주진보다 우영찬의 연기가 뛰어난 것 같노라고. 저 표정 하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려니 자신마저 깜빡 속을 성싶었다.

“현재 호성 형이 저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갔다는 루머가 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문해일도 생각했다. 만약 우영찬이 사기꾼이 된다면, 크게 한탕 할 수 있으리라고.

전부터 어렴풋이 느꼈지만, 우영찬은 사람의 주목을 이끌어 내는 타입이었다. 거기에 더해 기가 막히게 신뢰를 얻어 낼 줄도 알았다. 이는 타고났다고밖엔 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이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 중 태반은 우영찬의 변명을 믿을 터였다. 오해가 잘 풀리리라는 기대에, 문해일의 낯에 화색이 돌았다.

“호성 형이 저 대신 정신과 상담을 예약한 건, 제가 부탁해서입니다. 호성 형은 단 한 번도 저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가만히 곁을 지켜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호성 형에 대한 억측과 비난을 삼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우영찬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안쓰러워 보일 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서, 그는 해명을 마무리했다.

“심려하신 분들께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같은 과실을 반복하지 않도록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우영찬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삼 초 후,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와 동시에 장 대표가 촬영을 중지했다.

“…….”

라이브 방송이 끝났음에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너무나 훌륭한 한 편의 극을 보았을 때처럼 말문이 막힌 까닭이다.

침묵 속에서 우영찬이 몸을 일으켰다. 사무실을 나서려는 그를, 설이태가 붙잡았다.

“어디 가?”

“집에.”

“반응 확인 안 하고?”

“가서 확인할 거다.”

우영찬은 대답하기가 무섭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문해일이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서둘러?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 뒀나.”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