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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61화 (61/123)
  • #61

    “고마워. 그런데 나 조금 불안한데…… 어떻게 해결할 건지 말해 주면 안 돼?”

    “안 말리겠다고 약속하면.”

    “어, 그건…….”

    “약속할 거야, 말 거야.”

    우영찬이 이렇게 나오는 건 예의 ‘해결’이 기상천외한 방법이기 때문이리라. 이를 알아차린 한호성은 선뜻 약속하지 못했다. 그러자 우영찬이 아쉬운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약속하기 싫으면 마. 어차피 네가 말리더라도 내 뜻대로 할 거니까.”

    “야, 약속할게. 안 말릴 테니까 어떡할 건지라도 미리 말해 줘.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내가 해명할 거다.”

    한호성은 눈만 깜빡였다. 잠을 못 잔 데다 한참 울어서 그런가,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우영찬이 해명해 봤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텐데. 이전처럼 제논에게 빙의한 상태라면 모를까…….’

    무심코 떠올린 생각에,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우영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우영찬이 고개를 끄덕했다.

    “어때. 좋은 생각 같지?”

    “……제논에게 또 빙의하겠다는 거야? 너무 위험해!”

    “뭐가 위험해. 해 보니까 별것도 아니던데.”

    “하지만 두 번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호성은 혼란스러웠다. 우영찬이 제 몸을 되찾은 건 주술을 연구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운이 따라 줘서이기도 했다. 한데 다음번에도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영찬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대수롭지 않게 구는 걸 보면 자신이 과민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우영찬의 계획은 지나치게 대범했다.

    “영찬아. 네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심했다는 건 알아. 근데 네가 위험 부담을 감수할 가치가 없는 일이야.”

    “아닌데.”

    우영찬이 피식 웃었다.

    “나에겐 몸을 걸고서라도 해 볼 만한 일이거든.”

    “……왜?”

    정말 어째서일까. 이것 또한 한호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의문 중 하나였다. 저를 도와 봤자 얻을 이익 하나 없는 우영찬이 왜, 이렇게까지 이타적으로 구는 걸까.

    “난 네 팬이니까.”

    “…….”

    “그래서 그래.”

    우영찬은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한 점 부끄럼 없이 고백했다.

    한호성은 놀란 나머지 눈물이 멎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팬을 만났지만 이번만큼 놀라운 건 처음이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 흔한 ‘아, 그래요?’라는 말조차 못 꺼내고 입술만 달싹일 때였다.

    “호텔에선 언제까지 지낼 예정이야?”

    “아,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은 새 숙소 구할 때까지 여기서 지낼 예정이야.”

    “새 숙소를 언제 구할 줄 알고. 기약도 없이 외박하기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

    울적하게 지내긴 했지만, 장소의 문제는 아니었다. 상황이 문제일 뿐이다.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어?”

    “방금 ‘어’라고 한 거지? 그럼 짐 챙겨. 가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영찬아, 아니라니까?”

    우영찬은 허둥거리는 한호성을 뒤로하고 짐을 챙겼다. 워낙 가져온 게 없어, 얼마지 않아 퇴실 준비가 끝났다. 우영찬은 한호성의 짐을 대신 들고는 말했다.

    “혼자 있어 봤자 우울한 생각밖에 더 들겠냐? 누구하고라도 같이 있는 게 나을 거야. 그러니까 가자.”

    그 말만큼은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한호성은 우영찬을 따라 객실을 나섰다.

    ***

    우영찬은 한호성을 제 차에 태웠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우영찬은 호성이 한껏 긴장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객실을 나선 순간부터 불안스레 주위를 살피던 한호성이었다. 그는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쓴 걸로도 모자라, 숨도 조심조심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젠 제 차 안에서까지 몸을 살짝 웅크린다.

    ‘김제국 이 새끼, 가만 안 둔다.’

    그런 한호성을 보는 우영찬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며 액셀을 밟았다. 김제국을 만나면 어떻게 할지, 한국으로 오는 내내 생각해 두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성싶었다. 한호성이 눈물을 흘렸으니 김제국의 눈에선 피눈물을 뽑아내야 했다.

    “10분만 더 가면 도착…… 아.”

    옆을 흘긋 바라본 우영찬은 입을 다물었다. 한호성이 새근새근 잠든 채였다. 곤한 몸에 맥주까지 마셔서인지, 깊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한호성은 주차를 마칠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어쩔까, 잠시 고민한 끝에 우영찬은 차에서 내렸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었다.

    “으음…….”

    한호성을 안다시피 일으키자, 그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우영찬은 호성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더 자.”

    지금 깨어나면 더 피곤할 터였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안아 든 채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한호성은 우영찬의 품에 은근히 파고들었다. 우영찬은 아이를 달래듯 그를 토닥였다.

    “…….”

    집에 도착한 우영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호텔로 달려간 것이기에, 집에 온 게 약 석 달 만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사용인이 관리한 덕분에 한호성이 지내기에도 부족함 없을 듯했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였다. 얇은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려 덮어 주자, 그가 꾸물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하는 양이 영락없이 둥지에 든 아기 새였다.

    우영찬은 그의 뺨을 쓰다듬으려다가 말았다. 대신 시선으로나마 한호성을 어루만졌다. 긴 속눈썹이 드리운 눈가가 축축해 보였다. 지금은 울음이 멎었지만, 여전히 물에 젖은 듯싶은 느낌이 있었다.

    ‘울지 않겠다고 눈물점까지 지웠으면서.’

    우영찬은 입매를 굳혔다. 다시 생각해도, 김제국을 가만둘 수 없었다.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조금 전 한호성에겐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니까.

    우영찬은 마지막으로 한호성을 바라본 후 몸을 돌렸다. 그가 깨어난 후엔, 사건의 양상이 사뭇 달라져 있을 터였다.

    ***

    우영찬은 마법진을 그렸다. 수십 번 해 본 일이라, 이젠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도 완벽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며 우성한이 중얼거렸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무슨 짓은 내가 아니라 그 새끼가 했다니까. 형, 김제국이 내 몸에 들어오면 꽉 붙들어 둬야 해. 반항하면 두들겨 패도 상관없으니까. 알았지?”

    우성한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의 부름에 업무도 뒤로 하고 귀가한 데다, 졸지에 감시꾼 역할까지 떠맡았으니 못마땅할 만했다. 하지만 우영찬은 그가 제 부탁을 들어 주리란 걸 알았다.

    “거울.”

    손을 뻗자, 우성한이 육각 양면 거울을 내밀었다. 우영찬은 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너로 살고 싶은 거냐.’

    그렇긴 하다. 단,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이 하려는 일은 이 몸으론 할 수 없으니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선 김제국의 몸이 반드시 필요했다.

    ‘가만 안 둔다, 김제국!’

    우영찬은 김제국에 대한 분노를 담아 거울을 내던졌다.

    쨍-.

    날카로운 소리와 동시에 눈앞이 희게 번쩍였다. 막 발사된 우주선에 탄 듯 머리가 아찔해지더니,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으, 시발.”

    우영찬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한 번은 자는 도중, 한 번은 맨정신으로. 이번까지 도합 세 번 겪은 일인데도 특유의 느낌이 적응되지 않았다. 숙취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불쾌함이었다.

    “됐다.”

    그는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것과 달리 작고 파리한 손. 김제국에게 무사히 빙의한 것이었다.

    한데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며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 전신에 힘이 없었다. 우영찬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고작 이틀 동안 얼마나 쓰레기처럼 산 거냐.’

    일단 물부터 마셔야 할 듯싶었다. 우영찬은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제논.”

    “드디어 나왔냐?”

    익숙한 얼굴들이 우영찬을 맞이했다. 설이태와 문해일이었다.

    “너……!”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문해일을 설이태가 붙잡았다. 우영찬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안색이 안 좋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게 진짜……!”

    지은 죄도 없이 욕먹는 경험은 생에 한 번으로 족했다. 우영찬은 문해일의 말을 끊었다.

    “나 우영찬이다.”

    그 말에 문해일과 설이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한호성이 저리했을 땐 놀란 사슴 같아 귀여웠는데, 저 둘은 어째 조금 징그러웠다.

    “귀찮게 또 설명해야 하냐?”

    “아, 아니. 우리도 이제 알긴 아는데…….”

    “원래대로 돌아간 게 아니었어?”

    우영찬은 두 사람을 뒤로하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물을 따라 마신 후, 그가 말했다.

    “내 의지로 돌아온 거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입장 발표부터 할 거다.”

    “입장 발표? ……설마 네가 제논 대신 입장문 쓰려고?”

    “입장문만 쓰겠냐? 해명 영상도 찍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설이태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여 좋기는 한데, 정말 그래도 되는지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염려하는 눈치였다.

    우영찬은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숙소를 나섰다.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한호성도 아닌 사람을 일일이 이해시킬 여유는 없었다.

    “자, 잠깐만. 어디 가?”

    “제논, 아니. 우영찬!”

    설이태와 문해일이 따라붙었다. 우영찬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을 뒷자리에 태운 후,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석의 전 비서가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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