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프로필 사진과 닉네임은 물론 아이디까지 변경한 걸 보면, 팬 활동을 영영 접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음이 분명했다.
“…….”
어디선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세상이 슬로 모션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은 없어 진위를 가릴 순 없으나, 지금이 그런 느낌이었다.
한호성은 돌처럼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생각이 멈추고, 감정도 자신의 것이 아닌 양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은 이만큼 거대한 슬픔을 소화할 능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호성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프윗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오랜 팬이 남긴, 작별과도 같은 그 문장을.
이윽고 핸드폰 화면이 훅 꺼졌다. 검고 반지르르한 액정에 한호성의 얼굴이 비쳤다. 울적한 데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못난 꼴이었다.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다를 줄 알았다. 오랫동안 응원해 준 팬과 가족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 틀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성공이 있었는데, 어이없이 헛걸음을 내디딘 탓에 추락하고 말았다. 플레임스타 때와 달리 이는 엄연한 자신의 과실이었다.
‘내가 이렇게 추락하려고 붕 뜬 거였구나.’
겨우 추스른 마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충분히 울었다고 생각한 게 무색하게 눈물이 났다. 한호성은 최대한 울음을 참았으나 소용없었다. 눈을 꽉 감아도 눈물이 잘금잘금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아, 흐으…….”
기적처럼 얻은 기회를 자신이 그르쳤다.
수많은 연예기획사 중 하필 블루길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했을 때처럼. 멤버의 수상한 일탈을 눈치챘으면서도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지 않았던 때처럼. 대중의 조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자원입대해, 20대 초반이라는 황금 같은 시기를 날려 버렸을 때처럼.
또, 자신이 그르친 것이다.
한호성은 몸을 웅크리고서 소리 내어 울었다. 아마 자신은, 설령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터였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애초에 될 놈도 아니고, 늘 결정적인 순간에 멍청한 실수나 저지르니까.
그래서 한호성은 후회스러우면서도 후회스럽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고통스러웠다.
‘이젠 정말 기회가 없을 거야…….’
팬 한 명이 떠난 건 시작이었다. 길거리만 걸어도 수군거림이 들려오고,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끊길 터였다. 가족들도 냉랭해질지 모른다.
그런 삶을 또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호성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저는 노래와 춤 외엔 할 줄 아는 게 전무했다. 오로지 아이돌 한길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그냥 인생 낭비였을지도.’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극심한 자기혐오에 휩쓸린 그 순간.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환청이 들려왔다.
한호성은 문득 우영찬을 떠올렸다. 그는 방에 들어오기 전에 꼭 저렇게 노크하곤 했다. 우영찬의 목소리는 들은 적 없어 떠올리지 못하니, 노크 소리나마 떠올린 걸까.
똑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성급해졌다. 한호성은 악몽에서 깨어난 듯 비로소 눈을 깜빡였다.
“이야기 듣고 왔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두꺼운 문을 뚫고, 낮고 힘 있는 목소리가 침입했다. 한호성은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 열어도 돼.”
“…….”
“나야.”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익숙한 말투였다. 한호성은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유령에 쫓기는 사람처럼 우왕좌왕하며 현관으로 달려갔다.
지난 이틀간, 헛되이 품은 기대는 모조리 자신을 배신했다. 하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한호성은 문을 열어젖혔다.
“왜 울고 있어.”
장신의 남자가 한호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 그에 걸맞은 강인한 체격과 단단해 뵈는 근육.
새까만 머리칼의 끄트머리는 살짝 구불거렸고, 이목구비가 상당히 뚜렷해 인상이 강했다. 거기에 강렬한 안광까지 더해지니 전체적으로 무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우, 영찬?”
“어. 알아보네?”
남자가 씩 웃었다. 덕분에 무서운 분위기가 완화…… 되지는 않았다.
“여, 여긴 어떻게.”
“안에서 얘기할까.”
남자가 성큼 객실로 들어왔다. 한호성은 그에게 떠밀리다시피 복도를 지났다. 남자는 침실을 둘러보더니 스툴에 앉았다.
“왜 하필이면 이런 좁은 곳에 처박혀 있냐.”
“여기 나름 이그제큐티브 룸인데……. 그,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장 대표 통해서 알아냈다. 네가 연락받지 않길래.”
“나한테 연락했었어?”
“어.”
“……몰랐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남자의 눈매가 대번 사나워졌다.
“몇 번을 연락했는데 그걸 몰랐다고?”
“아, 아니 그게…….”
“도대체가 우리 집 인간들도, 너도 왜 모르는 번호의 연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냐? 제때 연락만 받아도 얼마나 편하냐고.”
“미안…….”
한호성은 남자의 기세에 눌려 사과했다. 가뜩이나 시무룩한 호성이 더 기죽은 걸 깨달았는지, 남자가 한결 차분히 말했다.
“됐다. 어쨌든 무사히 만났으니까.”
“…….”
“무사해 보이지는 않지만…….”
남자는 한호성을 천천히 살펴보며 이야기했다.
“너한테 말도 없이 돌아갈 생각은 없었어. 그냥 새로 알아낸 걸 바탕으로 주술을 실험해 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성공해 버린 거야.”
“……응.”
“내 몸으로 돌아가자마자, 하와이에 있을 게 아니라 한국으로 가야겠다 싶었어. 그런데 하필 그날 허리케인이 몰아쳤거든.”
“허, 허리케인이라고? 넌 괜찮았어?”
“괜찮지. 그러니까 네 앞에 멀쩡히 있는 거잖냐.”
남자가 미소했다. 무서운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부쩍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말투며 표정이 익숙한 우영찬의 그것이어서였다.
“그런데 현지 사정은 좋지 않았어. 비행기가 뜰 수 없었거든. 공항에서 계속 대기하다, 가장 빠른 항공 타고 오는 길이야.”
“정말……?”
“그렇다니까. 못 믿겠어? 왜 자꾸 되묻고 그러냐.”
“하와이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나, 나 보러?”
“……어.”
조금 머쓱한 기색이었지만, 우영찬은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에 한호성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처럼 슬픈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쁘다기엔 애매한, 살면서 처음 느낀 감각이었다. 속이 울렁울렁한 게 어쩌면 현기증 따위일지도 모르겠다.
“영찬아…….”
한호성은 남자를, 우영찬을 불렀다. 그가 우영찬임이 확실했다. 우영찬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위해 하와이에서 한국까지 날아올 사람이 없으니까.
“여, 영찬아. 나…….”
“천천히 말해도 돼.”
“……나 망한 것 같아.”
눈물이 눈물길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호성은 흡,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 와중에도 자존심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경고 중이었으나 입이 절로 움직였다.
“제, 제논하고 문제가 생겼는데 원만히 해결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해명할 자신도 없고……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 바, 바보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그건 네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래.”
우영찬이 단정했다. 그동안 한호성이 어찌 지냈는지 엿보기라도 한 듯 단호한 투였다.
“그리고 너 절대 안 망해.”
“하지만 사람들 반응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는 길에 봤으니까.”
우영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 한호성을 스툴에 앉혔다. 그가 미니바에서 캔 맥주를 꺼내 내밀었다. 한호성은 잠시 고민하다 맥주를 땄다.
“마시라고 준 게 아니라 부은 눈 식히라고 준 건데.”
“아…….”
“됐어, 그냥 마시면서 들어. 한호성.”
“응.”
“이건 작은 일은 아니지만 큰일도 아니야. 내가 볼 땐 그래. 막말로 사기, 음주 운전, 학교 폭력, 도박, 마약 따위도 아니잖아? 설령 네가 정말 컨트롤 프릭이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냐?”
“……문제가 없진 않지, 아무래도.”
한호성은 맥주를 홀짝 마셨다. 우영찬이 대범하게 굴어서인가. 문제가 아주 조금 축소된 듯한 착각이 일긴 했다.
“나도 이게 아이돌 생명이 완전히 끊길 만한 사안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 하지만 그건 평범한 경우일 때고, 난…… 너도 알다시피 사정이 특수하잖아.”
“그건 지금부터 해결해 봐야지.”
“어떻게? 무슨 좋은 수라도 생각난 거야?”
“어.”
우영찬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특수한 문제는 특수한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통 모를 말이었다. 또 되묻기 뭣해 우영찬의 눈치만 살피자, 그가 한호성을 내려다보았다. 안타까워하는 듯 안쓰러워하는 듯 묘한 시선이었다. 한편으로는…… 저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긴 한가 보다.’
한호성은 맥주를 들이켰다. 콱 메인 목에 시원한 액체가 흘러드니 한결 편했다.
“이제부턴 걱정하지 마. 내가 잘 해결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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