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59화 (59/123)

#59

***

동이 트도록 인터넷 반응을 확인한 후, 한호성은 뻐근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후.”

상황은 그가 각오한 것 이상으로 나빴다.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채 루머가 기사화되고, 그 기사가 커뮤에 퍼지며 새로운 루머를 양산화하고, 그 루머가 또다시 기사화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 때문에 한호성이 ‘컨트롤 프릭’이라는 설은 정론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한호성이 제논을 강제로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라는 루머까지 퍼진 상태였다.

하이파이브의 팬덤은 분위기를 정화하고자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호성을 의심쩍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 한호성이 지난 석 달간 제논을 싸고돌다시피 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영찬이 빙의하기 이전부터도 제논을 특히 챙긴 터라, 컨트롤 프릭 의혹을 아주 무시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래도 아직은 변명할 여지가 있어.’

리더로서 멤버를 위하는 마음이 과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제논에겐 개인적으로 사과하였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오해를…….

“……아.”

한호성은 변명을 떠올리다 말고 이마를 짚었다.

제논, 그가 문제였다. 가해자 포지션은 아니나 제논도 구설에 오른 이상 함께 해명해야 했다. 한데 단순한 소통조차 거부하는 그가 대중 앞에 나설 리 없었다.

“어떡하지…….”

제논 없는 해명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어설프게 변명했다간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터였다. 그랬다간 정말로 끝장이다.

한호성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기껏 해결책을 떠올렸는데 소용없다니. 머릿속이 점점 엉키는 기분이었다.

‘소속사 측에서 계약 위반 혐의로 제논을 고소하면…….’

급기야 법적인 해결에까지 생각이 미쳤으나 그것도 묘수는 아니었다. 법적으로는 이기겠지만 여론전에선 질 테니 말이다. 자칫했다간 자신이 ‘같은 그룹의 멤버를 통제하다 못해 고소장까지 날린 리더’가 되어 버릴 것이다.

‘……애초에 해답이 없는 문제였을까.’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또다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는 것만으로도 벅차, 한호성은 생각을 잇지 못했다.

***

암막 커튼을 친 터라, 창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햇살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으니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째 시간관념이 흐릿해지는 성싶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점점 아득해졌다. 한호성은 아예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오다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잠을 떨칠 의욕이 들지 않았다. 한호성은 자포자기하듯 수마에 몸을 맡겼다.

‘한호성!’

그러자마자 호성은 자신이 꿈에 빠져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가 눈앞에 있을 리 없으니까.

노 원. 교복 조끼의 왼가슴에 붙은 명찰을, 한호성은 빤히 바라보았다.

‘그거 알아? 나 방금 교무실 갔다가 선생님들 말씀하시는 거 들었는데…… 우리 상 받는대! 월요일 아침에 전체 조례할 때.’

‘…….’

‘어? 안 기뻐?’

오늘 같은 날, 하필이면 꿈을 꿔도 이런 꿈을 꿀까. 노원의 부재중 통화를 무시한 벌일까.

그리 생각하며, 열여섯 살의 한호성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스물여섯 살의 한호성이 말했다.

‘기쁘지 않아.’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께 상 받는 건데……. 하긴, 넌 상이라면 자주 받으니까. 근데 난 처음이거든.’

노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상을 받는 날도 오는구나.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중학생 때의 자신은 저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던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으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그저 착잡할 뿐이었다.

‘그러게. 시작은 나 때문이었지…….’

열여섯 살의 초봄.

아이돌을 꿈꾸던 한호성의 눈에, 시에서 열리는 중고등학생 대상 노래 대회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합창이 메인이었지만 이중창 부문도 있었다.

한호성은 상보다도 무대 경험이 탐났다. 저 대회에 나가면, 나중에 소속사 오디션을 볼 때 덜 긴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호성은 가장 친한 친구인 노원을 꼬드겼다. 노래를 잘 못 불러도 되니까, 자신과 함께 이중창 부문으로 대회에 참여하자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 대회였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호성과 노원이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로 인해 한호성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역시 자신에겐 재능이 있다. 그러니 소속사 오디션도 합격할 테고, 데뷔 후에 승승장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돌이켜 보면 부끄럽지만, 그런 기대에 부푼 시절도 있었다. 자신이 성공하리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던 순간이 한호성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원아. 혹시 나랑 오디션 보러 갈래? 블루길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인데…… 혼자 가기 떨려서.’

‘그래, 좋아!’

그야말로 꿈같은 과거가 꿈속에서 되풀이되었다. 중학생 노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노래 대회도 같이 나갔으니까 오디션도 같이 봐야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은 노원과 함께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리고 함께 데뷔한 후 함께 아이돌 생활을 하다 함께 고꾸라졌다.

‘그때까지는 같았는데.’

어느 순간 노원과 자신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더니, 현재는 감히 따라잡을 엄두도 안 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자신 덕분에 상을 받았다며 웃던 친구는 이제, 방송사의 상을 도맡아 둔 양 쓸어 담고 있었다.

‘난 우연한 계기로 데뷔한 사람보다 못하구나.’

한호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충분히 운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게 꿈속에서조차 눈물이 솟아났다. 노원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더니, 시야가 검게 변했다.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아득한 과거가 멀어졌다. 꿈에서 깨어났으나 한호성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는 아직 자신을 믿고 싶었다.

자신도 노원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잘할 수 있다. 한호성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추슬렀다. 장 대표도 백방으로 노력 중일 테고, 다른 멤버들은 제논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머지않아 좋은 해결책이 떠오를 터였다.

***

호텔 객실에 홀로 있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하면 자꾸만 커뮤니티 반응을 신경 쓰게 되어서 피가 바짝 말랐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하지 않자니 온갖 상념이 밀려들어 속이 불편했다. 짧게나마 눈을 붙였더니 잠이 오지도 않았다.

달리 할 일이 없어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인터넷을 들여다보았다가, 괜히 세수하길 몇 번째. 한호성은 엄지손톱을 잘근 물어뜯으며 프위터에 접속했다.

‘잠시만 보자. 아주 살짝만…….’

그래도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저를 두둔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쩌면 사건의 양상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한호성은 실눈을 뜬 채 타임라인을 훑어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하이파이브의 팬덤은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였다.

큐로밍 @QQQ_roming_

SS ㅑ

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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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밍 @QQQ_roming_

내가 뭐랫니 얘들아 하5에 뭔 일 터지면 십중십구 ㅈㄴ짓일 거라고 했잖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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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밍 @QQQ_roming_

ㅈㄴ이 누구냐고요? 존나씨발의 줄임말 입니다^^

PickUp @vlrdjq890

생각할수록 얼탱없음 아니 개나소나 다 컨트롤프릭이냐? 정신과 진료 권유하면 컨트롤프릭임? 그럼 내 상담쌤도 정신과 진료 권유했으니까 컨트롤프릭인 부분??? 기준 존나 허벌이네ㅋㅋㅋㅋ

네모초콜렛 @nemo_chococo

그래ㅅㅂ 어쩐지 사람 쉽게 안 변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차렸다 싶더라 다 이날을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거지

열음사냥 @summer_tangtang

아니 우리애가... 우리애가...... 하 존나 한숨밖에 안나옴..ㅋㅋㅋ..ㅋㅋ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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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음사냥 @summer_tangtang

우리애가 멤버 좀 챙겼다고 통제광이 되는 게 맞는거임?? 이 개같은 세상아?

건배 @cheers_high5

HO#$^&!성이 뭐 잘못했는지 알려주실 분 구함

˪김볶밥 @kimbockbab

저도 알고싶다네요

˪건배 @cheers_high5

진짜 말도 안돼요.. 애초에 병원 로비에서 소리친 놈을 패야지 옆에 있던 애를 패는 게 정상인가요

[메인프rp부탁드려요] 나는새 @imto00

전문가가 아닌 호성이 제논에게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 경솔한 실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성이 컨트롤 프릭이라니요? 그렇게 단정 짓는 여러분 또한 전문가가 아닌 건 마찬가지 아니신가요?

˪ XXX @rjadmsdprtm

피해자 이름 언급 금지

각오는 했지만, 심란해하는 팬들을 보니 또다시 가슴이 울렁거렸다. 한호성은 손끝을 깨물다 못해 꽉 짓씹었다. 팬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미안하거니와, 팬덤 내부의 은근한 신경전이 불안했다.

‘서로 감정 상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해는 되었다. 한호성의 팬은 그들대로, 제논의 팬은 저들대로 불만이 쌓였을 테니.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팬들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을 성싶어, 한호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슴만 바짝 태울 뿐이었다.

호성은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의미 없이 프윗을 훑어보던 그때, 낯선 계정이 눈에 띄었다.

. @il1i1lillli1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하늘에서 한번 붕 띄워준다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길지도 않은 그 문장이 창처럼 가슴에 박혔다.

“……아…….”

한호성은 떨리는 손으로 계정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멍한 와중에도, 어째서 이런 프윗이 자신의 타임라인에까지 흘러 들어왔는지 의문스러웠다.

이 계정으로는 자신의 팬만 팔로우해 두었다. 모니터링 겸 힘을 얻고 싶을 때 살짝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뿐일 터인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세이호 님이시구나.”

미처 지우지 않은 프윗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플레임스타로 활동한 시절부터 좋아해 주었던, 닉네임 ‘세이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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