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H의 통제 시도가 극에 달한 것이 이번 ‘병원 난동’ 사건이다. H는 J에게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이는 전문가의 판단이 아닌, H의 개인적인 견해다), 급기야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로 병원에 데려간다.
이 과정에서 위기를 느낀 J는 큰 소리로 고함쳐 신변의 위험을 알린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H의 의도대로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고? 그렇다면 아래 영상을 확인해 보자. H가 J의 정신과 상담 예약마저 대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https://www.wetube.com/watch?v=starswitchscandal)
한호성은 링크를 클릭하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어떤 영상일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예약까진 내가 했지만 접수는 대신해 줄 수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일 것이다. 깊은 생각 없이 꺼낸 그 말이 이토록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호성은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댓글 창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user1 헐 소름... 이것이알고싶다 같은 프로에서 취재해야 하는 거 아니야?
user16 아니 쟤 팬들은 저걸 멤버 챙기는 리더로 포장해서 영업했던 거임?ㅋㅋㅋㅋ 진짜 양심도 없다ㅋㅋㅋㅋㅋ
user37 컨트롤프릭이 은근 흔한가보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꼭 한 명씩 만나게 되는데... 보다보면 소름끼침
user54 잉?? 흔한 알페스 주접글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고?
user72 이때다 싶어 말하는 것 같지만 전부터 좀 이상해 보이긴 했슴...
user83 너무 억지 같은데... 이런 걸로 욕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user84 욕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user106 결론 땅땅 내고 증거 끼워 맞추는 글이네ㅋㅋ
user136 어쨋든 저 리더라는 애가 멤버 동의 없이 정신과 끌고 간 건 팩트 아니냐; 이걸로 얘기 끝난거임
user140 맞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크리피한 일이니까
user141 나도 윗댓에 동의
user188 도대체 옛날부터 호.성이 컨트롤 프릭이라는 거 알았다는 팬들은 누구냐? 나 팬인데 왜 지금 앎?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ㅋㅋㅋㅋ
user203 그래도 공식 입장 나올 때까진 말 얹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뎁...
user209 그 공식 입장이 안 나오고 있잖아ㅋㅋㅋㅋㅋㅋㅋ
user226 이 상황에서 쉴드치는 사람도 있네ㅎㅎ
user231 팬도 돌 닮아서 컨트롤 프릭인 거임~ 그러니까 커뮤 댓글 정치질 못해서 돌아버리지~ㅋㅎ
한호성은 댓글을 읽다 말고 핸드폰을 뒤집어 두었다.
심장이 불안스레 두근거렸다. ‘병원에서 소란을 피운 무개념’ 따위의 반응은 각오한 바였다.
‘하지만 이건…….’
사건이 일어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신은 컨트롤 프릭이 되어 버렸다.
한호성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너무나 억울했다. 제논에게 정신과 상담을 강권한 건 제 잘못이 맞지만, 이건 아니었다. 제논에게 빙의한 우영찬이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몰라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것도 통제의 범주에 들지도 모르지만…….’
억울한 마음이 새록새록 들었다. 돌이켜 보니, 자신이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하기는 했다. 하지만 달리 무슨 수가 있었겠는가? 게다가 우영찬을 지켜본 건 나쁜 의도에서만이 아니라,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버린 이상,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터였다. 정공법으로 가려면 제논이 사정을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하다.
숙소에 돌아온 이후, 제논은 작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문제에서 영영 도망친 것처럼 보였다. 식사는커녕 화장실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억지로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는 제논에게 원만한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었다.
“흐…….”
한호성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미 축축한 베개에 또다시 눈물이 스미었다. 더 이상 무력하게 울지만은 않겠다고 결심한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와선 다 무의미한 것 같았다.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호성은 그저 울었다. 애써 희망을 품기도,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기도 힘들었다. 모든 상념이 눈물로 빠져나가 머릿속이 텅 빌 때까지 한호성은 울고 또 울었다.
***
한참 울고 보니 마음이 좀 진정됐다. 한호성은 티슈로 눈가를 꾹 눌렀다. 남은 눈물마저 남김없이 닦아 낸 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쉽진 않겠지만, 일을 해결하려는 시도라도 해 봐야 했다.
“형!”
“형, 괜찮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멤버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한호성은 열없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할 줄은 알았는데, 하지 마. 형이 왜 미안해.”
“사고 쳤잖아. 방 뺏은 것도 미안하고…….”
“됐어. 형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까. 사고는 제논이 쳤고, 따지고 보면 방도 제논이 뺏은 거잖아.”
문해일은 사나운 눈초리로 방문을 노려보았다. 제논이 작은 방에 틀어박힌 탓에, 같은 방을 쓰는 한호성이 지낼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임시로나마 큰 방을 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형, 이 타이밍에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설이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마자 문해일이 눈을 부라렸다. 그냥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를 눈치챈 한호성이 말했다.
“괜찮아. 무슨 일인데?”
“우리, 당분간 각자 본가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
“…….”
“대표님 통해서 연락 왔어. 기자들이 아파트에까지 몰려들어서, 주민들이 민원 넣었다고…….”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한호성은 메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들 고생이구나.”
한호성은 ‘나 때문에’라는 말을 삼켰다. 그리 말해 봤자 멤버들로선 부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감정 노동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럼 너희도 본가로 돌아가는 거야?”
“이주진이랑 설이태는 본가로 돌아가고, 나는 좀 잠잠해질 때까지 호텔 잡아서 지낼까 봐. 난 본가가 머니까.”
“그렇구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대표님이 얼른 새로운 숙소 계약하겠다고 하셨거든. 안 그래도 숙소 옮기려고 했었으니까.”
가뜩이나 정신없을 텐데 숙소까지 알아보게 생긴 장 대표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호성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문해일은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낮에 움직이면 기자들한테 걸릴 테니까 새벽에 움직이자. 무슨 야반도주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소란이 커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
“형?”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만약 본가에 가면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실까. 또 한혜성은 저를 어떻게 대할까, 따위였다.
“……난 본가에 못 가.”
생각이 채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한호성은 입을 열었다. 괜히 자존심 세워 봤자 일이 더 복잡해질 뿐이라는 건 알지만, 정말이지 본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형은 집도 방송국이랑 가깝고, 가족들이랑 사이도 좋잖아.”
“…….”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릴 한 것 같네…….”
“아냐. 그냥, 나 때문에 가족들한테 피해가 갈까 봐 그래.”
한호성은 설이태를 달랬다.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그 이유도 없잖아 있었다. 다른 멤버들이야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니만큼 주목이 덜할 터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건대, 자신은 기자가 본가까지 따라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기자면 차라리 다행이지. 개인 방송인까지 쫓아올지도 몰라.’
조회 수가 곧 돈인 시대였다. 일부 비윤리적인 개인 방송인은, 대중의 관심만 얻을 수 있다면 한호성을 소재 삼아 어떤 짓이라도 할 터였다. 이미 겪어 본 일이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럼 형은 어디로 가려고?”
“안 그래도 대표님이, 당분간 대표님 댁에서 생활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아냐.”
가정이 있는 장 대표에게 신세 질 순 없었다. 그렇다고 몸을 의탁할 만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당분간 호텔에서 지내야겠어.”
“나랑 같이 지내.”
“안 돼. 그랬다간 해일이 너까지 나쁜 소문에 휩쓸릴 거야.”
“형, 난 진짜 괜찮으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어차피 곧 잦아들 일이고.”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끼리끼리 논다.’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바로 연예계이다. 저 때문에 문해일의 이미지에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한호성은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알았어. 대신 형, 호텔 가서 꼬박꼬박 연락해야 해.”
“그럴게.”
“힘들거나 나쁜 생각 들면 꼭 우리한테 털어놓고.”
“……응.”
“그리고 댓글 같은 거 찾아보지 마.”
“알았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한호성은 인터넷을 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아마 문해일도 그쯤은 알고 있을 터였다. 인터넷이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보고야 마는 게 사람 심리이므로.
“그럼 형, 입맛은 없겠지만 밥 먹어. 우리가 준비해 놨으니까.”
“너무 울지 말고…….”
이주진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운 사실을 언급하면 한호성이 민망해할까 봐 염려하는 기색이었다.
“응. 고마워.”
호성은 쉬이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더 울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눈물이라면 충분히 흘린 까닭이었다.
***
새벽 3시 30분, 한호성은 장영수가 운전하는 렌터카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대놓고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어디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호성은 불안에 떨며 체크인을 마쳤다.
객실에 들어선 후에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한호성은 미니바를 열어 생수를 꺼냈다. 찬물을 들이켜자, 속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듯싶었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자.’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후속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고자 핸드폰을 켠 한호성은, 그새 찍힌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멈칫했다.
[오버더리밋] 노원 (7)
노원도 연예계에 몸담은 만큼 예의 사건을 접했을 터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노원이라면 분명,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전화했을 것이다.
한호성은 ‘노원’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염려해 준 것만으로도 노원이 고마웠다. 친구의 위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성은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노원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성공한 아이돌이지 않나. 그런 그에게 전진은커녕 후퇴한 모습을 보이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노원에게 위로받으면 비참한 기분마저 들 성싶었다.
‘난 참…… 비틀린 사람이구나.’
한호성은 씁쓸히 생각했다. 그나마 자신의 못난 면을 알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호성은 노원에게 ‘미안해.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메시지를 보내 둔 후, 침대에 누웠다.
‘연락할 사람이 더 있나……?’
장 대표와 하이파이브에겐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였다. 가족에게도 연락해야겠지만,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외 떠오르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
한호성은 자신의 인맥이 좁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학생 땐 데뷔를 준비한답시고 학교를 자주 빠져 친구를 사귈 새가 없었고, 고등학교는 아예 진학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 때문에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이라곤 노원뿐이었다.
조금 더 사교적인 성격이었더라면 아이돌 친구라도 여럿 사귀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그러지도 못했다. 그럭저럭 친한 지인은 있지만 지금 같을 때 연락할 정도는 아니었다.
‘영찬이가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문득 떠오른 얼굴에,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자신이 떠올린 얼굴이 진짜 우영찬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듯 일면식조차 없는 사이인데도, 우영찬은 자신을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다.
‘거기에 하소연까지 하기엔 너무 미안하지…….’
우성한을 통한다면 영찬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한호성은 우영찬에게 연락하길 단념했다. 사람이 염치가 있지, 은혜를 갚기는커녕 더 의지할 순 없었다.
한호성은 마음을 다잡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우선, 최신 연예 기사가 어떠한 논조로 쓰였는지부터 확인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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