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54화 (54/123)
  • #54

    “형, 어디 가?”

    “제논 찾으러.”

    “별일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다녀올게.”

    한호성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이주진의 중얼거림이 따라붙었다.

    “호성 형, 요즘 제논을 과보호하는 것 같아.”

    자신이 정말 그랬던가. 머쓱했지만, 돌이켜보니 확실히 그런 경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호성은 자신에게 변명했다. 지금의 우영찬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나 다름없었다. 아이돌 산업에 대해 잘 모르고 주위에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는 상황이니, 자신이 곁에서 도와줘야만 했다.

    “영찬아, 거기서 뭐 하고 있…… 아.”

    다행히 금세 우영찬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계단참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핸드폰을 뺨에 댄 거로 보아 통화 중인 듯싶었다.

    한호성은 얼른 입을 다물었으나, 우영찬은 괜찮다는 듯 턱을 까딱했다.

    “형이야.”

    그러고서는 와서 함께 들으라는 듯 손짓한다. 한호성은 그에게로 머뭇머뭇 다가갔다.

    “그래서. 그동안 어디에 그렇게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던 거지.”

    -알아내지 못했다.

    스피커폰 모드는 아니었지만 통화 내용이 작게나마 들렸다. 덕분에 한호성은 제논이 붙잡혔음을 눈치챘다.

    “뭐야. 그것도 못 알아냈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네가 말한 주술에 관해서도.

    “형이 웬일이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입 열게 할 수 있으면서.”

    -……네 몸이잖나.

    한호성은 흠칫 놀랐다. 녹음실에서 느꼈던 더위는 씻은 듯 사라진 채였다. 지금은 오히려 괴담을 들은 것처럼 오싹했다.

    ‘얼마든지라니……. 험한 방법을 써서라도 입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우영찬의 몸이라서 그러지 못했단 뜻인가?’

    험악한 추측을 떠올리는 중에도 대화가 이어졌다.

    “내 몸을 차지한 게 김제국인 건 확실하지?”

    -정황상 그런 듯하다. 네게 들은 대로야. 사람을 몹시 꺼리며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더군. 극도로 예민한 야생 동물 같아서, 강제로 한국으로 데려오긴 어렵게 되었다.

    “왜? 억지로 끌어다 비행기에 태우면 안 되나?”

    -입출국 심사가 그리 간단할 리 없잖나.

    건너 듣는 것임에도 우성한의 한심해하는 말투가 여실히 느껴졌다. 정작 우영찬은 심드렁히 지껄였다.

    “그냥 뒤통수를 후려갈긴 후에 캐리어에 넣을 수 있다면 편할 텐데.”

    “영찬아.”

    한호성은 나지막이 말했다. 우성한이 말하는 상대는 제논이되, 제논의 몸이 아니었다. 그냥 해 본 말뿐일지라도 행여나 머리를 함부로 건드렸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다.

    “…….”

    우영찬이 한호성을 흘끗 바라보았다. 명백히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한호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현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별장으로? 안 돼, 나 당분간 바빠. 비행만 9시간 걸리는 곳에 갈 순 없어.”

    -뭘 하기에 바쁘다는 거지?

    “곧 신곡 나오거든. 나오면 형도 들어 봐.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야 차트 인 하니까.”

    -…….

    “시간 내려고 노력은 할게.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때까지 내 몸 좀 잘 감시해 줘.”

    -알았다.

    짧은 대답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한호성은 그제야 목소리를 내었다.

    “제논은…….”

    “찾았대.”

    우영찬이 무심하게 말했다.

    “들었지? 입을 안 연다더라고.”

    “응, 들었어. 걔 성격이면 그래도 이상할 게 없긴 한데……. 정말 왜 그러나 모르겠다.”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우영찬의 눈초리가 대번에 사나워졌다.

    “김제국이 그렇게 걱정되냐?”

    “응? 응, 걱정이 안 되진 않지……. 그런데 왜?”

    “그래서 그놈 뒤통수도 못 후려갈기게 하는 거고?”

    물음에 대답이 아닌 되물음이 돌아왔다. 아까부터 영 영문을 모르겠어, 한호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안 되지. 사람 머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예민한 부위인데. 그러다 네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해.”

    “…….”

    우영찬이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혔다. 하지만 이번엔 사나운 느낌이 아닌, 흥미로워하는 기색이었다.

    “걱정한 게 내 몸이었냐?”

    “당연하지.”

    “그래?”

    그렇단 말이지, 중얼거린 우영찬이 한호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가 오늘따라 여러 빛깔을 띠고 반짝였다.

    “……하루라도 빨리 내 몸을 되찾든가 해야지, 이건 뭐.”

    “갑자기 왜?”

    “그런 게 있다.”

    우영찬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잔상 같은 것이 남아, 한호성의 이마며 뺨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이게 다 우영찬이 자신을 열렬히 바라본 탓이리라.

    ‘아니지, 열렬은 무슨.’

    애당초 시선엔 물리력이 없지 않은가. 한호성은 자신이 느낀 바를 기분 탓으로 치부하며, 우영찬과 함께 녹음실로 돌아갔다.

    ***

    우영찬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행사 무대를 두 군데 연속으로 뛰고 왔더니 가뜩이나 약해 빠진 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최고조였다.

    우선, 어제 발매된 ‘Nigth Swimming’의 반응이 준수했다. ‘여름, 찰칵!’보다는 약간 부진하지만 문제없이 실시간 차트에 오른 것이다. 평도 좋았는데, 사실 우영찬도 ‘여름, 찰칵!’보다 ‘Nigth Swimming’이 더 취향에 맞았다.

    ‘게다가 내 몸도 찾아냈고.’

    김제국이 여전히 입도 벙긋 안 하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만은 없을 터였다. 설령 김제국이 주술을 푸는 방법을 털어놓지 않더라도 자신이 알아내면 그만이다.

    문제의 주술에 관한 연구가 지지부진하다는 것만이 문제이긴 한데, 우영찬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김제국으로서 한호성의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한호성이 새끼 오리를 돌보는 부모 오리처럼 자신을 챙겨 주는 것도 제법 흡족했다.

    ‘뮤비나 다시 볼까.’

    아무리 피곤해도 덕질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럴 때야말로 덕질을 통해 힘을 얻어야 했다.

    우영찬은 ‘Night Swimming’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어둑한 리조트를 배경으로, 술에 기분 좋게 취해 흔들흔들 걷는 듯한 멜로디가 깔렸다. 한호성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게 ‘재즈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어 멤버들이 등장했다. 품이 넉넉한 반팔 셔츠에 편한 바지, 신발은 샌들 혹은 슬리퍼. 리조트와 어울리는 휴양지 차림이었다.

    밤이지만 쓴 별 모양 선글라스,

    기분 내려 뿌린 샤워 코롱

    야자수 이파리가 손짓하고 있지

    Fool in the Pool, Enjoy this moment

    카메라가 멤버를 한 명씩 비춰 주었다. 우영찬은 이주진과 설이태의 단독 샷을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문해일이 셔츠 단추를 풀고 은근히 복근을 강조하는 컷에선, 아예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단독 샷은 보고 싶지조차 않아 아예 뛰어 넘겼다.

    ‘나왔다.’

    드디어 호성의 단독 샷이었다.

    그는 노란 스트라이프 셔츠에 흰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귀 뒤로 흰 플루메리아를 꽂은 채였는데 그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일렁일렁, 일렁이는 수영장에 튜브를 띄우고

    물결에 몸을 맡겨, 생각은 이제 Off

    가사대로, 한호성은 빨간 하트 모양 튜브를 수영장에 던졌다. 그러고는 수영장에 첨벙 뛰어들었다. 물이 시원하게 튀며 장면이 전환되었다.

    밤하늘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금방이라도 유성우가 내릴 듯 무수한 별이 반짝였다. CG를 적당히 섞어 만들어 낸 작업물이었지만 진짜 밤하늘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카메라가 다시 리조트를 비췄다. 곳곳을 장식한 반짝반짝한 조명과 야자수까지 한 컷에 잡혔다. 그 중앙의 수영장에서 하이파이브는 대형 튜브를 타고 놀았다. 흰 백조 튜브를 서로 차지하겠답시고 물을 뿌려 대는 모습이, 다소 작위적이긴 해도 사이좋아 보였다.

    ‘……실제로 사이좋은 편이긴 하지.’

    자신은 논외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서로 친했다. 덕분에 뮤비 촬영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더랬다. 거기에 편집의 힘까지 더해지니, 세상 제일가는 우정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따로 없었다.

    ‘저 컷도 들어갔군.’

    자신이 물에 젖어 흘러내린 한호성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장면. 사실은 쉬는 시간에 무심코 한 짓인데 저게 찍혔는지도, 또 뮤직비디오에 삽입되었는지도 영상이 공개된 어제야 알게 되었다. 김제국의 몸이라는 게 불만족스럽지만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일렁일렁, 일렁이는 물결에 고민을 놓아 버리고

    노래에 몸을 맡겨, 행복이 이제 On

    곡이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멤버들은 각자의 튜브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면이 차차 어두워지더니 하이파이브의 로고가 별자리처럼 떠올랐다.

    “음.”

    우영찬은 맛있는 음식을 먹은 직후처럼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이번 뮤비에서도 한호성의 얼굴은 빛을 발했다. 특히 헐렁하던 셔츠가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는 장면이 최고였다.

    -하이파이브 최애곡 될 것 같아!!

    -얘네 갈수록 곡 잘 뽑네

    -역시 자본이 좋긴 좋음 번 만큼 투자하면 그만큼 결과 나오는 거지ㅋㅋㅋ

    -강변 드라이브하면서 듣기 딱 좋은 느낌

    -다 좋은데 가끔 화면 치직거리는 거 정신사나워ㅠㅠ

    ˪난 곡이랑 어울려서 좋은데ㅋㅋㅋㅋ

    ˪그게 Lo-Fi 감성이죠

    댓글을 확인한 우영찬은 피식 웃었다. 사실 화면이 치직거리는 효과는, 허술한 CG를 가리기 위한 얕은수였다. 하지만 목적이 뭐가 됐든 결과물이 좋으니 상관없었다.

    우영찬은 위튜브를 끄고 프위터에 들어갔다. 뮤비가 바로 어제 공개된 덕분에, 타임라인은 아직 축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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