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53화 (53/123)

#53

“사람의 몸을 뒤바꾸는 주술이 인터넷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을 리 없잖아. 그랬다간 너도나도 몸을 뒤바꿔 댔을 테니까. 내 추측이지만, 원문의 마법진은 90%가량만 정확했을 거야. 이걸 따라 그리다가 실수했는데 그게 우연히 정답이었던 게 아닐까.”

“실수에서 우연히 답을 찾아낸 발명가들처럼, 제논이 우연히 주술을 성공시켰다는 거구나.”

“맞아. 김제국은 발명가가 아니라 범죄자라는 점이 다르지만.”

“…….”

“김제국을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우영찬이 거칠게 중얼거렸다.

한호성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호성에게 제논은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었고, 그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제논은 우영찬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

제논이 빼앗은 건 우영찬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우영찬의 인간관계, 학벌, 재산을 통틀어 아예 그의 인생 자체를 빼앗으려 한 것이다. 그런 악행을 피해자가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블로그를 털어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주문이라거나, 주술에 필요한 조건 같은 것들이.”

“그걸 알아낸 후엔 어떻게 할 건데?”

“나도 주술을 시도해야지.”

우영찬이 입매를 끌어 올렸다. 하는 말 때문인지, 마치 애니메이션 속 사악한 마법사를 연상케 하는 표정이었다.

“김제국이 몸을 원래대로 되돌릴 생각이 없다면, 내가 강제로라도 되돌릴 거다.”

살벌하기까지 한 각오였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오더라도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리라는 예감에, 한호성은 어깨를 살짝 떨었다.

***

그날 이후, 우영찬은 연습이 끝난 후에도 연습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일지까지 써 가며 주술을 실험했다. 그러나 성공은커녕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난 이제 네가 실수로 악마를 소환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아.”

한호성은 우영찬의 하는 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영찬은 붉은 물감에 오미자즙을 섞어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저기에 촛불까지 켜면, 당장에라도 악마가 기어 나올 만한 분위기가 연출될 터다.

“악마가 소환되더라도 나쁘진 않지. 영혼을 대가로 바치고 소원을 빌면 되니까.”

“혹시 네 영혼 말하는 거야?”

“아니, 당연히 김제국 영혼이지. 내 영혼을 왜 바치냐.”

“…….”

이후 우영찬은 촛불을 세팅했다. 그가 초에 불을 붙일 때마다 한호성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행여라도 불이 날세라 걱정스러워서였다. 소화기라면 준비해 뒀으나, 애초에 불이 나지 않아야 했다.

“이쪽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편하게 너 할 일 해, 그냥.”

“으응.”

‘괜찮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한호성은 악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상단에 ‘Night Swimming’이라는 곡명이 볼드체로 쓰여 있다.

이것은 ‘여름, 찰칵!’의 뒤를 잇는 신곡이었다. 두 곡은 마치 낮과 밤 같았다. 전형적인 썸머 송인 ‘여름, 찰칵!’과 달리 ‘Night Swimming’은 차분한 분위기의 신스팝이었기 때문이다.

일렁일렁, 일렁이는 수영장에 튜브를 띄우고

물결에 몸을 맡겨, 생각은 이제 Off

호성은 자신의 파트를 흥얼거렸다.

즐거워야 할 여행지에서까지 고민이 많은 밤. 리조트에서 수영하며 머리를 비운다. 곡은 그런 내용이었다.

가사도, 자작하게 깔리는 드럼 사운드도, 로파이 스타일까지 한호성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여름, 찰칵!’과 다른 양상으로 잘 될 성싶은 곡이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여긴 파라다이스인걸

일단 즐겨 그리고 잊어

어차피 다 잘될 테니까

나지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우영찬이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것이었다.

한호성은 미소하며 다음 가사를 불렀다. 때아닌 듀엣이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MR 없이도 들어 줄 만한 노래였다.

노래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내려앉았으나 어색하진 않았다. 정말 밤의 리조트로 떠나온 듯 편안한 분위기였다.

“다 됐다.”

마침내 마법진을 완성한 우영찬이 허리를 폈다. 붉은 마법진 주위로 촛불까지 켜 두니 그럴듯해 보였다.

“오늘도 거울 깨뜨릴 거야?”

“어. 일단 둥근 모양으로 준비했다.”

“잘 통했으면 좋겠네. 거울에 대한 정보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며칠간, 고서를 연구하는 사학자만큼이나 제논의 블로그를 샅샅이 살핀 두 사람이었다. 제논의 블로그에는 ‘자신을 비춘 거울을 깨뜨린다’라는 내용이 문장만 달리하여 네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게 핵심일 것 같은데, 어떤 크기와 모양의 거울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다.

“시작한다.”

우영찬이 마법진 중앙에 섰다. 그는 채혈용 바늘로 제 손끝을 살짝 찔렀다. 피 서너 방울을 마법진에 떨어뜨린 후, 우영찬은 거울을 힘껏 내던졌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동시에 거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우영찬은 거울 파편이 마법진 구석구석 잘 퍼졌는지 확인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그가 명상하듯 눈을 감았다.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는데…….’

한호성은 가만히 소원했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쯤은 알지만, 제논도 성공한 일이니 우영찬이라고 못 할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제논의 블로그에 ‘간절히 소원하라, 그리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지니.’라는 문구가 있지 않았던가. 단순한 명언이 아니라 주술에 관련된 비법일 수도 있었다.

“…….”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윽고 우영찬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한호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논이야?”

“아니.”

“아…….”

우영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뇌까렸다.

“어차피 쉽게 성공하리라곤 기대도 안 했다. 실패한 것 자체는 아쉽지 않은데, 뒷정리할 걸 생각하니 짜증 나긴 하네.”

“나도 도울게.”

한호성은 잽싸게 달려가 촛불을 껐다. 미리 준비해 둔 캔들 스너퍼를 사용하자, 연기 없이 깔끔하게 불이 꺼졌다.

그러는 동안 우영찬은 빗자루로 거울 파편을 치웠다. 대걸레로 마법진을 닦아 내고 남은 거울 파편까지 수습하고, 그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하고서야 연습실이 본래의 깔끔함을 되찾았다.

“하아…….”

늦은 시간에 몸을 움직였더니 피곤했다. 한호성은 아예 마룻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를 내려다보며 우영찬이 경고했다.

“일어나는 게 좋을걸. 거울 조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맞다.”

한호성은 상체를 일으켰다. 마법진을 그리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번번이 거울을 깨뜨려야 하니 치우는 게 큰일이었다. 이 때문에 미화원까지 고용했지만 손이 아예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무튼 다 끝났으니 돌아가자.”

우영찬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호성은 그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너, 근력이 좀 붙은 것 같아. 예전 같았더라면 날 일으켜 주긴커녕 내 위로 쓰러졌을 텐데.”

“이 정도로 무슨. 아직도 약골인데.”

“제논이 몸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약골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와 비교하면 약골이다.”

진지하게 주장하니까 되레 우스웠다. 한호성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는 슈퍼맨이라도 되나 봐?”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든가. 조만간에.”

조만간, 한호성은 그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정말 조만간에 ‘진짜’ 우영찬을 만날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가능할 것 같았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으로선 잘 되리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한호성은 ‘Night Swimming’의 가사처럼 고민을 떨쳐 버렸다.

***

녹음실은 후덥지근했다. 잡음까지 녹음되면 안 되기에, 녹음실 내에선 냉방 기구를 사용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거기에 다섯 명이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지니 찜통이 따로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프로듀서의 말이 들려왔다. 녹음의 끝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한호성은 손부채질하며 녹음실을 나섰다. 시원한 바깥바람을 맞자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덥지? 형님들, 음료수 하나씩 마셔.”

장영수가 냉장고에서 막 꺼내 온 음료수를 하나씩 돌렸다. 얼마 전 오버 더 리밋이 CF를 촬영한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였다.

한호성은 캔에 찍힌 노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올해 들어선 피차 바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녹음이 벌써 끝났다는 게 안 믿겨.”

이주진이 음료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래?”

“응, 준비 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봐.”

“하긴. 여태까지 낸 곡 중에선 준비 기간이 제일 짧았지.”

다음번 앨범을 준비하기 전에 가볍게 내놓는 디지털 싱글이었다. 그래서 수록곡도 하나뿐이고, 뮤비 촬영에도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다.

한호성이 생각하기엔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듯싶었다. 곡부터가 힘을 뺀 느낌이니, 뮤비도 그런 편안한 분위기인 게 어울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힘을 뺐다고는 해도, 대강 준비한 건 결코 아니었다.

“어? 근데 제논은 어디 갔어?”

이주진의 말에 한호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마지막으로 녹음실을 나선 우영찬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저쪽으로 가던데. 화장실 간 거 아냐?”

설이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호성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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