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웃었다! 이태 형, 방금 웃었지!”
“큼. 아, 안 웃었어.”
“웃는 거 다 봤어. 그치, 해일 형?”
“응.”
옆자리의 문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써 설이태도 탈락하고 말았다.
“내 차례네.”
문해일이 노트북을 받아 들었다. 그는 비장하게 눈을 부릅뜨더니, 단숨에 포스팅을 읽어 내렸다.
“‘거울 속 남자를 보고 나는 묻는다. 너는 너로 살고 싶은 거냐고. 그러자 거울 속 남자가 나에게 묻는다. 자신을 싫어하면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게 가능하냐고. 끝내 나는 거울 속 남자에게 주먹을 날린다. 깨어진 거울 파편에 비친 내 모습이 지독히 슬퍼 보인다.’”
이번엔 웃긴 게 아니라 슬픈 포스팅이었다. 한호성은 제논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제논은 무엇이 그리도 슬펐던 걸까.
‘깨어진 거울 파편이라고…….’
그게 꼭 제논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싶어, 한호성은 한숨을 삼켰다. 한데 순간 눈앞에 과거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때, 깨어진 거울 파편이 있었는데.’
우영찬이 제논에게 빙의한 날, 방안은 엉망진창이었다. 피로 그려진 마법진 옆에 거울 파편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당시엔 ‘저걸 어떻게 치우지.’라는 생각에 막막할 뿐이었는데, 이제야 그것이 석연찮게 느껴졌다.
“다시 내 차례군.”
우영찬의 목소리에 한호성은 딴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는 카메라 앞임을 상기하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
‘제논 챌린지’의 승자는 한호성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난 제논이 이길 줄 알았는데.”
“나도.”
우영찬도 자신이 이길 줄 알았다. 무표정을 유지하는 데엔 자신 있었으니까. 하지만 ‘타락한 내 안에 어둠의 힘이 들끓는다.’라는 문장 앞에서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아까는 웃느라 정신없어서 못 물어본 건데, 그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쓴 거야? ‘타락한 내 안에…….’ 푸흣.”
이주진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웃음보를 참으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진짜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이때 그냥 그런 기분이었나 보다.”
우영찬은 머쓱한 척하며 답했다. 어차피 진짜 김제국이었더라도, 당시에 자신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답하지 못할 터였다.
“호성 형이 이겼네. 형, 소감 발표할래?”
“어? 으응. 우선 이번 챌린지를 수락해 준 제논에게 고맙고…….”
이런 일로 무슨 소감까지 발표하나 싶었지만, 시키면 하는 게 한호성의 성미였다. 한호성은 중요한 자리에라도 선 양 진지하게 소감 발표를 마쳤다.
“……앞으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외롭고 힘들 때면 우리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이상입니다.”
어째 감동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하이파이브는 박수를 쳤다. 의도한 바대로는 아니나,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마무리된 듯싶었다.
“아, 재밌었다.”
이주진은 촬영 장비를 정리하면서도 키득거렸다. 반면 한호성은 말없이 삼각대 다리를 착착 접었다. 조금 전에 느낀 묘한 감각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숫제 등줄기가 서늘할 지경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곰곰이 하냐?”
어느새 곁에 다가온 우영찬이 물었다. 한호성은 그를 돌아보며, 입술만 달싹거렸다.
“하고 싶은 말 있어?”
우영찬의 진득한 시선이 그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른 생각에 잠긴 한호성은 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있는데, 아직 생각 정리가 덜 되어서.”
“뭔데. 그냥 얘기해 봐. 말하면서 정리될지도 모르잖아.”
“그게 말이지…….”
한호성은 우영찬을 데리고 슬그머니 연습실 구석으로 향했다. 워낙 연습실이 넓어, 저 멀리 있는 멤버들에겐 대화가 들리지 않을 터였다.
“너, 방금 제논 챌린지 하면서 뭐 느낀 거 없어?”
“있어. 김제국 그놈, 심각하게 글 못 쓰더라. 걘 차라리 아이돌이 된 게 다행이다. 시인이 되었더라면 망했을 거야. 애초에 등단도 못 했겠지만.”
“……아니, 그런 거 말고. 해일이가 읽은 포스팅 말이야.”
한호성은 핸드폰으로 예의 포스팅을 검색했다. 그는 우영찬과 함께 포스팅을 다시 읽었다.
‘거울 속 남자를 보고
나는 묻는다.
너는 너로 살고 싶은 거냐고.
그러자 거울 속 남자가
나에게 묻는다.
자신을 싫어하면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게 가능하냐고.
끝내 나는 거울 속 남자에게
주먹을 날린다.
깨어진 거울 파편에 비친 내 모습이
지독히 슬퍼 보인다.’
“이게 왜?”
“이 부분, ‘거울 파편’ 말이야. 네가 김제국에게 빙의했을 때, 방 안에 거울 파편이 흩어져 있었잖아.”
“…….”
“그리고 ‘너는 너로 살고 싶은 거냐고.’라는 대목도 왠지 심상치 않아서.”
하나를 수상쩍게 느껴서 다른 부분까지 수상쩍어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호성의 육감은 자꾸만 어떠한 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논은 자신을 싫어했어. 이건 제논의 포스팅에 꾸준히 나타나는 정보야.”
“그래 보이긴 하더군.”
“그래서인지 제논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 ‘소원이라면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다. 부디 나도 ……처럼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글도 있었잖아.”
한호성은 그게 누구인지 얼추 알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영찬아, 너 제논이랑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랬지?”
“어.”
“같은 반인 적은 없었지만 제논에 대해 알았다며. 그럼 반대로, 제논도 널 알지 않았을까?”
“분명 그럴 거다.”
우영찬은 재빈 고등학교의 유명인이었다. 강문 그룹 4세라는 배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영찬 자체가 워낙 눈에 띄어서기도 했다. 3년 내내 전교 1등 자리를 지키며 운동도 잘하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모두가 그의 존재를 알았다.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날 대놓고 질투하는 애들도 많았으니까.”
“…….”
한호성과 우영찬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똑같은 가설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너는 너로 살고 싶은 거냐고.’ 거울 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김제국이 끝내, 그 답을 비틀린 방식으로 찾아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한호성과 우영찬은 머리를 맞대고 김제국의 포스팅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느낌이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일단 메모해 두자.”
“알았다.”
“참, 네 형에게선 아직 연락 없어?”
“연락은 왔는데 좋은 소식이 없어. 내 카드 명세를 추적했는데, 연락이 끊긴 그날을 기점으로 카드 사용도 뚝 끊겼다더군. 어디엔가 숨기라도 한 모양이던데. 도대체 내 몸을 어디로 훔쳐 간 건지, 그 새…… 흠. 김제국은.”
우영찬은 어색하게 말을 고쳤다. 한호성 앞에선 웬만하면 바르고 고운 말만 하고 싶었다. 그가 말하기를 아이돌은 욕도 하면 안 된다는데, 그것보다도 한호성 자체가 욕을 싫어하는 성격인 듯싶어서였다.
“영찬아, 해외 레딧 번역 포스팅은 확인해 봤어?”
“그건 이미 서너 번씩 읽었어. 별다른 정보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 볼게.”
“그럼 난 자작시 위주로 확인해 볼게.”
두 사람은 김제국의 블로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길 한참 후, 우영찬이 고개를 들었다.
“한호성, 이것 봐. ‘마법진의 재료’라는 주제의 글이 있다.”
“어디 봐 봐.”
우영찬이 제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한호성은 포스팅을 소리 내어 읽었다.
“‘반드시 생피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물감 혹은 잘 숙성된 Raspberry Wine에 시전자의 피를 섞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라즈베리 와인? 내가 아는 그 와인이 맞나?”
“복분자즙을 Raspberry Wine이라고 해.”
“……그럼 그게 피로 그린 마법진이 아니라, 복분자즙으로 그린 마법진이었단 말이야?”
어쩐지 냄새가 달큼하긴 했다. 당시엔 벌어진 사태만으로도 경황이 없어서, 빨간 액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정신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그 아랜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있어. 이 마법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
한호성은 마법진 일러스트를 유심히 관찰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방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이렇게 생겼던 것도 같다.
“혹시 사진 찍어 둔 거 있어? 비교해 보게.”
“없어. 혹시 사진 유출되면 나쁘게 기사화될까 봐 일부러 안 찍었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찍어 둘걸…….”
“잘했어.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혹시 눈치챘어?”
“뭔데?”
우영찬이 스크롤을 내려 한 지점을 가리켰다. 스페인어인지, 프랑스어인지 모를 언어로 적힌 문장이었다.
“이 부분의 번역이 잘못됐어. 김제국은 ‘동그라미 속에 육망성을 두 개 그려라.’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엔 ‘동그라미 속에 육망성을 두 번 겹쳐 그려라.’라고 쓰여 있잖아.”
“잠시만. 이게 어느 나라 말인데?”
“스패니시.”
“너 스페인어 할 줄 알아?”
“Si.”
“씨? 왜 욕을 하고 그래.”
“아니, ‘응’이라고. Si.”
“아…….”
한호성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이 와중에도 ‘해외에서 공연하게 되면 영찬이는 언어가 잘 통해서 좋겠다.’ 따위의 생각이 절로 드는 스스로가 어지간하게 느껴졌다. 그는 우영찬에게 물었다.
“그런데 번역을 잘못한 게 왜 흥미롭다는 건데?”
“김제국의 주술이 성공한 게 우연 같아서.”
우영찬은 이제, 몸이 뒤바뀐 게 자연 현상이 아닌 제논의 고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호성도 정황상 부인할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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