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50화 (50/123)

#50

“죽어! 죽으라고!”

정확히 중심만 노린 주먹이 연달아 떨어졌다. 감히 한호성을 상대로 서다니, 가만둘 수 없었다. 가라앉지 않는다면 거세형에 처해야 할 중죄였다.

“화장실에 벌레라도 나왔어? 대체 뭘 죽이려고 그러는…… 헉.”

졸린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다가온 설이태가 기겁했다. 빼꼼히 열린 문 틈새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무지막지하게 패는 남자를-불행히도 그는 설이태가 속한 그룹의 멤버였다- 목격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이 확 달아난 설이태는 화장실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김제논, 왜 이래? 이러다 터지면 어쩌려고!”

“상관하지 마. 이깟 더러운 건 그냥 터지는 게 나으니까!”

“아, 아니, 무슨 일인지 말을 해 봐.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를 입에 담고 싶지조차 않았다. 우영찬은 말없이 주먹질을 계속했다. 짱돌 같은 주먹이 그것을 매섭게 때렸다. 이랬는데도 가라앉지 않는다니, 참 독한 놈이었다.

“제논!”

보다 못한 설이태가 우영찬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영찬은 그를 뿌리치려 했으나, 팀 내 최약체인 몸으론 소용없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해 보라니까!”

“놔!”

“……너 설마 생리 현상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설이태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불룩한 아랫도리와 ‘이깟 더러운 건’이란 지칭. 그로부터 미루어 보건대, 제논은 자신의 생리 현상에 충격받은 듯싶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패닉 수준이었다.

“너무 자괴감 느끼지 마. 평범한 일이잖아. 학교 다닐 때 보건 수업 들었지?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씨발, 네가 뭘 알아!”

“당연히 알지, 나도 남자인데. 아침에 서는 건 특히나 자연스러운…… 제논!”

우영찬은 설이태가 방심한 사이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냈다. 그리고서는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기겁한 설이태가 말리는 통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자해는 안 돼!”

“자해하는 거 아니라니까!”

“네 몸을 소중히 여겨야지!”

“내 몸 아니라고!”

설이태는 최선을 다해 우영찬을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우영찬은 돌멩이로 조개를 내리치는 수달처럼 아랫도리를 내리쳤다. 그곳이 터질 것 같았으나 멈출 수 없었다. 김제국의 그것이 이기나, 자신의 주먹이 이기나 끝까지 가 볼 작정이었다.

“아침부터 뭐 하냐?”

“무슨 일이야?”

기상한 문해일과 이주진이 설렁설렁 거실로 나왔다. 그 기척을 알아차린 설이태가 외쳤다.

“도와줘!”

“왜, 뭔데?”

“제, 제논이 또……!”

반사적으로 마법진 사건을 떠올린 두 사람은 지체 없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풍경은 다른 의미로 엽기적이었다.

“……뭐 하냐, 너네.”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달라니까? 얘 이러다 진짜 터지겠어!”

“아니,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냐.”

문해일은 우영찬의 불룩한 다리 사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인지, 혹은 맞아서 부어오른 건진 모르겠으나 뭐가 됐든 간에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우영찬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꺼져!”

“들었지? 꺼지라잖냐. 설이태 너도 말릴 만큼 말렸으면 그냥 나와.”

태연하게 하품하며, 문해일이 화장실을 나섰다. 설이태는 간절한 표정으로 이주진을 바라보았다.

“너라도 좀 도와줘.”

“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에 배웠는데 말이지, 거세하면 음역대가 높아진대. 그래서 18세기엔 고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거세시키기도 했다던데. 우리 제논이 남돌 최초 카스트라토 되는 거야?”

“이주진!”

그동안 제논에게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주진도 은근히 엉뚱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믿었던 멤버들에게 배신당한 설이태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소란은 금세 잦아들었다. 김제국의 아랫도리가 결국 모진 주먹질을 이기지 못하고 수그러든 덕분이었다.

“허억, 허억…….”

“하아…….”

격하게 움직인 탓에 체력이 떨어져 헐떡거리는 우영찬을 보며, 설이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하여간에 보통은 아닌 성질머리였다. 설령 생리 현상이 싫더라도 구구단을 외우거나 찬물을 끼얹으면 되지, 왜 때린단 말인가.

“으으.”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그곳이 다 아파, 설이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주진은 그런 그와 우영찬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침부터 남자 둘이 화장실에서 헐떡이는 거 보니까 기분이 참…… 그래.”

“…….”

“뭔진 모르겠지만 볼일 끝났으면 이만 나와. 아침이나 먹자.”

이주진이 먼저 화장실을 쏙 빠져나갔다. 설이태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뒤따랐다.

***

“불쌍한 호성 형.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 난리 통에도 잠이 안 깰까. 새근새근 잘 자네.”

작은 방을 빼꼼히 들여다본 이주진의 말이었다. 소파에 앉은 문해일이 말을 받았다.

“깨어났더라면 더 불쌍해졌을걸. 그 꼴을 봤다면 말이지.”

“그건 그래.”

이주진과 문해일의 시선이 동시에 우영찬에게로 쏠렸다. 워낙 민감한 사생활이니만큼 묻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왜 그렇게 무식하리만치 제 아랫도리를 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영찬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무언의 질문을 무시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에 대해 고찰해야만 했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긴 하지.’

우영찬은 김제국에게 빙의한 후, 단 한 번도 혼자 해결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욕이 쌓였다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 건 피로나 갈증처럼, 제 의지와 별개인 신체적 증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야한 꿈이 계기라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우영찬이 느끼기에, 이것은 단순한 성욕의 분출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깊숙한 감정의 문제다.

‘나는, 한호성을…….’

아이돌로서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그에게 입덕했음을 인정하는 건 쉬웠다. 아이돌(idol)의 어원이 괜히 우상(偶像)인 게 아니니까. 좋아하라고 있는 존재이니 마음 놓고 좋아해도 될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그게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은 있어야 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작정 한호성에 대한 호감을 키운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후…….”

복잡한 속을 삭이느라 한숨만 연거푸 내쉬던 그때. 딩동, 인터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이주진이 인터폰을 확인했다. 공동 현관을 비추는 화면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우 전무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이주진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우 전무가 누구야?’라고 입 모양으로 묻자, 문해일과 설이태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죄송하지만 주소를 헷갈리신 것 같은데요.”

-실례지만, 우영찬 도련님 친구분 되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우영찬 도련님께 말씀 전해 주십시오.

“예? 우영찬 도련님이라고요?”

생각에 잠긴 중에도 제 이름만큼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우영찬은 스툴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열림’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들어와.”

공동 현관의 문이 열리고, 인터폰 연결이 뚝 끊겼다. 그에 이주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함부로 문 열어 주면 어떡해! 뭐 하는 사람일지 알고.”

“내 손님이다.”

“우영찬이란 사람을 찾는데 왜 네가……. 아, 너 설마!”

그제야 ‘제논’이 꾸준히 외치던 이름이 우영찬이라는 게 떠올랐는지, 이주진이 화들짝 놀랐다.

더 이야기할 새도 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우영찬은 거리낌 없이 현관으로 걸어갔다.

“제논, 문 열면 안 돼!”

“내 손님이라니까.”

우영찬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그 앞에 선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오랜만입니다, 김 비서. 빈정거리려는 건 아니지만, 보다시피 내 몸이 이래서 안녕하지는 않습니다. 형에게 사정을 대강이나마 전해 들었겠지요.”

마네킹 같던 김 비서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아마 김 비서는 우성한에게 언질 받았음에도 그걸 완전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초면인 남자가 막내 도련님처럼 굴고 있으니, 인지 부조화가 올 만도 했다.

우영찬은 쓴웃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주시죠. 형에게 전달받은 물건이 있을 텐데요.”

“……예, 도련님.”

김 비서가 쇼핑백을 공손히 내밀었다. 강문 전자의 로고가 찍힌 것이었다. 그 안에 특별히 보안 설정을 걸어 둔 핸드폰이 있을 터였다. 집안 사업 중 핸드폰 제조가 있다는 게 이럴 땐 참 편리했다.

“전무님 명의의 신용 카드와, 말씀하신 연습실의 카드 키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연습실의 주소는 메시지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형답게 빠른 일 처리로군요. 아니, 성질 급한 일 처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알겠습니다. 더 남은 이야기가 없다면 이만 들어가도 좋습니다.”

“예, 도련님.”

김 비서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먼저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저러고 있을 고지식한 사람이기에, 우영찬은 현관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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