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감탄하는 한호성을 보며 우영찬은 ‘진심이냐?’라는 물음을 삼켰다. 자신이 꺼낸 말이긴 하지만 그걸 믿는 건 심각하지 않나. 누가 봐도 입술 한번 맞춰 보려는 수작질인데 말이다.
‘저렇게 순진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 누구보다 험한 속셈을 품은 주제에, 우영찬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말했다.
“그럼 한 번 시도해 볼까.”
“응, 그러자. 근데 여자는 절대 안 돼. 애초에 너한테 키스해 줄 여자도 없지만, 그랬다간 스캔들 터질 테니까.”
“그렇지.”
어차피 우영찬도 다른 사람에게 키스받고 싶은 마음 따윈 전혀 없었다. 그는 적당히 호응하며, 한호성이 알아서 ‘그 말’을 하길 기다렸다.
“남자가 키스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 동화 속에서도 왕자가 키스하곤 했잖아.”
“맞지.”
“그러니까 영찬아, 나랑 키스해 보자.”
키스하자는 말이 밥 먹자는 말보다 자연스러웠다. 로맨틱한 분위기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우영찬은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기로서니 냅다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안 되는 법이다. 대어를 확실히 낚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했다.
“괜찮겠냐? 나랑 키스해도.”
“응. 뭐 어때, 배우는 연기할 때 카메라 앞에서도 키스하는걸. 배우는 아니지만 나도 비슷한 직업군으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나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이라면 하겠다고 말도 안 꺼냈을걸. 안 그래도 너한테 미안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너무 좋지.”
그렇단 말이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우영찬은 입매를 살짝 끌어 올렸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종알거리는 저 입술을 확 삼켜 버리고 싶었다.
“나 그럼 정말 키스한다.”
“음,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동화처럼.”
도대체 어릴 적에 무슨 동화를 보고 자란 건지, 한호성은 아예 우영찬의 손목을 잡아끌어다 침대에 눕혔다. 졸지에 한호성의 침대에 눕게 된 우영찬은 몸을 경직했다. 그래 봤자 똑같은 방에 똑같이 생긴 침대인데, 매일 밤 그가 잠든 장소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이대로 하면 되겠지?”
한호성이 멋쩍은 듯이 중얼거렸다.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이 우영찬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이번이 한호성의 첫 키스란다. 자신의 첫 키스이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지금 김제국 몸뚱이인데.’
그러니 한호성은 김제국의 입술과 첫 키스를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은 남의 몸으로 첫 키스를 하게 될 테고 말이다.
“잠깐.”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우영찬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 바람에 막 고개를 숙이던 한호성과 이마가 부딪혔다.
“앗!”
“아, 미안.”
우영찬은 손바닥으로 한호성의 흰 이마를 문질러 주었다. 이 와중에도 이마가 둥그스름하니 예쁘다는 생각이나 드는 걸 보면 자신도 참 어지간했다.
“왜?”
“역시 이건 아닌 것 같다. 키스한다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리도 없고.”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그럴 리가 있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우영찬은 그저 한호성의 이마를 살살 쓰다듬을 뿐이었다. 이렇게나 순진하다 못해 맹해서야, 온갖 나쁜 놈들이 다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역시 자신이 곁에 붙어서 지켜 주는 수밖에 없을 듯싶었다.
“형이 주술에 관해 알아보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소득이 있을 거다. 키스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정 안 되면 시도해 보자.”
“그래.”
어쩔 수 없다만 그냥 물러나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웠다. 우영찬은 끝까지 꼼꼼하게 미끼를 뿌렸다. 아니나 다를까, 한호성은 흔쾌히 미끼를 물었다.
우영찬은 한호성의 이마에서 손을 거두었다. 저 예쁜 입술을 눈앞에 두고 키스할 수 없다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이로써 자신의 몸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
‘그럼 영찬아, 나랑 키스해 보자.’
한호성이 그리 말하며 자신을 침대에 눕혔다. 우영찬은 뿌듯한 기분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호성은 흰색 마린 룩을 입고 있었는데, 무대에서는 청량하기만 하던 그 복장이 지금은 어쩐지 야하게 느껴졌다.
‘괜찮겠냐? 나랑 키스해도.’
‘응. 뭐 어때.’
성품을 드러내듯 맑은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사슴 같은 목, 세일러 카라 사이로 보이는 빗장뼈. 모든 게 보기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붉은 입술이었다.
‘그거 아냐? 네가 부르는 노래도 좋은데, 네가 노래 부르느라 입술 달싹거리는 건 더 좋아.’
‘……몰랐어. 앞으로도 그냥 모르는 척할게.’
‘그러든가.’
괜히 노래보다 입술이 좋다고 해서 한호성을 서운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우영찬은 목을 울려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나 진짜 키스할 거야. 이젠 내 몸이라서 거리낄 것도 없거든.’
‘으응.’
이제야 조금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다. 하지만 우영찬은 품 안에 들어온 대어, 아니, 인어 왕자 같은 한호성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한호성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췄다.
‘…….’
호성의 입술은 보드라웠다. 사람의 신체 중 이토록 보드라운 부위가 있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혀는 말캉말캉하고 축축해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우영찬은 그의 혀를 가볍게 깨물고 빨아들여,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어느 순간 타는 듯이 목이 말랐다. 이 갈증을 해소하려면 한호성을 온통 마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우영찬은 가히 게걸스럽게 한호성의 입술을 탐했다.
‘읏, 응…….’
어째 낑낑거리는 듯한 신음이 한호성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영찬은 사랑스러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한호성을 넉넉히 안을 수 있는 제 몸을 되찾아서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어, 그런데…….’
혼몽한 중에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언제 제 몸을 되찾았던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기껏 키스 수락까지 받았는데, 김제국에게 빙의한 상태라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말이다.
“……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흐트러진 모습의 한호성이 아닌 천장이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마찬가지였다.
“…….”
꽉 다문 잇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기에 황당한 것이었다.
자신이 한호성을 상대로 야한 꿈을 꿨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아랫도리가 우뚝 섰다.
“이런 씨발.”
우영찬은 그것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비록 몸이 바뀌었으나 자신도 김제국도 성인 남성인 만큼, 이게 어떤 현상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이가 없는 나머지 우영찬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젠 하다 하다 김제국의 몸으로 그 짓까지 하게 생겼다. 이건 단순히 김제국으로서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왜 그런 꿈을 꾼 거냐고.’
우영찬은 한호성에 대한 제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바로 팬심이다. 요즈음은 그 팬심이 다소 과해진 듯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상식적인 범주 내라고 생각했다.
그 필리아(philia: 고대 그리스인들이 분류한 사랑의 종류 중 하나. 친구나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마음이 언제 에로스(eros: 고대 그리스인들이 분류한 사랑의 종류 중 하나. 육욕적인 사랑.)로 변질하였는지는 우영찬마저 알지 못했다. 한호성의 입술을 보고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충동일 뿐이었단 말이다.
‘이걸 어떡하지.’
우영찬은 몸을 일으켰다. 생각이야 나중에 해도 되었다. 일단은 급한 사정부터 처리해야만 했다.
옆 침대를 보니, 한호성은 아직 새근새근 잠든 채였다. 우영찬은 상황도 잊고 그의 말간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는 중인데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 꼭 천사 같았다.
“……아, 씨발.”
사람이 기껏 순수한 감상에 젖어 있는데, 아랫도리가 더욱 힘을 받았다. 우영찬은 불편한 걸음걸이로 침실을 나섰다. 이따위 추한 모습을 한호성에게 보일 순 없으니 조용히 처리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화장실에 들어갔어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장 정석적인 해결 방법은 손으로 처리하는 건데, 그것을 결코 만지고 싶지 않았다.
우영찬은 욕설을 중얼거리며 바지를 끌어 내렸다. 그러자 그것이 브리프 위로 불룩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
먹지도 않은 아침이 체한 듯한 기분이었다. 우영찬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노려보았다.
상당히 괘씸하지 않나. 감히 김제국의 몸 주제에 한호성을 상대로 서다니.
그리 생각하니 짜증이 확 치솟았다. 이래서야 절대 끝까지 갈 수 없었다. 그랬다간 김제국이 한호성을 상대로 ……한 셈이 되어 버릴 테니까.
“그냥 죽어!”
우영찬은 그것을 냅다 주먹질했다.
퍽, 살과 살이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심한 고통이 아랫도리를 강타했으나 우영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것을 주먹으로 때려서라도 가라앉힐 작정이었다. 제깟 놈이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아파도 세우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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