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48화 (48/123)
  • #48

    “주진아…….”

    “아, 아니 형,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아는데, 솔직히 관심받기엔 이것만큼 좋은 게 없을걸?”

    “맞아. 그리고 요즘은 제논도 자기 흑역사 갖고 드립 치던데?”

    문해일이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한호성은 걱정스레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랬다간 제논이 상처받을 거야.”

    우영찬은 한호성이 말하는 ‘제논’이 자신이 아닌 김제국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한호성이 그놈을 염려하는 걸 보려니, 괜히 배알이 뒤틀렸다.

    “한다.”

    우영찬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까짓거, 못 할 이유도 없다. 상처받더라도 제논이 받지 자신이 받는 건 아니잖은가.

    “뭐?”

    “아싸!”

    “봐, 형. 제논도 괜찮다잖아.”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아이디어를 낸 삼인방은 벌써 콘텐츠가 성공한 양 좋아하고, 한호성은 아미를 살포시 찌푸렸다.

    “너 ‘제논 챌린지’가 뭔지 알긴 해?”

    “알아. 위튜브에서 봤어.”

    ‘제논 챌린지’란 웃음 참기 게임의 일종이었다. 제논의 블로그 포스팅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린 사람은 탈락, 마지막까지 웃음을 참는 사람이 승. 그런 간단한 규칙이었다.

    “그걸 하겠다고? 네가……?”

    “어.”

    안절부절못하는 한호성을 보니, 꼭 하고 싶어졌다. 제논을 그토록 염려하는 건가. 정황상 제 몸을 차지한 데다 연락이 끊긴 놈인데도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내일 하도록 하지.”

    “오, 제논. 웬일이야? 이렇게 적극적이게?”

    “너도 사실은 ‘제논 챌린지’ 하고 싶었던 거 아니냐?”

    세 명은 우영찬의 검은 속내도 모르고 조잘거렸다. 유행이 조금 지났긴 하지만 네가 원조니까 괜찮을 거라느니, 하는 김에 우리도 다 같이 해 보자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래, 제논이 괜찮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얘기 다 끝났으면 나 먼저 씻어도 될까?”

    “응. 우린 다 씻었어.”

    “나도 상관없다.”

    우영찬의 말에, 한호성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영찬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이왕 쓸 마음이라면 김제국이 아닌 자신에게 쓰는 게 마땅했다. 한호성이 그깟 놈을 신경 쓰니 괜히 심술부리게 되는 거였다.

    ***

    우영찬은 한호성과 교대하듯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가 먼저 씻은 탓에 수증기가 자욱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축축한 공기와 함께 향긋한 샴푸 향이 폐부를 채웠다.

    “…….”

    잔향을 음미하다 말고 제정신이 들었다. 우영찬은 샤워기를 틀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인가 싶었다. 남이 몸을 씻은 흔적을 불쾌해하긴커녕 색다른 흥미처럼 여기다니.

    사실 본래 같았으면 축축한 화장실은 아예 발도 들여놓지 않았을 자신이다. 본가에서 가족과 살 적엔, 누군가 샤워실을 썼으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다른 샤워실에 들어가곤 했다.

    흐르는 물에 몸을 씻으며 우영찬은 두 달 전을 떠올렸다. 그땐 네 명과 공용으로 한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완벽히 적응된 건 아니었다.

    ‘형한테 숙소도 준비하라고 할 걸 그랬나.’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멤버들이 따로 살면, 아무래도 동거할 때보다 일정을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숨겨진 애인이 있는 게 아니냐는 둥 루머가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왜 그런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SNS를 통해 배운 바에 따르면 그러했다.

    ‘그래도 단둘이 살면 편하긴 하겠군.’

    이주진은 사람이 나쁘지는 않으나 좀 시끄러웠다. 반면 설이태는 지나치게 조용해서 불편했다. 문해일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한호성은 괜찮았다. 기본적으로 배려심이 뛰어난 성격이라 함께하기 편하고,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행동거지가 조용조용한 데다 잠버릇마저 얌전해서 동거인으로선 이보다 좋은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그냥 같이 살까.’

    우영찬은 무심코 떠올린 생각에 혹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것쯤은 자신도 알았다. 김제국이야 루머가 터지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한호성이 그래서는 안 되니. 애초에 한호성이 둘만의 동거를 수락할지도 미지수였다.

    우영찬은 상념을 접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에 보글보글한 거품이 배수구로 흘러갔다.

    ***

    아무 생각 없이 방에 들어선 우영찬은 멈칫했다.

    “다 씻었어?”

    한호성이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태블릿 PC로 무슨 인터넷 강의를 듣는 모양인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스르륵 흘러내린 파자마 틈새로 속살이 보이는 게 문제였다.

    “…….”

    반듯한 빗장뼈와 첫눈처럼 흰 피부, 그리고 언뜻 보이는 가슴팍. 그 무방비한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뛰었다. 더운 피가 몸 구석구석 뻗어 나갔다.

    “어? 너 뺨이 좀 붉은 것 같은데. 혹시 열 있어?”

    한호성이 몸을 일으켰다. 열을 재려는 듯 손을 뻗어 와, 우영찬은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럼 다행이고. 샤워한 직후라 몸이 뜨겁나 보다. 더우면 에어컨 켜.”

    우영찬은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지금은 에어컨 바람보다 바깥바람을 맞고 싶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영찬은 열없이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귓불에까지 열이 올랐던지, 손안의 물컹한 살덩이가 뜨뜻했다.

    “너 근데 정말 괜찮겠어?”

    “뭐가.”

    분명 ‘제논 챌린지’에 대한 염려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영찬은 되물었다.

    “계속 활동하는 거 말이야. 너무 고생스럽잖아.”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돌아보았다.

    “괜찮다니까.”

    “……내가 너한테 괜히 눈치 줘서…….”

    한호성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 위에 앉아 꾸물거리는 것이, 저대로 내버려 두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색이었다.

    하여간에 쓸데없이 사서 마음고생하는 녀석이다. 우영찬은 씩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눌렀다. 한호성에겐 좀 미안하긴 한데, 그가 절절매는 걸 보니 못된 즐거움이 솟구쳤다.

    “난 하기 싫은 건 안 해.”

    “…….”

    “네가 아무리 눈치를 줘도 진짜 싫었으면 안 했을 거다.”

    “으응.”

    그제야 한호성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안도의 빛을 띤 눈동자가 순하디순했다.

    “처음에 네가 말했잖아. 인생 경험한다 치고 같이 활동하면 안 되냐고. 그냥 그 연장선일 뿐이니까.”

    “영찬아…….”

    “그리고 나도, 잠시나마 몸담은 그룹이 휘청하는 건 보고 싶지 않고.”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고백이다. 우영찬은 하이파이브의 팬이 아닌 한호성의 개인 팬이었으니. 사실 악성 개인 팬, 소위 ‘악개’라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너 혹시 성인(聖人)이야? 왜 이렇게 착해? 진짜 너무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난 너한테 해 준 것도 얼마 없는데.”

    그건 그렇긴 하다. 우영찬은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앞으로 널 세인트 영찬이라고 부를게!”

    “오버하지 마.”

    “그럼 영찬 님이라고 부를까?”

    “오버하지 말라니까.”

    하지만 ‘영찬 님’은 조금 좋을지도 모르겠다. 한호성이 다소곳하게 양손을 모으고 ‘영찬 님’이라 부르는 걸 상상하고야 만 우영찬은 다시금 뺨을 붉혔다. 어쩐지, 이상한 취향이 생길 뻔한 것 같다.

    “그래도 진짜 잘 됐다. 네 형도 만나고, 네 몸도 무사한 것 같으니까. 아마 제논도 별일 없이 잘 있겠지?”

    “…….”

    “이제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건 어떡해야 하는 거지…….”

    ‘역시 물약을 샀어야 했나.’라며 한호성이 중얼거렸다. 우영찬은 기가 막혀 내뱉었다.

    “사긴 뭘 사. 됐어, 해결책이 뭔진 몰라도 그건 아닐 거다.”

    “하지만 뭐라도 시도하는 편이 낫잖아.”

    “그 시도가 꼭 사기꾼 주머니 불려 주는 방식이어야 하냐는 거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한호성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문득, 우영찬은 그의 입술에 시선을 빼앗겼다. 화장을 지웠을 텐데도 불그스름하고 적당히 도톰한 입술.

    저 입술은 어떤 맛일까.

    우영찬 자신도 어이없을 만큼 갑작스러운 욕망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놀랍지도 않았다. 사실 자신은, 이전부터 이런 걸 궁금해했던 것 같다.

    “……한호성. 그냥 하는 말인데.”

    “응.”

    “개소리라는 건 나도 아는데, 그냥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이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봐.”

    Red means stop, 언젠가 한호성이 부른 노래 가사가 뇌리를 스쳤다. 그의 입술은 신호등처럼 붉은색이었다.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영찬은 기어이 입을 열었다.

    “키스를 받으면 마법이 풀리지 않을까? 저주에 걸린 동화 속 공주처럼.”

    한호성이 눈이 크게 뜨였다. 가뜩이나 큰 눈이 저렇게까지 더 커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동화 운운은 무리수였군.’

    우영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괜히 수작 부린 탓에 한호성과의 관계만 어색해지게 생겼다.

    “……그럴듯해!”

    한데 호성이 그 큰 눈을 부담스러우리만치 반짝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

    “맞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동화에서는 꼭 키스로 마법이 풀리곤 하잖아. 영화나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는 클리셰고. 하다못해 우리 데뷔 곡 ‘Frog Prince Magic’에도 ‘너의 입맞춤에 나는 나로 존재해’라는 가사가 나올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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