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46화 (46/123)

#46

‘눈치 못 챘겠지?’

한호성은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만약 자신이 우영찬의 친형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눈치챘더라면, 그거야말로 아이돌 그만두고 돗자리 깔아야 할 일이지만 괜스레 걱정스러웠다.

얼마지 않아 밴이 숙소에 도착했다. 밴은 세 사람을 내려 준 후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는 강문 전자 본사였다.

***

“태워 줘서 고마워, 영수야.”

“뭘. 이게 내 일인데.”

“갈 땐 내가 운전할 테니까 얼른 퇴근해. 참, 차비를…….”

“아, 뭐 이런 것까지. 됐어, 됐다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현금을 준비해 뒀다. 한호성은 장영수의 주머니에 오만 원권 두 장을 찔러 넣었다. 스물한 살밖에 안 된 애가 이 시간까지 고생하는데, 그냥 돌려보내기엔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형, 정말 운전해서 돌아갈 수 있겠어?”

“그럼. 나 이래 봬도 4년 무사고 경력자잖아.”

4년 동안 숙소와 회사만 줄기차게 왕복한 주제에 한호성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장영수는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키 줄게. 그리고 차비 잘 받을게. 고마워, 형.”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장영수가 택시를 잡아타는 것까지 확인한 후, 한호성은 우영찬을 돌아보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왜?”

“뭐가?”

“너희 형 만나러 가는 길이잖아. 더 신나 할 줄 알았는데.”

“…….”

“아니면 신나는데도 아닌 척하는 거야?”

장난스레 묻자, 우영찬이 화풀이하듯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실감이 안 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강문 전자 본사에 들어섰다. 로비의 경비원에게 방문 목적을 말하자, 잠시 기다려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한호성은 번듯한 건물을 둘러보았다.

“봐, 나야 처음이지만 너한텐 익숙할 장소잖아. 이제 좀 실감 나지 않아?”

“글쎄.”

한호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실감의 문제가 아니라, 우영찬에게 꼭 다른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생각을 저리도 곰곰이 할까. 귀가를 앞두니 새삼 그동안의 고생이 눈앞을 스치기라도 하는 걸까.

하기야 당초 예정보다도 고생한 우영찬이니만큼 감상이 남다를 순 있겠다 싶었다.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그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집에 돌아가면 넌 어떡할 거야.”

“응? 나야 뭐……. 제논이 돌아오면 좋고, 안 돌아와도 어쩔 수 없고. 신곡 발표를 늦추거나 4인 체제로 가야겠지.”

“…….”

“뭐야, 그거 때문에 고민이었어? 너 진짜 알면 알수록 성실하다. 책임감이 진짜 제논보다도 뛰어난 것 같…… 음, 이건 못 들은 거로 해 줘.”

제논의 몸을 앞에 두고 있으려니 어째 당사자 앞에서 욕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뒤에서 욕하는 것도 나쁜 건 마찬가지이므로, 한호성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없으면 하이파이브의 활동에 차질이 생긴다는 거군.”

“……너한테 부담을 지우고 싶진 않은데 솔직하게 답하자면,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선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원래 사람 일은 어떻게든 되기 마련이니까.”

“‘어떻게든 된다.’라고? 지금 고작 그걸 해결책이랍시고 말하는 거냐?”

“하지만 정말인걸. 그동안도 어떻게든 됐으니까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 거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짙은 남색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한호성에게 정중하게 묵례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한호성은 그를 뒤따랐다. 우영찬도 함께 걸음을 옮기자, 남자가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한호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침묵했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복도를 지난 후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는 동안 한호성은 방금 한 대화를 반추했다.

‘확실히, 우영찬이 없으면 여러모로 힘들긴 할 거야.’

고작 두 달 함께 활동했을 뿐이지만 우영찬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자신만 하더라도 어느새, 우영찬이 없는 하이파이브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호성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쉽다.”

“…….”

“그동안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띵, 기계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남자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열림 버튼을 눌러 주었다. 한호성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꾸벅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한데 우영찬은 멍하니 서 있었다.

“영찬아?”

그를 부르자, 그제야 우영찬이 걸음을 옮겼다. 힘주어 내딛는 걸음이 비장하기마저 했다.

“너, 혹시…….”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많이 피곤하냐고 묻고자 입을 뗀 그때였다. 어느새 저만치 걸어간 남자가 사무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 필시 저곳이 우성한의 사무실이리라.

“가자.”

우영찬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한호성은 어리둥절한 정신을 다잡으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옅은 향이었다. 향수일까, 어쩌면 디퓨저 따위의 향일지도 모른다. 밤의 사무실과 잘 어울리는 내음을 맡으며 한호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상한 것보다도 넓은 공간이었다. 책상은 물론 성인 남성이 누울 수도 있을 만큼 긴 소파, TV. 그 외 사무용 가구가 들어가고도 공간이 넉넉할 정도였다. 다른 방으로 연결되는 듯한 문도 있어, 사무실 전체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단정한 수트 차림이었다. 그때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배우 같아 보였는데, 지금은 사무실이라서인지 영락없는 회사원 같았다. 더 정확히는 드라마 속 회사원.

‘완전 본부장 상이시잖아. ……전무님이시지만.’

한호성은 쓸데없는 생각을 얼른 지워버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호성 씨도, 바쁘신 중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동생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다고 전달받았습니다만.”

“네. ……저, 혹시 전무님께선 동생분이 어디에 계신 줄 아시나요?”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십시오. 그리고 제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한호성 씨는 아십니까?”

우영찬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한호성은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눈짓으로 저지했다. 어차피 얘기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 전에 쿠션을 깔아 둬야만 했다. 우성한이 이 괴상한 상황을 맞닥뜨려도 지나치게 놀라지 않도록.

“우선,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어요?”

“……약속하겠습니다.”

하긴, 잘 놀랄 성격처럼 보이진 않는 우성한이다. 대신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잘 믿는 성격도 아닌 듯싶어 문제였다.

“저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해 주세요. 아니,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셔도 좋은데, 끝까지 이야기할 기회는 주셔야 합니다. 판단은 그때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요.”

“들어 보죠. 대체 어떤 이야기기에 ‘미쳤다고’ 하는지.”

우성한이 턱 끝을 까딱했다. 이제 정말 자초지종을 알려야 할 때였다.

“두 달 전, 제가 속한 그룹의 멤버가 쓰러진 후 깨어졌는데요…….”

한호성은 설명을 시작했다.

***

이야기하는 내내 우성한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경비를 불러 ‘이 미친놈들 끌어내.’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노릇이었지만, 한호성은 진땀이 났다.

‘이거 정말 어려운 거구나.’

그동안 꼬박꼬박 ‘나는 제논이 아니다.’라고 외친 우영찬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아직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에요.”

어쨌거나 한호성은 설명을 마쳤다. 그런데도 우성한은 말이 없었다. 탐색의 기색이 여실한 시선으로 자신을, 그리고 제논을 응시할 뿐이다.

결국 우영찬이 앞으로 나섰다.

“형. 나야.”

“…….”

“요즘도 불면증 때문에 고생해?”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그럼 듣고 판단해 보든가. ……아빠가 엄마한테 프러포즈 한 날은 싸라기눈 내리던 12월 31일. 안개꽃 다발을 주면서 청혼하셨지. 엄마는 무슨 꽃다발이 안개꽃이 메인이냐고 타박하셨지만, 아빠는 싸라기눈 같아서 이걸로 준비했다며 우기셨고. 하여간에 우리 아빠지만 참 뻔뻔하시다니까.”

“우리 집 막내 이름은.”

“우영찬. ……물론 이걸 물어본 게 아니겠지. 맥시랑 곰곰이 말하는 거지? 둘 다 잘 지내고 있어? 맥시 피부병은 좀 괜찮아졌는지 모르겠네. 여름이라서 더 관리하기 어려울 텐데. 곰곰이는 요즘도 원반 던지기 좋아하고?”

“아버지께서 가장 선호하시는 휴양지가 어디야.”

“로스 카보스, 멕시코.”

우성한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치 스피드 퀴즈 게임을 하듯, 형제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내가 이 대화를 듣고 있어도 되는 걸까…….’

심지어 강문 그룹에 관련된 화제까지 나오자, 한호성은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외부인에겐 공개되지 않은 정보임이 분명했다.

‘이러다 산업 스파이로 오해받으면 어떡하지?’

급기야 덜컥 겁이 난 그때, 우성한이 나직이 말했다.

“우영찬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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