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45화 (45/123)
  • #45

    “아까 선배 운운하던데.”

    “아, 너한테는 선배지. 내가 플레임스타로 데뷔할 때 만난 애거든.”

    호성의 목소리에 씁쓸한 기색이 배어 나왔다. 예전 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한호성은 언제나 조금 침울해하곤 했다.

    “그때는 킬러보이스보다 플레임스타가 더 인기 많았어.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도 인기 많은 편이었고. 그때 채현수는…… 나를 질투하면서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 했어.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그게 채현수의 전략 같은 거였나 봐.”

    “전략이라고?”

    “응. 자기보다 인기 많은 사람에게 붙어서 대중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도장 찍는 전략. 그리고…… 자기보다 급이 높은 사람을 곁에 둬서, 자기까지 급이 높아지도록 하는 전략.”

    우영찬은 대놓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본 한호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지. 무슨 자격증 시험 급수 따는 것도 아니고, 사람한테 급이 어딨어. 그러니까 채현수의 전략이라기보다 착각이었던 거지.”

    그리고 한호성 자신도 착각했었다. 채현수가 자신의 친구이리라는 착각.

    “그 사건이 터지자마자 연락이 딱 끊기더라고. 우린 원래 대중도 알 정도로 친한 사이였는데, SNS에서 나랑 찍은 사진도 싹 내리고. 누가 내 이름만 꺼내도 얘기하지 말라고 화냈대.”

    “……왜 그렇게까지?”

    “나랑 친해진 것과 같은 이유 아닐까? 망한 아이돌을 곁에 두면 자기까지 망한다고 생각했나 보지, 뭐.”

    불쾌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린 우영찬을 보며, 한호성은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 사실 방금 말한 건 빙산의 일각이고 더 서운한 일도 많았다. 하도 제 뒷담화를 하고 다닌 나머지 제 귀에까지 그 이야기가 들려온 사건이나, 하이파이브로 데뷔한 이후 마주쳐도 아는 척조차 하지 않은 일 따위였다.

    “근데 올해 초부터 다시 친한 척하잖아. 속셈이 너무 뻔해서 받아 주고 싶지 않았어.”

    “잘했다.”

    우영찬은 조금 안도했다. 행여라도 사람 좋은 한호성이 채현수를 받아 주었더라면, 보는 자신이 다 속이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한호성이 좀 호구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결정적일 땐 똑 부러지게 굴어서 다행이었다. 안심하고 떠나도 될 것 같았다.

    “…….”

    떠날 생각을 해서인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문제는 왜 싱숭생숭한지 자신마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아무런 말썽거리도 없는데 속이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끝내 답을 알아내지 못한 채, 우영찬은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

    ‘여름, 찰칵!’의 활동도 어느덧 3주째였다. 슬슬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라 ‘여름, 찰칵!’으로선 이번 음악 방송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하이파이브는 여느 때보다 열심히 춤을 췄다. 아껴 둔 체력까지 박박 긁어모아 쏟아 내는 느낌이었다.

    그런 보람이 있게도 오늘따라 호응이 뜨거웠다. 팬들이 입 모아 외치는 응원 구호 덕분에 분위기가 훅 달아올랐다.

    우영찬은 응원봉이 넘실거리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평소에 별생각 없이 지나친 풍경도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면 예뻐 보이듯, 무대도 그러했다. 오늘따라 모든 게 반짝거려 보였다. 실제로 응원봉이 요란하게 반짝거리는 까닭이겠지만, 괜히 감성에 젖게 되었다.

    그러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흰색 마린 룩 차림의 한호성이 있다. 첫 항해에 나선 젊은 선원처럼 풋풋한 느낌이었다. 오늘따라 코디가 산뜻하고 예뻐, 우영찬이 다 뿌듯할 정도였다.

    ‘이런 보람이라도 있어야 무대 하지.’

    최애의 무대를 1열도 아닌 무려 바로 옆에서 직접 관람할 기회다. 오늘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누리지 못할 호사를 우영찬은 기꺼이 만끽했다.

    만족스럽게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간 후, 우영찬은 찬물부터 찾았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아!”

    “덥다, 더워.”

    여름이다 보니 실내에 있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 푹 쉴 수 있으면 좋겠다만,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었다. 바로 1위 발표이다.

    “1위 후보 누군지 봤어? 미래연이랑 글로잉이래.”

    “어, 봤어. 미래연은 데뷔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진짜 대단하다.”

    “대형 출신이라서 그런가.”

    이주진과 문해일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했으면 무언가 달랐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실상 그들의 성공이 기획사 덕분만은 아님을 알아도 그랬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한 경험이 있는 한호성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곡이 워낙 좋았잖아. 그래도 우리랑 활동이 완전히 겹치진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게. 이번엔 대진운이 좋았던 것 같아.”

    남자 아이돌 중 가장 위협적인 상대인 오버 더 리밋은 올봄에 신곡을 발표한 이후 아직 소식이 없었다. 그밖에 다른 그룹들은 들고 나온 곡이 애매하거나, 하이파이브에게 밀렸거나, 기껏 잘하던 중에 멤버가 사고를 쳐서 기세가 꺾인 상황이었다.

    덕분에 하이파이브는 처음으로 음악 방송 순위권 5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바라던 대로 1위가 되진 못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라는 걸 알고 있어서 괜찮았다. 이뤄낸 성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오버 더 리밋은 언제 컴백할까?”

    “10월일 거라는 말이 있던데.”

    “호성 형, 형이 노원 선배한테 살짝 물어봐 주면 안 돼? 둘이 친하잖아.”

    농담 반 진담 반인 이주진의 말에, 한호성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노원이라면 흔쾌히 알려 줄 테지만 굳이 캐묻고 싶진 않았다.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모든 무대가 끝났다. 클로징을 촬영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하이파이브는 무대 중간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자리에 서게 되었다. 1위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카메라에 잘 잡힐 법한 위치였다. 예전엔 구석 자리에나 겨우 섰는데 참 많이도 발전했다.

    ‘아, 하필이면…….’

    새삼스러운 기쁨을 만끽할 때였다. 한호성은 제 곁에 킬러보이스가 선 걸 깨닫고 동요했다. 심지어는 채현수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냥 멤버들이랑 놀지, 좀…….’

    다가오지 않길 바랐으나, 이런 종류의 바람은 늘 어긋나기 마련이다. 채현수가 한호성의 곁에 섰다.

    “호성, 4위 축하한다. 곡 좋더라.”

    “응, 너희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킬러보이스가 8년째 활동하는 건, 실력이 있고 팬도 많기 때문이다. 한호성은 채현수 개인에 대한 유감을 애써 내리누르며 킬러보이스를 칭찬했다.

    “형.”

    그때, 누군가 한호성의 어깨에 팔을 감더니 휙 끌어당겼다.

    “왜 거기에 있어. 여기가 형 자리잖아.”

    “…….”

    한호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우영찬이 자신더러 ‘형’이라니. 그거야 주위를 의식한 것일 테니 그렇다 쳐도 ‘형 자리’는 또 무언가.

    ‘내 자리가 언제부터 네 옆구리 옆이었는데……?’

    리더랍시고 가운데에 세우려나,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우영찬은 병아리를 보호하는 암탉처럼 한호성을 제 옆에 꼈다. 자신보다 체격이 왜소한 몸을 하고 있으니만큼 남이 보면 조금 우스운 모습일 텐데도 아무렇지도 않나 보다.

    ‘하긴 남이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자신으로서는 채현수와 멀어진 게 기꺼울 뿐이다. 한호성은 안도의 한숨을 삼키다, 우영찬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채현수를 불편해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도와준 건가. 지금도, 그리고 아까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영찬이 눈치를 안 봐서 문제지, 눈치 자체는 빠르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다고나 할까. 덕분에 번번이 자신만 이득이었다.

    “대망의 1위는…… 미래연! 축하합니다!”

    MC가 금주의 1위를 발표했다. 예상한 대로라 놀랍지 않았다. 한호성은 상념을 접으며, 1위에게 박수를 보냈다.

    “가, 감사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응원해 주신 윙즈, 저희가 빛날 수 있도록 프로듀싱해 주신 사장님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코디네이터 쌤들, 또…….”

    마이크를 잡은 미래연의 리더가 소감을 읊었다. 미리 준비했는지, 말을 조금 더듬을망정 큰 실수는 없었다.

    ‘좋겠다.’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드문드문 부러움이 드는 건, 한호성의 만성적인 습관이었다. 그렇다고 질투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딱 ‘좋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연스러운 감상일 뿐이다.

    마침내 음악 방송이 마무리되었다.

    하이파이브는 의상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대기실을 나섰다. 평소라면 이 정도로 서두르진 않겠지만,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

    “10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서…….”

    “늦어도 9시 50분엔 도착할 거야. 퇴근 시간대가 지나서 길이 막히지 않을 테니까.”

    매니저, 장영수가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며 답했다. 그에 한호성은 한시름 놓았다. 만남을 청한 주제에 약속 시간에 늦는다면 그것만큼 우스운 꼴도 없을 테니 말이다.

    “형, 바쁘면 숙소 들를 필요 없이 바로 약속 장소로 가도 돼. 어차피 우리 셋 다 남은 스케줄 없으니까.”

    문해일이 제안했다. 한호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너희 피곤하잖아, 쉬어야지. 영수 말대로 퇴근 시간대는 지났으니까 숙소 먼저 들르자. 어차피 가는 길이기도 하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근데 어디 가는 거야? 그것도 제논이랑 단둘이.”

    평범한 질문이었다. 한데도 호성은 정곡을 찔린 것처럼 흠칫했다.

    “어, 그냥……. 아는 형 만나러.”

    “아는 형? 형이랑 제논에게 공통 지인이 있어?”

    “으, 응. 어쩌다 보니 알게 된 분이라…….”

    “흠, 그렇구나.”

    문해일은 더는 묻지 않았다. 허접한 변명을 믿는다기보다, 한호성의 사생활을 존중해서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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