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43화 (43/123)

#43

무수한 관심을 만끽하며 한호성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늦은 시간인데도 라방 들어와 주셔서 고마워요. 다들 뭐 하고 계셨어요? 저는 쉬고 있었는데. ……아, 자격증 시험공부. 공부하느라 수고 많으세요. 야근하시는 분도 계시군요. 얼른 퇴근하시길 바랄게요.”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한호성은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채팅을 읽어 나갔다. 아무래도 아이돌이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가 속독이지 싶었다. 다행히 한호성은 빠른 속도로 글을 읽는 일에 자신 있었다.

“아, 주무시려고 누운 분들이 많네요. ……‘호성아 자장가 불러 줘.’ 음, 지금 숙소라서 작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응’과 ‘Yes’ 등으로 채팅창이 도배되었다. 마음이 급했는지 이응만 친 채팅도 꽤 많았다.

모두가 똑같이 대답하는 게 꼭, 오늘 낮에 만난 어린이 합창단 같았다. 한호성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럼 듣고 싶은 곡 있어요? ……신곡? 아, 안 돼요. 그건 비밀. 나중에 꼭 들려 드릴게요.”

이번엔 대답이 제각각이었다. 하이파이브의 지난 곡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밤에 어울리는 발라드를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름, 찰칵! 자장가 버전으로 불러 줘.’ 오, 이거 좋다. 한번 해 볼까요? 자장가처럼 불러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러니까 서툴러도 이해해 주세요.”

한호성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MR이 없는 게 조금 아쉬웠으나, 본디 가수라면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호성은 ‘여름, 찰칵!’을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덕분에 자장가 느낌이 나는 듯싶었다.

-고막테라피 최고된다

-호성이 목소리 국보로 지정해야 돼ㅠㅠ

-정식 음원으로 내줬으면 좋겠다

-한국은 지금 밤인가요? 이곳 멕시코 시티는 아침입니다. 당신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어 기쁩니다.

-호성이 음색 너무 좋아서 잠 깼어 책임져T.T

-개좋다 진짜 호성아 사랑해

채팅을 읽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쁜 채팅도 간간이 보였지만, 한호성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상처 입히려는 못된 속셈이 빤히 보여 우습지도 않았다.

사실 성공한 이후론 악플을 봐도 그냥 그랬다. 예전이었더라면 심장에 박혔을 악플을 봐도 무시할 수 있었다. 멘탈이 강해져서라기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한호성은 요청에 따라 내리 네 곡을 불렀다. 칭찬을 담뿍 받아서인지, 오늘따라 노래하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계속 들으면 질리기 마련이니 슬슬 주제를 바꿔야 할 듯싶었다.

“‘호성아, 꿈이 뭐야?’ 우와.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을 주셨어요. 흠……. 제 꿈이 뭘까요.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욕심이 많아서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건전한 목표부터,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현재 가장 간절한 건 단연 이것이었다.

“우리 멤버들 다 같이 건강하게 잘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이요.”

-물론이지

-오래가자!!!

-하이파이브 100주년 콘서트 보러 갈게♡

수많은 채팅이 유성군처럼 빠르게 쏟아졌다. 한호성은 별똥별에 소원을 빌듯 생각했다.

제논과 우영찬을 포함해, 하이파이브 모두가 잘 풀렸으면 좋겠노라고.

***

‘나 라이브 하려는데, 괜찮으면 그동안 자리 좀 피해 줄 수 있을까?’

한호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리 부탁했다. 우영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방이 아닌 거실에 있으면 될 일이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우영찬은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을 했다. 아무 기사나 클릭하는 한편, 그는 우성한에 대해 생각했다.

‘그 인간이 연락을 받아야 할 텐데.’

자신의 형, 우성한은 효율로 이루어진 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과에 쓸모없는 일정을 끼워 넣지 않았다. 어차피 남들 열 시간 걸릴 일을 한 시간 만에 처리하는 괴물 주제에, 왜 그리 빈틈없이 구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니 장 대표 선배의 연락 따윈 받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영찬은 헛된 희망을 품었다.

‘안 그러면 정말 본사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한호성이 질겁하겠지만, 자신으로서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해결책은 사양이었다. 우영찬은 가볍게 혀를 찼다. 일단은 장 대표의 답을 기다려야 할 터였다.

우영찬은 화풀이하듯 핸드폰을 툭툭 두드렸다. 좋은 뉴스 따위 하나도 없는 인터넷 기사는 이제 지겨웠다. 그는 뉴스 창을 닫고, 프위터를 켰다.

(프친소 중) 레아 @1reaer1

헐헐 진짜 원곡보다 좋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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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친소 중) 레아 @1reaer1

아니 원곡보다 좋은 건 오버지만.. 암튼 개좋아 진심 정식음원 내줬음 좋겠는데

오뉴월 @5newmonth

라방 하나에 포인트가 몇 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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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5newmonth

파자마+우유 냄새나는 말랑볼따구+긴 속눈썹+쉽게 부르는 것 같은데 청신경 살살 녹이는 미성

폴 @poulo183

힘 빼고 부르는 것도 좋다ㅋㅋㅋㅋ

moonlight @0verthem00nl

파자마 미쳤다 여기가 내 누울 자리라 이거지 응응 효셩아 누나 옆에 누웠어요 팔베개해줄까???

꾸밍크 @inkdream1

(jpg.)

호성이는 파자마 단추 끝까지 단정히 채워서 입는 스타일이구나 모범생같아서 넘 잘 어울리고 파자마 패턴도 호성이 다워ㅋㅋㅋㅋ

아직 라이브 중인데 벌써 캡처가 돌았다. 우영찬은 한 프위터리안이 올린 사진을 확대해 감상했다.

‘귀여워.’

그는 돌고래와 불가사리, 조개 등 바다 생물이 그려진 패턴의 파자마 차림이었다. 우영찬이 이전부터 내심 귀엽다고 생각한 파자마다.

“자기가 무슨 인어 왕자인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중얼거린 우영찬은,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았다. 라이브 방송이 끝나기 전에 시청할 예정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제논’이 아닌 구독용 계정을 만들어 둔 터였다. 우영찬은 잠입하듯 라이브 방송에 들어갔다.

‘Red means stop, 멈추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경고.’

한호성은 이번 미니 앨범의 수록곡을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를 한껏 작게 내느라 평소보다 숨소리가 섞여 들렸는데, 그게 또 신선한 느낌이었다.

‘Green means go, 청신호가 켜졌으니 가는 거야-.’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눈망울이 호수같이 맑고 깨끗했다. 일순 그와 시선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일어, 우영찬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가 이렇게까지 사랑스럽게 생길 일인가? 말도 안 되는 반칙을 당한 기분이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MR이 없어서 좀 심심했지만…… 아, 아니라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가 웃자, 흰 치아 사이로 붉은 혀가 빼꼼히 보였다가 사라졌다. 체리처럼 달콤해 보이는 빛깔이었다.

Red means stop, 방금 한호성이 부른 노래 가사가 우영찬의 머리에 맴돌았다. 역시 빨강이 경고의 의미인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 보다.

‘호성아, 꿈이 뭐야? 우와.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을 주셨어요. 흠……. 제 꿈이 뭘까요.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욕심이 많아서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그가 욕심이 많다는 것쯤은 우영찬도 잘 알았다. 한호성은 하이파이브 다섯 명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멤버이면서, 가장 늦게까지 연습하는 멤버이기도 했으니까. 욕심이 없다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멤버들 다 같이 건강하게 잘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이요.’

우영찬은 딱딱한 액정 속 한호성을 응시했다. 그의 진의를 탐색하기 위하여.

팬들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까. 물론 건강하게 잘 활동하고픈 마음도 있겠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한호성은 저것보다 더 원대한 야망을 품었을 법한 사람이었다.

‘다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소원해 주신 덕분에 제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한호성에게서는 진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너 욕심 많다며. 근데 왜 그렇게 소박한 꿈을 꾸는 건데.’

우영찬은 한호성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은 하와이에 체류 예정인 두 달 동안, 제논 대신 활동하기로 했다. 대신 한호성은 자신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봐 주기로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그 계약은 자신에게 불리했다. 자신이 팔자에도 없는 아이돌 노릇을 하는 동안, 한호성은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디서 이상한 점술가를 알아 와 10분 상담료로 30만 원을 지불한 게 전부였다.

제논으로서 생활한 덕분에 의식주를 누리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당연한 거였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건 상식이니 말이다. 심지어 자신은 의식주 외에 더 받은 것도 없었다. 딱히 정산금을 바라는 건 아니나, 여하튼 손해 본 게 사실이었다.

‘이제 정말 원래대로 돌아갈 때인데.’

아이돌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순 없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그리 되뇐 우영찬은 입매를 굳게 다물었다. 이성과 다르게 자꾸만 충동적인 욕심이 들었다.

‘내가 가면…… 속상해할까.’

한호성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활동에 차질이 생기는 걸 원치 않을 테니.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갔다는 사실 자체에 속상해한다면. 방금 한호성이 말한 ‘우리 멤버들’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면.

“…….”

우영찬은 고개를 내저었다. 설령 한호성이 속상해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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