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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39화 (39/123)
  • #39

    “아…… 찜찜해. 이 몸은 땀이 너무 잘 나.”

    우영찬이 스툴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에 한호성은 새삼, 우영찬이 김제국에게 빙의했음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까 네가 그렇게 된 지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네. 네 귀국 예정일이 언제랬더라?”

    “2주 후.”

    “2주가 지나도록 귀국하지 않으면 너희 집에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겠지?”

    “어.”

    우리 집 사람들이 아무리 무심한 성격이라도 해외에서 실종된 막내아들을 내버려 둘 정도는 아니라며, 우영찬이 덧붙여 말했다.

    “그럼 곧 네 몸을 되찾을 수 있겠다.”

    “그래. 최소한 내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구나.”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호성은 우영찬이 자기 몸을 되찾기를, 제논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나 그와 별개로 우영찬과 함께 한 한 달 반이 즐겁기도 했다. 먼 훗날엔 좋은 추억으로 남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처음엔 힘들기도 했지만…….”

    “뭐가?”

    “아무것도 아냐, 그냥 혼잣말.”

    한호성은 전신의 근육을 이완했다. 원래도 축 누워 있던 몸이, 더욱 노곤하게 늘어졌다. 아예 소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찬아, 그래도 제논한테 빙의한 게 너라서 다행이다.”

    “…….”

    “앗, 잘됐다는 뜻은 아냐.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너만큼 이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그동안 수고 많았어.”

    “갑자기 웬 작별 인사냐.”

    “미리 말해 두고 싶어서. 만약 인사할 새도 없이 급하게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얘길 하기 어렵잖아.”

    한호성은 할 말은 그때그때 전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괜히 말을 아껴 봤자 미련만 남을 뿐이다. 자신이 우영찬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억해? 내가 전에 그랬잖아, ‘네가 계속 아이돌로 사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라고. 근데 인제 보니 아닌 것 같아. 넌 아이돌로 데뷔했어도 잘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영찬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싫어서가 아니라, 칭찬이 멋쩍어서 그런 듯싶었다.

    “진짜인데. 현직 아이돌인 내가 장담할게. 내가 성공은 못 했을지언정 성공한 아이돌은 많이 봤거든.”

    “겸손이 지나치군. 너 정도면 이미 성공한 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 부르는데.”

    “그런 건 의외로 중요하지 않아.”

    우영찬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태껏 춤도 노래도 잘해야 한다고 잔소리해 댄 주제에, 이제야 딴소릴 하느냐고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그에 한호성도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연예인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뭔데.”

    “스타성. 얼굴 잘나고 재주 많은 건 그다음 문제거든. 어차피 세상에 잘난 사람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으니까.”

    실력은 기본이고, 스타성이 뒷받침되어 줘야만 톱스타가 될 수 있기 마련이다. 사실 실력이 다소 뒤떨어짐에도 스타성 하나만으로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도 많았다. 한호성은 그런 거야말로 진짜 실력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언제는 노력하면 다 된다며.”

    “안 되는 것도 있더라. 그게 스타성이야. 스타성은 타고나는 것밖에 답이 없거든.”

    “그래서.”

    “내가 볼 때 너는 스타성을 타고난 것 같아.”

    무대 위에서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재능을 타고난 셈이다. 거기에 의도하지 않아도 남을 웃기는 성격이라니.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닌 것 같은데…….”

    “정말이라니까. 제논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끼리니까 살짝 얘기해 보자면, 제논이 제논일 때보다 네가 빙의한 이후 제논에 대한 언급이 확 늘어났거든. 왜 그런지 알아?”

    “…….”

    “네가 시선을 확 사로잡는 사람이라서야.”

    우영찬이 한호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호성은 기꺼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제 말을 믿지 못하고 진의를 탐색하는 건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그거, 너도 해당인가?”

    “응?”

    “너도 날 보면 시선을 뗄 수 없냐고.”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호성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봐, 지금도 너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잖아.”

    돌연 장난기가 동해, 한호성은 우영찬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서는 속눈썹이 긴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우영찬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제논에게 빙의해서?”

    “아니, 그건 내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다.”

    “오점이랄 것까지는……. 그럼 뭐가 다행인데?”

    “너한테 빙의한 게 아니라서.”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했다. 눈만 껌벅거리려니, 우영찬이 설명을 덧붙였다.

    “너처럼 네 놈씩이나 챙겨 가며 사람들 유혹할 자신 없으니까, 나는.”

    “……멤버들 잘 챙기고 애교 많다는 얘기를 독특하게 하네.”

    ‘제논’ 역할은 해도 ‘한호성’ 역할은 못 하겠다는 뜻이었다. 우영찬 나름의 칭찬인 듯해 한호성은 으쓱해졌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이주진이 알몸으로 총총 걸어 나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그 모습을 목격한 우영찬이 오만상을 썼다.

    “뭔데! 왜 그런 얼굴인데? 샤워하고 나왔으니까 벗은 게 당연하지!”

    “내가 어떤 얼굴인데?”

    “못 볼 것 봤다는 얼굴이잖아!”

    “알긴 아네.”

    “너……!”

    자기만 알몸을 보일 수 없다며, 이주진이 우영찬을 벗기고자 달려들었다. 우영찬은 질색하며 그 손길을 피했다. 어차피 씻으려면 벗어야 할 텐데, 바지를 사수하는 손길이 절박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양이 꼭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한호성은 두 사람의 장난을 구경하며 큭큭 웃었다. 역시 우영찬은, 여러모로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

    동요 3종이 히트한 후, 한호성은 성공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더랬다.

    하나, 성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둘, 때론 계단식이 아닌 수직으로 상승하듯 성공한다.

    셋, 성공은 또 다른 성공으로 연계된다.

    예의 세 가지 규칙은 이번에도 적용되었다. ‘여름, 찰칵!’이 요즘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인기를 얻은 건 물론, 멤버 개개인도 잘 풀리는 요즈음이었다.

    이주진은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공중파 드라마의 배역을 따냈고, 문해일과 설이태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여 꾸준히 인지도를 높이는 중이었으며, 한호성은 ‘천사들의 하모니’라는 신생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천사들의 하모니’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공연하며 봉사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청률은 평이할지언정 평가가 좋았다. 특히 주 시청자인 중장년층에게 모처럼 얼굴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하이파이브 중에서도 잘나가는 멤버는 단연 ‘제논’이었다. 그는 ‘어른이 놀이터’ 방송 이후, 개인 광고를 다섯 개나 계약했을 정도였다.

    ‘비타민 C만으론 부족해. 난 그냥 비타민 섭취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비타민 섭취하고 싶은 거니까.’

    ‘비타민 C에 비타민 D, 비타민 A, 비타민 E까지 알차게 담았다!’

    ‘압도적인 종합 비타민, 비타-퍼펙트.’

    이 종합 비타민 광고도 그중 하나였다. 한호성은 종합 비타민 통을 들고 씩 웃는 우영찬을 보고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제논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게 제논의 이미지였다. 체력은 부족할지언정 열심히 하고, 승부욕 넘치는 이미지. 이래서야 제논이 원래대로 돌아온 후에도 일이 복잡해질 듯싶었다.

    ‘좋은 게 좋은 거긴 하지만.’

    인기가 훅 뛰었으니 제논 본인도 싫지만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우영찬 또한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였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라이브 방송 도중 한 악성 팬이 무례한 질문을 던졌는데도 능청스럽게 대처했다. ‘중2병은 불치병이라는데 요즘은 좀 어때, 제논?’이라는 채팅에 ‘가끔 봉인이 풀리려고 하는지 오른팔이 욱신거리긴 하는데 그거 빼곤 다 괜찮습니다.’라고 대꾸한 것이다.

    처음엔 인터넷상의 밈이나 드립 따윈 전혀 몰랐던 주제에, 어느 순간 한호성보다도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 우영찬이었다.

    ‘요즘 애들이라 그런 건가.’

    우영찬보다 고작 3살 많으면서, 한호성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곰곰이 하냐?”

    “아, 그냥 이것저것요.”

    운전대를 잡은 장 대표의 말에, 한호성은 상념을 접었다.

    지금은 ‘천사들의 하모니’를 촬영하고자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혼자만 이동하는 일정이기에, 장 대표가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다.

    “제논 광고 보고 있었어? 그 종합 비타민 말이야.”

    “네. 잘 찍었더라고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소리지만 제논 걔, 뭔가 이상하지 않냐?”

    “왜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었잖아. 좋은 쪽으로 바뀌어서 다행이긴 한데 너무 달라져서 소름 돋을 정도란 말이지.”

    “…….”

    실제로 사람이 바뀐 게 맞았다. 우영찬이 진작 고백한 사실이기도 했다. 정황도 들어맞건만, 장 대표로서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멀쩡한 사람에게 역시나 멀쩡한 사람이 빙의하는 게 어디 맨정신으로 믿을 만한 일이냔 말이다. 또한 우영찬은 머지않아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 장 대표의 착각을 굳이 바로잡아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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