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37화 (37/123)
  • #37

    “잡아! 다리를 건너게 놔둬선 안 돼!”

    “구명조끼 못 입게 해!”

    어른이 놀이단이 소리쳤다.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놀이 기구를 탈 수 없다는 규칙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이전 판에도 이런 식으로 문해일을 집요하게 방해해, 안전 장비를 착용하는 데 상당히 애먹인 바였다.

    그때 문해일은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 팀을 제압했다. 반면 우영찬은 힘이 부족한 대신, 날렵한 체구를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잡았다…… 가 놓쳤다!”

    “왜 이렇게 빨라? 무슨 미꾸라지 같아!”

    우영찬은 방해꾼들을 피해, 구명조끼의 마지막 버클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그때 어린이 놀이단의 선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주진이 그를 방해하려고 애쓰는 중이었으나, 혼자만으론 역부족이었다.

    “헉, 헉, 난, 여기까지인가 봐…….”

    줄곧 달리느라 체력이 닳은 이주진이 풀밭 위로 털썩 쓰러졌다. 우영찬은 짜증 실린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까의 자신도 그러긴 했지만, 약한 모습이 탐탁잖았다.

    ‘기껏 거리를 벌려 뒀더니…….’

    자신이 어른이 놀이단에게 방해당하는 동안, 상대 선수는 짚라인을 타고 쫓아왔다. 짚라인의 안전 장비를 벗느라 지체 중이지만 곧 외나무다리까지 올 터였다.

    “…….”

    우영찬은 상대 선수와 외나무다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외나무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이 건너야 할 외나무다리가 아닌 상대의 외나무다리였다.

    “어? 어어?”

    우영찬의 돌발 행동을 목격한 양 팀 선수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무도 그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중에, 우영찬은 상대의 구명조끼를 잡았다.

    그러고는 투수처럼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어어……!”

    구명조끼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야구였더라면 홈런일 만한 투척 솜씨였다. 그러나 이곳은 야구장이 아닌 강가였으므로, 구명조끼는 담장 바깥이 아닌 강으로 날아갔다.

    “어……!”

    철퍽.

    구명조끼가 수면을 때리는 소리가 차지게 들렸다. 주위가 고요해 더 크게 들린 소리였다. 같은 팀인 하이파이브가 더 황당해하는 와중에, 윤로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거! 저거 우리 팀 구명조끼잖아! 이건 반칙이야!”

    “방해꾼은 총 4명이잖아요.”

    우영찬은 뻔뻔한 낯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원래는 구명조끼를 던진 후 곧바로 외나무다리를 건널 작정이었지만, 몇 마디 나눌 여유쯤은 있을 성싶었다.

    “주전 선수가 방해꾼을 겸임할 수 없다는 규칙은 없는데요.”

    “뭐?”

    “이주진이 그로기 상태니까 제가 선수이자 방해꾼입니다. 1인 2역이죠.”

    우영찬은 아직도 풀밭에 널브러진 상태인 이주진을 가리켰다. 실제 스포츠 경기였더라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지만, 이건 반칙과 변칙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어른이 놀이터’였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윤로희가 우영찬을 향해 뛰었다.

    “얘들아! 제논을 벗기자!”

    그의 구명조끼를 빼앗아 제 팀에게 주겠다는 작전이었다. 윤로희의 뜻을 알아차린 어른이 놀이단이 우영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은 마치 새끼 가젤을 사냥하는 하이에나 같았다.

    우영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그를 쫓아 방해꾼이 두 명이나 외나무다리에 올랐다. 그 바람에 외나무다리가 흔들려, 우영찬은 가뜩이나 날카롭던 신경이 더욱 곤두섰다.

    “방해할 기회 세 번은 이미 끝났지 않습니까.”

    “음…… 마지막 기회가 아직 안 끝났다고 치자!”

    “그런 게 어딨습니까.”

    “여깄습니다요~.”

    얄밉게 대꾸한 덩민이 몸을 흔들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외나무다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우영찬은 정신을 더욱 집중하며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균형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김제국의 몸이 가벼워서 다행이라고만 여겼는데, 지금 상황에선 키가 작은 것도 장점이라 할 만했다. 무게 중심점이 우영찬의 몸에 비해 한참 아래에 있는 덕분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이 몸을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 슬슬 감이 왔다. 자신감이 붙은 우영찬은 과감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힘내라, 힘!”

    등 뒤에서 응원이 들려왔다. 뒤늦게 강가에 도착한 한호성인 듯싶었다. 다른 멤버들도 응원 중이지만, 우영찬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잘한다, 제논!”

    ‘난 우영찬이라고.’

    카메라 앞에선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대신 머릿속으로나마 한호성에게 쏘아붙이며, 우영찬은 다리를 길게 뻗었다. 아슬아슬하고 징글징글한 게임도 이로써 끝이었다. 건너편에 도착했으니 자신의 승리였고, 더불어 하이파이브의 승리기도 했다.

    “해냈다.”

    세리머니를 할 만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펄떡펄떡 날뛰는 제스처 따윈 딱 질색이기에, 우영찬은 오른팔을 뻗었다 내렸다.

    “와! 3 대 4다!”

    “믿고 있었어, 제논!”

    전혀 믿지 않았던 주제에 말은 잘한다. 이주진의 외침에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끌어 올리며, 우영찬은 외나무다리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하이파이브가 풀쩍풀쩍 뛰며 기뻐하고 있었다.

    정작 우영찬은 그렇게까지 기쁘지 않았다. 바라던 대로 게임에서 이겼는데도, 마음이 들뜨기는커녕 되레 차분해졌다. 해야만 하는 일을 마쳤을 때처럼 후련하기도 했다.

    “제논, 다음엔 특별히 역할 바꿔 준다! 내가 세균 할 테니 네가 치아 해라.”

    놀림 반 장난 반인 문해일의 말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외나무다리 하나 건넜기로서니 득도했을 리는 없고, 모처럼 자신답게 행동한 덕분일 것이다.

    ‘김제국 아니라고 백 번은 넘게 말했는데 저것들이 아직도……. 나는 우영찬이라니까.’

    그 사실을 줄기차게 되뇌며, 우영찬은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속내야 어찌 됐든 카메라에는 좋은 모습만 비치도록.

    ***

    온몸 던져 ‘어른이 놀이터’에 출연한 것도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촬영을 마친 직후 다들 근육통으로 고생했으나 그 또한 지난 일이다.

    오늘은 토요일, 바야흐로 ‘어른이 놀이터’의 방송일이었다.

    “6시 30분인데 왜 안 시작하지?”

    “이 CF가 마지막일 것 같은데.”

    “지금 시간대에 CF 넣으려면 단가가 얼마일까?”

    “글쎄, 하이파이브 1년 치 매출보다 비쌀지도.”

    “작년 매출 기준이라면 정말 그렇겠네.”

    하이파이브는 각자의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담을 주고받았다. 곧 페스티벌의 무대에 올라야 하지만, 잠깐 방송을 확인할 여유쯤은 있었다. 앞부분이나마 시청할 생각이었다.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지막 CF까지 끝났다. 이내 ‘어른이 놀이터’의 로고가 떠오르며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하이라이트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

    ‘오늘의 도전 팀, 하이파이브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놀이터와 가장 어울리는 게스트라 할 수 있겠어요. 동심을 간직한 분들이니 말이죠. 다 함께 불러 볼까요?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나는 세균이 아니다!’

    치카치카송에서 바로 우영찬의 외침으로 컷이 전환되었다. 포복절도하는 출연진의 모습도 잊지 않고 비춰 준다.

    그에 우영찬은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주진은 우영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너 은근히 웃기더라. 분량 잘 뽑혔을 듯?”

    “…….”

    딴엔 칭찬이겠지만 우영찬으로선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방송에선 그가 활약한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그냥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기고 싶은 거니까.’

    우스우리만치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출연진이 엎치락뒤치락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하이 앵글(High angle) 샷이었다. 이내 윤로희가 바락 외쳤다.

    ‘얘들아! 제논을 벗기자!’

    그렇게 하이라이트가 끝났다. 제작진이 어떤 장면을 포인트로 편집했을지 알 만한 하이라이트였다.

    ‘역시 영찬이 분량이 많네.’

    한호성은 가만히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하이파이브에는 예능 담당이랄 멤버가 없었다. 자신은 재미없는 성격이고, 그나마 나은 다른 멤버들도 예능감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처럼 예능에 출연해도 팬이 아닌 시청자에겐 별다른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는데, 이번엔 다를 성싶었다.

    ‘커뮤니티 반응도 괜찮은 것 같고.’

    한호성은 커뮤니티 게시판을 슬쩍 훑어봤다. 내용까지는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지만, 제목만 봐도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오란 말도 안 했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스태프가 얼굴을 비쳤다.

    “이제 대기하시겠습니다.”

    “옙!”

    하이파이브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방송이야 나중에 보든가, 정 시간이 나지 않으면 클립만 보면 될 일이다.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대기실에서도 느껴지는 축제의 열기에, 한호성은 기분이 들떴다. 예능 방송도 그렇거니와 오늘 무대도 성공적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한호성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마음 같아선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아직 씻기 전이라 그럴 수 없었다.

    “피곤하다…….”

    뜨거운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앙코르를 내리 세 곡이나 불렀다. 무대의 마지막 순서인 데다, 이후 스케줄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호응이 워낙 대단해서 몸은 피곤할지언정 기분은 좋았다. 축제의 여운에 잠긴 채, 한호성은 핸드폰을 들었다. 대기실에서 보다가 만 커뮤니티 게시판을 살필 셈이었다.

    [어른이놀이터] ★☆불판☆★

    user1 아 오늘 게스트 하이파이브야??

    user26 얘네 요즘 여기저기 많이 보이네

    user34 ㅋㅋㅋㅋ치카송은 왜이렇게 중독적인건데ㅠㅠ 나온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흥얼거리게 됨

    user57 기껏 머릿속에서 지웠는데 오늘부터 또 무한 반복되게 생겼네ㅋㅋㅋ큐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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