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34화 (34/123)

#34

“이야, 잘생긴 게스트를 보니까 눈이 다 부시네요. 우리 정 PD님 최고! 게스트 섭외하는 안목이 아주 그냥 기막혀요!”

“누나, 그거 그냥 햇살이 쨍쨍해서 그런 거 아냐? 선글라스를 껴!”

MC의 넉살에, 남자 코미디언 한 명이 깐죽거렸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잘생긴 남자 게스트를 질투하는 추남’으로 캐릭터를 잡은 이였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어, 선글라스는 무슨 선글라스.”

“하여간 덩민이 쟤 또 질투한다. 우린 모처럼 잘생긴 게스트 봐서 좋기만 하구만.”

“눈으로 섭취하는 비타민 C야 아주. 상큼해, 상큼해.”

여성 게스트들이 입 모아 그를 타박했다. 타박이라고는 해도, 남매처럼 투덕거리는 분위기였다.

한호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고정 게스트끼리 워낙 장단이 잘 맞아 사이에 끼어들기 쉽지 않을 성싶었다. 모처럼 시청률 1위인 주말 예능에 출연했으니 분량을 톡톡히 만들고 싶은데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자, 오늘의 도전 팀, 하이파이브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놀이터와 가장 어울리는 게스트라 할 수 있겠어요. 동심을 간직한 분들이니 말이죠. 다 함께 불러 볼까요?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하이파이브는 척수 반사적으로 치카치카송을 흥얼거렸다. 생긋 웃으면서도 한호성은 내심 아쉬워했다.

동요를 발표한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하이파이브 하면 동요를 연상하는 사람이 압도적이다. 대단한 성과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독이 든 성배가 이런 걸까.’

덕분에 인기를 얻었으니 무척 감사한 일이나, 한호성은 슬슬 동요 가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속도 모르고 MC가 권했다.

“한번 들려줄 수 있나요? 라이브로 듣는다면 영광일 것 같아서!”

“저희야말로 영광이죠. 셋 중 어떤 곡을 들려 드릴까요?”

“아~ 고민되네, 이거. 음, 그럼 처음 만났으니까 안녕안녕송을 들어 볼까요?”

“예! 좋습니다.”

간주가 흘러나왔다. 이제 동요 정도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를 수 있는 하이파이브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율동했다.

‘……씨발.’

우영찬도 시커멓게 죽은 눈으로나마 무릎을 굽혔다 폈다. 행사 무대나 팬 대응, 화보 촬영 등은 이제 그럭저럭 능숙해졌지만 이놈의 동요만큼은 도무지 적응되질 않는다. ‘이 몸은 김제국이다. 고로 공중파에 송출되는 건 김제국이 노래하고 율동하는 영상이다.’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는 있으나 드문드문 드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상념이 담긴 안녕안녕송이 끝났다. 환대가 한바탕 이어진 후, MC가 규칙을 설명했다.

“오늘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바로 스피드 게임,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구름사다리를 넘어 늑목을 지난 다음 짚라인을 타야 하니까요. 참, 강을 건너는 외나무다리도 잊지 마세요.”

“짚라인이라고요?”

하이파이브는 화들짝 놀랐다. 촬영을 의식한 반응이 아니라 정말, 짚라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아! 어쩐지 방수 마이크를 달아 주시더라니, 이런 큰 그림이 있었던 건가요.”

“맞습니다. 강에 빠지더라도 마이크는 망가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저희 몸은요?”

“여러분은 젖겠죠?”

“으아, 안 돼……!”

이주진이 좌절한 양 외쳤다.

“젖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죠! 게임은 총 일곱 판 진행되며, 더 많이 이긴 편이 승리합니다. 준비되었나요?”

“잠시만요! 질문 있습니다.”

“예에, 해일 씨. 말씀하시죠.”

“어른이 놀이단은 일곱 명이고 저희는 다섯 명인데, 일곱 판을 진행하기엔 두 명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예리한 지적이네요. 그래서 하이파이브, 즉 도전자 팀은 두 명을 뽑아 한 번 더 내보낼 수 있습니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게임에 두 번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기본적인 룰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이파이브는 다 함께 대답했다.

“네! 이해했습니다.”

“기합 빡 들어간 모습 좋습니다. 과연 오늘의 도전자는 어른이 놀이단을 이길 수 있을까요? 게임, 시작합니다!”

MC가 설명을 마친 후 컷이 끊겼다. 한소끔 끓어오른 분위기도 조금 차분해졌다.

하이파이브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게임 스타트 지점으로 이동했다.

***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 전, 5분간의 작전 회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이파이브는 머리를 맞대고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첫 번째 타자 하고 싶은 사람?”

“음, 해일 형 어때?”

“해일이는 우리 팀 에이스니까 뒤쪽으로 빼는 게 어떨까? 보면, 뒤로 갈수록 강한 분이 나오시더라고.”

한호성의 의견에 설이태가 반박했다.

“아니, 문해일을 두 번 내보내야 하니까 아예 첫 번째 타자로 넣자. 그래야 쉬는 동안 체력 보충하지.”

“오, 괜찮다.”

“나도 좋다.”

본인의 동의로, 첫 번째 타자는 문해일로 정해졌다. 허우대는 좋지만 그에 비해 몸이 약한 설이태가 네 번째 순서를 차지했다.

“난 마지막으로 뛸래. 형들 하는 거 보고서.”

“그럼 주진이가 다섯 번째. 두 번째는 내가 할까?”

“그게 낫겠다. 아마 호성 형이 두 번 뛰게 될 테니까.”

문해일 다음으로 체력이 좋은 한호성이므로 당연한 인선이었다. 자연히 우영찬이 세 번째 선수로 정해졌다.

‘저놈들, 나는 아예 고려조차 안 하는군.’

우영찬은 묵묵히 불만을 삼켰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스포츠이든 팀전만 하면 다들 자신과 같은 팀이 되고 싶어 난리였다. 우영찬은 누구나 원하는 영입 1순위의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팀 내 최약체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건 알지만, 그렇다고 답답함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우영찬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려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참았다.

“5분 지났습니다. 도전자 팀, 순서는 정하셨나요?”

“예! 문해일, 한호성, 제논, 설이태, 이주진 순서로 도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로 뛸 선수는 상황 봐서 나중에 정해 주세요. 그게 다섯 명인 도전자 팀에게 주어진 어드밴티지입니다.”

“아싸!”

“감사합니다.”

MC의 설명에 하이파이브는 기뻐했다. 우영찬만이 어른이 놀이단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어드밴티지는 저쪽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이쪽은 20대 초반인 남자 다섯 명. 그리고 저쪽은 20대부터 4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다 남녀가 혼합되어 있다. 선수의 수는 적어도 신체적 조건만 놓고 보면 하이파이브가 유리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시합이 시작되고, 우영찬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게 저런 거구나.”

이주진이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상대 팀은 노련하게 구름사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본업이 운동선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자세였다.

“문해일 화이팅!”

“잘한다! 긴팔원숭이 대장 같아!”

이주진의 응원 때문인지, 문해일이 순간 삐끗했다. 그는 자세를 고치며 외쳤다.

“긴팔원숭이 대장이 뭔데!”

“팔 쭉쭉 잘 뻗길래! 평범한 긴팔원숭이보다 대장 긴팔원숭이가 더 멋있잖아.”

어느새 문해일이 구름사다리를 끝까지 건넜다. 그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늑목에 올라갔다. 남자 출연자는 이제 손 뻗으면 닿을 법한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윽……!”

문해일은 이를 악물고 늑목을 기어올랐다. 앞서 있는 상대, 덩민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저지했으나 그는 민첩하게 피했다.

폭발적인 힘으로 정상에 오른 문해일이 빙글 돌았다. 이제야 슬슬 요령이 붙는지, 그는 한결 안정적인 자세로 늑목에서 내려왔다.

“놀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재미? 땡, 바로 안전입니다. ‘어른이 놀이터’도 예외는 아니죠.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기구를 탈 수 없습니다.”

MC가 유유히 설명했다. 과연, 짚라인에 도착한 선수들이 허겁지겁 안전 장비를 착용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촬영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모니터를 통해 그 모습을 보았다.

“장비를 빨리 착용하는 게 관건이겠군.”

“그러게. 앞서 나갔더라도 저기서 삐끗하면 금방 뒤처지겠어.”

우영찬은 한호성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안전이 걸린 문제인 만큼 스태프가 착용을 도와주곤 있지만, 본인의 속도가 가장 중요했다.

덩민이 먼저 안전 장비 착용을 마쳤다. 그는 짚라인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그때 MC가 무전기를 통해 물었다.

-덩민 어른이! 하강하기 전에 할 말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시원하게 외치면서 하강하시죠!

“잘생긴 놈한테만큼은 질 수 없다아아악!”

그의 외침이 별똥별의 꼬리처럼 늘어졌다. 예능용 멘트겠지만, 진심도 조금은 섞인 듯싶었다.

질세라 문해일이 짚라인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MC가 그에게도 물었다.

-문해일 어른이, 하강하기 전에 할 말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기려면 이럴 시간에 냅다 하강해야겠지만, 이건 게임이기 이전에 예능 방송이었다. 문해일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외쳤다.

“여름, 찰칵!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훌쩍 뛰어내렸다. 짚라인이 시원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순식간에 땅에 도착한 문해일은 안전 장비를 벗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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