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33화 (33/123)

#33

***

우영찬과 달리, 멤버들은 순위를 확인하자마자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숙소 내에선 설렘을 꾹 억누르고, 밴을 탄 후에야 본격적인 야단법석이 시작되었다.

“와, 씨. 커뮤니티 대충 훑어봤는데 우리 평도 좋아.”

“곡이 워낙 좋아서 잘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잘되다니…….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아무리 그래도 쥐구멍이 뭐냐, 설이태. 우리 정도면 그래도, 큼큼. 개구멍 정도는 되지 않나?”

호평 일색인 반응을 보고 으쓱해진 문해일의 말이었다. 그 앞에 앉은 우영찬만이 잠자코 ‘쥐구멍이나 개구멍이나.’라고 생각했다.

“뮤비 조회 수도 엄청 뛰었어!”

“그건 우리 뮤비가 위튜브 급상승 동영상에 올라서 그럴걸.”

“어, 정말?”

한호성의 말에, 얼른 급상승 동영상 순위를 확인한 이주진이 감탄했다.

“와, 정말이네? 어쩐지 조회 수가 쭉쭉 늘더라. 이 정도 추이면 앞으로 더, 더 잘되겠다. 다행이네.”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한호성은 이주진에게 맞장구쳤다.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는 마음속 깊이 안심하고 있었다.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단 한 곡만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를 뜻한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시절엔 원 히트 원더라도 되고 싶었지만,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서 이젠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원 히트 원더로 남고 싶지 않아서, 한 번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실력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어느 때보다도 독하게 노력한 한호성이었다.

그 노력의 성과를 확인하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한 느낌. 그에 한호성은 자신이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삼촌도 싱글벙글하시더라. 형님들이 잘되니까 나도 좋고.”

매니저, 장영수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그는 올해 스물한 살로,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장시현의 친조카였다. 워낙 붙임성이 좋고 또래인 까닭에 사석에선 하이파이브 전원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기도 했다.

“작년엔 안 부르는 곳도 어떻게든 찾아가느라 바빴는데, 이젠 와 주십쇼 하는 곳만 가도 바쁘네.”

“이번 달 스케줄이 빡빡하긴 하지. 영수 너도 같이 바빠져서 피곤하겠다.”

“아, 괜찮아. 싸랑하는 쌈촌이 보너스 팍팍 주기로 하셨거든!”

생각만 해도 기쁜지 장영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좋겠다며, 멤버들이 한껏 추켜세우자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행복에 취한 다섯 남자와, 그런 그들을 성가셔하는 한 남자를 태우고서 밴은 방송국을 향해 질주했다.

***

발매 첫날부터 반응이 좋았던 ‘여름, 찰칵!’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상승세였다.

하이파이브의 기존 팬과, 새로이 팬이 된 사람들과, 그룹엔 관심이 없을지라도 동요를 부른 아이돌의 신곡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곡을 찾아 듣곤 했다. 워낙 곡이 좋으니 계기가 뭐가 됐든,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듣고 또 듣는 인구가 상당했다. 덕분에 ‘여름, 찰칵!’은 음원 차트에서 자리를 공고히 지키는 중이었다.

인기를 만끽할 새도 없이 일이 몰아쳤다. 음악 방송 출연과 CF 촬영에 각종 행사 참여, 거기에 틈틈이 라이브 방송까지 해야 했다. 바쁜 일정에 익숙한 아이돌조차 숨이 벅찰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그러니 일반인인 우영찬은 얼마나 힘들까. 애먼 고생 중인 그가 안쓰러워, 한호성은 귓속말을 속닥였다.

“영찬아, 나만 믿어. 네 몫은 나중에 내가 따로 정산해 줄게.”

우영찬은 엉터리 농담을 들은 양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해? 내가 지금 그깟 푼돈이 아쉬워서 이 짓 중인 것 같아?”

“푼돈은 아닌데…….”

한호성은 소심하게 항변했다. ‘이 짓’이란 워딩도 거슬렸지만, 미안한 게 많다 보니 당당하게 지적하긴 어려웠다.

“됐다. 나중에 하와이행 항공권이나 사라.”

“응. 가서 피냐콜라다도 사 줄게.”

“또 은근슬쩍 사심 채우지, 너.”

자신의 권유를 승낙하지 않기에 거절인 줄 알았더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우영찬이 여러모로 기특해 한호성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힘들면 언제든 말해. 알았지?”

“됐어. 이 정도로 힘들 리가.”

“대단하다. 성실한 자세 너무 멋져. 책임감도 최고야.”

흠뻑 칭찬해 주자, 우영찬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달리 할 짓도 없고.”

말투는 거칠거칠하지만, 칭찬을 반기는 기색이 훤했다. 한호성은 빙그레 웃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어째 성난 말을 길들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채찍 없이 오직 당근만 쓰면서 말이다.

“그래도 예능 촬영은 힘들 거야. 걱정하라고 하는 소린 아니고, 미리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음악 방송만큼 오래 걸리나?”

“아니, 예능마다 다르긴 한데 대체로 음방에 비해 준비나 대기 시간은 덜 걸리긴 해. 근데 이번에 출연하는 예능이 몸 쓰는 거라서.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힘들걸.”

하이파이브가 출연 예정인 예능 프로그램은 ‘어른이 놀이터’였다.

프로그램명에서 엿보이듯 이 예능은 ‘어린이가 된 것처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가 컨셉이었다.

하지만 예의 놀이터가 유년기에 놀던 그런 장소는 아니었다. 일반 놀이터가 이지 모드라면 ‘어른이 놀이터’는 하드 모드였다. 출연자는 360도로 돌아가는 그네, 거대한 시소, 미친 듯이 빠른 뱅뱅이 등의 놀이 기구에서 게임을 진행해야만 했다.

“내 몸이었더라면 체력적으로 힘들 일 따위 없을 텐데.”

우영찬이 고개를 젖히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제 몸이 그리운 모양이었다.

한호성은 그를 위안해 주고자 말했다.

“그래도 재밌을걸. 어디서 들었는데, 요즘 초등학생들이 제일 참여하고픈 예능 1위에 꼽혔대.”

“내가 초등학생이냐.”

“MC가 무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희극인, 오수린 님이신데? 만나 뵙고 싶지 않아?”

“딱히.”

“그,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 많은 예능이기도 하고…….”

‘어른이 놀이터’는 반년 전에 방송을 시작한 이래 줄곧 주말 예능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듣기로는 위튜브 등의 개인 방송으로 이탈한 시청자까지 다시 공중파로 불러들였을 정도라 한다. 인기 많은 MC와 입담 좋은 고정 게스트 덕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재미난 까닭이었다.

“넌 어렸을 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 놀이 기구 많은 놀이터에서 온종일 놀고 싶다는 생각 말이야. 내가 초등학생일 때 같은 반 친구네 동네에 시설 좋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학교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같이 놀곤 했는데.”

“왜 번거롭게 그래야 하지? 원하는 놀이 기구가 있으면 그냥 집에 설치하면 되지 않나?”

“…….”

오랜만에 우영찬이 재수 없게 느껴졌다. 한호성은 그를 슬그머니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보통 사람은 놀이터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으니까. 그런 추억을 제대로 자극하는 예능이니 인기 많은 것도 당연할지도 몰라.”

“흠…….”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인데, 혹시 놀이터에서 놀아 본 경험 없어?”

“있긴 하지.”

하지만 우영찬이 놀았다는 놀이터와,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놀이터의 정의가 사뭇 다를 듯싶었다. 한호성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잘 모르겠으면 이번 기회에 실컷 놀아. 나도 이번엔 즐긴다는 마음으로 촬영하려고 하니까. 어쩌면 그게 방송 취지에 맞을지도 모르고.”

***

어른이 놀이터의 촬영장은 북한강 상류 인근이었다. 방송국 내 세트장에서 촬영할 때도 있지만, 야외 촬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모양이었다. 거대한 놀이 기구가 빈번히 등장하는 특성상 실외 촬영이 유리한 까닭이라고 했다.

“와 씨, 저게 뭐지?”

“구름사다리 아냐? 근데 나 저렇게 커다란 구름사다리 처음 봐.”

촬영장에 도착한 하이파이브는 감탄을 내뱉었다.

방송을 즐겨 본 터라 놀이 기구의 구성 자체는 익숙했다. 그러나 저렇게까지 거대한지는 미처 몰랐던 터다. TV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확연히 달라서, 당당하도록 거대한 놀이 기구에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놀이 기구에 얼마나 진심인 거지? 어디서 ‘PD가 어렸을 때 놀이터 못 가서 맺힌 한 프로그램으로 푸는 듯.’이라는 댓글 본 적 있는데, 그게 진짜일지도 모르겠어.”

“주진아, 쉿.”

“아.”

한호성의 주의에 이주진이 입을 합 다물었다. 다행히 스태프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내 그중 한 명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친절하게 말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대기실 안내해 드릴게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대기실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것이었다. 창문형 에어컨까지 달린 덕분에 쾌적한 환경이었다.

머리와 화장, 의상을 정돈한 후 얼마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예능 촬영에 익숙잖은 우영찬이 헤매는 기색이기에, 한호성은 그의 손목을 붙잡아 이끌어 제 옆에 세웠다.

“몸은 어른!”

“마음은 어린이!”

“지칠 때까지!”

“신나게 논다!”

MC의 선창에 하이파이브가 후창했다. 이어 모든 출연자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여기는 어른이 놀이터!”

짝짝짝짝, 힘찬 박수가 이어졌다. 쨍쨍한 햇살 못지않게 다들 기운이 대단했다. 무더위도 이길 만한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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