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30화 (30/123)

#30

“그동안도 열심히 했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 알지? 우린 세상이 허락한 패자 부활전 중이란 거.”

동요로부터 비롯된 기회였다. 자신들이 열심히 하긴 했으나, 한호성은 이게 오롯한 노력 덕분이 아님을 알았다.

“이런 기회는 분명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우린 이미 일생에 한 번도 얻기 어려운 기회를 얻었으니까.”

“…….”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자.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부르고, 마지막 춤인 것처럼 추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팬인 것처럼 정성껏 대하는 거야.”

늘 생각해 왔다. 만약 자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놓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지금이 바로 꿈꿔 왔던 그 순간이었다.

“기회는 운의 영역이지만, 기회를 붙잡는 건 노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 노력했잖아. 그렇지?”

“응, 그렇지.”

“정말 열심히 했지, 우리.”

한호성은 동의하는 멤버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췄다. 제논이 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엔 꼭 노력한 만큼 잘될 거야. 그동안도 잘했으니까 앞으론 더 잘할 수 있을 거고. 그렇지?”

“응, 당연하지!”

“할 수 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대답이 돌아왔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만큼이나 지루한 이야기를 했는데 진지하게 들어 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잘하자!”

“아자, 아자, 파이팅!”

하이파이브는 이름값을 하듯 하이 파이브 했다. 짝,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가 호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제 정말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문이 열리고, 멤버들이 한 명씩 대기실을 나섰다. 한호성은 앞선 멤버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오른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응?”

돌아보니, 맨 뒤에 선 우영찬이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떨려서.”

“아, 역시 떠는구나.”

긴장이 뒤늦게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첫 무대를 앞두고 떨리지 않을 리 없었다.

한호성은 우영찬을 응원해 주고자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우영찬이 더 빨랐다.

“아니, 나 말고. 떠는 건 너잖아.”

“어?”

“너, 아까부터 손이 떨리던데.”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우영찬에게 꽉 잡힌 덕분인지, 조금도 떨리지 않는다.

“내가 손을 떨었다고?”

“그래.”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리적인 현상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으므로. 떨림도 그러한 신체적 증상 중 하나였다.

“어쨌든 이젠 안 떨려.”

한호성은 걱정하지 말란 듯이 왼손을 들어 보였다. 과연, 그의 손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우영찬은 말없이 한호성의 오른손을 놓아주었다.

억센 손아귀에 붙잡혔다가 풀려나서인지 손이 저릿저릿해, 한호성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물렀다. 그사이 저만치 앞서 나간 문해일이 그를 불렀다.

“형, 뭐 해?”

“응? 아, 아무것도 아냐.”

한호성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이얀 빛이 새어 나오는 무대를 향해.

***

‘됐다.’

우영찬은 거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완벽한 무대였다. 이 분야의 문외한인 자신이 느끼기에도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다. 춤과 노래는 물론 음향과 조명, 무대 효과까지. 자연히 관객 반응도 좋았다.

우와아아아악!

꺄아아악! 아아악!

‘……거의 절규 아닌가.’

우영찬은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아마 카메라에는 잔잔한 미소로 비칠 성싶은 실소였다.

어쨌거나 한 달 동안 준비한 무대가 잘 마무리되어 후련했다. 비록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선 무대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못 하는 것보다 잘하는 편이 나으니 말이다.

게다가 연습할 땐 수시로 실수했던 구간도 무사히 해치웠다. 마치 몸이 알아서 움직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한호성이 부르짖던 연습의 힘인가.’

우영찬은 땀을 닦는 척하며 한호성을 힐긋 훔쳐보았다. 그는 두 손을 흔들며 관객을 향해 인사 중이었다. 얼굴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활짝 웃는 표정일 터였다.

“클랩! 무대 잘 보았나요? 신곡 어때요?”

너무 좋아! 최고야!

한호성의 물음에, 관객석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답이 터져 나왔다.

“잘 들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신곡을 준비하다 보면 언제나, 클랩의 반응이 어떨지가 가장 고민스럽고 걱정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는데, 이렇게 클랩에게 좋은 말만 들으니 행복해요.”

와아아악! 나도 좋아아아악!

또 한바탕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영찬이 알기론 관객 수가 적은 편이라던데,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었다.

“고마워요, 클랩!”

그 뜨거운 반응에 한호성은 기분이 한껏 고양된 듯싶었다. 벅찬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엔 클랩과 함께하는 스피드 퀴즈 차례입니다!”

오죽 흥분했으면 무대 위에 멀쩡히 선 MC를 놔두고 한호성이 사회를 볼 정도였다. 관객은 누가 사회를 보든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했다.

역시나 성원 속에서 스피드 퀴즈가 끝났다. 다음 차례는 멤버별 소감 발표였다. 한결 차분해진 분위기에서 한 명씩 마이크를 잡았다.

이 또한 신물이 날 정도로 시달리며 준비한 것이기에 ‘제논’의 차례도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였다.

“Q&A 추첨 시작하겠습니다!”

MC가 유쾌하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스태프가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는 투명한 재질이라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색색의 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부터 멤버들이 공을 하나씩 뽑겠습니다. 공에 든 숫자와 같은 번호표를 가진 분께선, 해당 멤버에게 궁금한 걸 직접! 직접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영찬은 싱긋 웃는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욕을 삼켰다.

‘이딴 이벤트를 기획한 놈이 누구냐, 대체.’

신곡 소개나, 앨범 발매 소감을 발표하는 일 따윈 어렵지 않았다. 소속사에서 써 준 답을 외워 줄줄 읊으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Q&A는 달랐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모르니 답을 미리 준비할 수 없었다.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예상 질문을 추려 준비하긴 했으나 그것만으론 불안했다.

‘내가 김제국도 아닌데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냐고. 분명 김제국 본인도 잘 못 할 일을.’

새삼스럽지만 이 엔터테인먼트사는 지나치게 허접했다. 인력이 부족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있는 인력마저 업무의 분담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문성 없는 직원까지 의견을 내다 보니 이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닌가.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대표지만.’

장 대표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린 우영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딱히 나쁜 사람 같진 않던데 사업할 깜냥도 아닌 듯싶었다.

하기야 나쁜 사람이 별거인가. 회사에서 헛짓거리를, 이를테면 비정상적인 상태인 아이돌을 Q&A 이벤트에 내보내는 짓 따위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쁜 사람이다.

“다음은 제논!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제논의 차례가 되었다. 우영찬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중간으로 향했다.

“준비됐나요?”

“예.”

“그럼 뽑아 주세요!”

고작 상자에서 구슬 하나 뽑는데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과연,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시선 하나하나에 압력이 실린 성싶었다. 늘 속한 집단의 이목을 끌곤 했던 우영찬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주목받는 건 처음이다.

‘매일 이렇게 살면 피곤하겠군.’

아이돌도 참 쉬운 직업은 아닌 듯싶다. 자신의 뒤에 앉아 있는 네 명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우영찬은 상자에 팔을 집어넣었다.

“뽑았습니다! 자, 확인해 볼까요?”

MC가 공을 열었다. 그 속에 든 종이엔 숫자 ‘29’가 적혀 있었다.

“29! 29번입니다. 행운의 29번, 어디 계실까요? 아, 저기 계시는군요!”

관객석에서 한 명이 일어났다. 주목받는 게 부끄러운지 핸드백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스태프가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제논에게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질문 정하셨나요? 안 정했다면 고민할 시간 5초 드리겠습니다. 5, 4, 3, 2, 1, 땡!”

MC가 순식간에 5초를 셌다. 당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리다,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 어, 저, 궁금한 게, 그, 이런 거 물어봐도 되는지 모, 모르겠는데…….”

“되죠, 됩니다!”

MC가 우영찬 대신 대답했다. 우영찬은 언짢은 기분을 내리눌렀다.

‘되긴 뭐가 되냐. 뭘 물어볼 줄 알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었다. 다시금 아이돌의 직업적 고충을 느끼며, 우영찬은 입을 열었다.

“네.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 주세요.”

제논 본인의 허락에 용기를 얻은 듯, 당첨자가 한결 진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블로그 말이야. 갑자기 해킹당해서 많이 놀랐을 텐데…… 이제 괜찮아? 속상하진 않았어?”

역시 블로그 관련 질문인가.

우영찬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논이 가장 화제 된 게 블로그 사건 때문이라서, 이런 질문이 나올 것도 같았다. 멤버들과 여러 번 시뮬레이션한 덕분에 당황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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