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29화 (29/123)
  • #29

    “작곡 프로그램.”

    “작곡 중이었냐? 작곡할 줄 알아?”

    “응. ……잘하진 않지만.”

    한호성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웬만한 포즈며 애교 요청 따윈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이런 건 수줍어하다니 의외였다. 돌연 흥미가 일어, 우영찬은 당당히 요구했다.

    “들려줘.”

    “어?”

    “네가 작곡한 거. 궁금하니까.”

    “자랑할 만한 곡이 없는데……. 나도 아직 배우는 단계라.”

    “누가 자랑해 달랬냐. 그냥 듣고 싶다는 거지.”

    “…….”

    한호성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의 곡이 얼마나 미흡한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은 실력이었다.

    하지만 우영찬이라면 괜찮을 듯싶었다. 그는 정말이지 듣는 귀가 없으니까. 가요 차트 진입으로 증명된 명곡을 듣고도 심드렁한 우영찬이라면, 자신의 졸작을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기다려 봐.”

    한호성은 클라우드를 열었다. 틈틈이 작곡한 작업물이 꽤 쌓여 있었다. 개중 어떤 곡이 그나마 나을까, 생각하는데 우영찬이 물었다.

    “이건 뭐냐?”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스크롤 올려봐. 어, 이거. ‘타 버린 별.’”

    한호성은 화면을 터치하던 손가락을 멈칫했다.

    “……왜 하필이면 이걸.”

    “곡명이 독특해서.”

    무슨 뜻이냐는 질문이 내포된 말 같았다.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듯 대답했다.

    “우울한 느낌이지? 근데 어쩔 수 없어. 내가 한창 우울할 때 작곡한 곡이거든.”

    “…….”

    “그때 기분 전환 삼아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저 곡은 내가 거의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야.”

    그래서 엉망이야.

    절대 못 들려준다는 뜻을 담아 강경하게 덧붙이자, 우영찬이 말했다.

    “우울한 곡명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냥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을 뿐이지.”

    “의미?”

    “응. 아무렇게나 붙인 곡명은 아닐 거 아냐?”

    우영찬이 호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서 답을 알려 달라는 듯이.

    강권하는 듯싶진 않았지만, 집요한 시선이기는 했다. 그는 한호성이 입을 열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성싶었다.

    “……내가 타 버린 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

    강요 아닌 강요에 떠밀린 한호성은 결국 말문을 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못 할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그거 알아? 별에도 수명이 있다는 거. 사람들은 흔히 별에 영원을 빗대지만, 사실은 아니야. 별도 언젠가는 죽으니까.”

    “생명체는 아니니 ‘죽는다’라는 단어 선택은 틀린 것 같은데.”

    “아무튼.”

    한호성은 우영찬의 지적을 대충 흘려 넘기며 말을 이었다.

    “영원할 것 같은 에너지에도 결국은 끝이 있어. 타고난 에너지를 전부 태워 버리면 별은 더는 빛나지 않아. 크기에 따라 백색 왜성이 되는 별도 있고, 중성자별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블랙홀이 되어 버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더는 빛나지 않는단 거야. 그게 죽음이 아니면 뭐가 죽음이겠어.”

    “…….”

    우영찬은 이번엔 지적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과 감성이 그의 이과 감성을 설득한 모양이라고, 한호성은 마음대로 넘겨짚었다.

    “내 생각엔 사람도 그런 것 같아. 가진 에너지가 유한하니까 그걸 다 태우면 빛나지 않는 거야.”

    지금도 종종 하는 생각이었다. 자신은 어쩌면 타고난 에너지를 거의 써 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더라도 에너지를 아낄 마음 따윈 새끼손톱만큼도 없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빛을 내며, 이따금 두려워할 뿐이었다.

    언젠가 에너지가 고갈되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러나 한호성은 고민을 유예해 두었다. 후에 어찌 되든 이건 벌써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무수한 별들 사이에서 가장 빛날 방법만 골몰해도 부족한 시기이니.

    “그러다 떠오른 멜로디가 있어서 다듬어 본 곡이야. 다듬었다고는 해도 지금 들어 보면 날것 그 자체겠지만.”

    “뭐야, 태블릿은 왜 집어넣는데?”

    “정리하고 자러 가야지.”

    호성은 우영찬이 말릴 새도 없이 태블릿 PC를 정리했다. 우영찬이 사기당한 사람처럼 씩씩거렸다.

    “들려준다며!”

    “내가 언제?”

    “와, 진짜.”

    억울해하는 우영찬을 앞두고 한호성은 제 짐을 깔끔히 정리했다. 자작곡을 들려주기엔 역시, 아직 이른 듯싶었다.

    “나중에 들려줄게. 오늘은 일단 자자.”

    “나중에, 언제.”

    “그냥 나중에.”

    “그런 식으로 대충 둘러대면서 미룰 거지?”

    내심 그럴 작정이던 한호성은 뜨끔했다.

    “쇼케이스 끝나면 들려줘.”

    “쇼케이스는 오늘이잖아?”

    “그럼 오늘 들려주면 되겠네.”

    우영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호성은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마음의 준비가 왜 필요한데. 무대엔 잘만 서면서.”

    “무대랑 작곡은 다르잖아.”

    우영찬은 대꾸 없이 방으로 쓱 들어갔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한호성도 방으로 들어갔다.

    어쨌거나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듯싶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4. New Melody

    “우와, 대박. 사람 진짜 많아.”

    관객석을 슬쩍 엿보고 온 이주진이 흥분해 말했다.

    금일 쇼케이스가 열리는 장소는 소형 홀로, 객석이 많지 않았다. 자연히 관객 수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내받았는데 막상 마주한 관객은 생각보다 그 수가 많았다. 한호성도 조금 전, 입장 대기 줄의 길이를 보고 놀란 터였다.

    “그러게. 많이 오셨더라.”

    “응! 깜짝 놀랐어. 쇼케이스 경쟁률이 높았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홀이 작아도 만석이라서인지 콘서트장 같더라. 그러고 보니까 우리, 무대에 서는 것도 오랜만이지?”

    “그러네.”

    한 달여 만이었다. 보통 사람의 기준에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겠으나, 한때 전국의 행사장을 도느라 매일같이 무대에 섰던 하이파이브로선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많게 느껴지는 건가.”

    한호성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달 사이 무대에 서는 감각이 둔해진 모양이었다. 또 관객이 몇 명이라고 전달받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기 마련이라서, 비로소 그 숫자가 실감 났다.

    “좀 떨린다. 그렇지?”

    “……그러게.”

    한호성은 순순히 인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저 많은 관객 앞에 서는 게 조금 떨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긴장되는 떨림이 아닌 기분 좋은 떨림이지만.

    “넌 좀 어때, 제논. 떨리지 않아?”

    한호성은 우영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대기실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느긋이 몸을 기댄 자세가 퍽 여유로워 보였다.

    “안 떨려.”

    “그래 보이긴 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웬만한 사람은 무대를 앞두면 떨기 마련이다. 무대 경험이 없다면 더더욱. 한데 우영찬은 신기할 정도로 태연했다.

    “너 원래 무대 서는 거 싫어했잖아.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바뀐 것처럼 대범해질 수가 있어? 비결이 뭐야?”

    이주진의 의문에 우영찬이 되물었다.

    “비결이 궁금해?”

    “응.”

    “알려 줘?”

    “응!”

    “사람이 바뀐 ‘것처럼’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바뀐 거라서 그렇다.”

    “뭐래…….”

    이주진이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릴 냈다. 문해일과 설이태도 한 마디씩 보탰다.

    “아직도 망상에서 못 벗어났냐?”

    “김제논, 무대 위에선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모르겠냐? 세뇌하듯 신신당부했으면서?”

    우영찬이 진저리쳤다. 그는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내내 요주의 인물이었다. 하이파이브 멤버는 물론, 장 대표가 직접 나서서 우영찬을 훈련시켰을 정도였다.

    “왜 안 떠냐고? 당연하지. 준비를 그렇게나 했는데 떨릴 리가 있냐?”

    “그래도 떠는 사람은 떠는데……. 뭐, 안 떨린다면 다행이지만.”

    이주진은 화제를 대강 넘겼다. 하지만 설이태는 아무래도 불안한지, 한호성에게 넌지시 말했다.

    “형, 정말 괜찮을까? 지금이라도 핑계를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어? 하다못해 샤워하다 미끄러져서 머리를 벽에 부딪혔다던가…….”

    “괜찮아.”

    한호성은 힘주어 대답했다.

    굳이 구차한 핑계를 댈 필요 따윈 없었다. 한 달간 빡세게 구른 덕분에, 우영찬은 이제 어디 내놔도 악평을 들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평을 들을 수준도 아니지만, 여하튼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터였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 매니저인 장영수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형님들, 대기 10분 남았슴다!”

    장영수는 공지를 마치자마자 곧장 대기실을 나섰다. 쇼케이스를 앞두고 그도 바쁜 모양이었다.

    ‘10분 전…….’

    곧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기대와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칵테일 같은 기분. 데뷔한 지 햇수로 9년 차인 한호성이지만, 무대를 앞두고선 아직도 가슴이 떨렸다. 특히나 이번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얘들아, 잠깐 모여 봐.”

    한호성의 부름에, 제각기 할 일 중이던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우영찬마저 다가왔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이번 앨범 준비뿐 아니라 4년 내내 말이야. 그간 정말…….”

    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했다.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노력한 까닭이다.

    우영찬을 제외한 모두의 눈에 지난날의 고생이 스쳤다. 때론 다 그만두고 싶을 만치 괴로웠지만, 어느덧 추억으로 미화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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